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분명 성경이 하나님의 유일하고, 궁극적이며, 무오한 계시임을 믿고. 무함마드가 참된 선지자였는지를 의심스럽게 본다(262). 또, 이슬람교의 경전인 꾸란에서 이사(예수)를 묘사하는 내용에 많은 왜곡과 편집이 들어갔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저자 자신도 서문에서 인정하듯 이 책의 내용 중 어떤 부분은 “저자가 이슬람교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다”고(12) 느껴질 만하도록 쓰였다. 저자는 이를 “십자군식 태도보다는 사랑으로 실수를 범하는 편”을 선택하려는 의도로 설명한다.
부분적으로 그런 방향성을 갖게 된 것은, 이 책이 엄밀한 의미의 학문적 접근만을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굉장히 많이 담아내고 있다. 물론 그 경험 가운데는 고집 세고, 교만하고, 좁은 시야를 가진 무슬림들도 있었지만, 반대로 이해심 깊고, 너그러우며, 배려할 줄 아는 친구도 있었다. 자연히 무슬림에 대한 일방적인 매도나 적대심을 보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또,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문헌 가운데는 교리적인 글보다는 다양한 필자들이 쓴 개인적인 신앙기록들도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다. 예컨대 이슬람교로 개종한 사람들의 글을 인용하면서 이슬람교에 대해 설명하는 식인데, 자연히 호의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자 자신이 기독교인이라는 점도 여기에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우리는 기독교인이기에, 기독교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 반면 어디까지나 ‘다른 종교’에 대해서는 그렇게 확신의 어조로 말하거나 쓰는 게 좀 꺼려질 수 있다. 심지어 비슷한 문제가 그 안에 많이 있다고 해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