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퇴만 하면 글이 물 흐르듯 줄줄 쓰일 줄 알았다. 실제는 그렇지 못했다. 혼자 서재에 앉아 컴퓨터를 켜 놓고서 글쓰기는커녕 인터넷 하며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뉴스도 보고 유투브 동영상으로 가수들이 노래하는 것도 많이 봤다. 어느 날은 갓 제대한 무명 가수가 기막히게 노래 잘 부르는 것을 지켜봤다, 그는 얼마 안 가 톱 가수가 됐는데 바로‘김범수’다. ‘사랑이 나를 또 아프게 해요’ 하며 시작되던 ‘하루’.

김범수가 부르는‘하루’는 사랑의 아픔이 주제였지만 명퇴한 내게‘하루’는 그저 막막한 시간일 뿐이었다. 집 밖에는 별나게 화창한 봄 햇살이 범람하고 TV 뉴스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문제로 시끄러웠다.  

그런 어느 날 아내가 ‘먼 시골로 하루 출장 가는데 차를 몰아 달라’고 제의했다. 집안에 틀어박혀 지내는 남편이 폐인 될까 걱정한 때문이 아니었을까? 정말 오랜만에 아내의 일일 장거리 운전기사를 맡아 춘천을 떠났다.  

150리는 달려 도착한 시골 읍의 모 컨벤션홀. 정문 앞에 아내를 내려다놓고는‘오후 5시 반에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 뒤 혼자서 여기저기 차를 몰고 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뜻밖에 생각도 못한 시설물들이 시골에 있었다. 그 중 하나가 개인이 폐 분교를 분양받아 차린 미술관이다. 내가 차를 주차장 (예전에는 운동장이었으므로 그렇게 널찍한 주차장도 없었다. 주차된 차라고는 낡은 중형차 한 대뿐. 나중에 깨달았는데 그 차는 미술관 관장의 차였다.) 나무그늘에 주차시킨 뒤 미술관 안으로 들어서자, 화가이자 관장 되는 분이 몸소 반가이 맞았다. 꽤나 적적해서 방문객을 학수고대했던 게 아닐까. 관장실로 나를 안내하더니 커피를 대접하며 자신의 대단한 작품 활동을 자랑하기 바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어째 작품들이 기대에 못 미치는 미흡한 수준이었다. 거두절미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제 친구도 화가인데 이름이 ‘전태원’입니다. 아십니까?

관장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럴 만했다. 그는 강원도 사람이 아니고 먼 남쪽지방에서 온 사람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강원도에 와 화가를 자임하면서 ‘전태원’을 모른다니 더 대화 나눌 게 없었다. 나는 ‘참, 제가 다른 바쁜 일이 있거든요’ 하며 간단히 인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와 버렸다.

 

그 봄이 가고 여름을 지나 가을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글 한 줄 안 쓰이는 공황(恐惶) 속에서 지내고 있었다. 전년도 늦가을, 명퇴 신청을 생각할 때다. 모처럼 만난 명퇴 선배 태원이가 내게 말했다.

 

“명퇴, 다시 잘 생각해 봐. 물론 나는 명퇴했지만 그렇다고 너도 명퇴하라는 말은 못하겠어.

뜻밖의 말에 나는 당황했다. 그의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하지만 결국 내 결심대로 명퇴하고 만 것이다. ‘직장 생활만 그만 두면 소설이 술술 쓰일 텐데 무얼 망설여?’하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글 한 줄 쓰이지 않는 현실에 자존심 상 태원이한테 내가 먼저 전화 걸어‘만나서 술 한 잔 하자’는 제의를 할 수 없었다. 그랬더니 태원이는 여전히 감감무소식인데‘이종렬’이 나를 찾았다. 모르는 전화번호가 휴대폰에 떠서 받았더니 종렬이 목소리였다.

“태원이한테 얘기 들었어. 명퇴해서 글을 쓴다며? 잘했어. 너는 진작에 직장을 관두고 글을 써야 했어. 그 길이 너한테 맞아. , 만나서 자세한 얘기 나누자.  어느 술집에 잘 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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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덧없다. 40년 전 무심이 양양고등학교에서 근무할 때 일이다. 분장 업무상 연구과 소속이었는데 연구과장님 고향이 금강산 내() 온정리라 했다. 과 회식 자리에서 무심이 이런 질문을 드렸었다. 한 잔 술에 취기가 올라 그랬다.

과장님 고향이 금강산 온정리라고 제가 알고 있거든요. 저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해 궁금한데 정말 금강산이 아름답습니까?”

그러자 과장님이 이렇게 말씀했다.

아무리 경치 좋은 곳이라도 정작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그걸 잘 모르잖소? 늘 보는 경치이니까. 그런데 내 고향 금강산은 그렇지 않았다니까. 625 동란 중에 부모님과 짐을 꾸려 온정리를 떠나올 때가 가을이었거든. 단풍 들고 낙엽 지고해서 얼마나 주변 경치가 아름다운지글쎄, 총에 맞아 죽은 시신 하나가 개울가에 있는데도 무섭다기보다 주변 아름다운 경치와 어우러져 그 또한 그림의 한 장면처럼 아름답게 보이더라니까? 자네 이런 내 말이 믿어지나? 글쎄 이 이상으로 금강산 경치가 아름답다는 걸 표현 못하겠네그려.”

그러고는 술김에 벌겋게 달아오른 낯으로 휴전선 때문에 가 볼 수 없는 고향 금강산을 눈감고 그리는 모습이었다. 정말 그 정도로 금강산 가을 경치가 아름다울까?

남북 사이의 냉랭한 분위기가 풀려 올가을에는 무심도 금강산에 가 볼 수 있는가 했는데 이미 늦가을이라 틀린 일인 듯싶다. 내년쯤에는 가 볼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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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2018-11-20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분 말씀만큼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절실히 표현한 말도 드물 것 같습니다. 금강산의 가을, 아~ 저도 꼭 한 번 봤으면 좋겠습니다. 무심 선생님과 함께 ^ ^

무심이병욱 2018-11-20 21:06   좋아요 0 | URL
내년 가을에 기회가 되면 연락해서 같이 구경 갑시다

2018-11-20 1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20 1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내가 가수 윤시내의 노래를 처음 듣기는별들의 고향영화가 상영된 1974년이었다. 그 영화 주제곡으로난 열아홉 살이에요.’라는 소녀 노래가 있었는데 바로 윤시내의 가수 데뷔곡이란다. 얼마나 애절하게 부르는지, 부는 바람 앞에 꺼질 듯 말 듯 한 가닥 촛불이 흔들리는 걸 지켜보는 느낌이었다.

 

가수들은 대개 노래 장르를 하나 택해 부르는데 윤 시내는 그렇지 않다. 장르 불문이다. 발라드도 부르고 락도 부른다. 그뿐 아니다. 정해진 음정에 개의치 않는 아주 자유분방한 창법이다.

독특한 면모는 그녀의 무대의상에도 있다. 언제나, 흰색이거나 검은색 옷차림이다. 또는 흑백이 섞인 차림이다. 결코 빨갛거나 파랗거니 노랗거나 한 유채색 옷차림인 적이 없다. 사실 옷차림에 있어서, 무채색만한 고급색도 없다. 예를 들어 검은색 하나만 보자. 언뜻 검은색 옷이 입고 다니기 편한 듯싶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먼지 하나 티끌 하나 묻는 것을 허용치 않는 게 검은색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만일 검은색 옷차림으로 먼지나 티끌 따위를 묻히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칠칠치 못한 사람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까다로운 무채색 옷차림을 고수(固守)하는 가수 윤시내야말로 무대의상에 관한 한 최고의 멋쟁이다.

 

윤시내의 노래 중 제일 내 마음에 드는 게‘DJ에게이다. 이 노래는 다방 많던 7,80년대가 시대배경이다. 그 시절에는 음악다방도 많았고 그런 다방에는 반드시 전문 DJ가 있었다. 윤 시내의 이 노래는 시작부터가 도발적이다.

그 음악은 제발 틀지 마세요 DJ"

잊었던 그 사람을 생각나게 하니까 절대 그 음악을 틀어서는 안 된다는 절규가 계속 이어진다. 이 노래의 절규는 노래 중간과 끝에 터져 나오는 비명 닮은 외마디 기성(奇聲)에서 절정을 이룬다. “끼야오!”라고 표현해야 할까, 무심의 필력으로는 정확하게 그 기성을 표현하기 어렵다. 이 기성은 노래 속 주인공이 평범한 말로는 더 이상 가슴 아픔을 표현할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내지르는 비명이라는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청중들이 그 순간 격하게 호응한다는 게 그 증거다.

더 놀라운 것은 락 가수 이상의 그런 기성을 지른 뒤의 윤 시내 모습이다. KBS콘서트 7080’에서 명 MC 배철수가 그녀를 자리에 앉히고 대화를 나누자, 뜻밖에 그녀는 수줍어서 말도 잘 못하는 열아홉 소녀로 돌아와 있었다. 놀라운 그 변신에서 나는 가수 윤시내가 프로페셔널한 존재임을 실감했다. 윤시내. 그녀는 한국 대중가요 무대에서 독보적인 존재다.

 

‘DJ에게가사를 음미해 본다.

그 음악은 제발 틀지 마세요 DJ / 잊었던 그 사람 생각나요 DJ / 언제나 우리가 만나던 찻집에서 다정한 밀어처럼 들려오던 그 노래 /그 음악은 제발 틀지 마세요 DJ /잊었던 그 거리가 생각나요 DJ / 네온에 쌓여진 온화한 밤거리 행복한 입술처럼 향기롭던 그 노래 /그 음악은 제발 틀지 마세요 DJ/ 마지막 그 순간이 생각나요 DJ /커다란 눈 속에 말없이 떨어지던 당신의 눈물처럼 젖어들던 그 노래 

 

https://youtu.be/D4dxcyUpE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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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 건물이 분명히 있었다. 전깃불을 휘황찬란하게 켰고 방문객들이 줄을 잇기도 했다. 그런데 보름 만에 다시 찾아갔을 때 그 건물은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어두운 밤이 대신 그 자리에 있었다.

모델하우스는 도시의 환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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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화백의 동네 그림에는 어김없이 달이 떠 있다. ‘효자동 1988-1’그림에도 달이 떠 있는데 하필 그믐달이다. 초승달과 그믐달은 그 성격이 반대다. 서구에서는 초승달을 new moon, 그믐달을 old moon이라 한다. 즉 그믐달은 낡은 이미지의 달이다. 서 화백의 동네 그림에 그믐달이 떠 있는 것은 그 동네가 낡고 오래된 주택가임을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게 아닐까?

그믐달은 새벽에 떠서 아침이 밝아오는 순간 사라지는 달이다. 따라서 이 그림의 시간적 배경을 자정 넘은 새벽녘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하긴 어디서  한 잔 걸친 취객 둘이 비틀거리며 2차 할 숙소를 찾고 있어서 자정은 훨씬 넘었다. 동네 모든 집들이 불 끄고 닫은 광경이며, 하물며 밤늦도록 여는 구멍가게조차 문을 닫았으니 새벽이거나 새벽이 돼가는 시간이다.

새벽은 어두운 밤과 훤하게 밝아오는 아침의 중간지대다. 그렇기에 그림의 주조(主調)를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푸른색으로 한 게 아닐까? 또한 푸른색은 수많은 유채색 중 가장 조용한 느낌의 색이므로 새벽시간을 나타내기 적합하다.  사실 푸른색은 슬픈 정서의 뜻일 때가 잦다. 예로써 팝송 ‘LOVE IS BLUE'의 우리 말 번역이 ‘우울한 사랑’이다. 서 화백의 그림 속 동네는 슬픈 정서가 보인다. 보통 ’서민들의 애환(哀歡)’이란 말이 쓰일 때가 많은데 이 그림에서는 서민들의 애(:슬플 애) 쪽에 무게가 실려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보는 다른 이유를 대려한다.

 

그림 제목의 ‘1988’이 무얼 뜻하겠는가. 88 서울 올림픽이 치러진 해를 뜻한다. 서울에서는 국제적 행사 올림픽을 치르느라 떠들썩하지만 그와는 무관하게 먹고 살기 바쁜 지방 어느 도시 어느 동네의 풍경을, 이 그림은 대변한다. 당시 TV에서 올림픽 주요 경기장면들을 밤새 반복해 방영했지만 이 그림 속 동네에서는 어느 한 집도 시청하지 않는다. 전등 끄고서 잠잘 뿐이다.      

그림의 계절은 가을이다. 88서울 올림픽이 치러진 계절이 가을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증거도 댈 수 있다. 그림 왼쪽 하단에 있는 ‘고추 말리는 광주리’가 그것이다. 고추 농사를 지은 이가 화창한 가을 햇볕에 태양초를 만든다고 고추를 광주리에 담아 주름진 슬레이트 지붕 위에 올려놓고는, 밤이 됐는데도 그 사실을 깜빡 잊은 것이다. 이런 장난스런 에피소드가 바로 서 화백의 ‘숨바꼭질’이라고 나는 규정한다. 숨바꼭질은 우리가 가만히 숨죽이고 찾을 때 가능한 짓이다. 우리는 서 화백의 그림에서 숨바꼭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집 주인이 해가 진 것을 깜빡 잊고 슬레이트 지붕에 방치한‘고추 말리는 광주리’. 그의 숨바꼭질은 결국은 휴머니즘의 한 모습이다. 서민 냄새가 물씬 나기 때문에.

가만 있자. 그의 숨바꼭질 중 가장 거대한 숨바꼭질을 놓칠 뻔했다. 그림 속 풍경 전체가 기울어져 있음을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반듯하게 서 있어야 할 전봇대까지 기울어 있는 밤 풍경. 이는 취객들의 비틀거리는 모습에 답이 있다. 사람이 술에 취하자 눈앞의 풍경까지 술 취한 듯 비틀거리는 모습인 거다. 문자를 쓴다면 유심론(唯心論)적 풍경이다.

 

서 화백의 숨바꼭질이 더 있다. 물론 우리가 숨죽이고서 가만히 찾아야 한다.  하늘에 뜬 그믐달과 거리가 가장 가까운 데 있는 기와지붕, 그 중에서도 추녀마루에 살짝 달빛을 칠해 놓았다. 이 또한 숨바꼭질이다. 달빛은 세상 만물에 골고루 비친다는 사실을 일부러 왜곡했다. 문 닫은 가게 앞의 이동식널빤지마루며, 지대 높은 곳을 위해 마련된 시멘트 층계 골목길, 단층 슬래브 건물의 옥상에 만들어놓은 옥탑방 또한 그의 숨바꼭질 장치다.  

서현종 화백의 ‘효자동 1988-1

88올림픽조차 관심거리가 되지 못하는, 가난한 동네의 자정 넘은 새벽을 그렸다. 하지만 곳곳에 숨바꼭질하듯 마련된 회화적(繪畵的)인 장치 덕에 결코 서러움 속에서만 지내는 모습이 아니다. ()를 환()으로 전환시킬 여력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그림의 새벽이 다하고 어떤 모습의 아침이 올지 당신 눈앞에 그려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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