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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애 낳아야지!"
술자리에서 친구가 한 말이다. 왜 낳아야 하냐고 했더니 나중에 쓸쓸하다나? 물론 친구들이 날 생각해서 해주는 말이겠지만, 그들이 애 키우느라 얼마나 힘이 드는 줄 익히 알고있는 나로서는 '혹시 내가 너무 즐겁게 사니까 배가 아픈 게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든다.
옛날만 해도 애를 낳지 않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내가 고1 때만 해도 딸을 낳을 것이고 이름은 '보라'라고 한다는 말을 한 것으로 보아, 지금처럼 '무자식 =행복'이란 사상이 자리잡은 것은 아마도 대학에 들어간 이후일 것이다. 그때 내가 애를 가질 생각을 한 이유는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러니까 그것 이외의 다른 삶이 존재한다는 걸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유롭고 편한, 또다른 세계가 있다는 걸 아는 지금, 내가 왜 애를 낳겠는가?
사실 난 애들을 좋아한다. 엄마 등에 업힌 어린애를 2분 안에 웃게 만들 수 있으며, 대충 열살 밑의 애들과는 아주아주 잘 놀 수 있는 내가 애가 없다는 것은 어찌보면 능력을 사장시키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한계는 잘해야 하루이틀 뿐이며, 아이가 내게 식상할 열살 때까지 그 길고 긴 나날들을 매일같이 애와 놀아주는 건 정말이지 자신없다.
친구들은 말한다. "지금이야 재미있게 살지 몰라도, 나이들어서는 어떡할래?" 나이든 후의 삶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40, 50이 넘는다해도 삶은 굴러가는 법, 뭐 큰일날 일이야 있겠는가? 오히려 난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라고. 아이들이 자라서 아버지와 놀아주는 것도 아니며, 우리 세대에 자식이 모시는 것을 바라는 건 애시당초 그른 일이다. 그래서 난 자식이 있다고 노년의 삶이 더 풍요롭다는 데 동의할 수 없으며,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기꺼이 기러기 아빠가 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인생은 자신의 것이지, 자식을 위한 것이 아니니까.
극도의 이기주의자인 나는 자식으로 인해 내게 부여된 자유를 빼앗길 것이 두렵다. 한명이든 두명이든 자식이 있으면 내가 지금 누리는 화려한 삶은 이제 끝장일 테니까 말이다. 나같은 사람만 있다면 우리 사회의 크나큰 문제가 될테지만, 다행스럽게도 다른 이들은 애가 없어서 고민을 했으면 했지, 자식이 많아서 머리를 싸매는 일은 별로 없는 듯하다. 그러니 나 하나쯤 인생을 즐기겠다는 게 그리 나쁠 것은 없어 보인다.
'무자식=행복'의 사상을 갖게 된 건 아무래도 우리 형제들 탓이 클 거다. 지독히 말을 안듣고, 커서까지 엄마 아빠의 속을 뒤집어놓는-날 포함해서-형제들을 보면서 난 서서히 자식에 대해 회의를 하게 되었고, 자식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어머님은 내게 늘 "제발 가정을 가져라"면서 애원조로 말씀하시지만, 내가 없으면 우리 엄마는 꽤나 심심할 거다 (지금도 물론 얼굴을 자주 보는 건 아니지만). 더구나 밤에 무서움을 타는 엄마로서는 나의 존재가 든든하지 않을까? 어머니는 며느리랑 같이 살면서 모시면 더 좋지 않느냐고 하지만, 세상의 어느 며느리가 시어머니랑 같이 사는 걸 좋아하겠는가? 그건 서로간의 불행일 뿐이고, 난 그럴 마음이 전혀 없다.
이유가 또 없을까 생각해보면 자연스럽게 외모 쪽으로 접근이 된다. 어릴 적부터 못생겼다고 무진장 구박을 받았던 나, 같은 반 친구로부터 "넌 어쩜 그렇게 이상하게 생겼냐?"라는 말까지 들었던 전철을 자식이 밟게 하고 싶지는 않다. 나와 유전자가 비슷한 우리 형제들을 한번 살펴보자. 우리 과 애 둘이서 서로 차지하겠다고 싸웠던, 그대로 우리집의 대표미인인 여동생은 귀여운 얼굴의 남편과 결혼을 했는데, 첫딸을 보고나서 난 이렇게 말했다. "공부 잘해야겄다!" 둘째도 하필 날 빼닮았고, 성질까지 안좋으니 걱정이 더 많겠지만, 아들이라 다행이다. 외모가 웬만큼 되는, 그래서 내 친구 중 몇이 좋아하기도 했던 우리 누나, 눈이 작은 매형과 결혼을 하더니 태어난 아들 셋이 모두 눈이 작다. 강수연 정도의 미녀와 결혼하지 않는 한, 내 아이의 운명도 뻔한 일이라는 걸 위에서 열거한 사례를 보면 알 수 있지 않겠는가? 나야 그래도 공부라도 좀 했으니 다행이지만, 내 애가 공부마저 못한다면 얼마나 속상할까.
애가 둘 있는 다른 친구는 내게 말한다. "나랑 한달만 바꾸면 안될까?" 후후, 한달 정도야 바꿔줄 수 있지만, 그러면 그 친구가 도망가 버릴까봐 그런 제의에 응하지 못하겠다. 정리하자. 내 친구들이 날 딱하게 보는 것은 내가 자신들과 다른 삶을 살기 때문이며, 지금은 내가 훨씬 더 잘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60세가 넘어서는 역전이 될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반박하련다. "그래, 60 넘어서는 니들이 잘 살아라. 난 그때까지만 재미있게 살면 만족할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