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들이 혼동하기 쉬운 성경 50 - 이단들이 잘못 사용하는 성경 구절에 대한 바른 이해
이인규 지음 / 카리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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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성경의 잘못된 해석들을 교정하기 위해 쓴 책이다. 좀 더 정확히는 이단이라고 불리는 집단의 비문법적이고 몰역사적인 해석의 오류를 지적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50개의 장에 걸쳐 50개의 오류들을 엮어 풀어내고 있다.

 

 

2. 감상평 。。。。。。。  

 

    세월호 사건 이후 구원파라는 이름이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면서 이단이라는 집단들에 대한 관심도도 높아지고 있다. 교주 개인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과 믿음을 강조하는 게 이단들의 주요 특성인데, 대개가 기독교의 성경의 특정한 구절들을 임의로 짜 맞춰 교주의 주장을 뒷받침하곤 한다. 전직(?) 기독교인들이 특별히 많이 이런데 빠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교회 안에서 건전한 성경해석에 관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의외로 많지 않다는 점. 물론 요새는 이전보다는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그저 예수 믿고 복 받자는 식의 허황된 미국식 주문(呪文)이 한동안 한국 교회를 거의 뒤덮다시피 했으니까. 그래도 최근에는 점점 건전한 교리를 회복하고 그 진지한 실천에 대해 고민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분명 바람직한 조짐이다.(모 출판사에서 나온 교리교재가 상당수의 판매량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런 긍정적인 조짐의 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특별히 가장 자주, 또 많이 문제가 되고 있는 성경구절들을 중심으로 그 잘못된 해석을 교정하는 좋은 책이 나온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책에 추천사를 실은 이승구, 심창섭 교수가 책도 제대로 안 보고 무작정 좋은 말만 써 주는 분들이 아니라는 것도 책의 내용에 신뢰감을 더해준다. 그리고 내용 역시 오랫동안 이단 관련 문제를 연구해 온 저자답게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

 

    아쉬운 부분은 오십 개나 되는 항목들이 특별한 논리적 구조 없이 그저 열거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물론 각 항목이 한 가지 성경구절만을 언급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주제가 되는 성경의 순서대로 나열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등장하는 각각의 이단들과 관련된 사항들을 한데 모으거나, 해석오류의 방식 - 문법적 오류,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무시한 자의적 해석 등 -에 따라 항목을 구분했거나 했더라면 좀 더 짜임새가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몇 개 항목은 논점이 잘 드러나지 않는 듯하다. 한두 군데 정도 오타로 보이는 부분은 추후 수정되어야 할 거고.

 

 

    한 권의 책이지만, 한국 교계에 널리 알려진 이단들과 잘못된 가르침들의 오류를 잘 지적하고 밝혀냈다. 각각의 문제들에 대해 더 깊은 논의를 하려면 훨씬 더 많은 지면이 필요하겠지만, 종합서로서는 괜찮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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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적 아르뱅주의
신광은 지음 / 포이에마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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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저자는 한국 교회가 겪고 있는 윤리적 실패를 잘못된 신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진단한다. 바로 ‘아르뱅주의’가 그것.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아르미니우스주의와 칼뱅주의를 적당히 편의에 따라 조합시킨 이 ‘실용적 신학’은, 자신의 결단에 따라 구원을 얻을 수 있고, 그렇게 얻은 구원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절대로 무효화되지 않는다는 문장으로 요약된다.

 

     이 새로운 신학의 탄생은 매우 큰 결과를 가져온다. 구원이 스스로의 선택으로 가능하다는 설명은 자신이 구원을 받았는지 확인할 수 있게 해 주었고, 일단 그런 확신이 들고 난 뒤에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그 구원이 영원히 폐지되지 않는다는 것이니 이제 어떤 식으로 살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판을 치게 된다. 도덕적, 윤리적 실패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저자는 이를 한국교회가 발행하는 ‘면죄부’와 같다고 칭하기도 한다.

 

     책은 칼뱅주의와 아르미니우스주의에 관한 역사적, 신학적 고찰을 통해 두 신학 사조의 장단점을 살핀 후, 아르뱅주의와 같은 기형적 신학이 발생하게 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3의 길을 모색해 본다.

 

 

2. 감상평 。  

 

     한국 교회의 윤리적 실패와 타락의 원인을 잘못된 신학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보는 저자의 진단에 동의한다. 저자는 ‘아르뱅주의’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붙이긴 했지만, 사실상 신학의 부재라고도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입만 열면 ‘칼빈주의’를 외치면서 협잡과 뒷거래, 줄 서기에 여념 없는 보수교단의 신학교 교수들, 성경연구를 충실히 하지 않으면서도 부끄럼 없이 강단에 오르는 목회자들과 역시 일주일 가야 성경 한 번 제대로 펼쳐보지 않는 신자들에게서 무슨 바른 신학적 지식과 적용과 실천이 나타날 수 있겠는가.

 

     물론 이미 오래 전부터 지적해 왔던 것들이지만, 이 책은 그에 대한 본격적인 신학적, 학술적 정의와 정리를 시도했다는 데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특히 칼뱅주의와 아르미니우스주의의 장단점을 비교하는 부분은 명쾌하고, 오랫동안 잘 준비해왔다는 인상을 주고,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는 부분도 바른 방향이다.

 

 

     하지만 책이 지나치게 길다는 느낌이 가시지 않는다. 처음부터 책의 주제가 일찌감치 나와 있는데 계속해서 이런저런 설명을 덧붙여 반복되는 내용도 상당하고, 뒤로 갈수록 책장이 넘어가는 속도가 줄어들더니 정작 저자가 힘을 주고 있는 제3의 대안을 설명하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집중하기 어려웠다.

 

     내용면에 있어서도 ‘튤립(TULIP) 교리’를 축으로 삼아 책에서 다루는 모든 사조들을 설명하려다보니, 그 신학이 담고 있는 ‘내용’과 과정이 제대로 고려되지 않는 기계적이고 도식적인 분류를 하는 느낌을 준다. 저자는 칼뱅주의와 아르미니우스 주의를 비판하면서 ‘논리적 모순’, ‘신비’라는 측면을 강조한다. 하지만 ‘모순을 그대로 두고, 모순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신앙인의 실존(140)’이라는 저자의 설명은 자신이 제기한 문제를 그대로 답습하는 건 아닌가? (저자의 설명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하도 논리를 따지기에 해 보는 말이다)

 

     이 외에도 저자가 193-194쪽에서 설명하고 있는 ‘일반은총’은 사실 ‘일반계시’를 가리키는 것으로, 아르미니우스의 ‘선행은총’과 대비되는 칼뱅주의의 개념은 이름이 비슷한 ‘일반은총’이 아니라 ‘일반계시’다.

 

 

     결국 교회는 바른 신학을 가지고 있을 때에야 건강할 수 있다. 꿩 잡는 게 매라는 식의 실용주의적 접근은 교회의 순수성을 훼손시키고, 나아가 교회의 교회다움을 지워버리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런 면에서 현재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신학적 문제를 진지하게 성찰하고 나름의 대안까지 제시하고 있는 괜찮은 책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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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탄생 - 성경은 어떻게 인류 문명을 지배했는가?
존 드레인 지음, 서희연 옮김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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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성경이란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책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성경은 다양한 역사적 사건들을 경험하고 주변 문명들과의 교류를 해왔던 이들에 의해 수천 년의 기간 동안 천천히 쓰여 온 책이다. 당연히 성경이 쓰일 당시의 상황에 대해 알지 못하면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까지는 아니라도, 지나치게 현대적인 관점을 갖는 데서 나오는 잘못된 읽기가 초래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 책은 이 분야에 관한 좋은 책을 쓰기로 유명한 저자가 성경이 기록될 당시의 사회, 문화적 배경, 정치적 상황, 국제 정세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은 책이다.

 

2. 감상평   

 

     책 제목이나 출판사 보다는 저자의 이름을 보고 먼저 골라든 책이다. 그만큼 이 분야에 있어서 존 드레인이라는 이름은 어느 정도의 수준을 보장해 주는 상표와 같다고 할까 뭐 그런 느낌. 그리고 역시 그 기대는 배신당하지 않았다.

 

     책은 기원전 수천 년 전부터 기원 후 몇 백 년까지, 성경이 기록되었던 배경이 되는 시대들을 역사적 순서에 따라, 그리고 성경의 주요 무대를 좇아가며 풀어내고 있다. 두 강 사이에서 시작한 고대 문명부터, 이집트, 아시리아와 바벨론, 로마까지 이어지는 방대한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한 권의 책으로 볼 수 있다는 건 분명 좋은 기회다.

 

     이 책의 특징은 성경 역사를 따라가고 있지만, 일단 기본적으론 인문학적, 고고학적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서술하면서 이와 관련이 있는 성경구절들을 언급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성경의 역사성을 드러내는 데는 오히려 이런 접근 방식이 더욱 유효할 터.

 

     성경의 배경이 되는 세계를 이해하는 것과 성경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일테지만, 성경이 만들어진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영적 맥락을 살펴볼 때 그 본질적인 메시지를 더욱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에필로그의 문장이 이 책의 가치를 잘 표현하고 있다. 성경을 더 깊게 읽고 싶은 사람에게 좋은 기초서적이 될 듯.

 

     참, 책의 내용 중 몇 부분에 오류가 있다. (저자의 오류인지 번역, 편집 할 때 들어간 건지는 확실치 않다) 94페이지와 100페이지에 나온 ‘기원전 3세기’, ‘기원전 2세기’라는 부분은 문맥 상 ‘기원전 30세기’와 ‘기원전 20세기’로 표기하는 것이 옳다. 또 411페이지 두 번째 줄의 ‘누가복음’은 ‘사도행전’으로 바뀌는 게 맞고(각주에는 옳게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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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을 위한 기독교 변증 - 물을 건 묻자
조쉬 맥도웰.데이브 스테럿 지음, 오세원 옮김 / 국제제자훈련원(DMI.디엠출판유통)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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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닉은 어린 시절 교회에 출석해왔지만, 대학에 들어가면서 자신이 믿어왔던 것들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게 된다. 페터슨 교수의 종교학 관련 강의를 들으면서 닉의 그런 의심은 점점 확실해져갔고, 결국 그는 무신론자로 점차 변해간다.

 

     하지만 우연히 만난 대학원생 조교 자말을 통해, 닉은 기독교인들의 믿음이란 게 단지 충동적인 감정에 근거한 환각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또 논리적으로도 변호될 수 있는 무엇임을 서서히 인정하게 된다.

 

     공동 저자들은 이런 소설 속 인물들의 입을 통해, 성경의 신뢰성, 예수라는 인물의 역사성, 부활의 실재라는 중요한 교리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증명하고, 입증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2. 감상평    

 

     아, 이런 책인 줄 몰랐다. 먼저는 책의 형식이 소설의 외향을 띄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고, 또 이 한 권의 책에 이렇게 깊고 다양한 내용들을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었다는 점도 몰랐다. 책의 첫 장을 열고부터 마지막 페이지를 읽을 때까지 지루한 감이 전혀 없이, 그러면서도 차분하고 체계적으로 주제를 펼쳐내고 있다.

 

 

     복잡한 주제를 소설의 형식을 빌려 전달하려는 시도 자체는 많이 있어 왔지만 대부분 ‘내용’을 전달하려는 욕심이 과해서 ‘이야기’의 측면은 그다지 완성도가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제법 이야기다운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은 물론 가공의 캐릭터들일 것이다. 하지만 책 속에 인용되고 있는 다양한 책들과 저자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이라는 부분이 중요하다. 저자들은 이 책을 쓰기 위해 정말 다양한 자료들을 검토하고 그것들을 적재적소에 삽입해서 자연스럽게 주제를 강화하는 근거자료로 사용하고 있다. 나도 학교 다니면서 제법 들었던 F.F. 브루스나 메츠거 같은 학자들의 이름을 여기에서 들을 줄이야. 덕분에 독자들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들에 대한 좋은 참고도서 목록을 얻게 된 셈이다.

 

 

     기독교는 감정의 종교가 아니라 확신의 종교다. 확신은 맹신과는 다르다. 이 책은 자신들의 지적 틀 안에 들어가는 것만 실재한다고 믿는 극단적인 자연주의자들의 아집이나, 기독교이 교리 중에서 기적과 부활 같은 것들을 애써 제거하면 사람들에게 좀 더 쉽게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유주의자들의 낭만적인 착각에 대한 좋은 답변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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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의미를 찾아서 - 맥그래스, 과학과 종교, 삶의 의미에 대해 말하다
알리스터 맥그래스 지음, 박규태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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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인간은 사물의 의미를 찾아내기 원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사물의 원리를 파악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졌고, 과학은 그런 노력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최근에 등장한 ‘새로운 무신론’자들은 과학만이 진리를 판가름할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이라는 ‘믿음(신념)’ 아래 일련의 종교들을 항햔 맹렬한 조롱과 폭언을 쏟아내고 있다.

 

     저자는 그런 자연주의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들 - 그것은 ‘의미’에 대해 말해주지 못하며, 그 자체도 일종의 신념 위에 서 있다는 사실 -을 밝히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논리적인 모순점들을 지적한다. 또, 이런 과격한 유물론만이 현대 과학이 도달할 유일한 결론이 아니라는 점을 아울러 밝힌다.

 

     이어서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하나의 세계관으로서의 의의에 대해 논하는 저자는, 나아가 이 세계에 관한 기독교적 관점이 결코 고집이나 맹신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관해 우리가 관찰하고 연구해 온 바를 전체적인 맥락에서 타당하게 설명할 수 있는 유효한 원리라는 점을 강조한다.

 

 

 

2. 감상평   


     리처드 도킨스와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책이 한창 유행이었던 몇 년 전, 그들의 책을 직접 읽어 보고는 꽤나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뭐 대단한 이야기들이나 써있는 것처럼 광고를 해댔지만, 막상 책 안에는 그냥 다섯 살짜리 어린 아이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방을 향해 마구 소리 지르고 손에 잡히는 걸 던져대는 듯한 모습을 강하게 받았을 뿐이었다. 딱히 논리라는 게 보이지 않았고, 세계에 관한 큰 문제에 대한 대답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매우 편협한 사고를 통해 과장되고 악의적으로 왜곡된 정보들을 이리저리 꿰어 맞춰 자기들의 마음에 드는 허수아비를 만들어 놓고 때려대고 있었으니까. 이 책은 그런 애들 장난 같은 주장에 좀 더 어른스러운 대답을 하고 있다.

 

 

     C. S. 루이스와 마찬가지로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에서 태어난 저자는, 그의 변증법에서 깊은 영향을 받은 듯하다. 하지만 단지 거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전공 중 하나이기도 한 자연과학적 지식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논지를 강화시킨다. 적어도 그는 도킨스 부류와는 달리 ‘실재하는 상대’가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주장’을 분석하고 비판하고 있으니 한 수 위라고 하지 않을까.

 

     책은 단지 자연과학적 변론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보다 근본적인 철학적 논증도 더하고 있다. 이 책의 기독교세계관 안내서로서의 성격은 책의 후반부의 몇 장에서 빛이 난다. 저자는 전통적인 틀을 유지하면서도 풍성하고 다양한 비유를 사용하면서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한다.

 

 

     결국 모든 인간은 ‘의미’를 찾아 헤맨다. 인간은 그냥 등 따숩고 배부르면 만족할 수 있는 동물이 아니니까. 이런 차원에서 자연주의자, 유물론자들은 인간의 가치를 바닥에 내던져 놓고서 자기들이 정 반대의 일을 해냈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셈이다. 의미를 발견하고 찾을 수 있는 것도 결국 정신의 영역인데, 이걸 그냥 전기적 자극 정도로 전락시켜버렸으니까. 그러니 유산을 ‘자연의 품질관리’라는 식으로 막말까지 할 수 있는 거고(크리스토퍼 히친스, 『신은 위대하지 않다』 중에서).

 

     하나님 안에 있을 때 눈을 뜨고 세상을 바르게 바라볼 수 있다는 고전적 진리를, 현대적으로 잘 ‘번역해낸’ 책. 이런 시도들이 좀 더 늘어나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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