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 소년의 3분은 천상의 시간이었다
토드 버포.린 빈센트 지음, 유정희 옮김 / 크리스천석세스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1. 줄거리 。。。。。。。

 

     수술을 받을 때 콜튼은 네 살이었다. 급성맹장염은 제때 조치를 받지 못해 악화되었고, 장내 독소가 다른 장기에까지 영향을 주는, 위험한 상태였다. 온가족의 염려와 기도 끝에 콜튼은 기적적으로 회복되었지만, 이후 콜론은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은 천국에 관한 이야기들을 쏟아 놓는다. 이 책은 그 몇 년 동안의 이야기를 모아 정리한 것.

 

 

2. 감상평 。。。。。。。

 

     임사체험 후 천국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는 많다. 개인적으로 이런 이야기는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은 그 목적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점과 설사 좋은 목적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신빙성을 증명하기 어렵기도 하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과도한 증거주의를 신봉하는 건 아니다. 과학은 그것이 설명할 수 있는 것만 설명할 수 있을 뿐이고, 그것으로 측정할 수 없는 영역은 없는 게 아니라 그저 손댈 수 없을 뿐이니까. (최근의 메르스 사태를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그 많이 배우신 양반들이 그저 사례가 없다고, 자신들이 시뮬레이션을 하지 못했다고 괴담으로 치부하다가 이 지경까지 이른..)

 

     때문에 난 이 책을 그냥 덜 심각하게, 좀 편안하게 읽었다. 소년이 봤다는 이미지들에 지나치게 집착하면서 신앙생활을 할 필요는 없고, (그보다는 성경에 기록된 내용 중심의 신앙생활이 더 건전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또 그렇다고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을 보이며 비난할 것까지도 아니라고 본다. (사실 저자는 계속해서 아들의 경험을 성경의 증언으로 해석하려고 노력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이런 책들이 지나치게 신봉되는 건 분명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다양한 부작용들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이 그렇게 우려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 책은 어떤 신학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위안과 격려를 해 주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리고 매일매일 지나치게 눈앞의 것들, 땅의 것들만 바라보는 오늘의 사람들에게 영원의 세계를 한 번 더 비춰보도록 하는 건 언제나 가치 있는 일이다. 책이든 세상이든,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쳐다보면 근시에 걸리기 마련이니까. 그럴 땐 좀 먼 곳을 바라보며 긴장된 눈의 근육을 풀어줄 필요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렘브란트의 하나님 믿음의 글들 318
안재경 지음 / 홍성사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1. 요약 。。。。。。。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의 작품들을 읽어내며 주석을 달아놓은 책이다. 저자는 단지 각각의 그림들을 설명하는 데 머물지 않고, 렘브란트가 살았던 당시의 역사와 그가 처했던 상황들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개혁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상황을 읽어내려고 시도한다. 일종의 탈굼의 한 형태라고도 할 수 있겠다.

 

    총 열두 개 장마다 각각 하나의 작품들을 메인에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여기에 인용된 작품들은 모두 렘브란트의 종교화(개인적으로 성화聖畵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면 성경적 관점을 담아낸 그림은 모두 성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이고, 역으로 성경의 이야기를 비성경적 관점으로 그리거나 조각해 낸 것은 성화가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미켈란젤로가 만든 다비드상은 비록 그것이 성경의 다윗을 표현했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사상으로 볼 때 성경적 조각이라고 할 수는 없다)가 사용되고 있다.

 

     각각의 그림은 시간 순서로 배열되어 있어서, 렘브란트의 인생을 그가 그린 작품들을 통해 연대기적으로 훑어볼 수 있는 기회도 얻을 수 있다.

 

 

↑ 청년기의 렘브란트와 노년의 렘브란트 자화상

 

2. 감상평 。。。。。。。  

 

     개인적으로 그림에 대한 조예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골라든 이유는 일단 렘브란트라는 (문외한인 나도 익숙할 정도로) 유명한 화가를 전면에 내세우기도 했고, 그가 17세기 종교개혁의 중심지이기도 했던 네덜란드에서 작품 활동을 해왔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그림을 보는 눈을 좀 뜨고 싶다는 욕구가 반영된 것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책이 가지고 있는 신학적 통찰을 읽고자 하는 생각이었다.

 

     결론적으로 보면 이 두 가지 목표는 나름 어느 정도 달성되고 있다. 각각의 장은 우선 그림을 설명하고 읽어내는 데 할애되어 있고, 후반부는 앞서의 설명과 관련된 저자의 신학적 사고를 풀어 놓고 있는데 이 부분이 꽤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개혁주의적 관점을 유지하면서도 교회가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든지, 신학에 대한 경시로 도덕종교로 전락해 가고 있다든지,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배금주의 같은 날카로우면서 애정을 잊지 않은 조언을 덧붙인다.

 

 

     다만 이 두 가지 영역이 서로 유기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가 하는 부분에서는 좀 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렘브란트는 그림 외에 따로 책을 낸 것도 아니고, 동양화처럼 그림의 일부에 그 설명을 남기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그 해석은 온전히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의 몫인데, 여기에는 당연하게도 읽는 사람의 관점이 강하게 개입될 수밖에 없다.

 

     물론 렘브란트가 처한 상황과 주변 사람들의 증언, 그리고 작품 자체가 표현하고 있는 내용들을 통해 어느 정도 추측과 분석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이 책에 실려 있는 신학적 논의들은 과연 실제로 렘브란트가 했던 고민일까 싶을 정도로 현대적인데다가, 그 논의들을 온전히 렘브란트의 이름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살짝 걸린다. 물론 이건 책의 내용이 아니라 형식 부분에 대한 지적.

 

     아, ‘형식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본문의 구성부분이 좀 아쉽다. 각 장의 앞에 그 장에서 다룰 그림이 들어가고 다음 페이지부터 설명이 이어지는데, 그림에 대한 설명이다 보니 그림을 보면서 읽어야 더 잘 눈에 들어올 텐데, 설명하고 있는 부분을 본문 옆에 확대해서 배치했더라면 좀 더 읽기에 편하지 않았을까 싶다.(덕분에 다시 각 장의 앞으로 넘기기를 수도 없이 해야 했다.) 책 후반의 몇 개 장에서는 확실히 이런 식의 편집을 하고 있는데, 전반부에서는 그런 배려가 좀 아쉽다.

 

 

     렘브란트의 종교화에 관심이 있거나, 그의 작품에 담긴 신앙과 신학적 관점들에 흥미가 있다면 볼만한 작품. 나처럼 미술에 별다른 조예가 없는 사람들도 충분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책 곳곳에 들어 있는 컬러도판만 해도 볼만한 부분이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국론 동서문화사 월드북 210
아우구스티누스 지음, 추인해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1. 요약 。。。。。。。    

 

    410년 고트족이 로마시를 점령하고 약탈했다. 이미 로마 제국의 유일한 중심지에서 여러 중심지들 중 하나로 그 위상이 하락했다고는 하지만, 한 때 지중해를 우리 바다로 여기며 유럽 전역을 지배했던 로마의 기원이자 수도인 로마시의 약탈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들 중 일부는 그 원인을 로마가 기독교화되었기 때문이며 전통적인 신들에 대한 숭배를 소홀히 했던 것이 문제라고 떠들고 다녔다. (심지어 21세기에도 이런 주장을 하는 여자가 가까운 일본에 살고 있다.)

 

     당시 북아프리카의 히포라는 도시의 주교였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런 주장을 반박하고, 당시의 기독교 신앙과 세속 역사를 종합하는 일종의 역사철학을 최초로 제시하는데 그게 바로 신국론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우선 로마의 전통적인 종교가 가지고 있는 비도덕성, 외설성을 공격하고, 그것이 가지고 있는 신학적인 문제를 지적함으로써 고대의 종교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일축한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본격적으로 두 도성에 관한 설명이 등장하는데, 아우구스티누스는 두 도성이 세상이 만들어진 직후부터 분리되었지만 역사 속에서는 복잡하게 서로 얽힌 채로 발전해왔다고 본다. 그러나 때가 이르면 두 도시에 속한 사람들은 완전한 분리를 경험하게 될 것이고, 이후에는 각자의 삶에 따른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2. 감상평 。。。。。。   

 

     최초의 역사철학서라고도 불리는 저작으로, 1,200페이지가 넘는 대작이기도 하다. 쉽게 도전할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다행히 참여하던 책모임에서 함께 읽는 기회를 얻어 완독할 수 있었다.

 

 

     책의 분량은 꽤나 많지만, 사실 핵심적인 내용은 요즘 나오는 단행본들의 절반 정도면 충분히 요약해 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렇다고 나머지 부분은 아예 쓸모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고대 저작들 특유의 글쓰기 방식 주 내용을 서술하다가도 곧잘 관련된 다은 주제로 한참을 빠지는 식의 확장이 자주 나타나는 건 이 책만이 아니다 과 그 당시와 오늘날의 달라진 사회적 인식 등으로 인해 그다지 적실성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단행본 절반 정도의 분량에 담긴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적, 철학적 공헌은 결코 작지 않다. 우선 한 나라의 정당성을 정의에서 찾으려는 그의 정치철학은 오늘날에도 그 타당성을 무시할 수 없는 주장이다. 여기에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는 원리로서의 사랑의 제시는 현대철학자들의 그것 못지않은 견해이고, 나아가 천상의 도성과 지상의 도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현실에 대한 설명은 상당히 앞서나간 신학적 공헌이라 하겠다.

 

 

     번역이 크게 나쁜 건 아니지만, 또 아주 부드럽게 되었다고 보기에도 어렵다. 여기에 명백한 오역(698페이지에 아담의 아들인 에 관한 부분을 ‘3으로 표기하는 어이없는 실수가 보인다. 심지어 ‘3[세명]이 아니라 [삼명]으로 읽어야 한다.)까지 있어서 아쉽다.

 

     한 번은 읽어 볼만한 책인데, 굳이 모든 내용을 읽어내야 할 것까지는 없을 듯하다. 그러면 자연히 요약본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데, 과감한 의역본 보다는 원문을 기초로 한 발췌본 정도가 좋지 않을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나안 성도, 교회 밖 신앙
양희송 지음 / 포이에마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1. 요약 。。。。。。。    

 

     가나안 성도란 고대 팔레스타인에 살던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가나안을 거꾸로 하면 안 나가인데, 바로 교회 예배에 출석하지 않는, 하지만 어느 정도 기독교적 분위기를 수용하고 인정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교회 내 신조어다.

 

     이 책은 그 소위 가나안 성도들이 약 100만 명에 이른다는 한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그것을 기독교 내의 한 사회현상으로 인정하면서(1), 왜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는지 이유를 탐색하고(2), 이 현상이 드러내고 있는 현실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 등으로 이어진다(3).

 

 

2. 감상평 。。。。。。。  

 

     처음에는 반쯤 장난스럽게, 혹은 비꼬듯 부르기 시작한 이 이름이, 하나의 사회현상이 될 때까지 온 것은 확실히 지난 십 수 년 동안 한국 교계가 이 문제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한 추잡스러운 일련의 행태들과 교회다움을 상실한 교회 등이 이런 문제들을 확대 재생산 시켰다.

 

     이 책의 의의는 그런 가나안 교인’(개인적으로 여기에 성도라는 이름을 붙여도 될지 아직 확신이 들지 않는다)이라는 현상을 본격적으로 분석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에 있다. 문제 해결의 그것을 제대로 분석하는 데서 시작하니까. 물론 이 책 이전에도 이와 관련된 연구나 발표들이 있어왔겠지만, 확실히 이런 단행본의 형태가 가진 힘은 아직까지 무시할 수 없으니까.

 

 

     이 현상을 교회론과 연결시키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앞서 언급된 많은 문제들의 핵심은 결국 교회가 무엇인지, 교회의 본질에 관해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채 규모와 숫자만을 늘리려고 했던 데서 발생한 것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예배학, 또는 예배론에 관해서는 제대로 다루지 못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쉽게 말해, 일요일 마다 카페에 앉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일종의 대체 예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도 괜찮은 걸까? 주일성수니 하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기독교가 시작된 이래로 2천 년 동안 이어져 왔던 함께 모여 예배하는 전통단지형식일 뿐인 걸까? 그 안에 뭔가 본질적인 부분은 전혀 없는 걸까 하는 좀 더 근본적인 물음이다.

 

     또 책을 쓰다 보니 어쩔 수 없었던 면도 있었으리라 짐작은 되지만, 전체적인 논조가 이들 가나안 교인를 지나치게 옹호하고 있다는 느낌도 받는다. 책 속에는 심지어 이들을 수도원적 경건이나 종교개혁가들의 전통을 따르는 것처럼 묘사하는 부분도 있는데, 확실히 이 부분은 과하지 않나 싶다. 교회 쇼핑족보다 카페에서 혼자 시간 보내다가 나온 사람들을 더 낫다고 봐야 할 이유나, 둘 사이를 구분 짓는 명확한 기준 자체도 잘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이들이 배운 것 많아서 지나치게 비판적인 부류가 아니라는 저자 자신의 설명과는 다르게, 책 전체에 걸쳐 예로 제시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라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 기독교인들이 늘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초대교회안에는 또 아주 문제가 없었을까? 현대적으로 보면 사도들의 지나치게 카리스마적인 목회방침과 엄격함, 급진적인 사상 등은 또 다른 문제라고 지적될 수 있지 않았을까.

 

 

     타당한 논리를 갖춘 비판적인 관점은 대안 여부와는 상관없이 값진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무서운 건 통증이 없이 시작되는 병이다. 뭔가를 느끼게 되었을 무렵에는 이미 손을 쓰기 늦은 상황이 되어버리니까. 특히 이 책 속에서 지적되고 있는 교회론의 바른 정립이라는 주제는 시급하게 좀 더 깊이 다뤄져야 할 부분이다. 이 책이 이와 관련한 좀 더 건설적인 논의를 하는 데 필요한 좋은 문제제기가 되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을 아는 지식
제임스 패커 지음, 김동규 옮김 / 아바서원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1. 요약 。。。。。。。   

 

     책의 두 번째 부분은 세속화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자신이 살아 온 영국이라는 사회를 중심으로 세속화가 일으킨 변화를 간단히 요약하면서, 이에 대한 간략한 평가(와 적적한 반응)를 덧붙인다.

 

 

2. 감상평 。。。。。。。  

 

     세속화라는 강력한 물결 속에 그리스도인들은 꽤 오랫동안 우왕좌왕해왔다. 한편에서는 무서운 적대적 눈초리로 이를 바라보면서 옛 방식의 고수신앙을 지키는 것을 쉽게 동일시하는 우를 범했고, 또 다른 한 편에서는 그런 고민조차 없이 쉽게 세속화 속으로 들어가 동화되어 버리기도 했다. 전자는 신앙의 모습은 지켰지만 외부 사회로부터의 고립을 초래했고, 후자는 외부 사회와 친해졌으나 신앙의 모습이 흐려지곤 했다.

 

     물론 이런 현상에 대한 연구와 대안이 나오지 않은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기독교세계관운동이고, 이는 여러 분야에서 소기의 효과들을 거두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제임스 패커 역시 이런 정통적인 신학의 현대적 적용에 대해 좋은 책들을 많이 써 내고 있는 인물. 이 짧은 책에서도 세속화된 사회와 교회에 대한 그의 통찰력은 빛을 발한다.

 

 

     ​패커가 살고 있는 영국에서 기독교의 영향력은 사실상 이제 거의 소멸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고색창연한 오래된 교회 건물들이 남아 있고, 일부 지역과 세대들을 중심으로 부흥운동이 일어나고 있기도 하지만, 그 위상은 과거에 비할 바가 되지 못한다. 그리고 그 결과 발생한 영적인 공백상태는 유물론과 혼합주의적 신비주의가 대신 차지하고 있고.

 

     이런 상황에서 패커가 제시하는 전략들 비전을 회복하고, 관용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복음전도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하면서 공동체를 형성해야 한다는 은 깊이 귀담아 들을 만하다. 특히 공동체를 형성하라는 조언은 세속화에 대한 평가 부분에서 다시 한 번 등장하는데, 유물론적 철학과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으로 인해 철저하게 파편화 되고 황폐화 되는 중인 현대인들의 삶에 이런 대안적 공동체라는 비전은 상당히 매력적이지 않을까 싶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얇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깊고 날카로운 내용을 품고 있는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