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시대는 각종 과학기술 면에서도 큰 발전을 해냈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여기에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장영실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물론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그 모든 발전이 오직 장영실이라는 천재적인 인물 혼자 이뤄낸 것은 아니고, 집현전을 중심으로 한 많은 학자들과 기술자들이 나선 결과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은 장영실이니...

 

     근래에 세종과 관련된 작품들이 자주 보인다. 한글의 창제자로서의 면모를 그린 작품들이 대부분이지만, 이번에는 장영실을 주인공의 차원으로 올렸다. 정확히는 세종과 장영실 사이의 브로맨스를 그린 영화라고 할까.

 

 

 

 

     소재는 바뀌었지만(한글에서 천문관측으로), 여전히 구도는 비슷하다. 세종(과 장영실)은 새로운 과학기술을 통해 백성들의 삶을 좀 더 편리하게 만들어주고자 애쓰지만, 명분론과 사대주의에 쩌든 완고한 신하들은 이를 반대한다. 결국 장영실이 명나라로 끌려가게 되는 상황에 몰리고, 세종은 이 모든 것들에 대한 분노를 터뜨린다. 매우 익숙한 그림.

 

     ​실제 역사서에도 장영실은 천민 출신으로 제법 높은 지위까지 올랐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기록에서 사라진다. 감독은 이 빈자리를 가상의 이야기로 채워 넣으면서, 세종과의 친밀한 인간적 관계를 엮어 넣는 것으로 차별화를 시도한다.(물론 실제로 그랬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두 사람에게 이야기가 집중되면서, 나머지 인물들과 갈등은 너무 단순화되어 버렸다. 인물들은 입체감이 부족하고, 언뜻 보면 그냥 로맨스영화인가 싶을 정도.

 

 

 

 

     많은 것들을 잘라내고서 세종과 장영실 두 사람에게 집중하면서 감독은 어떤 걸 제안하려고 했던 걸까. 세종대왕은 훌륭한 사람이었다? 장영실의 세종에 대한 충성(혹은 애정)은 진심이었다? 두 사람이 함께 보았던 조선의 하늘은 아름다웠다? 이야기를 너무 감상적으로만 풀어놓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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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2disc) - 아웃케이스 없음
황동혁 감독, 고수 외 출연 / CJ엔터테인먼트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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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보다 몇 해 앞서 나왔던 원작 소설을 인상 깊게 읽었었다. 나라의 존립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제대로 된 현실감각 없이 쉴 새 없이 말만 쏟아내며 시간만 보내는 한심한 대신들이 가장 인상에 남았었다. 영화를 보면서 우선 놀란 것은 그런 소설 속 말의 홍수를 영상으로도 훌륭히 담아내서, 그냥 듣기만 하더라도 답답한 기분이 제대로 전해진다는 점이었다. 안 그래도 답답한 현실을 더욱 답답하게 만드는, 현실감각 제로의 멍청한 자칭 지도자들.

 

     영상화 되면서 더욱 눈에 들어오는 부분은 역시나 배우들의 비주얼이다. 이병헌과 김윤석의 등장은 자연히 그들의 캐릭터에 좀 더 집중하게 만들면서, 글로만 봤던 대립은 좀 더 생생하게 그려낸다. 연기파 배우 두 사람이 표현하는 척화와 주화 사이의 갈등은 마치 단단한 둑처럼 좀처럼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답답함이 몇 년이 지난 후 영화를 보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또 답답하다. 현실감각이 너무나 부족하면서도 자기들이 다 아는 양 온갖 헛소리들만 떠들어대는 각종 리더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우리의 귀를 시끄럽게 만들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뉴스 속에서 보고 있는 이들은 대개 이런 수준이라는 건데, 되도 않는 아무 말 대잔치를 보고 있으려면 그냥 한숨만 나올 뿐이다.

 

     왜 우리들의 자칭 리더들은 이런 수준일까 생각해 보니, 애초에 자격이 없는 이들이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과거 조선 시대에는 기본적으로 과거를 통해 관직에 올랐지만, 사실 과거라는 게 시문을 읊고 경전화 된 서적들의 내용을 얼마나 많이 외우고 빠른 시간에 재조합하느냐에 불과한 시험이었다

 

     그럼 오늘날에는 좀 다를까 싶은데, 사실 공무원 시험이라는 게 어디 현실감각을 묻는 시험이던가? 여전히 일부에서 부활을 외치는 사법고시라는 것도 본질적으로는 얼마나 많이 외우고 있느냐를 묻는 시험이긴 마찬가지다. AI 시대에 이게 무슨 시대착오적인 시험법인지. 로스쿨로 전환되면서 조금은 달라지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그들만의 리그에서 그들만의 계급을 획득하는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정계는 또 말할 것도 없으니.. , 우리는 리더의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 올라갈 수 있도록 내버려두고 있는 상태라는 말이다.

 

 

 

 

     왕조 시대의 왕이야 어쩔 수 없지만, 수많은 선거로 뽑히는 리더들의 수준이 이 모양인건, 다분히 그들을 꾸역꾸역 그 자리로 선출해 밀어 올리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 뭐 다른 방법이 있나 싶은데, 글쎄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우리를 이끄는 사람들, 우리의 여론을 주도하는 이들이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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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해가는 동물원을 살리기 위해 직원들이 동물 탈을 쓰고 벌이는 코미디를 다루는 영화다. 전반적으로 가벼운 터치를 통해 웃음을 이끌어내는 구성을 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어떻게든 성공하기 위해 간신히 들어간 로펌 대표의 지시로 동물원을 살리고자 엉뚱한 계획을 내놓는 주인공 강태수(안재홍)의 분전이 눈에 띤다.(다만 잘 뜨지는 않는 듯)

 

     ​다 망해버린 동물원의 무기력한 직원들 중에는 역시 단연 강소라가 눈에 띠는데, 생각만큼 개성 있는 캐릭터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나머지 배우들도 거의 그럭저럭 선방 수준이고. 그리고 웹툰과는 달리 직접 사람이 들어가서 연기하는 동물들의 모습이 얼마나 실감날까 하는 부분이 살짝 걱정됐는데, 역시나 좀 아쉬운 부분이 많다. 덩치가 큰 북극곰이나 고릴라 정도는 조금 볼만 했지만

 

     한 마디로 말하자면, 웃으라고 만들었는데 생각만큼 크게 웃기지 않았던 영화

 

 

 

 

     감독은 그냥 코미디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개인적으로는 이 때문에 충분히 웃기지 못했다고 본다) 주인공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동기들과 달리 이제야 겨우 비정규직으로 로펌에서 일하기 시작한 상태다. 자기 한 몸 망가지더라도 성공을 하고 싶지만, 또 다른 사람들을 짓밟고 그 자리에 올라가기에는 천성이 착한 그런 인물. 사실 얼굴 부터가 살짝 뭔가 억울한 일을 당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여기에 그가 맡게 된 동물원을 인수한 것은, 사실 로펌 대표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페이퍼 컴퍼니였고, 대표는 동물원의 몸값을 올려 그 지역에 대규모 리조트를 개발하려는 회사에 비싼 값에 팔려는 속셈이었다. , 동물원이 잘 되더라도 곧 사라질 운명이었다는 것. 영화 속에서는 이게 몇 마디 말로(허영심이 잔뜩 있는 개발회사의 대표와의 협상으로) 어찌어찌 해결되는 그림이었지만, 실제 세계에서 이런 식의 부동산 투기와 유령회사를 통한 축재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날까.

 

     ​애인(전여빈)의 등을 쳐 먹고 나중에는 동물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로펌 대표에게 알려 일을 망치려는 남친 같은 짜증나는 캐릭터에 제대로 반격이 가해지지 않은 부분도 살짝 아쉽다. 아무래도 이런 영화는 나쁜 놈들에게 한방 크게 먹여주는 게 또 제 맛인데 말이다.

 

 

 

 

 

     이런 저런 요소들이 썩 잘 버무려지지 않은 느낌이다. 이 경우에는 영화의 관객 수가 모든 것을 말해주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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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26 사건은 박정희 독재정권을 끝마치는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대통령 한 명이 죽으면서 정권 자체가 무너졌다는 건, 그 정권의 성격 자체가 시스템이 아니라 1인 중심의 사조직처럼 운영되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사실 독재정권이라는 것이 대개 그렇다. 하지만 거의 20년 가까이 지속되었던 독재로 인해 야당은 절호의 기회를 살릴 만한 여력을 잃어버렸고, 결국 또 다른 군부 쿠데타로 전두환이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덕분에 민주화는 또 한참 뒤로 미뤄지게 되었고.

 

     뭐 그래도 10.26의 의미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헌법 개정을 통해 영구집권을 시작했던 박정희를 멈출 수 있는 건 그 방법 밖에 없었을 테니까. 이후의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못했던 것으로 인해 그 사건이 갖는 의의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왜 김재규는 박정희를 쐈을까

 

 

 

 

     영화는 점진적 민주화를 향해 가려고 애쓰는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영화 속 이름은 김규평/이병헌)와 절대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박정희, 그리고 절대충성으로만 살아가는 경호실장 차지철(영화 속 이름은 곽상천/이희준) 사이의 미묘한 신경전과 조금씩 달라져 가는 심정을 김규평의 입장에서 실감나게 묘사한다.

 

     영화에서 말하는 10.26의 이유는 점점 줄어드는 입지에 대한 불안감과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상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이유 설명인데, 그가 법정에서 했던 조금 더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말과는 차이가 좀 있다. 많이들 알려져 있는, “민주화를 위해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처럼 더 극적인 동기와 의미를 담을 수도 있었겠지만, 감독은 그쪽을 선택하지 않는다.

 

     사실 사건 이후 김재규가 보여준 행동을 보면, 애초에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진행하지는 않았던 것 같으니, 개인적 고민과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벌인 충동적 사건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려울 듯도 싶다. 영화 내내 그렇게 현실주의자적 면모를 보였던 캐릭터가 벌인 사건이라고 하기에는 좀 어설픈 구멍이 많긴 하다.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도 인상적이다. 영화 내내 주연인 이병헌이 보여주는 연기력이 눈에 띤다. 당시 스타일대로 기름을 발라 뒤로 넘긴 머리에 뿔테 안경을 쓰고 등장한 그는, 조금은 침울한 모습의 김재규를 훌륭하게 재연한다. 특히 그 날의 사건 직후 흘러내린 머리를 무의식적으로 다시 쓸어 올리는 모습을 보며 감탄을 했다.

 

     박정희 역을 맡은 이성민도 최대한 원래의 인물을 떠올릴 수 있도록 많은 연구를 한 듯하다. 특히 청와대 내 이발시설에서 내뱉은 첫 대사는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그리고 영화를 위해 살까지 제법 찌웠다는 경호실장 역의 이희준도 고생했고. 확실히 현대의 인물들을 재연하는 일은 좀 더 까다로운 것 같다.

 

 

 

 

     하지만 영화가 캐릭터 쇼나 분위기로만 기억된다는 것은 이런 종류의 영화로서는 아쉬운 부분이다. 감독은 무엇을 말하려고 한 걸까? 김재규가 한 일은 의거였나, 개인적 동기의 살인이었나? 영화 말미 김재규의 재판 과정 영상을 통해 아주 조금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 듯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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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소녀 : 초회 한정판 - 초회 한정 부클릿(36p) + 아트카드(5종)
사준의 감독, 류이호 외 출연 / 비디오여행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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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생 시절 함께 밴드를 하며 꿈을 키워가던 친구들. 좋은 재능을 가지고 성공하겠다는 꿈을 품고 일본으로 건너간 은페이(송운화)는 기대했던 것만큼 기회를 얻지 못했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은페이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도 그녀의 선택을 막지 못했던 정샹(류이호)은 괴로워하던 중 우연히 만난 길거리 상인으로부터 묘한 이야기와 함께 꽃을 구입하게 되고, 과거로 돌아가게 된 정샹. 은페이를 살릴 수 있는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졌다. 당연히 이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고...

 

     대만에서 자주 제작되는 첫사랑 향수 자극 영화 종류 중 하나다. 이렇게 비슷비슷한 감성을 가진 영화를 용케도 매년 만들어내는구나 싶기도 하지만, 뭐 이전 영화들에 대한 감상에도 썼듯이 그런 향수에 자극되는 관객들이 있으니 그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물론 또 좀 다른 각도에서 보면, 현실에 대한 불만이 과거에 대한 향수를 좀 더 짙게 만드는 면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약간 씁쓸..?)

 

 

 

 

     ​영화는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데서 조금 더 나아가서, 과거로 돌아가는, 즉 타임슬립이라는 요소를 더한다. 과거로 돌아가 첫 사람을 위기로부터 구하겠다는 열정적인 주인공의 이야기. 물론 대만영화답게 타임슬립의 매커니즘은 매우 동화적으로 처리된다. 사실 이런 영화는 그 자체가 하나의 동화이기도 하니까.

 

     누구에게나 돌아가고 싶은 과거가 있을 것이다. 젊고 아름다웠을 때일 수도 있고, 결정적인 실패를 초래했을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아마도 과거의 선택을 바꾸어서 현재를 조금 더 낫게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정말 그게 가능할까? 오늘의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은 특정한 결정 하나때문일까? 당장 이번 주 발표될 로또 1등 당첨 번호를 가지고 과거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면, 아니 그걸 가지고 가더라도, 삶이라는 건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 그건 하나의 결정 때문이 아니라, 인생을 살아오면서 형성된 태도, 혹은 자세 같은 것의 결과물일 테니까.

 

 

 

 

 

     ​사실 영화 속 정샹이 은페이를 구하기 위해 시도했던 것도, 처음에는 그 하나의 결정을 막거나 바꾸려는 것이었다. 은페이가 오디션을 보지 않았더라면, 은페이가 일본에 가지 않았더라면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영화의 말미에 결국 그도 깨닫는다. 하나를 막으면 또 다른 하나가 일어나고, 결국 자신이 기억했던 그 길을 따라 걷고 있다고

 

     ​그리고 뭔가를 깨달은 정샹은 은페이의 선택을 바꾸려는 것을 포기하고, 그녀의 태도에 영향을 주기 위해 애쓴다. 실패에 절망하지 말고 다시 날아오르라고, 우리 삶을 형성하는 건 바로 그 태도에서 나오는 수많은 크고 작은 결정과 행동들이니까. 그러니 오늘을 바꾸기 위해 과거로 돌아갈 필요는 없다. 돌아가서 한 가지 선택을 바꾸더라도, 우리는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올 테니 말이다.

 

     확실한 건, 오늘 삶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를 바꾸면 내일은 정말로 조금은 변할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그렇다고 향수에 젖는 시간이 무의미한 건 아니다. 정서적 감동 역시 오늘의 우리를 조금은 변화시키는 요소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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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0-02-14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만은 청춘영화가 무척 많은것 같더군요.영화는 타 장르가 발전하지 못해선지 한국영화가 세계적으로 선전하는 모습을 넘 부러워 하는것 같더군요.

노란가방 2020-02-14 20:02   좋아요 0 | URL
네 자본이 부족한 건지, 또 다른 문제인건지
이제 대만영화 하면 딱 떠오르는 전형성이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