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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검은 돈은 스위스로 몰리는가 - 조세피난처의 원조, 스위스 은행의 비밀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홍기빈 해제 / 갈라파고스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1.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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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조세피난처이자 돈 세탁의 중심지인 스위스의 금융시스템을 고발하는 책. 기업이나 개인들이 세금을 피하기 위해 불법적으로 반출한 자금은
물론, 국제적인 마약상들이 사람들의 몸과 영혼을 파괴하며 긁어모은 돈이나 부패한 독재자들이 국민들로부터 훔쳐낸 돈까지도 가리지 않고 받아 관리해
주는 상황. 이를 제재하려는 일체의 시도는 협박과 린치, 그리고 무엇보다 합법적인 반대를 통해 저지시켜버리는 스위스의 암담한 상황에 관한 묘사가
실감나게
그려진다.
우선적으로 저자가 지적하고 있는 부분은 스위스 특유의 느슨한 연방제다. 범죄 수사마저 각 주 정부에 속한 수사판사들에게 전적으로 맡겨져 있어서
중앙의 통제력이 미치지 않고, 그 수사판사들은 주 의회의 추천으로 임명되니 필연적으로 정치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나마 정당별로 할당된
각료들로 구성되는 연방정부는 제대로 된 통제를 할 수 있는 능력도, 의지도 없으니 법무장관이나 검찰의 수장마저 은행가들과 커넥션을 갖고 (돈
많은) 범죄자들이 자국을 활보하게 놔둬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애초부터 견제할 야당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 지극히 ‘평온한’ 정치, 모두가
끼리끼리 현재만을 보전하려는 최악의
상황.
저자는 결국 이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건 의식이 깨어 있는 시민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 부패의 고리를
완전히 척결하는 혁명 수준의 새로운 변화를 촉구해 내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2. 감상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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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는 중세 말 종교개혁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다. 제네바는 유명한 종교개혁자 중 하나였던 장 칼뱅이 프랑스로부터 박해를 피해 온 이민자들과
더불어 그의 신정(神政)국가적 이념을 한동안 실제로 적용하기도 했던 유서 깊은 도시다. 또 한 명의 종교개혁자인 츠빙글리 역시 스위스의
취리히에서 활동하기도 했을 만큼, 스위스는 종교개혁적 정신의 세례를 일찍부터 받은 나라 중 하나였다. 그랬던 스위스가 오늘날 어째서 세계의
더러운 돈을 세탁해주는 돈세탁소로 전락해
버렸을까?
책을 읽으면서 우선적으로 드는 생각은 당연히 분개다. 정의롭지 못한 일들이 백주 대낮에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데도 누구도 나서서 상황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소수의 저항자들은 이내 살해되거나 협박과 각종 압력에 의해 - 실제로 이 책을 쓴 저자는 국회의원이자 교수임에도 이 책을 쓴 뒤
각종 협박과 살해 위협, 고소 고발로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고 한다 - 결국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고 사그라지고 만다. 돈을 쥔 사람들은
권력까지 손에 넣은 지 오래라, 정부와 의회 안에 그들의 뜻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일찌감치 사라져버렸으니, 종교개혁과 시민혁명의 빛나는 전통은
사라져버리고 천박하고 오직 힘의 원리만 지배하는 정글로 다시 돌아가버리고
말았다.
또 한 편으로 정치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도 생각해 보게 된다. 스위스의 의원들은 봉급을 받지 않는 대신, 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적은 회의비,
그리고 각종 문서 검토비 정도만을 받는다. 어찌보면 대단히 부러운 일일지도 모르지만, 봉급을 받지 않는 정치인들은 대신 수십 개의 기업과 은행
관련 직함을 갖고 회의 때마다 그들의 이익을 위해 성실하게 봉사하는 거수기 노릇을
한다.
과도한 지방분권적 구조도 문제다. 상대적으로 이슈화가 덜 될 수밖에 없는 지방정치는 얼마든지 조작과 협잡이 가능한데다, 갈수록 저조해지는
투표율에서도 알 수 있듯, 시민들은 나서서 뭔가를 감시하려 하지 않으니 끼리끼리 판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정치의 문제는 단지 정치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 나라의 수준을 이렇게 개판으로 만들 수 있는
법이다.
스위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기득권층도 부러워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완전한 민주주의는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는 언제나 거슬리고
귀찮은 제도이고, 종종 위협이 되지 않던가. 우리나라에서도 고위 공직자들의 회전문 인사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닌 게 되고 있고, 대기업
회장들이 하사하는 떡값 한 번 안 받은 입법, 사법, 행정부 인사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기도 하다. 뭐 대통령이 나서서 대기업 회장
하나만을 위한 특별사면을 하고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지경이니 말
다했다.
저자의 말처럼 문제 해결은 시민 하나하나의 깨어있는 의식과 행동이겠지만, 사람들이 모이면 경찰은 물론 국정원, 기무사까지 동원해 미행하고
도청하고 감시하는 걸 우습게 아는 정권 아래서 과연 그게 쉬울까. 정말로
나쁜 놈들은 복면 대신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는 걸 잊어버리지 않는 것, 여기에서 시작한다면 크게 나쁘지 않은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