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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2disc) - 아웃케이스 없음
황동혁 감독, 고수 외 출연 / CJ엔터테인먼트 / 2018년 5월
평점 :
영화보다 몇 해 앞서 나왔던 원작 소설을 인상 깊게 읽었었다. 나라의 존립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제대로 된 현실감각 없이 쉴 새 없이 말만 쏟아내며 시간만 보내는 한심한 대신들이 가장 인상에 남았었다. 영화를 보면서 우선 놀란 것은 그런 소설 속 말의 홍수를 영상으로도 훌륭히 담아내서, 그냥 듣기만 하더라도 답답한 기분이 제대로 전해진다는 점이었다. 안 그래도 답답한 현실을 더욱 답답하게 만드는, 현실감각 제로의 멍청한 자칭 지도자들.
영상화 되면서 더욱 눈에 들어오는 부분은 역시나 배우들의 비주얼이다. 이병헌과 김윤석의 등장은 자연히 그들의 캐릭터에 좀 더 집중하게 만들면서, 글로만 봤던 대립은 좀 더 생생하게 그려낸다. 연기파 배우 두 사람이 표현하는 척화와 주화 사이의 갈등은 마치 단단한 둑처럼 좀처럼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답답함이 몇 년이 지난 후 영화를 보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또 답답하다. 현실감각이 너무나 부족하면서도 자기들이 다 아는 양 온갖 헛소리들만 떠들어대는 각종 리더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우리의 귀를 시끄럽게 만들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뉴스 속에서 보고 있는 이들은 대개 이런 수준이라는 건데, 되도 않는 아무 말 대잔치를 보고 있으려면 그냥 한숨만 나올 뿐이다.
왜 우리들의 자칭 리더들은 이런 수준일까 생각해 보니, 애초에 자격이 없는 이들이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과거 조선 시대에는 기본적으로 과거를 통해 관직에 올랐지만, 사실 과거라는 게 시문을 읊고 경전화 된 서적들의 내용을 얼마나 많이 외우고 빠른 시간에 재조합하느냐에 불과한 시험이었다.
그럼 오늘날에는 좀 다를까 싶은데, 사실 공무원 시험이라는 게 어디 현실감각을 묻는 시험이던가? 여전히 일부에서 부활을 외치는 사법고시라는 것도 본질적으로는 얼마나 많이 외우고 있느냐를 묻는 시험이긴 마찬가지다. AI 시대에 이게 무슨 시대착오적인 시험법인지. 로스쿨로 전환되면서 조금은 달라지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그들만의 리그에서 그들만의 계급을 획득하는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정계는 또 말할 것도 없으니.. 즉, 우리는 리더의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 올라갈 수 있도록 내버려두고 있는 상태라는 말이다.

왕조 시대의 왕이야 어쩔 수 없지만, 수많은 선거로 뽑히는 리더들의 수준이 이 모양인건, 다분히 그들을 꾸역꾸역 그 자리로 선출해 밀어 올리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 뭐 다른 방법이 있나 싶은데, 글쎄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우리를 이끄는 사람들, 우리의 여론을 주도하는 이들이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