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이란 호를 절대 내 스스로 붙이지 않았다. 지인이 몇 년 간 나를 살피고는 선사한 호다. 그런 연유로 나는 호는 그래도 실제로는 별로 무심하지 않다고 여기며 사는데 오늘 (2020. 6. 19) 오랜만에 호반야생화카페에 들어갔다가얼굴이 화끈거렸다. ‘홍천 아씨란 회원분이 내 책 ‘K의 고개를 읽고 올린 소감을 10달 지난 이제야 본 것이다. 내가 무심해도 너무 무심했다.

정말 감사드리며 그 소감을 이 자리에 소개한다.

 

'무심님의 책을 읽고'

  K의 고개. 무심 이병욱 단편소설집. 한마디로 참 재미있다. 한번 손에 잡으니 재미있어 책을 놓을 수가 없다. 단숨에 책을 읽어 본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거린다. 나이 들어 시골살이를 하면서는 마당에서 종일 놀다가 어두워지면 책은 커녕 골아떨어지기가 일쑤다. 그런 내 잠을 번쩍 뜨게 하여 단숨에 읽게 한 책이다.

​  K는 무심님이 아닐까.어찌보면 자전적 소설같기도 하다. 7편의 단편소설들의 주제가 어린시절 추억을 들추어 주는 듯 하면서도 생각지도 못한 전환을 가져다 준다. 소설의 시작에서 끝을 상상하기 어렵다. 반전의 매력이 넘쳐 결말이 궁금하여 결국 끝까지 읽을수 밖에 없는 마약같은 책이다. 지루하지 않은 이유는 긴장감 넘치는 전개와 주변에서 흔히 볼수 있는 친근감 있는 등장인물들이라고 생각된다. 그 인물들을 섬세하게 파헤치며 예측할 수 없는 전율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참 감동적이다.

  ​서점을 찾기가 어려워진 세태를 한때는 유감으로 여겼지만 멀어진 서점처럼 내게서 책도 멀어졌는데 훌륭한 책을 읽을 수 있어 오랜만에 가슴이 훈훈해져 온다.

  ​무심님! 이외수님 말처럼 보검이 녹슬지 않도록 계속해서 좋은 책 집필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무심님 꽃좋아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이 책은 요즘도 도서실에 자주 가는 예그리나님에게 소개해 주어야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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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돈선 시인을 따라 인파를 10여 미터 헤치며 가자, 둥근 베레모를 쓴 분이 벤치에 앉은 채로 반가워했다. 내 작품집 ‘K의 고개를 들어 보이며.

여기 오기 전에 봉의산 가는 길카페에 들렀더니 자네 책이 있더라고. 그래서 한 권 샀지. 사인해 줘.”

나는 감격해서 책 속표지에 사인해 주는 손이 다 떨렸다. 책이 안 팔리는 시대라, 특히 소설책은 한 권 팔리기도 어렵다는데 선배 소설가 이도행 씨가 사 주었다니!

감사합니다.”

우리 같이, 사진도 찍자고.”

하면서 악수한 채로 옆의 아내 분한테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줄 것을 바랐다. 자세를 조금씩 바꿔가면서 사진을 세 장인가 찍고는 서로의 스마트폰 번호도 교환했다.

이렇게 만나는 줄 알았으면 내 책을 갖고 와서 자네한테 선사할걸 그랬어. 오늘은 수원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나중에 책을 선사하지.”

아이고 감사합니다.”

내가 소설 쓰고 싶은 갈망에 교직을 명퇴하고서 집필 생활에 들어간 지 10여 년. 지면으로나 알았던 이도행 선배작가도 직접 뵙게 되는 등, 비로소 나 자신 작가가 되었구나! 실감이 난 하루였다.

 

이도행 작가가 젊은 시절 춘천에서 살 때 매우 가깝게 지낸 선배 연극인이 있었는데 바로 그분이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일 줄이야. 놀랍고 기가 막히는 인연을 깨닫기는 그 세 달 뒤다.

 

329일 김유정 문학촌에서 보고 한 달 남짓 지난 5월 초순 나는 전화를 받았다. 이도행 작가였다.

내 생일이 5월에 있잖소. 나는 생일을 집에서 지내지 않고 친구들과 기념 여행을 하는 것으로 한다오. 이 작가, 혹시 이번 내 여행을 같이할 생각 없어요? 내 학창시절부터 절친인 최종남 작가가 차 운전을 맡았는데.”

그 즈음 나는 장편소설 집필에 여념이 없었다. 20167월에 첫 단편소설집 숨죽이는 갈대밭을 낸 데 이어 201812월 중단편소설집 ‘K의 고개까지 책 두 권을 냈으나모름지기 장편소설 한 권을 내야 진정한 소설가다라는 스스로의 사명감을 어쩌지 못해 채 한 달도 쉬지 못하고 다시 집필에 전념하던 차였다. 그렇기에 선후배 소설가들이 함께하는 모처럼의 여행제의를 사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도 하고 내 성격이 원래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궁벽한 면모가 있음을 이제 고백한다. ‘여행은, 멀쩡한 집을 놔두고 괜히 밖에 나가서 자는 고생이라는 생각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한다.

선배님. 제가 바쁜 사정이 있어서 여행에 참여 못하고요,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실 때 미리 문자를 주세요. 이번 기회에 선배 작가님들한테 간단하나마 식사를 대접하고 싶습니다.”

알았네. 그럼 내가 잘 가는 후평동의 연당막국수라고, 막국수 맛있게 잘하는 집인데 그 집에서 만나는 거로 하지. 날짜는

나중에 알았는데 연당막국수는 구한말 일제치하에서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이규완의 후손들이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참고:

작가 이도행(1946~  ) :강원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오산'(1969)/ 중편소설 '풀꽃 목숨 하나'(1987) '고모부'/  장편소설 '잊으려는 순간에서 잊는 순간까지'(문예촌),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잿빛 기억'(정암문화사), '문밖의 문'(유정출판), 

'흔적'(문학과 현실), '맞선'(무궁화),'태풍의눈'(대현문화), '봄내춘천옛사랑'(한결), '봄내춘천그리움'(한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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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사물이라도 먼데 있으면 작게, 가까이 있으면 크게 그려야 한다는 원근법.

이 원근법을, 우리는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배운다. 그런데 원근법을 확인할 수 있는 실제 풍경이 별로 없다. 줄맞춰 가는 군 트럭들이라든가, 똑같은 높이의 수십 여 동 아파트 풍경이라면 모를까.

 

나는 서현종의 어느 겨울그림을 보는 순간 먼데 있는 산일수록 커다란 산인데 비해 가까이 있는 산은 자그마한 산인, 원근법이 무시되는 실제 풍경을 확인했다. 그렇다. 산들은 그런 모습이 정답이다. 사람들이 기대며 사는 산은 부근의 나지막한 산일 터. 그런 산기슭이라야 집을 짓고 밭을 꾸미고 우물을 팔 수 있었다. 먼데의 높고 큰 산은 산신령(호랑이)이 사는 곳이라 범접하기 어려운 영역이었다.

 

어느 겨울그림에서 도시(都市)는 나지막한 산들의 기슭에 기대어 있다. 하지만 그 뒤편으로 엄청나게 높은 산들이 거대한 파도처럼 첩첩이다. 시민들이 평소에 잊고 있는 나지막한 산들 뒤편으로 엄청나게 높은 산들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걸까?

문명의 총화인 도시조차 대자연의 한 구석에 불과함을 에둘러 말해주는 걸까.

 

서현종이 자기 그림의 브랜드처럼 한편에 올리는 그믐달 대신에, 이번에는 작지만 둥근 보름달이 떠 있다. 시민들이 잊고 있는, 높은 산들의 존재만큼이나 의외다.

어쨌든 첩첩 산들을 검푸른 색조로 묵직하게 그려낸 그의 심중(心中). 무슨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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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329, 김유정 문학촌은 김유정 추모제를 맞아 전국에서 찾아온 손님들로 넘쳐났다. 인파 속에서 누군가가 내게 소리쳤다.

이병욱 씨. 최돈선 씨가 찾고 있어.”

무슨 일인가 싶어 서둘러 찾아갔더니 최돈선 시인이 특유의 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도행 씨 알지? 자네를 만나보고 싶다고 기다리고 있어.”

네에?”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만나본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도행(道行)’

내가 그 이름을 인지하기는 49년 전인 1970년 그 해 무더운 어느 여름날부터다. 춘천 중앙로 로터리 부근에 있는 조양인쇄소에서 동급생 ○○’(여학생이다.)와 함께 타 교지(校誌)들을 살펴볼 적에, ‘이도행이란 독특한 이름이 눈에 뜨였다. 그녀와 나는 강대 교지 편집위원으로 선정되어 출판을 맡은 조양인쇄소에 와, 참고삼아 타 교지들을 살피던 참이었다. 아마 춘천교대 교지에서 이도행이름 석 자를 봤나 보다. 게재된 단편소설의 작가 이름으로서.

그녀가 불쑥 말했다.

이도행이란 사람을 내가 아는데 우리보다 5년 위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런 말을 이었다.

우리 언니가 이도행 씨와 동급생이라서 잘 아는데 성질 고약하다!’고 그러더라고요.”

뭔가 재미난 사연이 있어 보여서 이어지는 얘기를 기대했는데 그녀는 다시 침묵하다가 불쑥 이런 말로 얘기를 마무리 지었다.

하기사, 소설 쓰는 사람들은 괴팍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나는 어처구니없게도 한 방 맞은 느낌이었다. 강대 입학하기 전인 1969, 춘고 3학년일 때 13회 학원문학상소설 부문 당선으로 나름대로 촉망받는 미래 작가소리를 듣는 참이었으니 말이다. 하긴, 국어교육과 1학년생인데도 학생회에서 교지 편집 일을 맡긴 건 그 경력 때문이다. 동급생 그녀도 춘여고 다닐 적에 글 잘 쓰는 학생으로 명성이 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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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사람들은 숲이 푸른 것을 ‘GREEN', 바다가 푸른 것을 ’BLUE'라고 분명히 구별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 같은 푸른색으로 표현하는데 말이다.

나는 오늘 춘심산촌에 왔다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 같은 푸른색으로 표현하는 까닭을 알 것 같았다. 주위의 짙푸른 녹음이 바닷물처럼 넘실거리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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