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이렇게 한 사람이 다양한 철학의 제 분야를 설명할 때, 어쩔 수 없이 저자의 입장에 치우신 설명을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저자의 입장은 뭘까? 윤리학에서 저자는 “모든 상황에 완벽한 해답을 주는 윤리학은 존재하지 않으며, 각각의 영역에 맞아 들어가는 윤리학이 있을 뿐”이라는 상황윤리에 가까운 주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애초에 선악이라는 개념이 궁극적으로는 애매하다는 입장이기도 하다).
인식론은 합리주의와 경험주의로 정리되는데, 이 논쟁은 결국 인간이 어떻게 자기 외부의 세계를 인지하고 해석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다양한 주장들이 있지만, 최종적으로 어떻게 이 두 개의 영역이 연결되는지에 대해서는 사실 어느 철학자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비트겐슈타인으로 넘어가면 아예 그런 건 문제가 아니라고 덮어버리고 자기 할 말만 하는 느낌이기도 하고. 저자도 마찬가지여서 이 부분에서 무슨 묘수를 내지는 못한다.
전반적으로 애매하고 모호한 지점들이 항상 존재한다. 그러면서도 저자가 확신하는 건 신에 대한 믿음이나 관념은 틀렸다는 명제인데, 이 주장을 밀어붙이기 위해 저자가 사용하는 논리는 저자의 선입관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인지 별다른 설명도 없다. 기본적으로 유물론적 관점을 지닌 저자의, 아니 어쩌면 현대 철학이 지닌 한계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부분을 좀 떼어 놓고 보면, 전반적으로 쉽게 잘 쓰인 철학 개론서다. 특히 철학사에 등장하는 다양한 이론들의 한계까지도 적절하게 짚어줌으로써, 좀 더 입체적인 이해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정도만 해도 읽을 만한 책이라 할 수 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