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전부터 역사 왜곡이라고 말이 많았던 작품이다. 개봉에 임박해서는 한 소설가가 자신의 책의 내용을 표절했다고 상여금지 가처분 신청까지 냈고. 문제를 삼는 이들이 가장 먼저 지적하는 것은 역시 한글의 창제에 신미라는 이름의 승려가 깊이 개입되어 있었다는 주장을 했다는 점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찾아봤더니, 2002년에 어떤 사람이 훈민정음보다 몇 년 앞서, 신미가 한글을 사용한 불교서적을 집필했다는 증거가 발견되었다고 주장한 데서 시작된 내용이었다.(관련 내용은 ‘현대불교’라는 신문에 실렸다.) 이걸 가지고 불교계 일부에서는(전부는 아니다) 한글 창제에 불교계의 공헌 운운했는데...
문제는 이 책이 원본은 존재하지 않고 복사본만 나도는데, 그나마 이쪽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하면 후대에 만든 위작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에 사용되지 않았던 글꼴과 표기법, 잘못 사용된 문장부호 등등(어떤 이들은 그 ‘발견자’가 위작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보기도 하더라). 당연히 실록에는 신미와 한글창제를 연결시킬 만한 어떤 단서도 없다. 요새는 이 정도면 팩트 체크에 걸리는 수준이다.
다만 세종의 아들들이었던 안평과 수양에 스승처럼 모셨던 것은 사실인 것 같고, 한글 창제 후 불경을 한글로 번역하는 데 힘을 썼던 것도 맞다. 영화 속에서 대장경을 달라고 떼를 쓰는 일본 승려들의 입을 단번에 막아버리는 장면에서 신미가 산스크리트어(범어)를 능숙하게 사용하는데, 실제로도 언어 쪽에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왕 조선왕조실록을 열었으니 이런 저런 것들을 좀 더 찾아봤다. 재미있는 기록이 좀 더 나왔는데, 우선 신미에게는 동생이 있었는데, 세종 대에 이미 여러 관식들을 경험하고는, 그 험한 계유정난 이후에도 무사히 살아남아 성종 대에는 영중추부사(보통 영의정. 우의정, 좌의정 같은 최고위직을 했던 사람들이 받는 명예직이다)까지 오른다. 어느 정도 능력도 인정받은 것이겠지만, 처세도 잘 했던 편으로 보인다. 영화 속에 나온 것처럼 무슨 엄청나게 억울한 혐의로 멸문을 당해 신미가 승려가 되어 숨어살았던 게 아니라는 말. (혼자 세상 억울한 표정으로 소리는 왜 지르신거요.)
그러면 그의 아버지는 무슨 잘못을 했느냐, 신미의 부친인 김훈은 태종 때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도 장례에는 가지 않고 수원의 관기를 한양으로 불러 놀았다는 사실이 알려져 장 100대를 맞고 귀양을 가게 됐다. 이 사건이 꽤나 큰 스캔들이었는지 이후에도 수많은 간관들이 그에게 벌을 더 주라고 상소를 했다. 심지어 김훈을 추천해(어느 정도 싸움은 좀 했던 듯) 전쟁에 데리고 나갔던 이종무(대마도정벌의 지휘관이었던)마저도 벌을 받게 될 정도. 또 그 전에는 당대의 권력자 하륜과 공모해서 나름 땅도 좀 챙겼던 모양이다. 갈수록 가관이다.(청문회 통과는 쉽지 않을 듯)
확실히 영화 속 주요 설정은 허구다. 주장의 근거도 없고. 동시에 그렇게 주장을 하면서 애초에 한글의 창제자로 알려진 세종의 업적을 깎아내린 것까지는 아니라도 축소시켜놓은 것만은 분명하다. 과장만이 아니라 사실과 먼 축소도 왜곡이긴 마찬가지다. 세종이 이름 없는 범부 중 하나라면 영화적 상상력이든, 작은 개연성을 극화시켰을 뿐이든 누가 뭐라고 하겠냐만은, 그냥 흥미꺼리로 명백한 업적을 고치는 건 불편하긴 하다.
이런 논란과는 조금 떨어져서 보면, 영화는 세종의 노쇠한 모습과 깊은 고뇌를, 왕을 둘러싼 무거운 분위기를(태종이 아들 앞길을 내준다고 워낙에 숙청을 많이 해놓아서...) 잘 그려냈다. 오랜 격무와 스트레스로 한 쪽 눈의 시력을 잃고,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신하들에게 시달리면서도 백성들에게 글을 만들어주겠다는 의지를 꺾지 않는, 심지어 무례하게 대드는 승려(실록에서는 자주 ‘요승’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는 유학자들의 불교에 대한 불쾌감을 담은 표현일 것이다)에게도 한 수 접어주고는 그의 재능을 쓰려고 하는 모습은 우리가 익히 떠올리는 세종의 그런 모습과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색감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모습을 표현하는 송강호의 연기력은 걸작이다.
또 한 가지, 인물들이 입고 있는 옷, 특히 궁궐 안에서 입는 누빔옷이 눈에 들어온다. 심지어 용포도 저렇게 만들기도 하는구나 싶은 느낌이 들어서, 화면에 나올 때마다 유심히 보게 된다. 이런 디테일이 영화를 좀 더 격조 있게 만드는 법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박해일이 연기한 신미...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이 영화에서는 신미라는 캐릭터가 굉장히 과장되어 있는데, 그 때문인지 박해일의 연기도 꽤나 과장되게 느껴진다. 만약 그의 캐릭터가 조금만 더 겸손했다면 이 정도로 욕을 먹지는 않았을 텐데 싶은 느낌.
솔직히 영화 속 드라마는 봐줄 만했다. 다만 대중을 타겟으로 한 상업영화라면, 감독이나 제작자의 자기주장만 할 게 아니라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움직임이 좀 더 필요했다. 특히 개연성 있는 설정 부분에선 더더욱. 요샌 무료로 볼 수 있는 웹툰도 작품의 설정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