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같은 사물이라도 먼데 있으면 작게, 가까이 있으면 크게 그려야 한다는 원근법.
이 원근법을, 우리는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배운다. 그런데 원근법을 확인할 수 있는 실제 풍경이 별로 없다. 줄맞춰 가는 군 트럭들이라든가, 똑같은 높이의 수십 여 동 아파트 풍경이라면 모를까.
나는 서현종의 ‘어느 겨울’ 그림을 보는 순간 먼데 있는 산일수록 커다란 산인데 비해 가까이 있는 산은 자그마한 산인, 원근법이 무시되는 실제 풍경을 확인했다. 그렇다. 산들은 그런 모습이 정답이다. 사람들이 기대며 사는 산은 부근의 나지막한 산일 터. 그런 산기슭이라야 집을 짓고 밭을 꾸미고 우물을 팔 수 있었다. 먼데의 높고 큰 산은 산신령(호랑이)이 사는 곳이라 범접하기 어려운 영역이었다.
‘어느 겨울’ 그림에서 도시(都市)는 나지막한 산들의 기슭에 기대어 있다. 하지만 그 뒤편으로 엄청나게 높은 산들이 거대한 파도처럼 첩첩이다. 시민들이 평소에 잊고 있는 ‘나지막한 산들 뒤편으로 엄청나게 높은 산들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걸까?
문명의 총화인 도시조차 대자연의 한 구석에 불과함을 에둘러 말해주는 걸까.
서현종이 자기 그림의 브랜드처럼 한편에 올리는 그믐달 대신에, 이번에는 작지만 둥근 보름달이 떠 있다. 시민들이 잊고 있는, 높은 산들의 존재만큼이나 의외다.
어쨌든 첩첩 산들을 검푸른 색조로 묵직하게 그려낸 그의 심중(心中). 무슨 생각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