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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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출산율을 놓고 말들이 많다. 둘만 낳아 잘기르자는 표어를 들으며 자라온 난 이런 급격한 변화가 몹시 헷갈리지만, 주위를 보면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이유를 능히 짐작할 만하다. 예컨대 엊그제 친구들과 모임을 가졌는데, 내가 연락책을 담당했다. 내가 들은 답변이다.

"오늘 우리 아들이 6시까지 시험보거든. 집에 데려다주고 밥 먹이고 나갈게."

"난 애가 셋이잖아. 집사람한테 모두 맡기면 미안해서 못갈 것 같다"

모임에 나온 사람이라고 거기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으니, 그날의 주제는 어떻게 하면 아이를 더 좋은 대학에 붙이느냐였다. 우리 나이면 애들 나이가 기껏해야 중학생이지만, 요즘의 입시전쟁은 태어날 때부터 시작하니 말이다.


무자식을 필생의 신념으로 굳힌 우리 부부는 불안한 시기엔 손만 잡고 자고, 태몽 비슷한 걸 꾸면 각방을 쓰는 등 철저히 조심을 한다. 그런 내게 누군가가 선물해준 <다섯째 아이>는 정말이지 공감이 팍팍 가는 책이 아닐 수 없다. 주인공 부부는 막연하게도 아이를 많이 갖자는 생각을 했고, 그걸 실천하며 살아간다. 그러다가 태어난 다섯째 아이가 무시무시한 아이로 자란다는 게 이 책의 골자인데, 이해가 안가는 건 다섯 번째 아이가 태어나기 전만 해도 그네들 둘은 충분히 힘들었다는 거였다. 보채기만 하는 아이들 넷을 둘이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그네들이 아이들로 인해 행복감을 느꼈다고 해도 끊임없이 애를 봐줘야 했던 친정어머니나 어쩔 수 없이 계속 돈을 대줘야 했던 시아버지의 희생에 대해서는 좀 생각을 해봐야지 않을까? 책을 선물해준 사람의 의도가 "넷만 낳아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난 무자식을 신념으로 택하길 잘했단 생각을 했다.



아이가 없으면 불편한 건 주위 사람들로부터 애 낳으라는 얘기를 수도 없이 들어야 한다는 거다. "나이가 들면 어떡할래?"는 흔히 들먹여지는 이유,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자식들 뒷바라지를 하느라 허리가 휘는 우리 어머니를 보면, 그리고 혼자 쓸쓸히 늙어 가시는 할머니를 보면 자식의 존재가 노년의 심심함을 잊게 해주는 건 아닌 듯하다. "널 닮은 애가 있으면 좋지 않냐"는 말 역시 내가 자라온, 별반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유년기를 그가 모르기 때문에 가능할 듯한데, 이런 얘기를 계속 들으면서도 아이를 갖지 않으려는 건, 그런 얘기를 시시때때로 듣는 게 직접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보다 편하기 때문이다. 개 두 마리와 더불어 사는 지금의 삶을 존중해 줄 사람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우리의 삶은 우리가 만들어 가는 거라는 것, 그리고 미래가 어찌될지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 난 참 행복하다는 사실이다. 여의도공원에 개 두 마리를 데리고 산책을 가서 아내가 한 말, "여보, 결혼해줘서 정말 고마워. 이게 내가 꿈꾸던 삶이었어." 나 역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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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5-26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분의 뜻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도 멋진 삶인거 같아요. 손만 잡고 자도 행복한 두 사람의 모습이 영화처럼 떠오르는대요.^^

마태우스 2008-05-28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휴...님 덕분에 무플을 막았네요 호호. 저희의 뜻을 인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08-05-31 2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