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에 있으면 시내가 안 보인다. 시내를 벗어나자 시내가 보였다

 

‘120일 춘천이란 제목의 무심포토 글이다. 그런데 오늘, ‘담다디로 유명한 가수 이상은의 언젠가는을 듣게 되었다. 노래 초입에서‘120일 춘천글과 같은 뜻의 노랫말이 나오질 않던가.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우리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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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선생이 툭하면 연구과장을 교장실로 불러 십 분 가까이 야단을 친다. 야단치는 내용은 우리 학교 1학년 학생들의 이 달 모의고사 성적이 왜 이 모양이냐!’ ‘3학년뿐만 아니라 2학년도 밤 11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연장시켜야 하지 않느냐!’ ‘보충수업 때 교재연구도 없이 그냥 교실에 들어가 대충 시간을 때우는 선생이 있다는데 연구과장은 알고 있는냐!’‘시내에 있는 학교들이 1교시 수업을 하기 전에 한 시간을 자습한다는데 우리 학교에서도 시도해볼 만하지 않냐!’ 등이다.

연구과 문서담당으로서 연구과장을 모시고 있는 김선생이 보기에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교장선생의 행동이다. 해마다 주민들이 대도시로 이사 가는 바람에 이 학교의 학생들 수가 현격하게 줄어들어서 과연 십년 후에도 이 학교가 존속될까?’ 걱정 많은 교무실 분위기는 전혀 모르는 모양이다. 재학생 수가 웬만해야 모의고사 성적 부진도 나무랄 수 있고 1,2학년 야간자습 시간도 더 늘릴 수 있고 0교시 자습도 추진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재작년만 해도 학년 당 학습 수가 넷이었는데 올해는 셋으로 줄어들었다. 그에 따라 교사 정원도 감축돼 올봄 정기인사 때에는 여러 명이 본의 아니게 다른 지역 학교로 전근해야 했다.

이런 침울한 학교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야단만 치는 교장선생도 딱하지만…… 김선생이 보기에는 그저 야단맞는 게 당신의 숙명인 듯 얼굴빛이 벌게진 채 침묵하며 지내는 연구과장이 더 딱했다.

그래서 김선생은 오늘 날을 잡았다. 오후 5 교시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연구과장 책상에 이런 쪽지를 남긴 것이다. ‘과장님. 제가 오늘 저녁식사를 내겠습니다. 보충수업 2교시가 끝나는 대로 학교 앞 중국집으로 오세요. 참석자는 저와 과장님, 단 둘입니다.’

김선생은 중국집에서 할 긴 말을 머릿속으로 준비해두었다. 이런 내용이다. ‘아니, 과장님. 교장선생님이 지금 어떤 처지입니까? 정년퇴직이 여섯 달밖에 안 남았잖아요? 사실상 힘이 다 빠진 교장선생님인데 왜 과장님이 괜한 야단을 맞고 계십니까? 한 번 대들어보세요. 지금 학교에 남은 학생들은 이 학교가 좋아서 남은 게 아니라 도시로 이사 가지 못하는 가정 형편 때문에 남은 겁니다. 그런 학생들 갖고 더 이상 뭘 어떡하란 말입니까? 하면서 말입니다. 제 생각에, 교장선생님이 생각지도 못한 과장님의 반발에 놀라서 그간의 일들을 사과하며 싹싹 빌 겁니다. 그러면서 다시는 안 그렇겠다고 약속까지 할 겁니다. 그런데 만일, 그랬음에도 교장선생님이 야단을 계속 친다면 한 번 이래 보세요. , 오늘 날짜로 연구과장직을 그만 두겠습니다. 그러고는 휭 하니 교장실 문을 박차고 나오는 겁니다. 그러면 학교가 발칵 뒤집힐 텐데 문제는 지금 과장님 말고 연구과장을 할 사람이 딱히 없거든요. 그 동안 과장님이 교장선생한테 야단을 맞아도 중간에서 눈치만 보며 지내던 교감선생까지 기겁해서 난리일 겁니다.’

    

학교 앞 중국집의 한 작은 방에 두 사람이 마주앉았다.

해마다 학생 수가 줄어들어 교사들까지 줄어들어야 하는 시골 인문계 고등학교의 연구과장 자리만큼 기운도 나지 않고 고달프기만 한 자리가 또 어디 있을까. 연구과장은 저녁식사 후에 다시 학교로 들어가 야간자습 시작을 지켜봐야 한다며, 김선생에게 이런 부탁을 했다.

그러니까, 요건만 말해 줘요. 비싼 탕수육을 시켰다니 고마운데 사실 내가 오늘도 바쁘거든.”

솔직히 김선생 눈에는 딱할 뿐만 아니라 모자라 보이는 상사였다. 마음 같아서는 됐습니다. 그냥 식사만 하고 나가죠.’ 말하고 싶었다. 그래도 모처럼의 시간인데 그럴 수는 없었다.

과장님. 제가 긴 말을 준비했지만 바쁘시다니까 줄여서 한 마디 하겠습니다. 과장님. 왜 교장선생한테 쓸데없이 야단맞습니까? 한 번 대들어보세요. 정년이 반밖에 안 남은 교장선생이 뭐가 무섭습니까?”

그 말에 연구과장 얼굴빛이 벌게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허허허웃더니, 마침 종업원이 탕수육 담긴 접시를 상 위에 갖다 놓자 고량주 한 병을 주문까지 한다. 의외의 상황에 놀란 김선생이 조심스레 물었다.

저야 한 잔 마시고 퇴근하면 되지만 과장님은 다시 학교로 들어가야 한다면서, 고량주씩이나 마셔도 됩니까?”

괜찮네. 그러잖아도 자네가, 내가 늘 야단맞고 지내는 걸 무척 속상해하는 것 같아서 한 번은 해명하려 했어. 정년퇴직이 눈앞에 다가온 교장선생님이 왜 나를 수시로 호출해 야단을 치시겠나? 그건 우리 학교 애들 상황을 잘 몰라서라기보다는 그분이 마음이 외롭고 쓸쓸해서야. 자네 생각 좀 해 보게. 사십 년 가까이 봉직한 곳을 얼마 안 돼 떠나는 처지라면 그 심정이 얼마나 스산할지! 더구나 교장실이라는 게 마치 감옥의 독방처럼 늘 혼자 지내는 곳이 아닌가. 그러니 누군가와 대화라도 하고 싶은데 그렇다고 교사들을 감독하느라 바쁜 교감 선생을 부를 수도 없고, 교무과장은 중요한 교무 일을 맡은 분이니 또 그렇고 …… 그래서 비교적 학교 업무에 큰 지장 없는 나를 부르시는 거라고. 모의고사 성적이 부진하다느니, 보충수업이 어떻다느니, 야간자습 시간을 늘리라느니 하는 말씀들은 그저 대화 나누기 위한 핑계거리인 거지. 이제 알겠나? 나는 그럴 때마다 야단 잘 맞는 부하직원으로서 얼굴만 벌게지면 되는 거야. 생각해 봐. 인생이 환갑 넘어 낙이 별로 없을 테네 얼마나 가여운 교장선생님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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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동네에‘iaan’아파트가 있다. 내 짧은 영어 수준으로는 iaan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분명 발음은 이안으로 하고들 있는데 말이다.

그러다 요즈음 깨달았다. 우리 동네에 있는 백화점 이름이‘e mart'고 친구가 사는 아파트 이름은 ’e 편한 아파트라는 사실을 봤을 때 ’iaan 아파트’i'란 우리말 지시관형사 를 연상시키는 효과를 노린 게 아닌가!

지시관형사는 가까이 있는 대상을 수식한다. 예를 들어 이 집’ ‘이 물건’‘이 거리’‘ 이 사람등이 그것인데 저 집’ ‘저 물건’ ‘저 거리’‘저 사람이란 표현과 비교해 본다면 상대적으로 가깝고 나아가 친근감까지 준다는 걸 알 수 있다.

는 영어로‘this'에 해당될 텐데 너무 친근감을 주는 바람에 논란이 되기도 한다. 오래 전 일이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우리나라 김대중 대통령을 맞아 정상회담 중에‘this man’이라 지칭하여 논란이 된 적도 있다. 아무리 우방국 사이라 해도 격을 갖춰야 할 회담에서 사석에서나 쓸이 사람이라 부른 것은 실례가 아니냐는 비판이다. 대북 정책에 있어서 강경한 정책을 준비하던 부시에게 김 대통령의 햇볕정책이 못마땅하게 여겨져 발생한 일화가 아니었을까.

저 마트가 아니라 ’e mart‘라 함으로써 손님이 들를 마트가 바로 여기 있다고 가리키는 친근감이 확연하다. ’저 편한 세상이라 하면 남의 세상 같지만 ’e 편한 세상이라니까 가까운 것은 물론 감탄하는 느낌마저 보탰다. 그런데 ’iaan'은 뭐라 풀이해야 할까?

 

지시관형사를 직감한 것은 무심의 자유이지만 정작 관계 회사들의 설명은 다를 것 같았다. 본격적으로 관련 회사들 사이트를 찾아 ‘e'’i'를 브랜드 앞에 붙인 취지를 살펴봤다. ’e mart'의 경우에는 찾기가 어려웠고 다행히‘e 편한 세상‘iaan 아파트는 찾을 수 있었다.

“e 편한 세상의 e는 고객님이 누리실 편한 세상의 경험(experience)을 의미합니다.”

“iaan은 모든 가치가 이 안(내부)에 있다는 주거 철학을 담은 브랜드입니다.”

나는 ‘iaan’아파트의 ‘iaan’에 대해 특별한 해석을 덧붙이고 싶다. ‘마음의 다른 표현이라고. 단종에게 사약을 전하고 한양으로 돌아가던 금부도사 왕방연이지어 부른 시조에도 이이 등장한다.

 

천만 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희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아이다,

저 물도 내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그렇다. ‘iaan 아파트내 마음의 아파트라 설명하는 건 어떨까? 더 멋지지 않나?

 

그런데 내가 국어선생을 오래한 때문인지 왜 한글를 쓰지 않고 굳이 ‘i'’e'를 써야 했는지, 그 점은 유감이다. 영어 알파벳을 써야 좀 더 있어 보일 것 같아서였을까?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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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축제에서 낚시 대회를 빼놓을 수 없다. TV 방송국들은얼음장 밑에서 낚싯줄에 걸려 밖으로 나온 물고기 사진들을 열심히 방영한다. 심지어 잡은 물고기를 입에 문 행사 참여자의 모습까지 방영한다. 사람들에게 추위를 이겨내게끔 용기를 북돋우고, 지역 주민들의 소득까지 증대시키는 일석이조 방법으로써 한겨울에 이만한 행사는 더 없을 듯싶다.

그런데 한 친구가 TV를 보다 말고 비판했다.

물고기들도 생명체인데 저렇게 잡아 죽이는 행사를 하면서 축제라 이름 붙여도 되는 거야? 어린애들까지 데리고 가, 저러다니 너무 비교육적이고 잔인한 짓이 아니야?”

그 말에 우리 모두는 아무 말도 못했다. 친구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었다. 겨울축제로써 얼음장 밑 물고기들의 생명을 취급하는 것 말고 다른 좋은 방법이 어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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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소리가 차 뒤쪽에서 났다. K가 실내 후시경을 보자, 웬 교통경찰차가 사이렌에 경광등까지 번쩍이며 차 뒤로 따라붙고 있었다. K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차를 세웠다. 교통경찰차도 따라서더니 경찰관이 한 명 내렸다. K의 차 열린 운전석 창 가까이 와 말했다.

벌칙금을 내셔야겠습니다.”

그러면서 서류에 뭘 적는다. K는 어이가 없었다. 결코 과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딱지 한 장 떼이면 몇 만 원인데 그냥 있을 수 없었다.

아니, 제가 뭘 어겼습니까?”

운전 중 전방주시태만입니다.”

아니, 조심해서 천천히 달렸는데 그게 말이 됩니까?”

그러면서 K는 생각했다.‘이건 어째 이상하다. 그렇다, 꿈을 꾸는 것 같은데 빨리 깨자.’하면서 꿈에서 깨어났다. 자신이 이부자리에 누워있었다.

 

 

노인이 된 K는 새벽 4시경에 잠이 깬다. 그러면 컴퓨터를 켜서 하룻밤 새 뉴스도 보고 그러다가 6시경에 혼자 주방에서 아침밥을 먹는다. 곤하게 자는 아내를 깨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식후 30분에 혈압약과 통풍약을 먹는다. 전에, 약봉지를 달고 사는 노인들을 참 한심하게 여겼는데 K가 바로 그런 노인이 돼 가고 있는 것이다.

K는 약 기운에다가 식곤증이 복합적으로 밀려오면서 다시 아침잠을 30여 분 잔다. 오늘은 그 순간에 교통경찰한테 혼나는 꿈을 꾸다 깬 것이다. 꿈이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참 어이없다는 생각도 든다. 꿈속에서이라는 걸 의식했으니 말이다. 어릴 적은 물론이고 한 10년 전만 해도 K가 자면서 꾸는 꿈은 조금도 의심 없는 완전한 꿈이었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분명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꿈과 현실이 경계를 잃어가고 있다.

모처럼 꾸는 꿈조차 순수함을 잃다니!’

K는 실망감에 흰 눈 내리는 거실 창밖을 망연하게 바라보았다. 삭막하던 동네 풍경이 동화마을처럼 아름답게 바뀐다는 생각도 못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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