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교회 주보

     내가 전에 속해 있던 교회에서는 매주 주보 1면에 실종아동의 사진과 정보를 넣곤 했다. 매주 1,500여 부를 인쇄했는데 1/3은 교회 안에서 사용했고, 나머지는 전도용으로 배부되었다. 단순히 교회소개만이 아니라 실종아동을 찾는 데 작은 도움이라도 됐으면 하는 생각이었고, 주일 오전 예배 때는 주보에 실린 실종아동을 위한 기도시간이 꼭 들어 있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나름 의미가 있는 부분이었다고 본다.

 

     ​한동안 내가 그 주보를 직접 제작했었는데, 실종아동찾기 란을 채우기 위해서 알아보던 중 한 해에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실종되는지를 알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물론 그 중 절대다수는 집으로 돌아온다고 하지만, 실종된 아이를 둔 입장에서는 전체 비율이 어떻든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충격일 테니까.

 

 

 

 

#2 - 염전 노예

     몇 년 전 서해의 한 염전에서 정신지체 장애인을 노예처럼, 수십 년 동안 부려먹었던 악덕업자가 붙잡힌 적이 있다. 끔찍했던 것은 몇 번인가 도망쳤지만 섬이라 나갈 수도 없었고, 업주와 한 패인 지역 파출소에서도 도망쳐 나온 사람을 다시 업주에게 돌려보냈다는 점.

     외부로부터 고립된 상황에서 피해자는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수단을 완전히 상실했고, 결국 이런 시대착오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토양이 되었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것, 그리고 인간 본성의 깊숙한 자리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악이 도사리고 있어서 조금만 물을 주면 금세 삐져나온다는 걸 생각하게 보게 만드는 일이었다.

 

 

 

 

#3 - 이영애

 

     ​솔직히 우리나라는 물론 외국에서까지 아직도 아직 여전한 인기를 구가한다는 드라마 대장금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이영애라는 배우에 대해서도 오래 전 광고에서 종종 봤던 예쁜 배우 정도의 느낌이었고, 부잣집 며느리로 들어가서 고상하게 살고 있나보다 정도. 그녀가 나왔던 영화를 마지막으로 본 게 벌써 15년 전에 나왔던 친절한 금자씨였으니까..

 

     ​이 영화를 보면서, 아 이 사람은 배우였구나 하는 생각이 불쑥. 그리고 사실 친절한 금자씨도 상당히 센세이셔널 했던 작품이었는데, 그 안에서 주연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냈었다는 걸 떠올리게 되었다. 이번 영화에서는 아이를 잃고 온힘을 다해 꿋꿋이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그러면서도 자신의 아이를 찾기 위해 몸싸움도 불사하는 어머니 역을 능숙하게 연기해 낸다

 

 

 

 

#4 - 여전히 어딘가에는

     여전히 우리나라에는 매년 2만 명 가까운 아동들이 실종(최근 기준이 18세 미만으로 되었고, 가출 등도 포함된다)되고, 백여 명의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비율적으로는 상당히 적지만 그게 부모에게는 큰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사라진 아이들은 어딘가에서 다른 이름으로 살고 있거나, 사고를 당했거나, 또는 이 영화처럼 범죄의 대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최소한 아이들이 범죄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으면 하지만...

 

     ​앰버 경고 같은 제도적 정비도 필요하고, 관련 인력을 확충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은, 시민 일반의 관심 재고다. 아이들의 얼굴이라는 게 자신과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면 다 비슷비슷해 보이기 마련인지라, (특히 나처럼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더더욱) 잘 구별이 되지 않는다. 누군가 관심을 갖고 주변의 아이들을 살핀다면 문제가 길어지는 것을 조기에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이건 아동학대 같은 다른 범죄에도 마찬가지고.)

     영화를 보는 마음이 편치 않다. 실제로 이런 범죄가 발각되었다고 해도, 솜방망이만 내려치는 우리나라 법정에서는 그리 무겁지 않은 처벌로 유야무야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고. 때문에 감독은 정연(이영애)의 손에 비공식적 해결책을 들려주어야 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아동 대상 범죄에 대한 엄격한 처벌과 아동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적극적인 관심, 그게 아이들을 좀 더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사회 구성원들이 취해야 할 자세일 것 같다. 이런 영화가 이를 위한 작은 관심이라도 불러일으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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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다. 이런 영화일 거라고는... 영화의 시작에는 돈 가방이 등장한다. 앞으로 펼쳐질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소재. 그놈의 돈, , .

 

     도망간 애인 때문에 진 빚으로 허덕이고 있는 항만출입국사무소 직원 태영(정우성)은 사채업자인 박사장(정만식) 일행에게 협박을 당하고 있었다. 우연찮게 자신이 일하고 있는 찜질방 캐비넷에 돈가방이 든 것을 알게 된 중만(배성우)는 치매에 걸린 노모를 모시며 궁핍하게 살아가는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생각을 품게 된다. 그럼 돈가방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 태영의 도망간 여친 연희(전도연)은 아마도 빼돌린 돈으로 술집을 차려 사장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 같고, 거기에서 폭력적인 남편으로부터 학대를 받는 직원을 도와주는 척 하다가 남편의 보험금을 빼돌렸다.

 

     문제는 이 돈을 가지고 해외로 나가기 위해서 전 애인인 태영의 도움이 필요했다는 것이고, 태영은 더 이상 연희를 믿지 않고 있었고, 박사장 일행은 그런 태영을 뒤쫓았고, 그 과정에서 우연히 떨어진 돈가방을 챙길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중만은 너무 허술했다. 돈가방을 들고 마치 꼬리잡기 게임처럼 돌고 도는 이야기가 복잡하게 펼쳐지는 영화.

 

 

 

 

 

     위에서 말했듯, 제목을 보고 눈치 챘어야 했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이 말 그대로 다 짐승같은 캐릭터라는 것. 그래서 누구 한 명에게도 좀처럼 몰입이나 공감을 하기 어려울 거라는 것. 또 짐승들이 그러하듯 목적을 위해 상대를 물어뜯고 상처 입히고 종국에는 죽이는 장면들이 수없이 나올 것이라는 점을.

 

      문제는 그 모든 인물들의 동인이 오직 돈 가방하나일 뿐이고, 다른 이유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심지어 그 돈을 어디다 쓸 지에 관해서 고민하는 사람도 중만 외에는 없다. 그게 무슨 절대반지라도 되는 양, 모두들 어떻게든 돈가방을 손에 넣으려고 서로를 찢어발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감독은 잠시 사건들의 순서를 뒤섞고, 그렇게 섞인 장면들이 조금씩 연결되는 모습을 여주면서 영화적 구성을 만들었다고 뿌듯해 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연기파 배우들이 연기는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느냐고 자위할지도 모르지만(물론 연기는 나쁘지 않았다. 캐릭터들의 행동에 공감이 가지 않아서 그렇지),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어쨌다는 건데하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치울 수 없었다.

 

 

 

 

     그래, 세상엔 나쁜 놈, 이기적인 놈, 비겁한 놈, 생각이 짧은 놈, 그냥 폭력적인 놈들이 많다. 그래서 그걸 영화로 만든 건가? 캐릭터들의 묘사조차도 얄팍해서 전형성을 벗어나지 못하는데다가, 슬래셔 무비를 방불할 정도의 폭력성, 다 보고 나서도 메시지가 뭔지 찾기 어려운 부분까지... 확실히 내 취향은 아니었던 영화.

 

     코로나19 확산으로 요새 영화관에 가는 사람도 많이 줄었다지만(주로 조조를 이용하는 내 경우에는 원래부터도 많진 않았지만, 그래도 주변에 대학교가 있는지라 괜찮은 영화의 경우 아침부터 그래도 관객들이 있을 때도 보였지만, 확실히 요샌 적더라.). 이 정도 영화는 단지 전염병 탓, 타이밍 탓을 하지 못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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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28일 후… : 뉴 슬리브
대니 보일 감독, 브렌단 글리슨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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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원숭이들을 철장에 가둬둔 한 시험실에 복면을 쓴 괴한들이 침입한다. 동물보호단체로 추정되는 그들은 철장에서 원숭이들을 꺼내려 하고, 그 때 나타난 한 연구원은 원숭이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며 풀어주면 안 된다고 외친다. 무슨 바이러스냐고 묻는 복면 괴한들에게 연구자는 한 단어를 말한다. "Rage". 

 

     가장 먼저 튀어나온 원숭이가 맹렬한 기세로 철장 앞에 선 여성 괴한에게 달려들면서 바이러스는 세상에 퍼졌고, 잠시 화면이 어두워지다가 28일 후라는 자막과 함께 밝아지면서 주인공 짐(킬리언 머피)이 병원에서 깨어난다. 감염된 사람들은 비감염자들을 맹렬하게 공격하기 시작했고 덕분에 세상은 완전히 초토화 되어버린 상황...

 

 

 

 

     영화는 주인공이 감염자들을 피해 살아남은 사람들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다. 사방이 적대적인 존재들로 가득 찬 상황에서 우리는 뭘 할 수 있을까. 남은 사람들이 서로를 경쟁자로 볼지, 협력자로 볼지가 중요할 터. 어린 시절 도덕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을 따르자면 당연히 협력을 택하는 것이 옳아 보이지만, 영화 속 사람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짐이 만난 사람들의 성격은 초반과 후반을 기점으로 크게 달라진다. 영화 대부분 동안 파티원이 되었던 셀레나(나오미 해리스) 일행과 한 아파트에서 만난 부녀들은 짐과의 협력을 택했지만, 그들이 희망을 걸로 찾아 나섰던 군부대의 사람들은 짐 일행을, 정확히는 짐과 함께 움직이고 있는 여자들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영화는 다행히 우리의 바람(?)대로, 그리고 많은 좀비영화의 결말처럼 작은 희망을 주면서 끝난다. 군대 같지 않은 군대(군기가 엉망이고 최소한의 전술적 움직임도 부족한 걸 보면, 급조된 어중이떠중이들이 총을 쥔 게 아닌가 싶다)는 살아남은 사람의 숫자를 더 줄이는 최악의 선택을 했고, 전체적으로 보면 그건 남은 인류의 유익에 반하는 태도였다. 뭐 어디나 전체보다는 개인을 우선하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지만,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아니, 이 경우엔 그냥 교육받지 못한) 이들이 보여주는 오합지졸의 모습이란 보고 있기 괴로울 정도.

 

 

 

 

     몇 년 전 읽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한 소설에서, 협력이 대결보다 장기적으로, 그리고 확률적으로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을 본적이 있다. 사실 이 간단한 내용은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주구장장 듣고 배워오던 내용인데, 문득 전체주의에 대한 공포로 개인에 대한 강조가 굉장히 강해진 서양에서는 좀 다른 느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겪어온 역사와 문화가 다르니까 뭐 그런 태도 자체를 뭐라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문제는 최근 코로나19가 같은 광범위한 사건에 대처하는 데는 굉장히 불리한 태도라는 것.

 

     ​이제는 확연히 증가세가 줄어든 우리나라의 코로나19 확산 속도에는, 분명 정부(특히 방역당국)의 발 빠른 대처가 큰 공헌을 했지만, 그런 정부의 지침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일부 일탈도 있었지만) 자발적으로 협조했기 때문이라는 점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큰 일은 협력이 중요하다는 말.

 

     ​사실 인류는 개인이나 한두 개 국가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큰 문제를 점점 더 많이 마주하고 있다. 기후변화나 쓰레기 문제 같은 환경 이슈, 여전히 세계 어느 곳에서는 끊이지 않고 있는 전쟁의 문제(대개 이 문제에는 이런저런 나라들의 직간접적인 개입이 있다), 그리고 최근에 가장 큰 문제인 전염병, 또 다양한 질병 퇴치와 같은 보건의 문제가 그 예다

 

     ​온라인을 뒤덮고 있는 분노와 저주, 공격성들을 보면, 이미 분노 바이러스는 퍼지고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과연 우리는 협력할 수 있을까? 아니면 저마다 각개전투를 하다가 하나씩 쓰러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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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인들만 3천 만 명이 넘는 사상자를 남긴 인류 최악의 전쟁인 1차 세계대전. 이 전쟁에서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새로운 전술들이 나타났는데, 그 중 하나가 참호전이었다. 물론 참호 자체야 이전에도 있었지만, 그것이 이 정도도 대대적으로 구축되고 오랫동안 그것을 발판으로 공방전을 벌인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

 

     이 영화 ‘1917’1차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던 1917(전쟁은 이듬해인 1918년에 끝났다), 참호전이 한창이던 독일군 서부전선(프랑스 지역이었다)을 배경으로 한다. 전투를 벌이고 있던 영국국 소속의 스코필드(조지 맥케이)와 그의 친구 블레이크(-찰스 채프먼)가 통신이 끊어진 채 독일군의 함정으로 돌격하려는 부대에 사령관의 공격중지 명령서를 전달하러 가는 하루 동안의 여정을 그리는 작품.

 

 

 

 

     최근에 1차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된 경과에 대한 두꺼운 분석서(몽유병자들, 1,000페이지가 넘는다)를 읽고 있는 중이라 자연스럽게 영화에 관심이 생겼다. 물론 학술적 분석을 담고 있는 책과 한 개인적 용기를 그리고 있는 영화는 그 성격이나 양상이 많이 다르긴 했다.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자신이 맡은 임무를 완수하려는 책임감과 적들이 몰려 있는 지역을 홀로 돌파해 나가는 용기를 그리는 영화 쪽이 훨씬 몰입감은 있었다.

 

     실감나는 세트와 전쟁 장면이 인상적이다. 특히 영화 전반부에서 가장 눈에 띈 참호씬은 압권이다. 진창과 시신들을 먹이삼아 모여든 쥐 떼들이 넘쳐나, 참호열이라는 전염병이 창궐할 정도로 비위생적이었던 당시 참호에서의 전투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을지 그 느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영화정보 프로그램에 따르면 약 1.6km 정도의 참호를 실제로 제작했다고 한다.)

 

     ​단지 배경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 움직이는 인물들도 실감난다. 영화 후반, 적진을 향해 돌격하기 직전의 부대 분위기와 부대전술, 또 전선 투입을 앞두고 모두 숲 속에 둘러 앉아 한 병사의 노래를 듣는 모습도 인상적이고. 여기에 지켜보는 사람도 없는 데 두 병사가 보여주는 개인전술에 기초한 움직임도 아는 사람은 눈에 들어왔을 듯(엄폐물을 찾고, 포복하고, 약진 등등).

 

 

 

 

     용기나 책임감 같은 덕목은 오늘날 점점 약화되어 가는 것 같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언제나 사람들이 과거를 더 이상적으로 묘사하는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전염병 유행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라는 와중에서도 몸 좀 풀겠다며 클럽에 몰려드는 사람들이나, 얼토당토않은 선동에 휩쓸려 여전히 광장에 모여 가짜뉴스를 골백번 외쳐대는 이들을 보면 책임감, 연대의식 같은 게 있기는 한 건가 싶기도 하다.

 

     전염병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전 세계에, 이런 덕목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개인의 자유가 더 중요하다며 자신은 계속 밖에 나가서 활동할거라는 미국의 한 여배우의 트윗이나, 영업중단 행정조치가 내려지기 직전 다들 쏟아져 나와 파티를 벌였더라는 유럽의 어느 나라 사람들을 보면 더더욱. 프랑스 혁명기 오합지졸이었던 혁명군이 이런 모양이었을까.

 

     하지만 또, 같은 시간, 다른 자리에서는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더 어려운 이들을 돕기 위해 나선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다. 대구의 다양한 자리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의료진들이나, 도시락과 마스크를 보내는 시민들을 보면 여전히 희망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사회를 유지시키는 건 이런 책임감과 용기를 지닌 사람들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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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
신보 아키유키 감독, 스다 마사키 외 목소리 / 알스컴퍼니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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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에게나 그 때 이렇게 했더라면하는 후회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조금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좀 다른 현실을 마주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생각보다 오래 남아 우리를 괴롭히곤 한다. 만약 과거로 돌아가 그 후회를 하게 만든 결정을 바꿀 수 있다면 우리는 행복하게 될까.

 

     ​이 작품에서 주인공 노리미치는 그럴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마을의 불꽃 축제를 앞둔 어느 날, 엄마의 재혼으로 이사를 가야 하는 나즈나는 심란한 마음에 충동적으로 노리미치에게 그날 저녁 축제에 같이 가자고 제안하려 한다. 그러나 수영시합에서 노리미치가 아닌 유스케가 이기면서 유스케에게 신청을 하게 되고, 유스케가 그런 나즈나를 바람맞히면서 일은 어긋난다. 가출을 감행하려던 나즈나는 그렇게 엄마에게 끌려가고, 그 순간 노리미치는 나즈나가 떨어뜨린 신비한 구슬을 던지면서 다시 수영장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번엔 수영에서 이기고 나즈나에게 축제에 가자는 말을 듣게 된 노리미치. 그러나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주저주저 하는 사이 몇 번이나 나즈나는 집으로 끌려가고, 노리미치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기를 반복하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마침내 나즈나와 함께 있고 싶은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고백하는 노리미치.

 

 

 

 

     어떻게 보면 첫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는 다순한 학원물로 보인다.(실제로 영화 포스터 중 하나의 문구도 그런 식이다. ‘첫사랑은 타이밍이다같은)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위에서도 말했던 후회라는 키워드가 좀 더 눈에 들어온다

 

     주인공 노리미치는 나즈나와의 관계를 진행시키면서 수많은 후회의 순간들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 때마다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놀라운 기회를 얻었지만 좀처럼 후회의 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계속해서 또 다른 후회의 순간들을 마주하게 된다. 영화야 상영시간이라는 제한 속에서 이런 후회의 사슬이 어느 시점에서 멈춰야했지만, 실제의 삶으로 돌아간다면 노리미치는 또다시 수없는 후회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 때마다 과거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하는 것으로 그는 행복해 질 수 있을까.

 

     어쩌면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은 과거 어느 한 순간에 내린 결정에 온전히 메여있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실은 수많은 선택과 행동이 조금씩 쌓여서 오늘 우리의 현실을 구축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단지 어느 한 가지 선택을 바꾼다고 해서 인생이 달라지지는 않을 거라는 말이다

 

     ​과거의 후회되는 선택을 바꾸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굳이 타임 패러독스와 같은 것들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현재를 바꾸기 위한 그 목적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정말 그걸 바란다면, 몇 번의 선택이 아니라 그런 선택을 내리는 우리 자신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그런 식으로 바꿔낸 현실은 결국 뭔가 조금씩 비틀린 모습일 듯도 싶고. 어쩌면 영화 속 노리미치가 마주한 세상 속 불꽃의 독특한 모습들(평평하게 터지거나, 꽃잎 모양이 되거나)은 그런 생각을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결말이 좀 아쉽다. 이야기가 충분히 마무리되지 못한 느낌인데, 감독의 고민이 충분치 못했다고 할 수도 있고, 이 정도의 동화 같은 마무리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쪽이라고 하더라도 보는 사람을 충분히 만족시키지는 못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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