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사건은 박정희 독재정권을 끝마치는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대통령 한 명이 죽으면서 정권 자체가 무너졌다는 건, 그 정권의 성격 자체가 시스템이 아니라 1인 중심의 사조직처럼 운영되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사실 독재정권이라는 것이 대개 그렇다. 하지만 거의 20년 가까이 지속되었던 독재로 인해 야당은 절호의 기회를 살릴 만한 여력을 잃어버렸고, 결국 또 다른 군부 쿠데타로 전두환이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덕분에 민주화는 또 한참 뒤로 미뤄지게 되었고.

 

     뭐 그래도 10.26의 의미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헌법 개정을 통해 영구집권을 시작했던 박정희를 멈출 수 있는 건 그 방법 밖에 없었을 테니까. 이후의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못했던 것으로 인해 그 사건이 갖는 의의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왜 김재규는 박정희를 쐈을까

 

 

 

 

     영화는 점진적 민주화를 향해 가려고 애쓰는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영화 속 이름은 김규평/이병헌)와 절대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박정희, 그리고 절대충성으로만 살아가는 경호실장 차지철(영화 속 이름은 곽상천/이희준) 사이의 미묘한 신경전과 조금씩 달라져 가는 심정을 김규평의 입장에서 실감나게 묘사한다.

 

     영화에서 말하는 10.26의 이유는 점점 줄어드는 입지에 대한 불안감과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상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이유 설명인데, 그가 법정에서 했던 조금 더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말과는 차이가 좀 있다. 많이들 알려져 있는, “민주화를 위해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처럼 더 극적인 동기와 의미를 담을 수도 있었겠지만, 감독은 그쪽을 선택하지 않는다.

 

     사실 사건 이후 김재규가 보여준 행동을 보면, 애초에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진행하지는 않았던 것 같으니, 개인적 고민과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벌인 충동적 사건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려울 듯도 싶다. 영화 내내 그렇게 현실주의자적 면모를 보였던 캐릭터가 벌인 사건이라고 하기에는 좀 어설픈 구멍이 많긴 하다.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도 인상적이다. 영화 내내 주연인 이병헌이 보여주는 연기력이 눈에 띤다. 당시 스타일대로 기름을 발라 뒤로 넘긴 머리에 뿔테 안경을 쓰고 등장한 그는, 조금은 침울한 모습의 김재규를 훌륭하게 재연한다. 특히 그 날의 사건 직후 흘러내린 머리를 무의식적으로 다시 쓸어 올리는 모습을 보며 감탄을 했다.

 

     박정희 역을 맡은 이성민도 최대한 원래의 인물을 떠올릴 수 있도록 많은 연구를 한 듯하다. 특히 청와대 내 이발시설에서 내뱉은 첫 대사는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그리고 영화를 위해 살까지 제법 찌웠다는 경호실장 역의 이희준도 고생했고. 확실히 현대의 인물들을 재연하는 일은 좀 더 까다로운 것 같다.

 

 

 

 

     하지만 영화가 캐릭터 쇼나 분위기로만 기억된다는 것은 이런 종류의 영화로서는 아쉬운 부분이다. 감독은 무엇을 말하려고 한 걸까? 김재규가 한 일은 의거였나, 개인적 동기의 살인이었나? 영화 말미 김재규의 재판 과정 영상을 통해 아주 조금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 듯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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