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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반도를 산자수명(山紫水明)한 곳이라 자랑한다. 나이 어릴 적에는 자화자찬하는 말인 줄 알았다. 나이가 들자 과연 산자수명한 땅임을 실감한다.

살고 있는 데에서 조금만 가면 해발 1000미터 안팎의 산이 있으며 항상 강물이나 내가 흐르는 산자수명한 땅 한반도.

그 때문일 게다. 무심은, 우리나라에서는을 평범하게 표현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부산에 산복도로(山腹道路)’가 있다. 산의 중턱을 지나는 도로라는데, 분명 산을 사람의 몸처럼 여겨 중턱 부분을 배로 비유한 말이다.

그런가 하면 '산허리'란 말도 있다. 이 또한 산을 사람의 몸처럼 여겨 허리처럼 중간쯤 되는 산의 지점을 가리킨다. “산중턱에 걸려 있는 달보다 산허리에 걸려 있는 달이란 표현이 훨씬 맛있다.

산자락이란 말도 있다. ‘자락옷자락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 옷이나 피륙 따위의, 아래로 드리운 넓은 부분이다. ‘산자락이란 산이 평지에 드리운 넓은 지대를 표현한 말인 것이다.

산등성이란 말도 있다. 사람이 엎드려 있으면 등이 나온다. 산을 엎드려 있는 사람처럼 본 데서 나온 말이 산등성일 게다.

 

을 아기자기하게 표현한 우리말이 더 있을 듯싶다. 우선은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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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는 자기 음식 앞에서 잠시도 경계의 눈빛을 거두지 않는다만일 개가 음식을 먹을 때 당신이 다가간다면 금세 으르릉거리며 허연 이빨들을 다 드러낼 것이다. 자기 음식을 지키려는 개의 욕심일 것 같아 나는 그 모습이 딱해 보였다. 마음 편히 음식 한 번 먹지 못하다니 얼마나 불쌍한가.

 하지만 요즈음 다른 생각이 들었다. 개가 음식 먹을 때 경계의 눈빛을 거두지 않는 것은 적에게 방심의 기회를 주지 않으려는 본능일 거라는 생각이다. 음식 섭취는 모든 생명체의 존재 방식이다. 음식 섭취가 이뤄지지 못하면 그 생명체는 유지되지 못한다. 동물이 음식을 대하는 순간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 까닭이다.

그렇기에 그 순간은 적에게 기습의 호기(好機). 동물이 음식을 먹는 순간 잠시도 방심할 수 없는 건 그 때문이다. 야생동물의 생태를 찍은 영화를 보면 보잘 것 없는 먹이에 다가가는 순간에도 사방을 살피며 경계하는 야생동물의 모습이 역력하다.

 

그러에도 불구하고음식을 먹을 때 경계심이 없는 동물이 있다. 애완견들 중에 있다. 그건 오랜 세월 인간들에게 길들여져서 순치된 결과다. 따라서, 음식을 먹을 때 가까이 다가가도 별 일 없는 애완견이 있다면 그 애완견은 생명체로서의 존재방식마저 잃은 딱한 경우다. 나는 단언한다. 동물의 야성 정도(程度)는 그 동물이 음식을 먹을 때 얼마나 주위를 경계하느냐로 결정된다고 말이다

그렇기에 사람이 음식을 먹을 때 다른 사람들과 대화는 물론 그 음식을 나눠먹기도 하며 조금도 경계하지 않는 것을 나는야성에서 그만큼 멀리 떠나온 모습이라고 여긴다. 그런 모습을 우리는문화라 부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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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간의 첨예한 긴장이 흐르는 서해 백령도.

 

부근 바다에는, 천연기념물 제331호로 지정된 잔점박이 물범들이 살고 있다. 그런데 정작, 그 물범들은 천연기념물 지정 같은 건 전혀 모르는 천진난만한 표정들이다. 그렇다. 당사자들이 무엇에 지정돼 있는지도 모르는 채 잘 지내도록 해주는 것이 천연기념물 지정의 참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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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구애와 교접 행동을 보여주는 TV프로그램을 보았다. 처음에 발정기 암컷을 만난 수컷은 그 주위를 맴돌며 따른다. 암컷이 별 관심 없는 듯 행동하다가 웬 일로 호응하면서 둘은 함께 다니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둘은 짝짓기 한다,

그런 일련의 행동들이 우리 사람들의 결혼 과정과 하나도 다를 게 없었다. 처음에는 총각이 자기 마음에 드는 처녀 주위를 맴돌며 따르기 마련이다. 어줍게 말을 건네기도 하고 핑계를 만들어 커피 한 잔 함께 마실 계제를 마련하고자 한다. 처녀는 처음에는 사양도 하며 거리를 두듯 하다가 얼마 후 총각에게 마음을 열어 데이트를 한다. 그런 뒤 결혼식을 올리고서 부부가 되는 것이다.

내가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동물의 짝짓기 장면과 우리 처녀 총각의 결혼식 장면과의 차이점이다. 동물은 짝짓기를 하는 순간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다. 다른 동물들은 개입할 수 없는 당사자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개 짝짓기의 시간이 벼락같이 짧은데 그 순간 천적에게 기습받을지도 모른다는 본능적 대응인 듯싶다.

우리 처녀 총각의 결혼식은 동물과 경우와 너무 다르다. 친척들과 지인들이 모인 가운데 축복 속에 천천히 이뤄진다. 요즈음에는 30분 만에 끝나는 초고속 결혼식도 있어 빈축을 사기도 하지만 그래도 동물의 벼락같은 순간보다는 훨씬 길다.

많은 사람들이 웃고 떠들며 환호하는 가운데 치러지는 우리 처녀 총각의 결혼식이야말로 벌판의 동물들에게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는 여유중 하나다.

그런 여유가 인간만이 누리는 문화의 본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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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경, 나는 동해안의 양양고등학교 교사였다. 어머니가 춘천의 살림들을 정리한 뒤 동생들과 함께 양양으로 내려와 내 뒷바라지를 겸해서 함께 살았다. 강원도에서는 대도시라 할 춘천에서 살다가, 좁은 시골 양양에 내려와 살자니 어머니는 말벗할 분들이 아쉬웠다. 그 때 어머니의 말벗이 된 할머니 한 분이 있었다. 당시 그분 나이 여든쯤 됐는데 뜻밖에 아주 유식한 분이었다. ‘왜정 때 이화학당을 다녔다고 했다. 그분이 3·1절이 가까운 2월말의 어느 날 어머니와 이런저런 말씀을 나누다가 이랬다.

 

관순이가 학교 다닐 때도 성질이 괄괄했지. 그러니 순사들한테 기죽지 않고 대든 거지.”

우연히 옆에서 그 얘기를 듣게 된 나는 놀라서 그분한테 되물었다.

할머니. 관순이라니, 유관순을 말하시는 겁니까?”

그분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럼. 유관순이가 내 일 년 후배였어.”

 

 

돌이켜보면 그 해 1978년은, 19193·1만세 운동이 터진 해에서부터 채 60년이 안 된 해였다. 여든 나이 그분에게 19193·1만세 운동은 한창 나이 스무 살 즈음의 생생한 사건이었다. 유관순 열사 사건을 흘러간 역사의 한 부분인 듯 여기고 있었지만 사실 얼마 지나지 않은 사건이었던 거다.

어르신들이 흔히 말하는왜정 때 말이야.’할 때의 왜정 때 역시 그리 먼 시대가 아니었다. 나라를 왜놈들에게 팔아넘기는 데 앞장선 을사오적들 얘기 또한 그리 먼 데 일이 아니다. 그들의 손자들이 자기 할아버지의 땅을 되찾겠다며 지금도 여기저기 오가고들 있다지 않는가. 수치스런 역사 또한 이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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