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채팅을 그리 많이 한 건 아니다. 채팅보다는 말로 수다를 떠는 걸 좋아해서기도 하고, 채팅이란 '이성을 꼬셔서 어떻게 한번 해보자는 수작'에 불과하다고 믿는 편견도 그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갑자기 외롭다는 생각이 든 어느 날, 친구의 권유로 세이클럽에 접속을 했고, 그 친구의 충고대로 '별을 기다리는 소년'이란 방을 만든 뒤 언젠가 올 누군가를 기다렸지만, 몇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도 기웃거리지 않았다. 그런 곳에는 여자 아이디로 접속을 하면 일대일 대화를 신청하는 쪽지가 무진장 온다는데, 그렇게 심한 경쟁을 뚫고 내 접선을 받아들일 여자는 없었던 거다.

그러던 어느날-그때가 2001년일게다-프리챌에 글을 쓰는데 쪽지가 왔다. 여-자-다! 그것도 모르는 여자. 혹시 누구 아니냐는, 사람을 꼬실 때 쓰는 상투적인 멘트. 그걸 계기로 난 그녀와 1: 1 채팅을 했고, 몇 번 그러다가 채팅을 답답해하는 내 제안에 따라 전화 통화까지 했다. 나보다 한 살 적은 유부녀란다. 유부녀, 유난히 부담이 없지 않는가? 난 취미가 테니스임을 밝혔고, 그녀는 테니스를 배우겠다며 한번 만나자고 했다. 오오, 내게도 이런 일이! (참고로 내가 원한 것은 술친구였다. 진짜다! 술친구가 그리도 많으면서, 라고 물을지 몰라도, 그땐 여자 술친구가 그리 많지 않았다)

난 연습용 공을 잔뜩 사가지고 그녀 집이 있는 광명시까지 갔다. 약속대로 빨간옷을 입은 여자가 벤치에 앉아있다. 인기척을 느낀 그녀가 천천히 몸을 돌렸을 때, 난 사실 도망가고 싶었다. 이쁜 여자를 좋아하는 건 인지상정이고, 게다가 난 눈도 그리 높지 않은 터이지만, 그녀는 흑흑 너무도 안이뻤고, 몸집도 겁나게 컸다.

그날 난 몇시간 동안 그녀에게 공을 던져줬고, 그녀는 엄청난 힘으로 그 공들을 쳐냈다. 하늘높이 날라가는 공들을 보면서 내가 왜 이러고 있는가를 한탄했다. 그 뒤부터 난 매주 토요일마다 그일을 했고, 밥값도 매번 내가 냈다 T.T 금요일쯤 되면 제발 비나 눈이 오라고 빌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떻게 이 위기를 빠져나갈까 고민고민 하던 끝에, 애인이 생겼고, 그래서 더 이상 테니스 레슨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기성 편지를 그녀에게 썼다. 거짓말이긴 하지만 그 편지는 너무도 명문이어서, 그녀 뿐 아니라 나도 감동해 마지않았는데, 추후에 써먹을 용도로 저장해둔 그 편지는 디스켓이 에러가 나면서 다시 복원이 불가능해졌다.

어찌되었건 난 그녀로부터 탈출하는 데 성공했고, 그 뒤부터는 누가 채팅을 해서 어찌어찌 했다는 무용담들에 일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지금도 난 채팅을 싫어해, 지인들끼리 대화를 주고받는 MSN도 하지 않는다(그렇다고 내가 독수리타법이냐면 그런 것도 아니다. 일분에 400-500타 정도는 친다). 할말이 있으면 말로 하자, 이게 내 신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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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2004-03-22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나도 재미 있어서 눈물이 나려합니다.^ ^ 저도 대화는 상대방의 눈동자를 직시하며 노는 걸 선호합니다. 지인들과 메신저로 만나는 것도 영 적응을 못하고, 무조건 바쁜 척 하죠.

연우주 2004-03-22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채팅해서 2번 만남을 시도했던 적이 있고, 그 중 한 친구랑은 아직 메신저 친구인데 최근 거의 대화 안 했구요. 한 사람은,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구요...^^;
한창 채팅 열심히 했던 때가 저도 있긴 했는데, 2000년쯤이 그랬구요. 작년 8월에도 몇 번 한 적이 있구요. 그 이후엔 또 안 하게 되네요. (암튼 별 걸 다 해 봤네요.--;)

가을산 2004-03-23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채팅은 96-99년 하이텔 시절에 많이 했었는데...
그땐 텍스트 위주의 게시판으로도 많은 이야기들을 할 수 있었습니다.
대화방에서 동호회의 전국운영회의도 했었는데, 오히려 요즘은 그럴 기회가 더 적은 것 같아요.
님들 말대로 채팅보다 직접 만나 이야기하는 것을 선호하게 된 것인지?

비로그인 2004-03-23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분도 진짜 테니스를 할려는 의도가 아니었는데 "에라이~운동이나 배우자" 하지 않았을까??라고 이야기한담 마태우스님이 상처를 받을까요? 낄^^낄(야비하게)

마태우스 2004-03-23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폭스바겐님/이번에도 최고의 코멘트로 뽑혔습니다. 부상으로 뭘 드리지?? 제가 전에 드린 태극기는 잘 쓰고 계시는군요.... 생각좀 해볼께요^^

연우주 2004-03-23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폭스가 승승장구 하시는군요~~^^

2004-03-23 1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연엉가 2004-03-23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또한 겁나게 웃었습니다. 아마 마태우스님은 정이 많은 분이가 봅니다. 안좋게 말하면 거절을 잘 못한다고나..(히히)
그 후로는 채팅에 채자도 들먹이기 싫었겠네요.

마냐 2004-03-23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채팅의 추억' 장난 아닙니다. 캬아~ 어쩐지 부럽기두 하구...한번도 낯선 이와 채팅을 못해봐서리.....제가 쉰세대로 가는 증거라 여겼는데...암튼, 마태우스님 마저..그런 추억이 있다니 샘 나는군요. ㅋㅋㅋ 적당히 그 다음부터 안 가도 그만일것을, 상당히 독특하십니다.

sooninara 2004-03-23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줌마들이 챗팅을 다한다기에 늦은 34살 처음으로 챗을 해보았습니다..
그나마 순발력이 있던 저는 다음카페 챗방에서 한달만에 챗언어 배워서 '방가'..'하이루'등을 써가면서 챗방을 휘어잡았었죠..(30대 이상 386세대 위주의 카페라서 30,40대 위주라 금방 날아다니게 되었습죠..) 그때 챗에 빠져서..남편은 텔레비젼보고..저는 그옆에서 챗하고^^
저는 오히려 남편앞에서 떳떳하게 챗하면서 이사람은 누구고 ,,이사람은 누구다..하면서 남편의 방해를 차단시켰답니다..그러다 어느날...유명한 세이클럽까지 진출해 보았는데..
마태우스님의 '별을 기다리는 소년'은 못봤는데..(전 2002년에 들어가서)
세이클럽은 음악듣기가 유명하더군요..아마츄어가 음악방을 열어서 방송을해서...음악 들으러 갔다가..챗까지 햇는데..그나마 순진하던 다음카페하고는 비교가 안되더군요..그래서 세달만에 챗에 미친 생활을 마감하고 가정으로 돌아왔습니다..지금은 하도 챗을 안해봐서...
(제가 독수리 타법으로 챗할때는 상대방이 제가 독수리라는것을 모를만큼 날아가게 자판을 쳤다는거 아닙니까? 지금도 독수리인데..이젠 늙어서 오타도 많이 나고 챗할때만큼 속도가 안나네요..)
 

 

사람들은 날더러 노빠라고 부른다. 노사모였고, 노무현에게 표를 던졌고, 노무현의 당선에 침까지 흘리며 좋아했으니 노빠가 맞을 것이다. 난 이렇게 생각한다. "창빠면 쪽팔리지만, 노빠는 자랑스러운 거 아냐?"

그의 당선 이후, 난 그를 잊었다. 온갖 난관을 뚫고 대통령이 되었으니 지가 알아서 잘 하겠지 하면서. 내가 노무현을 주목할 때는 이라크 파병이나 FTA처럼 잘못된 결정을 내릴 때 뿐이었다. 일상 생활에서 내게 중요한 건 노무현이 아니라 친구가 빌려간 돈을 왜 안갚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나보다 더한 노빠들이 많다. 그들은 나만 만나면 끊임없이 노무현을 화두로 올린다. "니가 뽑은 노무현이 경제를 망치고 있다"느니 "노무현이 이런 말을 했는데, 대통령으로서 적절하다고 생각을 하느냐" 정치에는 정답이 없는 법이니 성향이 다른 것을 알면 정치 얘기는 안하는 게 예의지만, 노빠들에겐 그런 게 전혀 없다. 그저 노무현을 화두로 삼아 나와 한판 붙어보려는 야욕을 드러낼 뿐. 대부분의 경우 난 적당히 대답해주곤 했고, 너무 무식한 소리를 할 때는 싸운 적도 있다.

하지만 탄핵안이 가결된 후 노빠들은 더더욱 기승을 부린다. "노무현이 탄핵을 유도했다" "충분히 그럴만한 인간이다"라는 말은 그 하이라이트. 그러니까 그들에겐 이 세상의 모든 일은 다 노무현이 자행하는 음모고, 노무현은 그 모든 걸 할 수 있는 대단한 사람이 된다. 그런 그들이야말로 나는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노빠가 아니겠는가?

조선일보를 보라. "이순간 가장 중요한 몫을 맡아야 할 사람은 노 대통령이다"라는 헛소리를 한다. 탄핵으로 권한이 정지된 대통령이 뭘 하라는 걸까? 강준만의 말마따나, 신종 노빠들은 지구도 노무현을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가 할 일은 이 노빠들을 잘 구슬러서 생업에 종사하도록 만드는 것이리라. 세상에는 노무현 말고도 중요한 게 아주아주 많다는 것을 설득시켜야 한다.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그들과 공존해야 하는 이상, 그렇게 되도록 노력은 해야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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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04-03-22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치계에 별 관심이 없는지라....뭐 뾰족히 누구를 더 지지하고 뭐 그런것도 없이 그냥 지켜만 봅니다...부끄럽지만 선거도 여적 한번도 안했습니다...누구 말마따나 투표를 하지 않는것자체도 나의 소리없는 의견을 내세운것과 다를바없다는 주의였습죠!!...하지만 이번 대통령이 탄핵이 되어 뒷자리로 물러나있는 광경을 보니 생각이 달라지더군요...한자리 더 차지하고싶은 이기심에 젖어 있을때 국민들은 지금 물가폭등에..경기침체에..너무 졸라댄 나머지 허리가 끊어질 판국인데 그것도 모르고 자리다툼이라니...ㅉㅉ....이런,저런 생각을 하니....이대로 소리없는 투표가 결국은 나라를 망치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합니다...아직 어느쪽이라고 쉽사리 결정은 못내렸지만...이번엔 꼭 투표를 할 생각입니다...이것이 저의 노력입니다요..^^

마태우스 2004-03-22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분이 그러는데 투표를 안하는 것과 투표장에 가서 아무도 써넣지 않는 것은 다르다고 하더군요. 정 찍을 사람이 없으시면 무효표를 선택하는 게 좋데요...

연우주 2004-03-22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은 얼마 전 진/우맘님이 작업하신 '노빠가 돌아왔다'를 삽입하면 더 좋을 뻔 했습니다 그려. 그리고 명문이라 사료되니 필히 널리널리 퍼트리시길. 비록 전 노빠는 아니지만 말이죠^^

마태우스 2004-03-23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보라빛우주님/저도 그 생각을 했는데요, 제가 그 이미지만 따올 능력이 안되는지라... 명문이라니, 부끄럽습니다.

연우주 2004-03-23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앵~ 이렇게 붙이시면 되는데요? ^^

 


마태우스 2004-03-23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했습니다^^ 전...그 글을 통째로 퍼와야 되는 줄 알았었는데, 그림만 따로 복사가 가능하군요. 감사합니다.

연우주 2004-03-23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 좋습니다그려~
 

 

 

 

 

 

"너도 애 낳아야지!"
술자리에서 친구가 한 말이다. 왜 낳아야 하냐고 했더니 나중에 쓸쓸하다나? 물론 친구들이 날 생각해서 해주는 말이겠지만, 그들이 애 키우느라 얼마나 힘이 드는 줄 익히 알고있는 나로서는 '혹시 내가 너무 즐겁게 사니까 배가 아픈 게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든다.

옛날만 해도 애를 낳지 않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내가 고1 때만 해도 딸을 낳을 것이고 이름은 '보라'라고 한다는 말을 한 것으로 보아, 지금처럼 '무자식 =행복'이란 사상이 자리잡은 것은 아마도 대학에 들어간 이후일 것이다. 그때 내가 애를 가질 생각을 한 이유는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러니까 그것 이외의 다른 삶이 존재한다는 걸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유롭고 편한, 또다른 세계가 있다는 걸 아는 지금, 내가 왜 애를 낳겠는가?

사실 난 애들을 좋아한다. 엄마 등에 업힌 어린애를 2분 안에 웃게 만들 수 있으며, 대충 열살 밑의 애들과는 아주아주 잘 놀 수 있는 내가 애가 없다는 것은 어찌보면 능력을 사장시키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한계는 잘해야 하루이틀 뿐이며, 아이가 내게 식상할 열살 때까지 그 길고 긴 나날들을 매일같이 애와 놀아주는 건 정말이지 자신없다.

친구들은 말한다. "지금이야 재미있게 살지 몰라도, 나이들어서는 어떡할래?" 나이든 후의 삶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40, 50이 넘는다해도 삶은 굴러가는 법, 뭐 큰일날 일이야 있겠는가? 오히려 난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라고. 아이들이 자라서 아버지와 놀아주는 것도 아니며, 우리 세대에 자식이 모시는 것을 바라는 건 애시당초 그른 일이다. 그래서 난 자식이 있다고 노년의 삶이 더 풍요롭다는 데 동의할 수 없으며,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기꺼이 기러기 아빠가 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인생은 자신의 것이지, 자식을 위한 것이 아니니까.

극도의 이기주의자인 나는 자식으로 인해 내게 부여된 자유를 빼앗길 것이 두렵다. 한명이든 두명이든 자식이 있으면 내가 지금 누리는 화려한 삶은 이제 끝장일 테니까 말이다. 나같은 사람만 있다면 우리 사회의 크나큰 문제가 될테지만, 다행스럽게도 다른 이들은 애가 없어서 고민을 했으면 했지, 자식이 많아서 머리를 싸매는 일은 별로 없는 듯하다. 그러니 나 하나쯤 인생을 즐기겠다는 게 그리 나쁠 것은 없어 보인다.

'무자식=행복'의 사상을 갖게 된 건 아무래도 우리 형제들 탓이 클 거다. 지독히 말을 안듣고, 커서까지 엄마 아빠의 속을 뒤집어놓는-날 포함해서-형제들을 보면서 난 서서히 자식에 대해 회의를 하게 되었고, 자식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어머님은 내게 늘 "제발 가정을 가져라"면서 애원조로 말씀하시지만, 내가 없으면 우리 엄마는 꽤나 심심할 거다 (지금도 물론 얼굴을 자주 보는 건 아니지만). 더구나 밤에 무서움을 타는 엄마로서는 나의 존재가 든든하지 않을까? 어머니는 며느리랑 같이 살면서 모시면 더 좋지 않느냐고 하지만, 세상의 어느 며느리가 시어머니랑 같이 사는 걸 좋아하겠는가? 그건 서로간의 불행일 뿐이고, 난 그럴 마음이 전혀 없다.

이유가 또 없을까 생각해보면 자연스럽게 외모 쪽으로 접근이 된다. 어릴 적부터 못생겼다고 무진장 구박을 받았던 나, 같은 반 친구로부터 "넌 어쩜 그렇게 이상하게 생겼냐?"라는 말까지 들었던 전철을 자식이 밟게 하고 싶지는 않다. 나와 유전자가 비슷한 우리 형제들을 한번 살펴보자. 우리 과 애 둘이서 서로 차지하겠다고 싸웠던, 그대로 우리집의 대표미인인 여동생은 귀여운 얼굴의 남편과 결혼을 했는데, 첫딸을 보고나서 난 이렇게 말했다. "공부 잘해야겄다!" 둘째도 하필 날 빼닮았고, 성질까지 안좋으니 걱정이 더 많겠지만, 아들이라 다행이다. 외모가 웬만큼 되는, 그래서 내 친구 중 몇이 좋아하기도 했던 우리 누나, 눈이 작은 매형과 결혼을 하더니 태어난 아들 셋이 모두 눈이 작다. 강수연 정도의 미녀와 결혼하지 않는 한, 내 아이의 운명도 뻔한 일이라는 걸 위에서 열거한 사례를 보면 알 수 있지 않겠는가? 나야 그래도 공부라도 좀 했으니 다행이지만, 내 애가 공부마저 못한다면 얼마나 속상할까.

애가 둘 있는 다른 친구는 내게 말한다. "나랑 한달만 바꾸면 안될까?" 후후, 한달 정도야 바꿔줄 수 있지만, 그러면 그 친구가 도망가 버릴까봐 그런 제의에 응하지 못하겠다. 정리하자. 내 친구들이 날 딱하게 보는 것은 내가 자신들과 다른 삶을 살기 때문이며, 지금은 내가 훨씬 더 잘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60세가 넘어서는 역전이 될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반박하련다. "그래, 60 넘어서는 니들이 잘 살아라. 난 그때까지만 재미있게 살면 만족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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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 2004-03-22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결혼은 하더라도 애는 좀.. 하면서 회의적입니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우선 님과 같이 저도 저의 생활과 자유등 누려왔던 그 모든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조금 두렵습니다. 그렇다고 낳아놓고도 '나는 나! 애는 애!'를 외칠만큼 무심하지도 못할것이 뻔하기 때문에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릴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 세상이 그렇게 행복한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 아이가 남들보다 좀 못한 삶을 살게 된다면 너무 끔찍할것 같습니다. 이 세상은 1등도 2등도 3등도 아닌 나머지 등수들이 살기에는 너무 가혹한 곳이니까요.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 가치가 있는 곳이 세상이긴 하지만 이왕 생겨버렸음 모를까 일부러 낳지는 않을것 같습니다.

진/우맘 2004-03-22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이 자식을 낳아야 되느냐 낳지 말아야 되느냐 물을 때마다, 나는 어떻게 하라곤 말하지 않네. '자식을 갖는 것 같은 경험은 다시 없지요'라고만 간단하게 말해. 정말 그래. 그 경험을 대신할만한 것은 없어. 친구랑도 그런 경험은 할 수 없지. 애인이랑도 할 수 없어. 타인에 대해 완벽한 책임감을 경험하고 싶다면, 그리고 사랑하는 법과 가장 깊이 서로 엮이는 법을 배우고 싶다면 자식을 가져야 하네." -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중 -
ㅎ...ㅎ...ㅎ....^^;;; 똑같은 구절을 여기저기 벌써 세 번째 풀어먹는군요. -.- 마태우스님의 생각을 뒤집으려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무자식 때로 돌아가고 싶어 몸부림칠 때가 많은걸요. 하지만, 부모는 자식에게 언제나 내어주기만 하는 존재라는 기존의 생각에 싸아한 일침을 가해준 문장입니다. 더불어, 새끼 때문에 술도 못 먹고 책도 못 읽으며 사는 내 신세야~~~ 한참 한탄하던 마음에 큰 위로를 준 문장이기도 하구요.
자식을 두느냐 안 두느냐는 선택의 문제로 존중되어야 하지요. 그것을 선택으로 보지 않고 그냥 다 하니까~하고 어물쩡 넘어가다가 제대로 된 부모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불행한 일은 없을겁니다.
요즘도 하루에 몇 번씩 독신의 삶을 꿈꾸고는 합니다만, 그렇다고 진/우가 제게 주고 있는 큰 선물을 잊으면 안되겠다고 새삼 다짐하고 갑니다. 참, 보너스 한 마디. 예전에 심리치료 강사님이 말씀하시더군요.
"엄마들은 자신들이 아이를 많이 봐주면서 기른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아이들은 수도 없이 부모를 용서하면서 자라난다." 구요. 그 말을 듣고 어찌나 뜨끔하던지.^^

연우주 2004-03-22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어요. 결혼은 어찌될지 모르겠지만요. 이유인 즉, 잘 키울 자신이 없거든요. 몇 년 전 고양이 한 마리 키우면서 키운다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처절하게 실감했지요. 뭐 솔직히 아이 때문에 자유를 포기하고 싶지도 않지요.
요즘 학원으로 끊임없이 돌고 도는 아이들을 보면서도 역시 아이는 낳지 않는 게 낫겠다 생각을 하지요.

*^^*에너 2004-03-22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결혼하고 싶다란 생각은 없는데 아이는 낳아서 키우고 싶다는 생각 많이 했는데....

ceylontea 2004-03-22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는 제가 태어나서 제일 잘 한 일이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랍니다.. ^^(물론 이제 1년도 채 못길렀지만..)
음.. 물론 힘듭니다... 힘든만큼 기쁘고 행복하다고 할까요?
저는 아이를 낳으면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기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지나 막연히 아이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었을때만해도 아이가 제게 주는 행복에 대해서 생각지도 못했었지요. 처음 임신임을 알았을때, 정말 입이 벌어져 다물어질 줄 몰랐어요... 그리고... 이 아이가 내게 옴을 감사드렸고, 뱃속에 있는 열달 내내 행복했습니다. 이런 경험을 못해보는 사람이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행복했었습니다. 어른들은 뱃속에 있을 때가 제일 편하다 하셨지만, 산달이 다가올수록 얼른 아기와 만나고 싶었어요..그리고 드디어 만났지요.. 처음에는 그 아기가 내 아기인지도 실감이 나지 않았고, 사실 지금도 그래요... ^^ 하지만... 지금은 정말 그 아이가 제게 가장 소중한 존재이고, 사랑스럽고, 그 아이를 보면서 행복을 느낍니다.. 나를 보고 웃을 때, 나를 보고 울 때, 나를 엄마라고 부를 때.. 그리고.. 처음으로 뒤집었을 때, 길 때, 일어섰을 때, 걸을 때, .... 책을 보면서 내가 묻는 사과를 처음으로 손가락으로 짚을 때, 내가 묻는 제 머리를 처음으로 손으로 가져갈 때, 짝짜꿍할 때, 만세를 부를 때..... 제게 정말 커다란 기쁨과 웃음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히히... 그렇긴 하지만... 또 하나의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은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또 낳고 싶기도 하고요... ^^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힘들 때가 두돌까지라 하더군요.. 그리고 그때가 아이가 제일 사랑스러울 때라고도 합니다...지금도 견딜만 하니.. 두돌 지나면... 더 낫겠지요...히히...
아이는 제게 정말 큰 기쁨입니다.. ^^

마냐 2004-03-22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와 놀아주기..가 하루이틀일거라 하셨죠..^^;;; 네, 놀아주는게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다만, 살다보면..아이가 저와 놀아주는 재미가 만만치않습니다. 아쒸..부장에게 스트레스 받고 귀가한 날..아이가 저를 달래줍니다...왜 이러구 살지, 존재론적 고민에 빠질 때도, 손을 내밀어 저를 건져주는건 아이인듯 합니다....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말입니다. ^^

책읽는나무 2004-03-22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그냥 웃음만 나옵니다...<아이를 좋아하지만 내자식은 싫다!!>....아직 자식을 낳아보지 못해서 벌써부터 두려움을 느끼시는군요...^^...원래 사람들은 경험하기 직전에 그경험들에 대해서 미리 이것,저것 생각과 상상력이 가해져 발을 들여놓기가 한참을 망설이게 되는것 아닙니까??....모르겠군요..위의 코멘트를 보니 결혼 안하신 분들은 무자식주의의고...결혼하신분들은 자식을 낳아야한다는 주의의니...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아본 저로서도 당연 후자쪽이네요...그것은 경험해본자만이 그것의 장,단점을 느낄수가 있지 않겠습니까??...하지만...제주위의 사람들을 둘러보면 자식이 없어서 적적해하는걸 봤으면 봤지!!...자식이 있어서 그것을 행복하지않다고 하는건 여적 못봤거든요...^^....님은 반대로 보이셨나요??....친구분이 한달만 바꾸자고 한것은 알고보면...힘들고 지쳐서 순간 내뱉은 말일뿐이지...속마음은 자신의 자식으로 인한 그기쁨과 행복을 좀체로 바꾸려고 하진 않을텝니다요...자식은요...키울땐 정말로 힘이 들기도 합니다...힘안들이고 뭐든 이루어지는게 있겠습니까??..돈버는것 또한 힘이 들지 않습니가??...하지만 힘을 들인만큼...얻는것이 무한정으로 내게 쏟아지는게 바로 자식농사가 아닌가 싶습니다...그리고 자식에게서 많은것을 배워나갑니다...바로 철이 든다는거죠!!...저는 자식이 조금씩 커가는 모습에서 순간적으로 배우는것이 많아지더군요...그경험을 님께서도 이루셨으면 좋겠는데...님의 생각이 정히 그러시다면야 할말은 없지만...그래도 님도 이런 소중한 경험을 한번 해보시지 않으시렵니까??..^^...저희들만 이기쁨을 누리자니 좀 미안하잖아요~~~^^.....애를 좋아하시는 님께서 자식이 생기면..아이구~~ 오히려 더 물고 빨고 하실것 같네요...외모는 그다지 중요치 않습니다...이세상에선 내자식이 가장 이쁘고 잘생기고 소중합디다...ㅎㅎㅎ...그리고 못생긴사람밑에서 꼭 못생긴 사람만 나오라는 법 없습니다...운좋으면 정말 똑똑하고 잘생긴 자식을 볼수도 있구요...또한 제가 누누히 말씀드렸죠?...님은 정감있고 따스한 얼굴이라구요!!....오히려 님같은 스타일이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다는거 아실랑가 몰겠네요...^^....근데...님 지금 결혼하셨습니까??...난 결혼안한줄 알았는데...자식얘기하시는게...영 헷갈리네요....^^

superfrog 2004-03-22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제는 미혼의 무자식주의가 결혼해서도 유지될 수 있느냐인데 우리나라 사회에서 그게 좀 힘들다는 거죠.. 상황이 그렇지 않다면 무자식주의를 고수하는 부부들이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미혼 때 무자식을 이야기하는 건 쉽죠. 아직 닥친 일이 아니기 때문에.. 하지만 막상 결혼을 하고 한 가정을 이뤘다고 주변에 받아들여질 때, 여러가지 문제점들을 다 이겨내고 자신의 가치관 대로 살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우선 부부간에 조율하는 게 1차적인 문제, 두번째로는 부모님을 포기시키는 것..등.. 결혼7년차인 저도 근래 잠잠하던 회유가 여기저기 주변에서 튀어나오고 있어 누르기 힘듭니다.. 그래도 이런 어려움들을 이겨내고 다양한 방식의 삶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마태우스 2004-03-22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장구치는 금붕어님/아니 님께서 벌써 결혼 7년차라니요? 글의 천진난만함을 볼 때 5년차 정도가 아닐까 싶었는데.... <--썰렁했나..요? 죄송. 님 말씀대로 결혼 후에 자식을 안갖는 건 아주 힘든 일이지요.
책읽는 나무님/"저희들만 이기쁨을 누리자니 좀 미안하잖아요~~"라고 하셨는데요, 음... 전 저만 편해서 죄송하다고 생각하는데.... 애를 키우는 것엔 기쁨도 있겠지요. 인정합니다. 하지만... 전 구속보단 자유가 더 좋거든요.

마태우스 2004-03-22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론티님, 마냐님/아이가 많은 기쁨과 의지가 되시나 봅니다. 저야 그 기쁨을 모르니 이런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에너님/호오, 그렇단 말이죠. 전 둘다 싫은데...
우주님/님은 우리편, 한표를 던집니다.

마태우스 2004-03-22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시보님/그죠? 자유가 좋죠?
진우맘님/님의 말씀 감사합니다. 하지만 제 결정은 오랜 시간 동안 이루어진 것인지라,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네요....

진/우맘 2004-03-22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꾸란 얘기 아닌디...TT

마태우스 2004-03-22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진우맘님, 반가워요. 실시간 코멘트를...호홋. 죄송합니다. 제가 엉뚱한 답글을...울지 마세요, 제발!!!

superfrog 2004-03-22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름대로 심각하게, 강하게 쓰려고 썼는데, '천진난만하다'에 대해 좀 고민해야 겠어요..
근데 배가 고프네요.. 고민은 저녁 먹은 후에.. --;;
(님의 아줌마표 코멘트를 읽을 때 자꾸 님 얼굴이 떠올라서 더 웃겨요..
앗, 절대 나쁜 얘기는 아녜요.. 재미있다는 거죠..^^)

sooninara 2004-03-22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분이 맞는말을 하셨네여..미혼은 아직도 자유를 꿈꾸기에 무자녀 쪽이고..아이 키워본 엄마들은 아이 키우는 행복을 알기에 아이를 낳자고하구요..
저는 결혼전에도 아이는 싫어요!!쪽이구요..지금도 아이가 싫어요...그래도...우리아이들이 주는 행복을 생각하면 아이는 필요한것 같네요...
저는 애완견을 키워 본적이 없고(그전에 누렁이는 마당에서 컸고..나는 그 누렁이들을 무서워했다..그리고 복날에 그아이들은 ..없어졌다..) 앞으로도 키울 생각이 없어요..그런데 애완견을 키우는분들은...가족보다 끔찍하게 챙기시잖아요..그런데 아이 키우면서 느끼는 재미는 애완견보다 몇백배다라고 말하면....이해될까요?
미혼분들..아이를 잘 키울려고 고민하지 마세요..아이는 스스로 큰답니다..^^

나도별 2004-03-23 0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자주 서재에 들러 재미있는 글을 읽고 가곤 했었는데 처음 글을 남기네요.
아이 얘기가 나오니 저도 한마디 끼고 싶어서...
저의 경험을 말하자면요... 저는 아이를 키우면서 나 자신을 제대로 알아 가고 있어요.
아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나고 어릴 적 경험들이 지금의 나 자신의 모습에 직접적이고 강하게 결과로 나타남을 알게 되었어요.
아이 안 키워도 어릴 적 기억 다 난다고 말씀하실 분도 있겠지만... 키워본 분만 아실거예요.
예전에 느꼈던 감정을 아이를 통하여 다시 느끼게 됩니다. 머리로 기억하는 게 아니고요.
어쨌든 저는 대학갔을 때도 어른이 된 느낌이 없었고.. 취직해서 돈 벌어도 어른 된 느낌 없었고.. 결혼하고도 별로 달라진 점 없었는데.. 아이를 기르면서 내가 성숙한 인간이 되어 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아이 기른다고 자유를 잃지 않아요.. 절대로.
2,3 년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할 시기가 있지만...전 오히려 그 시간이 제일 소중했어요.
아이가 매일 매일 쑥쑥 크는게 아까웠을 정도니까요.
그리고 아이는 스스로 큰다는 수니나라님 말씀에 동감!
마태우스님.. 이런 이야기 가슴에 와닿지 않으실거라 생각해요. 그러나 결혼도 아이도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누군가 그러더군요.. 아이는 계획에 의해 생기는게 아니라 실수로 생기는 거라고...^^



 

 

 

 

 

 

요즘 방식대로 일요일을 한주의 시작이라고 본다면, 나의 한주는 테니스로부터 시작한다. 일요일 아침마다 테니스를 친지도 벌써 9년째, 돌이켜보면 참 꾸준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쳐왔다는 생각이 든다.

1. 기분
테니스를 잘친 날은 한주가 즐겁다. 힘들고 괴로울 때마다 내가 날렸던 빨랫줄 같은 스트로크를 떠올리면 기분이 금새 좋아진다. 하지만 그다지 잘 못친 날에는 일주 내내 짜증이 난다. 어제? 어제는 4전 4승을 하며 MVP가 되긴 했지만, 선이 굵은 테니스를 못하고 실수를 하지 않는, 얍삽하고 소극적인 테니스를 쳤기에 기분은 별로다. 기억에 남는 스트로크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2. 골프와 테니스
주위 사람들 중 골프를 치는 애들이 꽤 된다. 그들은 말한다. 조그만 구멍에 공을 넣는 건 인간의 본성이라고. 골프의 재미는 해본 사람이 아니면 모른다고. 골프를 쳐본 적이 없으니 골프가 얼마나 재미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안다. 골프는 운동이 안된다는 거. 골프를 치는 주위 애들은 어찌된 것이 갈수록 배가 나오는 듯하니까. 이것도 안다. 골프가 얼마나 재미있는지는 몰라도, 테니스 역시 넋을 잃을만큼 재미있다는 걸. 한때 우린 눈이 오면 눈을 치워가며, 비가 오면 비가 그칠 때를 기다리며 하루 4시간이 넘도록 테니스를 쳤었다. 열정이 조금 식은 지금도 테니스는 여전히 최고로 재미있는 취미다.

3. 레슨
운동에 쓰이는 도구가 길면 길수록, 폼이 좋아야 한다. 탁구를 레슨받는 사람은 없지만, 테니스 레슨은 꼭 받아야 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내가 처음 테니스를 치기 시작한 것은 95년, 그때 난 개폼으로 테니스를 쳤다. 세게 치면 대부분 아웃이 되었고, 그렇지 않은 건 네트에 걸렸다. 그나마 치고나서는 어깨가 아팠다. 좋은 폼으로 치지 않으니 어깨에 무리가 갈 수밖에.

군대에 가서부터 난 레슨을 받았다. 개폼이 몸에 익어서 고치는데 무지하게 힘이 들었지만, 6개월쯤 지나자 난 어느새 최강의 포핸드를 구사하고 있었다. 내가 공을 치면 바람 소리가 났고, 공은 네트위 2센티 높이로 날라가 코트에 꽂혔다. 무리하게 내 공을 받다 인대가 늘어났던 내 친구는 그 뒤부터 웬만하면 몸을 날려 내 공을 피한다. 빨래줄같은 내 스트로크는 그 자체가 예술이기에, 난 내가 친 공을 넋놓고 바라보곤 했다. 자신의 모습을 연못에 비춰보는 사슴처럼.

4. 아쉬움
백핸드를 배울 무렵, 난 갑자기 바빠졌다. 방송에 출연할 일이 좀 많아져서였는데, 그러다보니 아침 5시 반 레슨에 자꾸 빠지게 되었고, 결국엔 레슨을 그만두었다. 그래서 난 백핸드를 잘 치지 못하며, 공이 백핸드 쪽으로 오면 더 빨리 뛰어 포핸드 자세로 만든 뒤 공을 쳤다. 지금 생각하니 너무나 아쉽다. 단 몇 달만 백핸드를 연마했었다면 세상에 무서운 게 없었을 텐데. 복식을 하니 백핸드를 칠 일이 없을 것 같지만, 친구들은 집요하게 내 약점인 백핸드 쪽으로 공을 준다. 치사하게시리.

5. 발
다른 종목도 그렇지만, 테니스에서도 순발력이 도움이 된다. '발바리우스'란 별명처럼 난 발이 빠르기로 유명하다. 받기에 불가능해 보이는 공도 어느새 뛰어가서 받아내곤 한다. 난 말한다. "땅에서 15센티만 떠 있으면 다 받는다!"고. 스트로크가 잘 안맞아 속상한 적은 있어도, 발에는 슬럼프가 없었다. 어제도 난 말도 안되는 공을 수없이 받아내 상대로부터 "징하다" "질렸다" "인간이냐" 등의 찬사를 한몸에 받았다.

6. 인간성
테니스는 인간성이 좋아야 한다. 테니스를 취미로 한 4명을 모으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들이 대충 코드가 맞아야 한다는 게 더 중요한 일이다. 우린 파트너가 실수를 해도 화내지 않으며, 아웃 세이프 같은 민감한 판정은 가까운 사람이 본 것을 그대로 믿어준다. 스코어를 잘못 기억해 싸움으로 번지는 일은 전혀 없다. 아웃 세이프를 놓고 십분, 이십분씩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이런 친구들을 만난 게 나로서는 행운이랄 수밖에.

7. 부상
테니스를 칠 때는 부상이 없어야 한다. 긴 세월 동안 많은 친구들이 부상으로 코트를 떠났다. 어떤 이는 무릎이 나갔고, 다른 이는 내 스트로크를 피하다 허리가 삐끗했다. 또다른 이는 역동작에 걸려 발목 인대를 다쳤고, 한 친구는 사업실패로 테니스를 접어야 했다. 그때마다 난 새 멤버를 구하느라 동분서주했는데, 지금 치는 멤버들은 제발 부상없이 오래 갔으면 좋겠다. 참고로 우리 모임을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 중 테니스를 못칠 정도의 부상을 입은 적이 한번도 없는 이는 내가 유일하다. 내게 유연한 신체를 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릴 이유다.

8. 기타
어떤 친구는 내 앞에 서면 극도의 공포감을 느낀다고 했다. 아닌게 아니라 스트로크를 날리기 전 공포로 일그러진 상대의 얼굴을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그 얼굴을 보면 웃겨서, 혹은 동정심이 일어서 잘 못치곤 한다). 일주일에 한번씩 치니 9년 친 것에 비해 그다지 실력이 늘지 않았고, 게임 후 식당에 가서 허벌나게 많은 식사를 하는 탓에 살도 별로 빠지지 않은 게 아쉽기도 하지만, 테니스가 없었다면 내 인생은 훨씬 더 초라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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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 2004-03-22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운동이라고는. 특히 공으로 하는 운동은 바보라고 불릴 정도로 못합니다. 오로지 오래 달리기, 오래 매달리기, 윗몸 일으키기 등 이 콱 깨물고 버팅기는 운동만 잘 하죠. 그래서 가끔은 기술이 필요한 운동을 잘 하는 사람들을 보면 무지하게 부럽습니다. 특히 테니스는 유니폼이 이뻐서 한번 배워보고 싶었는데...(니 다리통 생각은 안하냐? 하며 어디선가 비웃는 소리가 들리네요. 하핫)

비로그인 2004-03-22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래도 마태우스님이 만드시는 '몸'이, 테니스로 이루어졌음은 부정할 수 없겠네요. 지금 멤버분들은 부상없이 오래가시길~ ^^

비로그인 2004-03-22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테니스~~ 저도 정말 좋아하는 운동 ~ !!!
초딩 때 첫 사랑이 전국에서 놀던 테니스 왕자님이어서, 그래 ? 그럼, 나도 할꺼야 하며 테니스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 ㅋㅋ 배운지 3년 만에 코치 선생님께 들은 말 " 넌, 테니스 라켓으로 야구하냐 ? " ㅠ.ㅠ;; ...제 첫 사랑 왕자님도 6살 연상녀 랑, 일찌감치 결혼해 버리고, 실의에 빠진 저, 테니스 라켓 마저 오래 전에 잃어버리고, 덜 떨어진 제 운동 신경으론 테니스 여왕이 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슬픔에 젖어, 땅에 끌고 다니지도 말라던 라켓 팽겨치고, 골프채를 잠시 휘둘러보았으나......끝도 없는 헛스윙에 뻣치는 망신살...
도구로 하는 모든 운동에 재능 없음을 깨닫고 몸뚱이 하나로 때우는 헬스나 하며 요가나 하는 저지만, 결론은 " 테니스가 좋아요 ~ " 요즘도, 구입한 지 20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골동품처럼 생긴 '윌슨'이라 적힌 라켓을 보며.....우울한 과거를 잠시 접어두고, 어디, 다시 한번 시작해봐...하며 나름대로 신중한 고려를 해보기도 한다는....... 쿄쿄쿄

마태우스 2004-03-22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시보님/님께는 왠지 볼링이 어울릴 듯.... 그것도 공으로 하는 운동이지만요.
앤티크님/그럼요, 제가 테니스라도 치니까 이렇게 술을 마실 수 있는 거죠^^
sweetmagic님/여자분이 테니스 잘치면 굉장히 멋있습니다. 포기하지 마세요. 님은 아직 가능성이 있습니다.
 
햇볕정책을 위한 변론
이원섭 지음 / 필맥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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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정책을 위한 변론>이란 제목처럼, 이 책은 한겨레 논설실장인 이원섭이 DJ 정부의 햇볕정책의 전반적인 과정을 기술한 것이다. 남북관계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라면 이 책에 기술된 내용들이 특별히 새로울 게 없다. 굳이 의미를 찾자면, 그간의 남북관계를 한목에 정리하는 데 의의가 있을 것 같다.

DJ의 햇볕정책은 기존 정권의 대북정책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의 한국 정부들은 말로는 북한이 국제사회에 나오는 것을 돕겠다고 했지만, 내면적으로는 항시 발목을 잡았다. 북미간 협상에도 남북관계 진전의 병행이란 고리를 달아 사실상 북미관계 진전에 걸림돌을 놓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김대중 정부는 미국이나 일본이 남한에 대해 신경쓰지 말고 북한과 관계 정상화에 나서도록 독려했다 (221쪽)]

그 결과 DJ는 남북정상회담이란 업적을 남겼고, 반목과 대립을 반복했던 남북관계는 급속히 가까워졌다. 그런 DJ의 업적이 측근비리와 투명하지 못한 대북접촉 등으로 인해 국내에서 별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 하겠다. 2000년 말의 미국 대선 결과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어느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대북포용정책 이외의 다른 길이 없을 줄 알았건만, 뚜껑을 열고 보니 부시의 대북정책은 의외로 강경해, 그를 설득하려던 DJ는 공개적인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이게 다 약소국 대통령의 비애, 대통령을 하려면 미국 정도 되는 나라의 대통령을 해야 하나보다. 하지만 그런 힘없는 우리나라 대통령도 하겠다는 사람이 수없이 많은 건, 그나마 안하는 것보다 나아서 그러겠지?

클린턴 시절 국무장관이었던 올브라이트는 '브로치 외교'로 알려져 있었다. 회담이 잘 안풀리면 거미 모양의 브로치를 단다든지 하는 식이었는데, 그녀가 김정일을 만났을 때는 브로치를 세 번이나 바꾸어 달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모자를 조금 들어올린 독수리 모양의 브로치를 달았다가, 다음에는 성조기 모양의 브로치로 바꿔 달았다. 그리고 저녁 만찬 때는 크고 작은 2개의 하트를 붙여 만든 브로치를 달고 나타났다(227쪽)" 브로치의 추이로 보아 회담이 만족스럽게 된 것 같은데, 실제로 올브라이트는 "김위원장은...진지하고 훌륭한 대화상대자였다"고 김정일을 추켜올렸다. 부시 대신 고어가 대통령이 되었거나, 북한과 미국이 조금 더 관계개선을 서둘렀다면 훨씬 좋은 결과가 있었으리라는 아쉬움이 드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리라.

이런저런 아쉬움은 있지만, DJ의 햇볕정책은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다. 미국 공화당 매파와 코드가 일치했던 이회창 대신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남북관계의 개선에 관한 좋은 징조로 보였건만, 집권 1년만 놓고 본다면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평이 나올 수밖에 없다. 특히나 북한에 대한 공격을 뜻할 수도 있는 '추가적 조처'에 합의한 것은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탄핵으로 인해 생각지도 않는 휴식을 얻은 노무현, 그동안 그가 정신을 차려 DJ가 닦아놓은 남북화해의 길을 따라 더 힘차게 전진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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