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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목사에게 보내는 편지
에릭 피터슨 외 지음, 홍종락 옮김 / 복있는사람 / 2020년 9월
평점 :
이런 책을 읽는 것은 즐거우면서도 괴롭다. 유진 피터슨 같은 저자가 쓴 통찰력 있는 깊은 글을 읽는 것 자체가 영혼을 채워주는 것 같은 즐거움을 주지만, 동시에 그 안에 담겨 있는 진주 같은 조언들과 내 삶의 현실이 대조되는 가운데서 한 없이 자괴감을 느낀다. 목사의 삶, 목회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조곤조곤 써 내려가는 유진 피터슨의 조언을 읽다보면, 역시 목사는 아무나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지난 2018년 세상을 떠난 유진 피터슨이 자신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들을 엮은 것이다.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아들 역시 목사였지만,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위 목회 세습 같은 경우는 아니었다. 우선 유진 피터슨이 목회했던 ‘그리스도 우리 왕 장로교회’는 메릴랜드 주의 작은 교회였고, 아들인 에릭 피터슨은 워싱턴 주에서 역시 작은 교회를 개척해서 섬겼다.
사실 무엇보다 유진 피터슨에 대해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식의 착각 자체를 하지 않았을 거다. 책에 실린 편지 전반에서 반복적으로 묻어나오는 그의 목회관은, 세례 받은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섬기는 것이었으니까. 구호와 목표가 아니라 구체적인 일상 가운데서 이뤄지는 교제와 돌봄, 그리고 그 가운데서 일어나는 성장이 유진 피터슨의 목회방식이었고, 그건 그의 아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졌던 것 같다.
우리는 얼마나 구호를 외치기를 좋아하는지... 새해가 되면 올해의 표어를 자랑스럽게 만들어서 큼지막한 현수막에 걸어두어야만 뭔가가 된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인 교회의 모습니다. 일단 목표가 만들어지면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람들을 채근하고, 몰아갈 수밖에 없다. 이 가운데서 각 사람의 삶에 깊이 들어가는 일은 불가능해진다. 우선은 시간이 너무 많이 들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정을 봐주면서는 일을 진행하는 게 어려우니까.
하지만 목회의 본질은 잘 짜인 프로그램을 돌리고, 세련되게 강의를 하고, 화려한 건물을 짓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교회에 속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목사는 회중에게 지시하고 끌고 가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예수를 따르는 사람(팔로워)이라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문장은 “결국 나는 실패자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단다.”였다. 신실한 실패자,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온갖 호들갑스러운 일들로부터 벗어나서, 작은 공동체를 하나님께 이끌며, 무엇보다 삶의 모든 부분에서 목회자로서 사는 데 온 힘을 다하겠다는 결단. 이렇게 살려고 애쓰다 보면 다른 것들은 애초에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실패자로, 혹은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런 평가 또한 신경 쓰지 않을 테니 아무래도 상관없다.
더 많은 목회자들이 이런 ‘신실한 실패자’의 길에 나섰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교회에 대해 지금처럼 적대적이고 냉소적인 눈빛도 조금은 누그러지지 않을까. 아니, 뭐 꼭 어떤 반응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게 목사가 해야 할 일의 전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