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초기만큼 기능에 철저한 기계를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칼날을 회전시켜 풀을 깎는 기능에 필요한 것 이외에는 달리 보탠 게 없다. 칼날을 강하게 회전시키려면 엔진이 있어야 한다. 엔진을 가동하려면 휘발유가 있어야 한다. 휘발유를 담으려면 휘발유 통이 있어야 한다. 이런 삼자(三者) 연동()에 가감(加減) 없는 기계, 예초기. 사진으로 올린 춘심산촌의 예초기를 보면‘살과 내장이 다 빠진, 뼈만 남은 인체 해부도’가 연상된다. 아아 예초기, 나는 더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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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비행기들이 날지 못하고 공항에 있다. 태풍 때문이다. 최첨단 장치의 비행기들조차 태풍을 어쩌지 못한다.

춘심산촌 농장의 모기들이 갑자기 사라졌다. 심상치 않은 바람의 징조를 감지하고 수풀에 숨어 있는 게 아닐까? 모기들 또한 하늘을 나는 비행체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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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봉은 트롯 가수로는 드물게 자기 노래의 곡은 물론 노랫말도 짓는‘싱어송라이터’다. 그녀 노래 중 ‘사랑밖에 난 몰라’를 들어보면 그대에게 사랑을 호소하는 주인공 심정이 애절하다. 그 노랫말 중 ‘서러운 세월만큼 안아주세요.’라는 대목이 있다. 무심은 이 대목을 접할 때마다 그 표현의 아름답고 깊은 맛에 매료된다.

 

남녀 간의 사랑이 확인되는 시점은 포옹이 이뤄지는 시점이 아닐까. 포옹은 상대의 몸을 껴안는다는 외형적 의미 이상으로 상대의 마음까지 껴안는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그렇기에‘서러운 세월만큼 안아 주세요’라는 표현이 가능하다. 그대를 알기 전부터 살아온 세월이 그저 서럽기만 했다는 그녀의 토로. 그 서러움을 삭일 수 있는 오직 하나의 방법은 그대가 나를 꼭 껴안아주는 거란다. 아아 이런 속삭임 앞에서 근엄하게 거리를 두거나 외면할 장사가 이 세상에 있을까.

‘서러운’이란 형용사는 눈물이 떠오르는 단어다. 따라서‘서러운 세월’은 눈물 젖은 세월이다. 축축한 눈물을 부드럽게 증발시킬 수 있는 장소는 따듯한 체온의 가슴이다. ‘안아 주세요’란 말이 ‘서러운 세월’말 뒤로 자연스레 이어지는 까닭이다.

그냥 안아 달라고 하지 않는다. ‘서러운 세월만큼’이라고 명시함으로써 긴 시간 안아 달라고 한다.  

심수봉 그녀가 노래 부른다. ‘그 눈빛이 좋으며, 기대고 싶을 만큼 커다란 어깨’의 그대를 향해.

 

그대 내 곁에 선 순간

그 눈빛이 너무 좋아

어제는 울었지만 오늘은 당신 땜에

내일은 행복할거야

얼굴도 아니 멋도 아니 아니

부드러운 사랑만이 필요했어요

지나간 세월 모두 잊어버리게

당신 없인 아무것도 이젠 할 수 없어

사랑밖엔 난 몰라

무심히 버려진 날 위해

울어주던 단 한 사람

커다란 어깨 위에 기대고 싶은 꿈을

당신은 깨지 말아요

이 날을 언제나 기다려 왔어요

서러운 세월만큼 안아 주세요

그리운 바람처럼 사라질까봐

사랑하다 헤어지면 다시 보고 싶고

당신이 너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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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춘심산촌이, 살고 있는 집에서 20여 리 떨어져 있다. 오늘 아내를 태우고 춘심산촌으로 차를 몰고 가면서 문득 깨달은 일이다. 얼마나 많은 엔진들이 우리 주위에서 작동하고 있는지를.

당장 내가 모는 차부터 엔진의 힘으로 가고 있었다. 함께 같은 방향으로 가는 차들, 그러다가 다른 방향으로 갈라져가는 차들, 어디 그뿐인가. 맞은편 도로에서 오는 차들 모두 엔진으로 작동한다. 경유니 휘발유니 연료는 제각각이지만 엔진을 작동하기 위함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무수한 차들 사이로 오토바이 한 대가 굉음을 내며 지나간다. 차에 쓰이는 엔진이 커다란 솥 크기라면 오토바이는 도시락만한 엔진으로 달려가는 모습이다. 사람이 작은 엔진 하나 품고 달려가는 것 같은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어느덧 춘심산촌이 가까워지면서 밭들이 널려 있는 농촌 풍경이다. 어떤 농부는 예초기를 돌리고 어떤 농부는 농약 분무기를 돌린다. 오토바이 엔진보다 더 작은 엔진들로 일하는 모습들이다.

춘심산촌에 왔다. 아래 밭의 김씨가 경운기로 밭을 갈고 있다. 느릿느릿 거북이처럼 가는 경운기이지만 그 또한 차 엔진보다 조금 작은 엔진의 힘이다.

세상은 어느덧 엔진들의 천지였다. 우리는 우리 가슴 속 심장을 빼닮은 인조 심장엔진으로 쉼 없이 살고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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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그분은 존대하기 힘든 대상이다. 농부들이 구슬땀 흘려가며 일군 밭을 어느 날 불시에 들이닥쳐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이제는 도시 한복판에까지 들이닥쳐 인명 피해까지 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심이그분이라 존대해 불러주는 것은 그만한 까닭이 있다. 우선 현재 우리나라 산하에서 최상위 포식자이기 때문이다. 호랑이 곰 늑대 등이 산하에서 멸종된 현재 그분이 남아 있는 산짐승들 중 최상위 포식자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렇다면 비록 산짐승이긴 하나 존대해 불러주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어쩌면 우리선조들이 무서운 호랑이를 산신령’‘산중왕등으로 존대해 불러줌으로써 호환을 피하고자 한 역설적 두려움이 무심의 잠재의식 속에 남아 있다가 이번에 발현된 것인지도 모른다.

두 번째는 정감 있는 첫 인상 탓이다. 먼저 글에서 밝혔듯이 우리 밭에 접근하다가 동네 사람이 소리 지르는 데 기겁하여 산으로 달아나던 모습무거운 엉덩이로 뒤뚱거리며 뒤도 안 돌아보며 달아나던 모습에 무심은 왠지 정감을 느꼈다는 게 솔직한 고백이다. 희화화한다면바람피우는 현장이 발각되자 허둥지둥 뒤도 안 돌아보며 달아나는 중년 사내뒷모습 같았다고나 할까?

산으로 달아나는 그분을 보며 가슴이 벌벌 떨렸다는 아내가 알면당신 미쳤어?!’하고 외마디 비명처럼 타박하겠지만 말이다.

지난번그분이란 글에 선배 작가 한 분은 부모님 묘소를 헤집어 놓고 가기 일쑤인 깡패 같은 놈들이라는 악 경험을 전했고 시인 한 분은재작년 그분들이 나타나 이틀 동안 옥수수를 4접 넘게 식사하고 갔는데 들키지 않으려고 울타리처럼 2-3줄은 남겨 놓고 그 안을 초토화 시킨영악한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일러주었다. 또 다른 선배 작가는 무심에게 직접 전화해서그분들 하는 짓이 자네 창작에 좋은 소재가 되려고 종사(從事)하는 것이라며 한바탕 웃었다.

이런 상황이니 무심은그분이 우리 춘심산촌에 또다시 나타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마음 한편으로는그 모습을 멀리서라도 한 번 보이곤 얼른 사라질 수는 없나?’바라기도 한다. 이 이상한 내적갈등. 좀 더 지켜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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