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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그 목격자들 - 목격자들의 증언인 복음서
리처드 보컴 지음, 박규태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5년 4월
평점 :
1. 요약
。。。。。。。
70여
페이지에 달하는 미주를 제외하고 본문만 약 800페이지가
되는 이 책(논문)을
읽기 위해서는 먼저 양식비평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양식비평이란 복음서를 이해하는 하나의 시도로, 복음서의
기록자들이 그 안에 기록된 사건들을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한 사람들과 꽤 긴 시차를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시차로 인해 복음서에는 원래 일어나지 않았던 여러 이야기들이 담겨 있으며, 여기에는
그 책을 기록했던 사람(혹은
사람들)이
속해 있는 공동체의 사상과 배경이 들어있다는 것.
여기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시차’와
‘공동체’, 그리고
‘기록자를
둘러싼 정황의 삽입’이다. 복음서가
실제 사건이 일어난 후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 기록되었고, 그
기록에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으며, 그
과정에서 여러 후대의 관점들이 삽입되었다면, 그
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행동이 되어버린다. 양식비평은
이 순진한 종교적 행동을 교정하기 위해, 복음서에
끼어 있는 후대의 녹을 제거하기 위한 행동에 나선다. 소위
‘역사적
예수 연구’나
‘예수
세미나’, ‘신학이
배제된 실제의 예수 찾기’ 같은
용어나 움직임들은 이런 일환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리처드 보컴은 이런 기존의 주류 해석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저자는
파피아스의 증언을 통해, 복음전승이
애초에 전승의 기원이 되었던 목격자들과 계속해서 생생히 결합되어 있었다(65)는
견해를 내세우면서, 복음서에
등장하는 다양한 종류의 ‘이름들’에
주목을 한다. 복음서에
실명으로 등장하는 사람들은 각각의 에피소드를 교회 공동체에 전달해 준 증인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왜 복음서에 굳이 비중이 상당히 작은 인물들의 이름이 실려 있는지를 설명해준다. (동시에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면서도 실명이 등장하지 않는 이유도 설명해준다.)
저자에 따르면, 세
공관복음서(마태, 마가, 누가복음)가
열두 제자의 명단을 세심하게 보존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공관복음서가 의존하고 있는 전승 모음을 형성한 공식적인 목격자 집단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저자의 독특한 주장은 이들 증인들과 복음서의 저자들 사이에 비교적 짧은 간격(아마도
직접 전해 듣거나, 한
사람 정도의 중개자를 통해)만
있었다는 부분이다.
물론 이 과정은 대개 구술전승으로 이어져 왔을 터. 하지만
저자는 실제 현대에 남아 있는 구술전승에 관한 연구를 인용하면서, 사람들이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전승의 경우 그 내용이 실제적으로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오지 않은 채 수백 년 동안도 이어져 내려올 수 있다는 사실을
덧붙인다.
저자의 논지를 종합하면 이렇다. 복음서는
목격자의 증언이 직접, 혹은
짧은 시간을 두고 신뢰할 만한 전달자를 통해 기록된 책이다. 즉
복음서는 후대의 사람들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재구성한 내용이 아니라, 원
증인들의 목소리가 담긴 책이라는 것. 이
모든 과정은 광범위한 고대 문헌연구를 통해 뒷받침 되고 있다.
물론 저자의 말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
증언이 진실인가 하는 질문은 여전히 남을 수 있다. 이에
대해 결론부에서 저자는 복음서에 기록된 일들과 같이 다시 반복되지 않는 사건들은 ‘증언’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역사기록으로서의 성격을 획득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과도한
역사실증주의는 일종의 지적 자살이며, 애초의
증언이 사실이 아니라는 증거가 나오기 전에는 기본적으로 신뢰할 만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
2. 감상평
。。。。。。。
중간에 이런저런 행사와 일들이 끼어 있긴 했지만, 꽤나
오래 손에 들고 있었던 책이다. 두께도
두꺼운 데다가, 책
자체가 논문의 형식이라(종종
한 페이지 전체를 차지해버리는 각주들과 그냥 지나가는 것 하나 없이 일일이 논증을 해야 하는 그 철저함 등등) 그냥
술술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다만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신학적 의미와 파장은 그리 어렵지 않게 포착할 수 있다. 관련된
논의에 대해 언뜻이라도 들어봤던 사람이라면, 저자가
말하는 내용을 그냥 지나칠 수 없으리라.(‘이게
뭔 소리야’ 하면서
심술이 섞인 불평이나 비판을 하거나, ‘그래, 이거야’ 하면서
열심히 귀담아 듣거나)
앞서 설명한 양식비평의 논의가 시작된 이후, 복음서에
관한 연구는 말 그대로 그 책을 면도칼로 난도질 한 후, 핀셋으로
자신이 원하는 문장들만 끄집어 내 새로운 문장들을 만드는 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그
시작은 예수의 실제 모습을 찾아내겠다는 야심찬 의도였을지 모르지만, 결국
이 과정을 거친 후 남은 것은 지극히 현대적인 모습의 예수, 연구자에
따라 제멋대로 만들어 낸 또 하나의 가상의 인물이었을 뿐이라는 점이 아이러니였다. 그런데도
복음서에서 시작된 이런 식의 태도는 성경의 나머지 부분을 연구하는 데에도 별다른 고민 없이 그대로 적용되곤 했다.
하지만 이 책이 나온 이후, 이제
더 이상 그런 식의 시도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결코 학술적인 태도가 아니라는 분위기가 생기지는 않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이 책이 양식비평을 비판하기 위한 책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양식비평에서 주장하고 있는 대전제들을 모두 부정하는 논거를 상당히 설득력 있게 진행시키고 있으니까.
물론 오래된 문헌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모든 연구가 그렇듯, 이
책의 핵심 주장이나 논의들 역시 해석의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즉, 책의
내용이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럴
가능성이 높다’까지가
한계라는 것. 하지만
저자가 책의 마지막 장에서도 말했듯이, 이
책의 주장을 부정하는 증거가 나오기 전에는, 또
문헌에 대한 이 책의 해석이 잘못임을 보여줄 수 있는 상당한 수준의 주장이 등장하기 전에는, 이
정도라면 신뢰해도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무에게나 읽어보라고 추천하기에는 어려운 책이지만, 복음서의
기록과정이나 역사성에 관해 진지하게 물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 볼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