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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9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내게는 세계명작 콤플렉스가 있다. 어릴 때, 지적 성장을 위해 꼭 읽어야 할 세계명작들을 전혀 읽지 않았기에 지금 아무리 책을 읽어봤자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과 같다는 생각 말이다. 다시 돌아간다면 책만 싸매고 있을 것 같지만, 그때는 왜 그리도 책을 읽는 게 싫었는지 모른다. 세계명작 중에 내가 읽은 거라곤 달랑 <데카메론> 하나고, <여자의 일생>은 특정 부분만 읽었으니 읽은 거라고 칠 수도 없다. 한가지 기특한 건, 거의 읽은 사람이 없는 채만식의 <탁류>를 대학 1학년 때 읽었다는 것. 하지만 그거 하나로 버티기엔 좀 무리가 있었고, 난 남들이 독서에 관한 토론을 할 때면 기죽어 지냈다.
이제라도 세계명작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민음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를 보고 나서부터였다. 어릴 적 우리집에 있던 세계명작들은 쥐톨만한 크기에 세로쓰기라 읽기가 심히 힘들었지만, 민음사 전집은 글자도 크고 시원시원할뿐더러 번역마저 잘돼 있어 독서욕구를 부추겼다. 그래서 <양철북>을 비롯한 민음사 전집을 한권두권 사서 읽기 시작했는데, 최근에 사정이 좀 어려워 한 열댓권을 사야 할 일이 생겼다. 그때 산 책 중 하나가 바로 <부활>이고, 그 열댓권 중 이 책이 가장 먼저 선택되었던 까닭은 톨스토이에 대해 특히 콤플렉스가 심했기 때문이리라.
책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2권에 가서 속도가 죽어서 그렇지, 1권을 읽을 때는 다음에 어떻게 될지가 궁금해 틈만 나면 책을 펴들곤 했다. 마지막에 좀 황당하게 끝난 감이 있지만, 중요한 건 <부활>을 읽음으로써 그간 나를 억압해오던 콤플렉스의 커튼이 걷히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책을 읽고나서 친구에게 부활을 읽었냐고 물어봤다. "당연히 읽었지!"란 대답이 돌아온다. 혹시나 싶어 아내에게 물었다.
"너무 어릴 때 읽어서 기억이 안나!"
그렇구나. 사람들은 <부활>을 다 읽었구나. 난 어릴 적에 도대체 뭘 했을까? 야구만 봤다. 중3 때까지는 고교야구에 미쳤었고, 고1 때부터는 프로야구에 빠져 있었다.
그렇다고 너무 상심해 있을 필요는 없다. 어릴 적에 안읽었다면 지금이라도 읽으면 된다. 지금 읽는다고 뭐라고 할 사람 하나도 없다(난 뭐라고 할까봐 걱정했었다). 게다가 어릴 적 읽었다면 잘 몰랐을 것들을 지금은 대충 아니, 이해가 더 잘되고 재미도 더 있었다. 이를테면 지식인들의 부조리라든지, 법의 맹점 같은 거 말이다. 내게 있어서 올해는 세계명작 콤플렉스를 완전히 깨는 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