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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가 지인과 저녁식사를 하고 헤어진 시각이 밤 830분경이었다. 지인이 택시라도 잡아주려 했지만 사양했다. ‘저녁 식사 후 한 시간 걷기’를 건강관리 차원에서 실천하고 있기에 사는 집까지 걸어가기로 한 것이다.

20분은 걸어서 집까지 30분쯤 거리가 남았을 때다. 가까운 도로 변 공원에서 누가 K를 불렀다.

“어이, 여기 좀 와 보쇼.

밤 시간에 공원 숲 벤치에 앉아 일방적으로 K를 부르는 사내 목소리. 솔직히 사내 체구가 크고 목소리도 굵직한 느낌이었다면 K는 못 들은 척 그냥 가는 길을 계속 걸었을 게다. 세상이 날로 험해져서‘한밤중에 낯선 이’란 경계의 대상이니까. 하지만, 좀 어둡긴 하지만 체구도 작아 보이고 목소리도 가냘프게 들려서 K는 발길을 사내 쪽으로 바꾸면서 반문했다.

“저를 불렀습니까?

“그럼요.

가까이 다가가자 사내가 벤치에서 일어나는데 왠지 느린 동작이다. K가 까닭을 알았다. 사내는 술 취해 있었다. 처음 보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K에게 비틀거리는 몸으로, 반쯤 꼬부라진 혀로 말을 이었다.

“여기가 어디요?

K는 어이가 없었다. 어느 술자리에서 만취한 뒤 귀갓길에 나섰다가 길을 잃은 사내가 아닐까?

“여기는 말입니다.

하면서 K는 부근에 있는 큰 건물들을 가리키며 현재 위치를 설명해 주었다. 사내가 설명을 다 듣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왜 내가 여기 있는 거요?

정말 어이가 없었다. 그걸, 길을 가던 K가 어찌 안단 말인가. 말문이 막혀 멍하니 있게 되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사내가 침묵을 깨고 다시 말했다.

"그럼… 목욕탕이 어디 있소?

맥락이 잡혔다. 사내는 아마도 오랜만에 목욕탕에서 목욕을 마친 뒤 기분 좋게 소주를 마신 듯했다. 목욕 후 음주하면 만취하기 십상이라는데 바로 그런 경우가 아닐까. 머지않은 가까운 곳에 목욕탕 건물이 있었다.

“저기 목욕탕이 있는데요.

K가 그 건물을 가리키며 말하자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원, 우리 동네 부근이잖아. 허허허”

 

K는 사내와 헤어져 다시 집으로 걸어오면서 그 어이없는 말이 떠올랐다.

“그런데 왜 내가 여기 있는 거요?

당사자는 무심결에 한 말이지만 얼마나 철학적인 물음인가! 왜 내가 여기 있는지를 알기 위해 수많은 지성(知性)들이 나서지 않았을까. 인류의 성인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석가모니는 고행 끝에‘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으로써 답을 냈다. 예수크리스트는 십자가에 매달려 절규함으로써 답을 냈다. '하나님 아버지.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

올해 밭농사도 끝나가고, 아들도 장가가서 여러 모로 한가해진 K. 그래서일까 며칠째 같은 질문에 골몰하며 지내고 있다.  

  “왜 내가 여기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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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어선생을 오래했던 때문일 게다. 나는 국어사전에 없는 말들이 횡행하는 데 저항감이 크다. 그런 말들 중에는 ‘웃픈’이란 말도 있다. ‘웃기지만 슬픈’이란 뜻이란다. 세상에 별 이상한 말도 다 만들어낸다고 여겼는데 …우연한 기회에 그 말을 마냥 무시할 수 없다는 걸 체험했다.

춘심산촌의 농막에서다. 더러는 혼자 춘심산촌에 가 밭일을 하다가 농막에서 쉬기도 하는데 그럴 때 라디오 음악 방송을 즐겨듣는다. 특히 흐린 날이거나 바람 부는 날 같은 스산한 날씨의 날에 농막에서 듣는 음악이 가슴에 와 닿는다. 개그맨 최양락이 부르는 ‘엄마 찾아 삼만 리’노래가, 스산한 날씨 탓일까 내 가슴에 와 닿을 줄이야.

돈 벌러 먼 이국으로 떠난 엄마한테서 소식이 뚝 끊기자, 어린 아들이 엄마 찾겠다며 길을 나서는 슬픈 내용을 배경으로 한 노래란다.

 

“아득한 바다 저 멀리 산 섧고 물길 섧어도

  나는 찾아가리 외로운 길 삼만 리

  바람아 구름아 엄마 소식 전해다오

  엄마가 계신 곳 예가 거긴가

  엄마 보고 싶어 빨리 돌아오세요

  아 외로운 길 가도 가도 끝없는 길 삼만 리”

 

분명 우스꽝스런 창법의 노래인데 … 노래 듣는 중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눈물까지 나려 했다. 15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부지불식중 났던 걸까. 어쨌든 그 순간‘웃픈’이란 신조어의 쓰임을 통감했다.  

최양락은 천부적인 개그맨이다. 그가 부르는 ‘엄마 찾아 삼만 리’노래 감상을 나는 지인들에게 감히 추천한다. 그렇다고‘웃픈’ 이란 신조어가 국어사전에 등재하는 데 찬반 의견을 묻는다면 나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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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이혼한 아내와 절친으로 지내는 쿨가이 브루스 윌리스”라는 제목의 인터넷 기사를 보았다. 이런 내용이다.

“데미 무어와는 이혼한 뒤로도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데미 무어와 애쉬튼 커처가 결혼해 부부 관계를 유지했을 때 함께 여행을 다닐 정도로 너무나 쿨한 관계를 유지했다. 무어 커플이 다정하게 있고 속옷 차림의 윌리스가 묵묵하게 낚시를 하는 사진이 그 대표적인 관계를 보여준 예시다. 이후 커쳐가 외도를 해 무어가 상처를 입자 곧바로 무어를 위로하고, 커쳐에게 야단을 쳤던 일화는 유명하다.

 

나로서는 백 번 죽었다 깨도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브루스 윌리스의 쿨함. 달관일까? 체념일까? 무시일까? 그것도 아니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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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일자 연합뉴스 보도에 “제25호 태풍 '콩레이'가 부산을 거쳐 간 이후 부산 수영구 민락수변공원에 크고 작은 바위가 잇따라 밀려왔다.”는 기사와 함께 위의 사진이 실렸다.

나는 사진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태풍이 무서웠으면 바다 속 바위들까지 육지로 피난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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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왔다. 이 가을이 새삼스럽기는 지난여름이 별났기 때문이다. 아무리 여름이 더운 철이라지만 섭씨 40도라니! 우리 산하를 불태울 듯한 폭염에 하루하루가 불지옥 같았다. 아내와 나는 그 폭염을 잠시라도 피하는 방편으로 춘심산촌 농장을 거의 날마다 찾았다. 숲속의 춘심산촌 기온은 시내보다 보통 2도 정도 낮다.

그러는 가운데 밭 한가운데에서‘아가리를 벌린 채 폭염에 죽은 새끼 독사’를 목격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새끼 독사의 최후는 스스로 자초한 결과였다. 넓은 밭 전체가 비닐이거나 잡초방지 매트로 촘촘히 덮여 있는데 그걸 모르고 들어왔으니 막막한 합성수지 사막에 들어선 거나 같아서 목말라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새끼 독사의 최후를 목격하고서 나는 어떤 기대를 품게 되었다. 새끼 독사를 낳은 어미 독사 또한 밭 한가운데에 들어와 같은 모습의 최후를 맞을 거라는 기대다. 작년에‘길이가 두 발 넘는 독사 한 마리가 밭 가장자리 돌무더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봤다’는 동네 사람들의 얘기가 떠오르면서, 그렇다면 그 놈이 목말라 죽은 작은 독사의 어미가 분명하고 머지않아 모자가 같은 전철을 밟을 게 빤하다는 판단에서다. 그 동안 농사지으면서‘길이가 두 발 넘는 독사’가 혹시 내 가까이 있나 살펴야 하는 엿 같은 부담감이 이번 기회에 잘 해결될 것 같았다.

 그런데 누가 내게‘왜 두 독사가 모자지간이냐?’고 묻는다면 딱히 드릴 말씀이 없다. 그냥 느낌상 그런 것 같을 뿐이다. 어쩌면‘자기를 낳은 어미를 잡아먹는다는 살모사’얘기가 내 잠재의식 속에서 살아나 작용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폭염이 물러갔다. 가을이 찾아왔다.  

결론을 말하겠다. ‘길이가 두 발 넘는 독사’가 끝내 밭에 나타나지 않은 채 가을이 온 거다. 새끼 독사가 폭염에 죽은 지 2달 넘도록 어미 독사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니 이제 나의 기대를 접어야 할 것 같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역시 어미 독사는 새끼 독사와 달리 영리했다는 것을. 영리했다기보다 나름대로 지혜가 있다는 게 맞는 표현이 아닐까. 이런 추측이 가능했다. ‘어미 독사 또한 우리 밭으로 한 번은 들어오려 했다. 하지만 밭 전체를 촘촘히 덮은 비닐과 잡초방지 매트에서 나는 합성수지 특유의 냄새를 맡고는 발길을 돌렸다. 맨흙이나 바위나 수풀 같은 자연에서 풍기는 냄새 이외의 다른 냄새는 위해한 사물들에서 나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오랜 세월의 경험과 지혜의 결과였다.

 

폭염에 죽은 새끼 독사는 사람으로 치면 철부지 사춘기 소년이 아닐까. 위해한 사물에서 풍기는 냄새를 맡았겠지만 당장은 낯선 곳을 향한 호기심에 발길을 멈출 수 없었던. 그 결과는 참혹했다.

어미 독사. 그대의 노련함에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그대를 만나고 싶지는 않다. 폭염이 물러간 이 가을, 나는 밭에서 작물들의 수확에 전념하고 그대는 밭에서 먼 숲 같은 곳에서 안 보이게 조용히 지내기를 바랄 뿐이다. 그 길이 서로를 위하는 길이 아닐까 싶다.

 

무심포토 '폭염에 죽은 독사' 바로가기 

  http://blog.aladin.co.kr/749266102/10254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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