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 있어요‘의 노랫말의 아름다움

 

노래 제목을 요즈음은애인 있어요라 하는데 발표 처음에는 분명히애인있어요라고 했다. 중간에 들어간 는 말없음표(말줄임표)로써 여기서는머뭇거림을 보여준다. 노랫말 속의 화자가 대화 상대에게 처음에는 애인이 없다고 말하려다가, 있다고 말을 바꾸는 머뭇거림의 가슴 아픔을 제목에서부터 보여주었다.

노랫말의 내용을 산문으로 구성해 봤다. 관련 TV 드라마와 무관한 상상력의 소산이다.

 

남자와 여자는 한 직장의 동료다. 남자가 여자보다 서너 살 위 선배다. 어느 날 퇴근길에 동행하게 돼 자연스레커피를 함께 마시게된 두 사람. 커피숍에서 남자가 먼저 왠지 외로워 보이는 여자한테 물었다.

아직도 넌 혼자인거니?”

여자는 머뭇거리다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저 혼자서 좋아하는 사람이 있지요.”

서른이 다 됐는데도 짝사랑이나 한다니, 그런 여자가 안쓰러워 남자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친구들 중에 취업이 늦었던 탓인지 애인도 없이 사는 한 친구 얼굴이 떠올랐다. ‘그렇지, 이 여자와 그 친구를 한 번 만나도록 내가 나서보자.’

그럼 말이야, 내가 아는 좋은 사람이 있는데 한 번 만나볼래?”

여자는 이번에는 미소도 짓지 않고 침묵한다. ‘거절의 의사가 여자의 굳어진 표정에 역력하다. 사실 여자는 지금 속으로 이런 항변을 하고 있다. ‘모르고 있군요. 내게 멋진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그럼 왜 그 애인을 안 보여주느냐고요? 그건내게 너무 소중한 사람이라 꼭 숨겨둔 거여요.’

굳은 얼굴로 고개까지 숙인 채 말없이 앉아 있는 여자. 남자는 속으로이 후배가 왜 이럴까? 내가 괜히 커피 마시자 했나 보다생각하며 난감해졌다. 여자는 여자대로 아랫입술까지 지긋하게 깨물며 마음속 항변을 이었다. ‘그 사람은 나만 볼 수 있어요. 내 눈에만 보여요. 그냥내 입술에 영원히 담아둘 겁니다.’

남자는 별 생각 없이아직도 넌 혼자인 거니?’물었다가 뜻 모를 여자의 긴 침묵에 난감하다 못해 곤혹스럽다. 이 자리를 어서 벗어나고 싶은데, 그렇다고 불쑥 일어서기도 뭣해 핑계를 궁리한다. 사실, 지금 눈앞의 여자는 남자가 호감을 가질 만한 스타일이 아니다. 게다가 남자에게는 몇 달 뒤 결혼식을 올릴 약혼녀도 있다.

여자는 아랫입술까지 깨물며 슬픔을 참느라 눈가에 눈물까지 어린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고백한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당신이라는 걸 모르세요?’

 

노랫말 끝에 이런 기막힌 반전이 있을 줄이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데 있지 않고아직도 넌 혼자인 거니?’물은 바로 그대라는 사실. 영화식스센스급의 반전결말이다. 제목을애인있어요라고 묘하게 붙인 까닭이 드러난 것이다. 짝사랑을 소재로 한 노래들 중 이런 기막힌 반전결말은 나는 처음 보았다.

한편, 왕년에 고복수라는 가수가 짝사랑이란 노래를 불렀다. 다음은 이 노래의 앞부분이다.

 

~ 으악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여울에 아롱젖은 이즈러진 조각달/ 강물도 출렁 출렁 목이 맵니다

 

혼자 하는 짝사랑이지만 으악새(억새)’라든가 조각달같은 사물로써 화자의 가슴 아픔을 드러냈다. 그건 화자가 남자라서 가능했을까? ‘애인있어요의 화자는 쉬 가슴 아픔을 드러내놓지 못한다. 눈앞의 그대한테 약혼녀가 있다는 사실에다가, 자신을 여성이 아닌 직장 동료로만 보는 눈빛에 일찍이 절망했기 때문이다.

여자는 그대에 대한 슬픈 사랑 고백을입술에 영원히 담아둘수밖에 없다. 입술처럼 우리 얼굴에서 가벼이 움직일 수 있는 게 어디 또 있을까? 여자는 그런 입술로 사랑 고백을 절대 하지 않겠다고 자신을 가혹하게 몰아붙인다. 결국 인내의 한계선까지, 서해 바닷가 밀물처럼 서서히 차오르는 슬픔의 눈물.

여자는나는 그대를 갖고 싶지 않아요, 욕심내지 않아요, 그냥 사랑하고 싶어요라며 끝내 그대에 대한 갈망을 순정으로 승화한다. 모든 것이 급변한 시대에 짝사랑 같은 감정은 구시대 유물인 듯싶었는데 이렇듯 지순할 줄이야.

 

사실애인 있어요가 어느 날 대중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게 된 것은 전적으로 맨발의 디바 이은미씨 공이 아닌가 싶다. 짝사랑 상대 앞에서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을 머금는 여자그렇기에 너무나 아픈 가슴을 이은미씨는 처절한 창법으로 구현해냈고 그 결과 우리나라 대중가요 사()에 한 획을 그었다. 가수들이 좋아하는 노래가 따로 있는데 애인있어요도 그 중 하나가 됐다. 쟁쟁한 여러 가수들이 이 노래를 경쟁하듯 부르기 시작했다.

이 대단한 노랫말을 지은 분이 어떤 분인지 인터넷으로 찾아보았다. ‘최은하라는 분이었다. 중앙대학교 대학원 광고홍보학 박사 학력에, 2002년부터 2005년까지 남서울대학교 광고홍보학 외래교수를 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참고로 애인있어요노랫말 일부를 인용한다.

 

아직도 넌 혼잔거니 물어보네요

난 그저 웃어요 사랑하고 있죠

사랑하는 사람 있어요

그대는 내가 안쓰러운 건가 봐

좋은 사람 있다며

한번 만나보라 말하죠

그댄 모르죠 내게도 멋진

애인이 있다는 걸

너무 소중해 꼭 숨겨두었죠

그 사람 나만 볼 수 있어요

내 눈에만 보여요

내 입술에 영원히 담아둘 거야

가끔씩 차오르는

눈물만 알고 있죠

그 사람 그대라는 걸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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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린 비밀의 숲>

 

무심포토비밀의 숲을 블로그에 올린 뒤 뜻하지 않는 반응에 놀랐다. 짧은 글인데도 많은 분들이 찾아와 읽은 조회수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몇 달 전에 같은 제목의 TV드라마가 있었다고 한다. ‘무심이란 호가 말해주듯 나는 TV드라마에 관심이 없는 편이다.  

아내가 말했다.

이건, 사람들이 TV드라마비밀의 숲과 관련 있는 글인가 싶어 방문한 결과야.”

나는 별 대꾸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말을 길게 하고 싶었다.

여보.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 이제 내 얘기를 들어 봐. 비밀은 별난 데에만 있는 게 아니야. 극히 평범한 데에도 비밀은 있어. 당신도 살아오면서 이런 경우가 분명히 있었을 거야. ‘아니, 어떻게 점잖은 분이 그런 비리를?’ 혹은 아니, 동네 어른들께 인사 잘하는 그 착한 아이가 골목에 숨어서 담배 피는 게 눈에 뜨였다고?’어디 그뿐인가? 짐작이지만 우리 애들도 우리한테 말 않고 숨기는 비밀이 몇 가지 있을 거야. 하긴 우리 또한 애들한테 숨기는 비밀이 있을 거고. 부모 자식 간 비밀 따위는 없이 사는 게 좋을 듯싶지만 사람 사는 게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지. 어쩌면, 부모 자식 간에도 각자 간직해야 할 비밀이 있어야 삶이 더 풍성해지는 게 아닐까? 내가 우리 동네 가까운 숲에서 산토끼, 두더지, 까투리를 보았다는 비밀 얘기를 썼는데 사실 비밀이 더 있어. 뱀도 봤어. 아주머니들이 숲속 공터에 모여서 간단한 체조를 하는 뒤편으로 뱀 하나가 조용히 기어가더라고. 내가 아주머니들이 놀랄까 봐 그 사실을 일러주지 않고 숲을 지나갔지. 이제 알겠지? 그 숲에 비밀이 있다는 블로그 얘기를. 사실 그 숲에 비밀이 그 외도 더 있지만 말하지 않을 거야. 왜냐면 의미 없는 일이니까. 가만 있자. 딱 한 가지만 더 말해줄게. 매년 11일 아침에 사람들이 새해 첫 일출을 본다고 머나먼 동해안의 정동진이나 높은 태백산 정상을 찾는데우리 동네 그 숲이 있는 작은 산 위에서도 새해 첫 일출을 볼 수 있어. 물론 동해안이나 태백산 꼭대기보다야 그 시간이 늦지만 고작 몇 십 초의 차이라고! 그 숲 만만치 않아. 평범해 보이지만 갖가지 비밀이 있어. 내가 그 중 극히 일부를 블로그에 올려 소개했던 거라고. 평범한 그 숲에 비밀이 있다는 지난번 블로그 내용, 이제 이해가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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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감 농사가 풍년이다. 1116일자 무등일보에 이런 보도까지 나왔다.

올해 감 농사가 풍년이 들면서 감 생산 농가들의 한숨소리가 하늘을 찌를 듯 깊다. 영광군내 대봉감 15한 상자에 1만원에도 안 팔려 인건비도 나오지 않고 있다. (하략)”

내 기억에 감 풍년은 올해처럼 홀수 해마다 벌어졌다. 그렇게 말할 만한 추억이 있다.

    

친한 선배와 강릉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만난 1977년 가을 어느 날, 거리는 온통 감 천지였다. 장사꾼 수레에 산더미처럼 쌓인 것도 감이요, 행상 아주머니가 큰 광주리에 담아 길가에 내놓은 것들도 감이었다. 터미널 주변 가게들도 감들을 가득 진열해 놓아, 선배와 나는 마치 감 세상 한복판에서 만난 듯했다.

삼척에서 근무하는 선배와 양양에서 근무하는 내가 모처럼 상면할 수 있는 중간 장소로 정한 곳이 강릉 시외버스터미널이었다. 우리는 붉은 감들이 아우성치는 한복판에 서 있는 것 같았다. 감을 사지는 않았지만 헐값인 게 분명해 보였다. 수레에 쌓아놓은 감 더미가 일부 무너져 감이 여러 알 길바닥에 나뒹굴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있는 것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아무리 감 풍년이라도 그렇지, 별나게 터미널에 감 장사들이 몰려 있던 풍경이 납득이 잘되지 않았는데오랜 세월 지난 이제 비로소 짐작이 간다. 감 농사짓는 분들이 감이 대풍을 이뤄 판로가 막히자, 궁여지책으로 외지인들에게 감을 팔 수 있는 장소로써 시외버스터미널을 선택했을 거라는 거.

 

선배와 내가 터미널의 감 천지 속에 서 있을 때 갑자기 처절한 음색의 여가수 노래가 어느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부근의 전파상 스피커 같았다.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이은하의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이라는 노래를 나는 그렇게 처음 들었다. 얼마 후 그 노래는 강릉 시외버스터미널의 감들처럼 전국 각지를 붉게 물들였다

 

그 해로부터 40년 지난 2017년 올해도 홀수 해라 어김없이 감 풍년인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은하씨를 다룬 TV 프로를 보게 될 줄이야. 모 종편 TV '인생다큐 마이웨이'라는 프로에 등장한 이은하씨는 퉁퉁 부은 듯한 얼굴로 경제적으로 파산했다는 딱한 얘기를 전했다. 원인은 아버지의 사업실패와 빚. 그 때문에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사채 빚이 50억까지 돼, 결국 파산신청을 했고 이제 면책 받게 됐단다. 얼굴이 퉁퉁 부은 것처럼 된 것은 그 와중에 쿠싱증후군이라는 병까지 얻은 때문이란다.

많은 히트곡으로 1970~80년대 디스코의 여왕으로 불리며, 전성기 시절엔 9년 연속 '10대 가수상'은 물론 가수왕도 3번이나 차지했던 톱 가수 이은하.

하필 감이 대풍인 올해 그런 모습이라니 안타까웠다. 감은 홀수 해마다 풍년을 이루는 자연현상을 어김없이 지키는데 우리 인간사는 그렇지 못한 걸까? 하긴 강릉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만난 선배와 나도 그 당시의 한창 젊은 모습은 온데간데없으니.

그래도 이은하씨는 절망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스타의 꼭대기도 가봤고 어떤 면에서는 쓴 맛도 봤다. 지금은 많이 내려놨다. 내려놓으면 편하다. 가진 게 없으니 편하다.”

다시 다가올 어느 홀수 해에 재기에 성공한 가수 이은하라는 제목의 TV 프로를 보게 될 것을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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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모든 만남이 소중하지만 바쁜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어쩌면 우리는 일정한 얼굴과 체구를 갖춘 외형적 존재들을 접촉하는 데 익숙해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마다 살아온 삶의 내력이 반드시 있는 존재라는 생각에 미쳤을 때 어찌 만남을 소홀히 할 수 있을까? 그 사람은 죽음의 고비를 수없이 이겨낸 대단한 이력의 소유자일 수 있고, 그 사람은 훗날 인류에 남길 귀중한 정신적 유산을 준비한 위인일 수 있고, 그 사람은 어쩌면 당신을 위기에서 구출해낸 의인일지도 모른다.

, 그 사람이 그냥 눈인사만 하고 스쳐지나갈 존재라 해도 만남의 소중함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지구상에 있는 수십억 인구 중 방금 나와 유일하게 만난인연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할 수 없기에.

 

과거뿐만이 아니다. 당신처럼 그에게도 앞으로 전개될 미래가 있다. 눈앞의 그가 혹시 실망스런 모습이라도 당신이 그를 무시하거나 외면해서는 안 되는 건 그 때문이다.

더구나 그는 다치기 쉬운 마음의 소유자라는 사실이다. 당신처럼 말이다. 당신은 그를살며시 부는 바람이 책갈피를 소리 없이 하나하나 넘기듯정성껏 맞이해야 한다. 그의 마음을 다치지 않는 환대는 그렇게 이뤄진다.

 

이 시의 내용은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뉠 수 있다. 전반부는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그의 일생이 온다는 뜻이다는 내용으로, 후반부는살며시 부는 바람이 책갈피를 소리 없이 하나하나 넘기듯 그를 정성껏 맞이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간추릴 수 있다. 전후반부 모두,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듯하면서 점층되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같거나 비슷한 리듬의 반복이라는 내재율(內在律)과 연관된다.

이 시의 주제는만남을 소중히 하자이다. 정현종 시인은 철학적이고 교훈적일 수 있는 주제를 극히 평이한 언어들로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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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밖은 영하 4도다. 따듯한 거실  창가 안쪽에 종류가 다른 화초 넷이 모여 있다. 종류가 달라도, 식물들이라도 정겨운 대화가 오가지 않을까? 만일 '절대 그럴 수가 없다!'고 부정한다면 동화가 존재할 수 없다. 인문학이 존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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