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쉬는 날인가?’

목덜미의 땀을 손수건으로 훔치며 정문 안쪽을 살폈다. 통나무들 틈새로 보이는 안쪽에도 사람 하나 없이, 보도라든가 온실 같은 구조물만 언뜻 보였다.

그는 조수석에 둔 ‘행복 생태학교’ 관련 자료를 다시 보았다. 끝 부분에 작은 글씨로 주의사항이 있었다.

‘방문 전 예약을 하셔야 좋은 학습을 하실 수 있습니다. 온 라인 예약도 가능합니다. ☎(033)×××-×××’

그가 어제 밤에 이 문장을 못 봤을 리 없었다. ‘직접 방문하셔도 좋지만’이란 전제가 생략된 문장이라고 여겼던 게 아닐까? 지금 보니 그런 전제가 아니라‘반드시’란 부사가 생략된 듯싶었다.

‘반드시 방문 전 예약을 하셔야 좋은 학습을 하실 수 있습니다.’

비로소 이 사태가 납득되었다. 예약 없이 찾아온 그는 곤경에 처했다.

이제라도 통화해보기로 결심했다. 휴대폰을 꺼내어 그 번호를 누르자 ‘통화불능지역’이라는 신호가 액정화면에 떴다. 하긴, ‘033’으로 시작된 번호는 유선전화의 번호였다. 이곳은 무선전파마저 닿을 수 없는 깊은 산속이었다.

‘어떡해야 하나?’

돌아가기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었다. ‘텅, 텅, 텅’ 경운기 소리가 아직도 들리니 삼십여 분은 지나야 길이 비워질 것 같았다. 생각다 못해 그는 정문을 부여잡고 흔들어 봤다. 육중한 정문은 꿈적도 않았다.

‘안쪽에 대고 소리라도 질러야 하나?’

망설이다가, 정문 한 구석의 작은 쪽문을 발견했다. 정문처럼 통나무로 만들어져 미처 몰랐었다.

쪽문도 잠겨 있었다. 찬찬히 살폈다. 나무 빗장이 느슨하게 걸려 있었다. 그는 틈새로 손을 넣어 빗장을 뺐다.

마침내 안으로 들어섰다. 큰 나무들이 명패를 달고 줄지어 늘어선 사이로, 넓적한 돌을 듬성듬성 깔아 만든 보도가 나 있었다. 그는 사열이라도 하듯,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나무들의 명패를 읽었다. 잣나무 주목나무 구상나무 젖나무 자엽자두 느티나무 은행나무 엄나무 산수유나무 왕벚나무 겹벚나무 매실나무 라일락나무 산딸나무…….

나무들의 사열이 끝나자 따가운 초여름햇빛이 폭포수처럼 그를 덮쳤다.

초입만 나무그늘 길이었을 뿐, 이제부터는 스타디움으로 들어선 듯 광활한 공간이었다. 띄엄띄엄 들어선 건물들 사이로 잔디와 화초류가 가득했다.

그는 현기증까지 났는데 엄청난 햇빛 때문이었다. 몇 달 간 못 봤던 햇빛들이 한꺼번에 뭉쳐 떨어지는 착각마저 일었다. 휴대폰의 전파조차 날지 못하는 청정한 공간에 햇빛들이 범람했다.

그는 오른손을 이마에 대 모자의 챙처럼 만든 뒤 천천히 둘러보았다. 가까운 화초들부터 보았다. 나무들처럼, 화초마다 명패가 꽂혀 있었다. 과꽃 꽈리 나팔꽃 능소화 만병초 매리골드 미모사 봉선화 분꽃 붓꽃 비비추 매발톱꽃 불두화 수국 달개비 접시꽃 채송화 천일홍 카네이션 패랭이꽃…….

화초들의 사열이 끝났다.

둥근 온실 같은 구조물 차례였다. ‘나비 나라’라는 팻말이 구조물 위에 붙어 있었다. 유리로 만들어져 안이 내비치는데 언뜻 보기에 수풀더미 같았다. 그는 입구를 찾아냈다. 입구는 호리병의 주둥이처럼 앞으로 튀어나온 형태로, 미닫이문이 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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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심산촌에서 순무들을 수확했다. 김치를 담그면 그 맛이 이 가을의 날씨처럼 쌉싸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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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바닥에 떨어진 햇빛도 몇 점 되지 않았다. 울창하게 높이 자란 나무들에 하늘 대부분이 가려졌기 때문이다.

그는 차 옆에 서서, 고개 쳐들고 하늘 쪽을 보았다. 햇빛의 투과 정도에 따라 나뭇잎들이 연초록부터 청록색에 이르는 다양한 색들로 촘촘한 그물망을 이루고 있었다.

“햇빛 그물망이구먼.”

정말 오랜만의 햇빛이었다. 오늘 아침에 관광호텔까지 운전해오는 동안에는, 이른 시간인데다가 안개 낀 산간지역이 많아서 햇빛을 볼 수 없었다.

이런 날은 ‘오후 네 시 전까지 이 시골구석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쓸데없는 걱정하며 전전긍긍할 게 아니었다. 아무 데나, 햇빛이 환하게 쏟아지는 장소에 차를 세워놓고 일광욕을 했어야 했다. 그는 뒤늦게 후회했다.

그 때 웬 엔진 음이 들려왔다

아연 긴장한 그는 두 귀를 기울였다. 두 귀가, 동물의 귀처럼 각기 소리의 방향을 찾아 따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전방에서 들려오는 엔진 음이었다.

“텅, 텅, 텅……”

경운기이거나 낡은 화물트럭일 것 같았다. 걱정했던 일이 현실로 닥쳤다. 꼬부라진 길모퉁이 저편이라 정체는 안 보이는 채 ‘텅, 텅 , 텅’커지는 소리로 다가오고 있었다. 메아리까지 만들어내며.

비좁은 길에서 충돌할 사태였다. 그는 차에 탄 뒤 경적을 눌렀다.

“빠바방 빠바방……”

‘텅, 텅, 텅’ 엔진 음과 그 메아리도 그쳤다. 상대편이 그의 존재를 알아챈 것이다.

그가 조심스레 차를 몰고 모퉁이를 돌자, 눈앞 오 미터쯤 되는 거리에 경운기가 있었다. 새마을 모자를 쓴 노인이 양 팔로 경운기 핸들을 벌려 잡고 멈춰 선 모습이, 마치 사마귀가 앞의 두 다리를 벌리고 선 듯 괴기스러웠다.

경운기라도 교차될 길이 아니었다. 그가 난감한 표정으로 운전대만 잡고 있자 노인이 경운기를 후진하기 시작했다. 꼬부라진 길에, 적재함까지 달렸는데도 간간이 뒤돌아보며 후진해 가는 능숙한 솜씨였다. 그의 차도 조금씩 전진해 갔다. 십 미터쯤 갔을까, 갑자기 넓은 터가 훤하게 나타났다.

경운기가 그 터에 들어가 멈추자, 그는 편하게 따라 들어가 주차했다. 버스도 주차할 수 있는 넓은 터였다. ‘어떻게 이런 넓은 터가 산속에 있었을까?’ 놀라 주위를 살핀 그는 어이가 없었다. 한 쪽에 이런 나무 팻말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행복 생태학교 주차장’

얼결에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주차장 주위의 나무그루들과 같은 색이어서 미처 몰랐었는데 통나무들로 만들어진 ‘행복 생태학교’ 정문이 코앞에 있었다.

그가 놀라고 있을 때 노인의 경운기가‘텅, 텅, 텅’, 후진했던 그 길로 사라져버렸다. 고맙다고 인사드릴 기회를 그는 놓쳤다.

‘행복 생태학교’

어제 밤에는 인터넷 정보로 만났고, 오늘은 오전 열 시 경부터 방금 전까지 내내 원망스러웠던 존재가 눈앞에 있다니…….

감개무량함은 오래 가지 않았다. 정문이 안쪽으로 잠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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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출근하면 혼자 남는 아파트라, 아무도 그의 집필활동을 방해할 수 없었다. 절간처럼 고요해진 아파트 안에, 그가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밖에 다른 소리는 존재할 수 없었다. 직장에 나갈 일 없이 집필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이뤄진 것이다.

그러자, 작품이 쓰이지 않았다.

‘거리의 끝에서부터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은 휴지와 라면 봉지와 빈 캔과 짝 잃은 양말 한 쪽까지 훑으며, 사내가 멈춰 서 있는 데까지 끌고 오고 있었다.’

처음 두 줄 이상 나가지 못했다. 그는 당황했다. 완벽한 집필 환경이 갖춰진 순간, 문장이 더 이상 나가지 않다니.

당황하면 당황할수록, 두 줄 이상의 문장은 떠오르지 않았다.

장편소설 집필에 대한 강박증일까?

한 번 바깥바람이라도 쐬어야 할 것 같았다. 한 달째, 그는 아파트 문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옷장에서 연푸른색 춘추 양복을 꺼내어 입고 거울 앞에 섰다. 헝클어진 머리도 빗으로 다듬고 외출할 채비를 마쳤다. 그 때 ‘띵똥’하고 비디오폰이 울었다.

문밖에 누가 온 것이다. 쉬 문을 열어주기에는 세상이 험했다. 그는 문 앞 장면이 나타나는 비디오폰의 화면 스위치를 누르며 말했다.

“누구십니까?”

대답이 없었다. 화면에도 나타나는 이 없이, 화사한 봄 햇살만 보였다.

그의 아파트는 십층인데 문 앞으로 복도가 있었다. 그 복도의 외부 창으로 봄 햇살 한 무더기가 들어와 빛나고 있었다.

동네 장난꾸러기 아이가 비디오폰의 바깥스위치를 누르고 달아난 걸까?

그는 비디오폰 화면으로 봄 햇살을 지켜보다가…… 양복을 다시 벗어 옷장 안에 넣었다. 명퇴자가 화창한 대낮에 외출할 용무는 딱히 없었다. 소파에 맥없이 앉아 텔레비전의 리모컨을 찾았다.

그 날부터 그는 아내의 출퇴근 시간에 맞추어 컴퓨터를 켜고 끄는 짓을 연출하며 낮 시간을 보냈다.

성가시게 여겨지는 햇살이었다. 창가에 블라인드까지 친 뒤 어둑한 거실에서 유령처럼 지냈다. 바깥바람을 쐬고 싶을 때에는 밤에 외출하여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돌다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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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무역회사 사장 아들로 슈퍼주니어 멤버다. 2013년 1월 5일 한국인 최초 트위터 팔로워 300만 돌파에 이어, 2015년 10월 26일 팔로워 500만을 돌파했을 만큼 대단한 인기와 영향력을 겸비했다. 2016년 2월 25일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선정한 '연예, 스포츠 부문 아시아 영향력 있는 인물 30세 이하 30인'에 한국인 6명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그가 생각지도 못한 시련을 맞았다. 아끼는 반려견에 이웃집 사람이 물린 지 얼마 안 돼, 사인이 확실치 않게 사망하는 참사가 난 것이다.

 

노인들은 잔소리가 많다. 주로 조심하라는 잔소리다. '차를 몰 때도 그렇고 길을 걸어갈 때도 항상 주위를 조심해라. 방심했다가는 사고 난다. 아무 음식이나 덜컥 먹었다가는 식중독에 걸린다. 먹어도 되는지 충분히 살핀 뒤 먹어라. 친한 친구라도 보증을 서서는 안 된다. 보증 섰다가 신세 망친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아는 어른들을 보면 지나치지 말고 반드시 인사해라. 집을 비울 때에는 문단속을 철저히 해라.’ 등등.

왜 그리 조심하라는 잔소리가 많은지, 젊었을 때는 노인들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같은 노인이 되자 달라졌다. 남부러울 것 없는 아이돌 한 사람이 반려견 관리 문제로 시련을 겪을 줄이야, 어느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오래 살면 백년 남짓한 인생, 항상 조심하며 살아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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