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교육을 많이 받아봤자 울나라 사람들이 영어를 못하는 건,
평소 영어를 쓸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보름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국내에서 보낸 나 역시
영어를 쓸 일이 거의 없고, 그러다보니 웬만한 사람치고 나보다 영어 못하는 사람은 없다.
연구윤리위원회 실사라는 게 대구에서 2박3일간 열리고 있다.
태국사람과 호주, 필리핀, 대만 사람이 대구가톨릭병원에 와서
그네들이 연구윤리를 잘 지키는지 심사를 하고
나를 비롯한 몇명은 그걸 참관하고 심사위원들과 수시로 얘기를 나누며 심사를 돕는다.
우리조원 세명 중 한명은 영어를 무지 잘하고
한명은 나보다 조금 낫고
나머지 한명이 나다.
호주의 미녀가 지도하는 조에 편성되어 기뻐했는데
그 미녀가 영어 못한다고 난 상대도 안한다 ㅠㅠ
나머지 둘이 심부름을 갔을 때 그제서야 날 보더니만
영어로 뭐라고 질문을 한다.
잘 못알아들었지만 추측으로 답변했다.
한명이 오니까 그 질문을 다시한다.
내 답변은 완전 봉창 뚫는 소리였고,
그 후부터 미녀는 다신 내게 질문하지 않았다.
지네끼리 영어로 떠드는 걸 보고 있자니 확 나가버릴까 싶은 마음이 열한번쯤 들었지만
끝까지 참아준 내가 대견하다.
대견하면 뭐하나. 한마디도 못하는데.
자기 소개를 할 때 난 이랬다.
"My name is Min Seo from Dankook University........ "
이렇게만 끝내면 좀 없어 보이니까 한마디를 덧붙였다.
"I hope...good result!"
오늘은 세시간째 진행되는 마라톤회의에서 용케 한마디도 안하고 버텼는데
거의 끝날때쯤 대만 남자가 날 가리키며 한마디 하란다.
그래서 이랬다.
"Sudden question, I am surprised!"
일년에 한두번은 영어 좀 잘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정말이지 몰입교육이라도 받았으면 이렇게는 안될텐데 싶은 마음도 든다.
외국연수는 갈 마음이 없고,
그렇다고 따로 공부하는 것도 아니니 영어가 도무지 늘질 않는다.
엊그제, 학교 경비로 학생들한테 한달간 해외연수를 보내주는 프로그램의 면접을 맡았는데
학생들이 어찌나 영어를 잘하는지, 마냥 부러웠다.
외국 간 적도 없다는데 발음이 거의 외국인 수준이라 못알아들을 지경...
근데 내가 앉아서 면접을 하고 있다니 아이러니했다.
그네들의 집주소는 대부분 강남...
그러다 집주소가 천안인 남학생이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콩글리쉬로 자기소개를 하니
고국에 온거 모양 반가웠다.
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요즘 나 영어 배우는데, 사람들끼리 모여서 특정 주제를 놓고 두시간 정도 떠드는 거야.
커피값만 내면 돼!"
오늘 따라 그 모임이 생각나는 건, 그 친구가 이런 말을 해서만은 아니다.
"참석자들이 대부분 여자인데, 다 미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