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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과 신들 - 개정판
주원준 지음 / 한님성서연구소 / 2018년 4월
평점 :
구약성경의 배경이 되는 고대 이스라엘은 작은 국가, 작은 민족이었다. 남쪽은 이미 당시 2천 년 역사의 이집트 문명이 있었고, 북쪽에는 그 못지 않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존재했다. 그 길목에 있었던 가나안 지역은 당연히 문화의 교통로였고, 다양한 문화와 전통, 신화가 묻어날 수밖에 없는 자리였다.
실제로 구약 성경 안에는 당시 근동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신화적 요소와 고대 설화들과 유사한 내용들이 발견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이를 근거로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종교가 모두 인근 지역의 원본을 카피한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단지 겉모습이 비슷하면 모든 게 진화론적 계통을 지니고 있다는 단순한 견해에 기인한 것일 뿐이다.
독일에서 고대 근동 언어를 공부하고 온 저자는 이런 견해가 얼마나 단편적인 생각인지를 잘 보여준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보존하고 있던 신관(신앙)은 인근 지역의 신앙과 분명히 구분되는 지점이 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인근 지역에서 절대적인 신적 존재로 떠받들던 많은 대상들을 ‘비신화화’ 작업을 통해 피조물들 중 하나로 만들었다.
예컨대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섬기던 하늘, 이집트에서 섬기던 태양, 레반트 지역에서 섬기던 폭풍은 신적 주체가 아니라 피조물로서 묘사된다. 메소포타미아의 일부 지역에서 유독 중요하게 여겨지던 달(月)신의 경우 그 근거지 중 하나인 우르가 아브라함의 고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약성경에서 그 존재는 거의 무시된다. 바람과 강, 피, 신성한 나무에 대한 신앙도 마찬가지다.
물론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인근 지역의 신앙과 문화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독특한 유일신관 아래서 재편되었다. 하늘은 신적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간으로 재평가되었고, 달의 차고 이지러짐의 주기는 이스라엘에서도 중요하게 여겨져서 초하루는 제사를 바치는 중요한 날로 여겨졌으나, 딱 거기까지였을 뿐이다.
저자는 이런 과정을 ‘재신화화’라고 표현하면서, 포로기 이후 그런 경향이 강해졌다고 말한다. 그것이 원래 가지고 있던 신성의 요소를 제거하고, 대신 여호와 신앙에 종속되도록 만들었다는 것. 흥미로운 건 이런 작업이 가장 초기 문서인 창세기부터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는 점인데, 이는 고대의 작은 민족들이 인근 강대국의 신화를 수용하던 관습과도 크게 다른 모습이다. 아마도 이 부분이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혹은 발견한) 종교심의 특별한 점일 것이다.
책을 읽으며 고대 근동의 여러 문화가 얼마나 많이 이스라엘에 흡수되었는지를 새삼 발견한다.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라는 구절에, 강을 판결의 주체로 여겼던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영향이 남아있다는 서술은 흥미롭지 않은가. 또 ‘신성한 피로 인한 속죄’라는 개념이 고대 근동에서만 발견되고 그리스 문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개념이었고, 이를 이해할 수 없었던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그리스도의 피에 관한 특별한 교리를 오해했다는 통찰도 눈여겨 볼만 했다.
분명 고대 이스라엘과 근동의 다른 민족들 사이에는 유사점이 존재한다. 어느 한 쪽이 완전히 고립된 상태로 지내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는 분명히 차이점도 존재하고, 그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이 부분을 무시하고 유사점만으로 진화론적으로 연결지으려는 건, 한국인과 일본인이 똑같아 보이는데 왜 사이좋게 못 지내냐고 빈정대는 외부인의 관점처럼 단순해 보인다.
상당히 전문적인 내용이지만 보통의 독자들도 읽고 어느 정도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쓰기 위해 애쓴 게 보인다. 히브리어와 아람어, 그리스어와 라틴어 같은 어려운 외국어 부분을 넘길 수 있다면 충분히 읽고 유익을 얻을 수 있을 만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