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 디자인
사와다 도모히로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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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목만 보면 어떤 내용일지 짐작도 가지 않는 책이었다. 물론 제목에 사용된 단어야 익숙하지만, ‘이게 이렇게도 연결될 수 있다고?’ 하는 느낌. 저자는 일본의 한 광고회사에서 일하던 카피라이터였다. 청춘의 나이에 입사해 몇 년 간 일에 몰두하며 살았던 그는, 입사 10년 만에 얻은 아이가 시각 장애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처음엔 충격에 빠진다.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저자의 삶의 궤적은 크게 변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위해 그는 우선 실제 장애인들을 만나기 시작한다. 그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나면 또 다른 사람을 소개받는 식으로 200여 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한 후, 그는 비로소 약점은 다양성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 사회는 비장애인을 표준삼아 구성되어 있다. 모든 것이 여기에 맞춰 구축되고 제작되고 유통된다. 만약 장애인들이 여기에 맞춰서 살아가야만 한다면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관점을 조금 바꾼다면, 그래서 장애인들을 비롯한 소수자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 본다면 그게 다른 사람들의 삶에도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 구부러지는 빨대라든지 한 손으로 불을 켜는 라이터는 모두 장애인들의 편의를 위해 제작되었다가 이제는 널리 퍼진 발명품들의 예다.





광고전문가로서 저자는 사물을 다르게 바라보는 훈련을 오랫동안 해 온 인물이었다. 그는 아들과 같은 장애인들의 ‘약점’을 단순히 극복해야 할 무엇이 아니라 살려내야 할 무엇으로 보기로 한다. 이 때부터 소수자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에 자신이 가진 재능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 중 하나로 저자 자신의 약점이기도 한 스포츠(나와 비슷하게 몸으로 하는 운동에는 영 재능이 없었던 저자) 영역에도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낸다. 이른바 ‘유루스포츠’가 그것.


유루스포츠란 일본어로 느슨하게(유루이) 즐길 수 있는 스포츠를 가리킨다. 손에 비누칠을 하고 하는 핸드볼경기인 핸드소프볼, 애벌레 모양의 침낭 비슷한 경기복에 들어가 구르고 기어가며 하는 애벌레 럭비, 강한 충격을 가하면 아기 울음소리가 나는 센서가 장착된 공을 사용해 아기울음소리가 나면 상대에게 공을 넘겨야 하는 아기 농구 같은 것들이 책에 소개 된 유루스포츠의 예다. 단지 누군가를 우대하기 위해 핸디캡을 마련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아예 승리하는 방식을 자체를 바꿔 기존의 강자들과 약자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스포츠를 만들어보자는 개념이다.


물론 이 주장이 더 빨리 달리고, 더 강한 힘을 가진 사람들을 불리하게 만들자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엘리트 스포츠에 매몰되어 대중이 직접 참여해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운동을 할 수 있는 좀 더 본질적인 체육활동에 집중해 만들어 본 또 하나의 스포츠 영역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저자는 이제까지 광고회사에서 더 많은(Scale) 사람들에게 더 빨리(Speed) 알리고, 짧은 기간(Short)에 그 역할을 마쳐왔다. 하지만 이제 눈을 돌려 좀 더 천천히(Slow), 작은 것부터(Small), 키워가 오래도록 이어갈 수 있는(Sustainable) 일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대량 생산, 대량 소비라는 자기파괴적인 기초 위에 세워진 자본주의에서는 모든 것을 순간적으로 소진해버리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진다. 그래야 또 더 많이 소비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과연 우리는 그렇게 살아도 되는 존재일까?


저자는 이 질문을 단지 자신에게만 한 것이 아니고,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적용해 볼 것을 권한다. 책 후반에는 어떻게 하면 기존의 틀을 벗어나서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며 살 수 있는지에 관해 간략한 로드맵을 제시한다. 요새 유행하는 퍼스널 브랜딩과도 약간 맥이 닿아있는 느낌인지라 읽어볼 만한 내용이다.


물론 모두가 이런 창의적인 일을 하며 살 수는 없을 게다. 누군가는 틀에 박혀있지만 필요한 일을 해야만 사회라는 곳이 굴러갈 테니까. 하지만 그 안정된 틀이 누군가의 희생을 깔고 가야만 하는 거라면, 틀을 흔들어 볼 필요도 있을 것 같다. 어렵게 쓰이지 않았으면서도 좋은 메시지를 던져 주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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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홀 문화인류학 4부작 1 : 침묵의 언어 이상의 도서관 46
에드워드 홀 지음, 최효선 옮김 / 한길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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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유튜브 콘텐츠를 촬영하면서 추천받은 책이다. 필리핀 선교사로 10년 넘게 사역하시던 분이었는데, 타문화권에서 일을 하는 게 어디 쉬울까. 우리에겐 당연하게 여겨지는 많은 관행들이, 실은 인류의 보편적인 관습이 아니라 특정한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끼리 통하는 무엇이라는 걸 깨닫지 못하면 결코 이런 일은 제대로 해 낼 수 없다. 이런 면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하시니 한 번쯤 읽어 볼만하다.


책 제목인 ‘침묵의 언어’는 비언어적 언어(의사소통 수단)을 가리킨다. 굳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다양한 것으로 우리의 마음을 표현하곤 한다. 가장 직접적으로는 표정으로 말할 수도 있고, 특정한 제스처는 거의 말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앞서도 말했듯, 특정한 지역에서, 특정한 문화와 전통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말을 하지 않아도 자명한 무엇이지만, 그 영역 밖으로 나가면 전혀 다를 수 있다.




대학 시절 교양과목으로 한 학기 동안 수어를 배운 적이 있다. 그 학기를 지나서는 딱히 쓸 데가 마땅히 없기도 해서 더 익히지 않는 바람에 대부분 잊어버렸지만, 여전히 기억이 나는 게 몇 개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손위 남자 형제를 가리키는 수어였다. 가운데 손가락만 펴고 나머지 손가락은 모두 접은 채로 손바닥을 자신 쪽을 향하게 해서 들어 올리는 거였다. 그렇다. 꽤 많은 나라들에서 욕으로 사용되는 그 제스처와 너무나 비슷하다(그래서 아직까지 기억이 나는 건지도). 당연히 수어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좀 당황스러울 수도 있는 동작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우리는 이런 문제에 쉽게 부딪히곤 한다. 흔히 어떤 나라 사람들은 이렇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있다. 이 나라 사람들은 게으르고, 저 나라 사람들은 탐욕스럽고, 또 다른 나라 사람들은 속을 드러내지 않고 하는 것들. 그런데 알고 보면 이런 편견들은 사실 우리와 다른 그들의 비언어적 의사소통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우리에게 익숙한 문화대로 그 사람들을 평가하고 있는 것.


앞서 말한 선교사님과의 대화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이 시간에 대한 다른 감각 부분이었다. 우리 달리 도심지를 제외하고는 교통수단이 지프니 말고는 거의 갖춰지지 않은 필리핀의 경우, 정확한 시간에 약속을 잡는 것이 애초에 무리라는 것. 이런 걸 모른 채로 필리핀인들이 약속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하기 시작하면 그 다음 스텝이 제대로 진행될 리 없다. 오해가 쌓이면 결국 의견 충돌로 이어지고 종래에는 갈등으로 치닫게 된다.





책은 이런 다양한 영역들에 대한 실제 사례들과 저자가 정리한 비언어적 언어의 다양한 양상들을 잘 제시하고 있다. 문화 간 차이에 대한 고민이 있다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물론 이 책이 우리나라에 출판된 것만 해도 2013년이니 벌써 10년 전이고, 원서는 무려 1959년에 나왔으니 그 사이 이 문제에 대해서도 이전보다는 좀 더 나은 이해를 갖게 되지 않았나 싶다.


이미 당시에도 미국 정부는 이런 문제를 두고 본격적인 연구를 진행했다니 확실히 다르긴 다르구나 싶다. 우리나라는 불과 1년 후 4.19 혁명이 일어날 정도로 이승만 정부의 극심한 정치 부패가 나라를 망치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기초적인 인문학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는 게 미국이라는 나라의 힘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단순한 사례들의 나열을 넘어, 저자 나름대로 이런 다양한 영역들의 정리를 통한 체계화까지 시도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이 책보다 좀 더 세련된 책들도 분명 있겠지만, 역시 근본을 손에 드는 게 주는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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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끝의 버섯
애나 로웬하웁트 칭 지음, 노고운 옮김 / 현실문화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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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가볍게 생각해고 손에 들었는데, 생각보다 읽기가 어려웠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우선 번역 투의 문체가 참 힘들다. 당장 책의 부제가 “자본주의의 폐허에서 삶의 가능성에 대하여”이다. 무슨 말인지 뉘앙스는 이해가 되지만, 이게 우리말이 맞긴 한가? 보니 전문번역자가 아니라 박사학위까지 받은 관련 분야 전공자이다. 물론 모든 문장이 어려운 건 아니지만, 좀처럼 눈에 바로 들어오지 않는 문장들이 자주 보인다.


또 하나는 이 책의 저자가 가지고 있는 집필 목적이 정확히 무엇인지 눈에 잘 안 들어온다는 점이다. 앞서의 부제를 보면서 처음에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일종의 대안자본주의를 제시하려는 것인가 싶었다. 물론 그런 내용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예컨대 이야기의 주 무대가 되는 미국 오리건주의 한 산지의 버섯채집인들로 구성된 캠프는 조금은 임금노동과는 조금 다른 방식의 자유로운 삶을 선택한 동남아시아에서 온 여러 사람들로 채워져 있긴 했지만, 그게 이 책의 저자가 찬양하는 어떤 목적이나 목표 같지는 않다. 애초에 이 송이버섯 채집 경제는 너무나 규모가 작아서 무슨 구조를 논할 만한 게 아니었으니까.


그럼 또 송이버섯의 생태와 관련된 다양한 과정들을 추적하는 식물학적 접근이냐, 이 또한 책에서 언급되기는 하지만 그게 또 중심인가 싶으면 그건 아니다. 환경보호나 생태학적 관점도 담겨 있긴 하지만, 그 역시 메인은 아니고.




책 말미에 붙어있는 해제를 보면, 저자는 문화인류학적 접근을 시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핵심은 어떤 지역에 사는 특정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는 게 아니라, 송이버섯을 중심에 두고, 그걸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인 듯하다. 연구 주제가 독특하긴 하다. 여기에 포스트인문주의 같은 조금은 어려운 말을 사용해 설명을 하긴 하지만, 뭔가를 그려내고 있다는 정도만 와 닿는다. 애초에 이 맥락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나 같은 독자들은 유튜브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마주친 다큐 클립을 보는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내 경우엔 그런 걸 또 한참 들여다보며 재미를 느끼긴 한다.


우선은 일본에서 송이버섯이 어떤 의미인지에 관해 자세한 서술이 눈에 들어온다. 송이버섯은 대규모로 재배할 수 없고 그저 채집할 수 있을 뿐이기에, 어떤 산업적인 구조라는 게 만들어지기 쉽지 않다. 그런데 바로 이 점이 또 송이의 가치를 높여주는지라, 일본에서 (좋은) 송이는 단순한 금전적 보상과는 다른 차원의 선물로 여겨진다는 것.


한편으로 미국의 송이채집자들의 세계도 흥미롭다. 동남아시아 각지에서 온 소수민족들이 대거 포진한 이들의 무리는, 저마다의 문화와 풍습을 가지고 있고, 합법과 불법의 경계(버섯채집허가증이 있긴 하지만, 이들은 종종 사유지에도 들어간다)에서 송이를 채집하는 삶을 꾸려간다. 그러면서 이들은 월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자본주의의 틀에서 벗어난 일종의 자유를 누리는데 그들이 채집한 송이를 판매해서 생계를 이어간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 판매 과정이 일종의 경매로 이루어진다는 점이 또 재미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송이버섯의 생태 부분과 관련해서, 우리가 흔히 자연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 즉 인간이 개입을 덜 하고 알아서 각 생물들이 자라도록 하는 게 제일 좋다는 생각 또한 절대적인 정답은 아니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송이는 교란된 숲에서만 자라기 때문이다. 벌목이 이루어지고, 인디언들이 일부러 불을 내 화전을 일구고 떠난 자리, 겉으로만 보면 삼림이 훼손된 것 같은 그런 자리에서만 송이가 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그저 잘 ‘보존’된 숲은 ‘방치’된 숲일 수도 있다는, 그래서 오히려 생물의 다양성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지적은 꽤 새롭기도 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결과적으로 이 책은 송이버섯을 둘러싼 수많은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구조적으로 연결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대한 태피스트리와 같다는 느낌이다. 다양한 주제들과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 또 그들의 고향을 비롯한 다양한 지리적 내용들이 이리저리 섞여 풀려나온다.(알라딘에서 이 책의 분류는 인류학, 식물학, 생태학, 환경학까지 망라한다 ㅋ)


다만 버섯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이 경제가 뭔가의 대안이 될 수 있다거나 할 것 같지는 않다. 엄청난 찬사(대개 책의 추천사라는 게 그렇지만)가 오히려 살짝 부담스럽달까. 다만 책에서 묘사되고 있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 어떤 변화를 주는 정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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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밤의 애도 - 고인을 온전히 품고 내 삶으로 돌아가기 위한 자살 사별자들의 여섯 번의 애도 모임
고선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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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우리나라에서 한 해 동안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의 수는 12,906명이다. 그 중 남성이 9,019명, 여성이 3,887명으로, 남성 쪽이 두 배 이상 높다. 인구 10만 명 당 자살자 수를 가리키는 자살률 평균은 24.1명으로, 같은 기간 OECD 평균인 11.1명을 두 배 이상 초과하는 압도적 1위를 마크하고 있다. 2위인 리투아니아는 지난 2017년까지는 우리보다 높았으나,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여서 2018년 이후로는 우리가 독보적인 1위라고 한다.


10대에서 30대까지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고, 4, 50대의 경우에는 사망원인 2위에 해당한다. 사고나 질병이 아니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의 수가 이렇게 많다는 건, 개인적인 삶의 영역으로 들어가기 이전에 당장 인구 감소가 심각한 상황에서 국가적인 생산력 감소의 큰 위협이기도 하다.


물론 이 문제는 단순히 경쟁력이나 생산력 따위의 숫자로 환산할 수 있는 무엇 이상이다. 때문에 자살자에 관한 다양한 사회적 연구나 관심도 요즘엔 늘어나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초점이 언제나 자살예방에만 맞춰져 있는 것 같다. 물론 예방은 중요한 일이지만, 일단 벌어지고 난 후에는 금세 또 다른 예방으로 넘어가버린다는 게 문제다. 자살 이후에는 남겨진 가족이나 친구들(자살 사별자)이 있고, 그들의 삶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는 걸 간과해버리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자살 사별자들에 관한 내용이다. 심리부검이라는, 사망자가 어떻게 그 상황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 심리상태를 사후에 추정해 나가는 분야에서 일해 온 저자가, 실제 자살 사별자 다섯 명과 함께 여섯 번의 자조모임에서 나눴던 대화를 바탕으로, 이들의 회복과정에서 필요한 것들을 천천히 되 집어 본다.




사실 가까운 사람들 중에 자살로 세상을 떠난 사람이 없었기에, 개인적으로 이 문제가 어느 정도로 심각할지 대해서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책을 읽고서야 비로소 이들이 어떤 고통 가운데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지 조금이나마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가까운 사람이 죽었을 때 당연히 남겨진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게 된다. 그런데 자살 사별자의 경우 이들은 그 이상의 죄책감까지 갖곤 한다. 내가 좀 더 신경을 썼더라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들을 사로잡는 것이다.


책 속에 이런 내용이 있다. 많은 자살 사별자들은 그날, 특정 순간의 이미지, 신체감각, 기억들에 꽤 오랫동안 붙잡혀 산다는 것이다. 이 기억은 자신도 모르는 새 오랫동안 사별자의 삶을 억누른다는 것.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스스로에게, 또 함께 사는 가족들에게도 생채기를 낸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의 마음에 상처와 고통을 더할 때가 있다. 때로는 무신경한 말로, 또 때로는 편견과 아집에 싸인 채로 그들을 대하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마음에 무거운 돌덩이가 얹혀 있는 사람들에게 자꾸만 그 위에 또 다른 돌탑을 쌓고 있는 것이다.(이 점은 안타깝게도 교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자살 문제에 관련해서 교회에 속한 일부는 확인할 수 없는 자신의 신학적 사유를 가지고 유가족들을 더 괴롭히기만 한다)




앞서의 통계를 다시 생각해 보면, 한 해 13,000명이 자살을 하는 상황에서 가족과 친구, 동료 등을 포함하는 자살 사별자들은 그 몇 배가 매년 생겨날 것이다. 대충 10만 명으로만 잡아도, 10년이면 100만 명의 사별자들이 생겨난다. 우리 사회는 이들을 위한 충분한 배려와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사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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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부모의 탄생 - 공동체를 해치는 독이 든 사랑
김현수 지음 / 우리학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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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잇따라 학부모들의 괴롭힘으로 목숨을 끊은 교사들의 이야기가 보도되면서 관련 문제의 심각성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누구보다 나서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교사들마저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일어섰고, 초유의 대규모 교사 시위까지 벌어졌다. 처음엔 늘 하던 대로 협박과 위협으로 대충 넘기려던 정부도 결국 교사들을 일단 진정시키자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 애초부터 이런 데 익숙하지 않았던 교사들의 시위도 더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급한 불만 끄자는 식이었던 정부의 대처는 이후에도 변변한 게 없었고, 최근에는 애초의 도화선이 되었던 한 초등학교 교사의 죽음과 관련된 학부모에게 무죄가 선고되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몇 가지 조치들이 시행되긴 했지만, 여전히 교사에 대한 학부모 괴롭힘의 문제는 그대로인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있는 건 아닌가 보다. 우리와 문화적으로 가까운 일본이나 홍콩 등지에도 비슷한 문제들이 있었고, 일본에서는 그런 학부모들을 가리켜 ‘괴물 부모’라는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네이밍 센스를 보여주었다.


이 책은 정신과 전문의가 그런 일본과 홍콩 등의 실태 조사 결과를 중심으로 괴물 부모의 특징과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 그리고 그것이 자녀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나아가 문제 해결을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략 짐작할 수 있지만, 괴물 부모가 되는 건 단지 개인적 차원의 요인만 작용하는 건 아니다. 책에서는 독박육아와 그로 인한 스트레스, 부담감 등이 아이에 대한 과도한 애착관계로 변질되어 나타났다고 진단한다. 그 근저에는 자기 증오와 자기 연민이라는 양가적 감정이 깔려 있어 문제는 좀 더 복잡해진다.


괴물 부모는 단지 교사들만 괴롭히는 게 아니다. 과잉보호, 과잉 간섭, 과잉 통제 아래서 자란 아이들에게는 다양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상처받기 쉬운, 그리고 부모가 결정해 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한 인간이 되거나, 부모에 대한 강한 원망을 품기도 한다.


그리고 당연히 괴물 부모는 자식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교사를 괴롭힌다. 별 시답지 않은 꼬투리로 자신과 같은 또 다른 새끼 괴물 부모들을 결집해 담임교사를 몰아내려 하거나, 학교 현장에 분란을 일으키는 것으로 자신의 힘을 확인하려는 병적 욕구를 드러내거나 하는 모습은 글로만 읽어도 끔찍하다.




결론부에서 저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대책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 문제를 단순히 교사 개인이 입는 피해 정도로 생각하지 말고, 사회적 고발이 이루어져야 하는 문제임을 부각시켜야 한다는 것. 일본의 경우 이 주제로 드라마가 제작되기도 해서 많은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켰다고 하는데,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더 글로리”라는 드라마가 학교폭력에 대한 경계심과 대책마련의 여론을 불러온 것과 비슷한 모양이었나 보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애초의 원인을 제거하거나 개선하는 일이 필수다. 그런데 이 괴물 부모의 문제의 배경에는 산업화 이후의 우리 역사와 문화가 전반적으로 개입되어 있는지라 더 풀기 어려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일이라는 건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는 거고, 교사들의 희생을 더 이상 우리 사회가 그냥 넘겨서는 안 되는 상황이기도 하니까.


전형적인 저개발국가의 공통점 중 하나는 교사나 경찰 같은 사회밀착형 공무원들의 처우가 굉장히 낮다는 점이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도 교사에 지원하는 학생들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고, 일부 교대의 경우 미달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은 기초교육의 질을 더욱 떨어뜨리고, 다시 교육에 대한 불신을 높여 상황을 악화시키기만 할 것이다. 이제 어서 좀 본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텐데... 지금까지 하는 걸 보면 이 정부에서는 별 기대가 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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