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장소에서 코를 후비는 사람을 보면 참으로 용감하다는 생각이 든다. 난 되도록 그런 사람을 멀리하려고 하고, 혹시 마주치더라도 친밀한 접촉은 피하려 애쓴다. 특히 그런 사람과 식사를 할 때는 되도록 떨어져 앉는 것이 수다.

하지만 나도 인간인지라 집에서는 곧잘 코를 후빈다. 건조한 겨울에는 더더욱 그렇다. 코를 건져 낼 때의 쾌감은 마약과 같은 것인지라, 쉽게 포기할 수 없다. 문제는 파낸 물질의 처리다. 흔히들 손으로 비벼서 털지만, 난 그런 방식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게 바람에 날려 다시 나에게 돌아올지 모르지 않는가? 그래서 난 주로 휴지에 싸서 버리지만, 휴지란 게 찾아도 눈에 안띌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난 벽을 따라 여기 저기에 버려 놓는다.

난 벤지를 사랑한다. 종족은 달라도 벤지는 사실 내 아들이며, 난 벤지를 위해서라면 달리는 차 앞으로도 뛰어들 각오가 되어 있다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난 신발을 던져 차를 세웠지, 몸을 날리진 못했다). 엊그제, 일주일에 한번씩 오는 파출부 아주머니가 어머니한테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었다.
"돌쇠(내 가명)가 코딱지를 방안에다 버려놓아서 성가셔요"
듣는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렇게 조그만 것을 들키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는데. 내 입에서는 순간적으로 거짓말이 나왔다.
"그거 코딱지 아냐! 벤지 눈꼽이야"
날 언제나 신뢰하는 어머니는 아주머니한테 이렇게 반박했다. "거봐요. 우리 아들이 그럴 사람이 아니지"
하긴, 벤지 눈꼽을 떼어준 적도 가끔 있고, 그것 역시 코딱지와 비슷한 경로로 버렸던 터다.
하지만 아주머니라고 코를 안파봤을 것이며, 코딱지와 눈꼽을 구별하지 못할 리는 없다. 눈꼽은 까맣고, 코딱지는 나름대로의 특유한 색깔이 있는 거 아닌가. 순간 아주머니는 날 째려봤고, 난 잽싸게 고개를 숙였다. 어젯밤, 난 밤새 부끄러워했다. 그렇게 벤지를 이뻐한다고 해놓고, 당장의 체면 때문에 그런 변명을 하다니. 거짓말이 문제가 아니라, 그 책임을 벤지에게 뒤짚어 씌웠다는 게 문제였다. 벤지에게 미안해 이마에 뽀뽀를 해 줬지만, 자다가 깬 벤지 녀석은 갑자기 왜 그러냐는 듯 졸린 눈을 떴다. 벤지야, 미,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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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2011-05-21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귀엽다ㅋㅋㅋㅋ
 

 

 

 

늘 12시를 넘겨 일어나던 여친이 간만에 일찍 일어났다. 남는 시간을 주체할 길이 없던 그녀는 갑자기 책을 읽는 기특함을 발휘해 날 놀라게 했는데, 그 책은 바로 <위대한 개츠비>다. 자자한 명성과는 어울리지 않게 술술 읽히는지라 여친은 반나절도 안되어 그 책을 다 읽고 말았단다. 그 책을 읽은 여친의 반응은 "재미 하나도 없다"는 것. <느낌표>란 코너에서 다들 재미있다고 칭찬을 해 진짜인 줄 알았다나. 난 2년 전에 이 책을 읽었는데, 그때 맨 마지막에 이렇게 써놓았던 기억이 난다.

[개츠비가 왜 위대한지 모르겠는 것처럼, 난 이 소설 역시 평단에서 떠드는 것처럼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열개가 넘는 출판사에서 책을 출간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고, 사람들이 써놓은 서평도 칭찬이 더 많다.

 -나는 그래서 스콧 피츠제럴드를 아주 존경하게 되었다. 어떻게 이리도 소설을 예쁘게 쓸 수가 있을까?

-소설속의 Nick 처럼 저도 Gatsby의 팬이 되었습니다
-이상을 찾아 살아가는 인간의 덧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여겨진다.

정말 그분들은 이 책에 그렇게 매료된 걸까? 내가 모른다고 남들도 몰라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지만, 이런 의혹이 든다. 그분들의 호평은 기존 평단의 권위에 복종한 결과는 아닐까? 어떤 작품이 왜 호평을 받는지 이해가 안간다면 그건 자신이 무식해서지, 평가 자체가 잘못되었을 리는 없다는 생각 말이다. 난 이 책에서 재미는 물론 의미마저 느낄 수 없었고, 그래서 읽고나서 며칠도 안되어 이 책에 관한 것을 몽땅 잃어버렸는데.

모르겠다. 이런 푸념이 이 책에서 어떤 의미를 찾으신 분들에 대한 시기심인지도. 하기사, 내가 읽었던 명작들 중 지금까지 내게 깊은 울림을 주는 책이 얼마나 되던가. 한두권이면 모르지만, 읽는 족족 다 그렇다면 문제는 내게 있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명작과 그렇지 않은 책을 구별하는 심미안이 있었으면 하고 바란 적이 수없이 많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무리 책을 읽어도 내 수준은 계속 이모양인 것을. 오늘의 의문. 도대체 '수준'은 어떻게 향상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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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의꿈 2004-01-16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정말 모르겠죠- 특히 내가 재미있게 읽은 것을 다른 사람이 별로 재미없게 읽었다고 하면(그것도 유식한 말 써가면서)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사실은 내가 아직도 이런 수준밖에 안되는 것 같아 우울하기도 합니다.

만월의꿈 2004-01-16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문의 답! 저도 잘 모르지만, 일단 제 경험상 말하는 수준은 말이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향상이 되곤 합니다. 어렸을 때 아무것도 모르고 읽던 논리 시리즈(반갑다!, 고맙다! 등)는 앞에 나오는 이야기들..(뒤에 나오는 논리를 이해시키기 위한 짤막한 이야기)만이 재미있다고 여겨 그냥 넘기다, 1~2년이 지나고 난 뒤에는 조금씩 읽어나가기 시작하면서 뭔가 알것같은 것을 느끼죠(몽글몽글한 느낌?) 그리고 또 1~2년이 지난 뒤에 읽으면 무슨 이야기인지 확실히 이해가 가고, 이제와서 지금 내가 그 책을 읽는다면, 아! 이런거구나!.. 대략 예전에는 몰랐었지만 지금은 확실히 알겠다는 느낌이 옵니다만-(설명이 어려운가?) 저는 대충 어렸을 때 읽었었던 책을 요즘 들어서 다시한번 읽으면서 새로운 느낌이 들때, 아.. 내 머리가 조금 성장했구나.. 라는 것을 느낍니다(-ㅁ-;).. 설명이 이상해서 죄송합니다.;

마태우스 2004-01-16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네요. 님의 말씀을 들으니 '뭔가 알것같은' 것을 느끼게 되네요. 님께서 중요한 말씀을 하신 게 있는데, 옛날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란 놈은 권수에만 집착을 하는지라 한번 읽은 책은 절대 안읽는 주의, 도약을 위해서는 이걸 고쳐야 하겠군요.^^ 말씀 감사드려요.

비로그인 2004-01-16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마태우스님. (괜히 친한 척... )
저는 위대한 개츠비 꽤 괜찮게 기억하고 있거든요.
몇년이나 지나 가물가물하지만, 특유의 스타일이 꽤 즐거웠던 글이라 생각해요. 요즘의 감성으로 서사 부분이 좀 밍숭맹숭하긴 하죠. ^^;;
인상적인 장면이 몇 가지 있는데요.
우연히 개츠비씨의 서가에 찾아든 화자와 거기에서 마주친 남자가 집주인에 대해 대화하던 장면. 결혼식날 몰래 병나발 불고 뻗어버린 데이지를 어머니가 직접 나서 욕조 속에 밀어넣던 장면.
그 장면들 떠올리면 지금도 머리가 싸해져요.
작가 특유의 냉소적인 문체랑 딱 맞아 떨어지는 이미지였다 해야할까요.
지금 다시 읽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잘 모르겠는데요. 책장 덮은 뒤 며칠만 지나도 캐릭터들이고 내용이고 하나도 기억 안 나는 소설들도 많잖아요. 몇년 동안 인상적인 장면들이 주기적으로 떠오른다는 것만으로 '위대한 개츠비'는 위대하다(?) 생각해요.

영이 2004-01-17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위대한 개츠비>를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고 해야 하나요. 상상력과 감수성이 풍부할 수 밖에 없었던 십대 때 읽은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여운이 가슴에 늘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지금껏 잊혀지지 않고 남아 있는 장면이 하나 있는데요. 오래 된 기억이라, 책의 문장을 똑같이 옮길 수는 없고, 질감이 떨어지는 제 언어로 되살리자면.... 개츠비가 늦은 밤, 자신의 집 근처에서, 강 저편에 살고 있는 데이지 집의 반짝거리는 '초록빛 불빛'을 늘 바라보곤 했다는 장면이죠. 아메리칸 드림을 쫒는, 미국 이민사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이구요. 몇년 전, 정*종 교수님의 번역본으로 다시 읽은 적이 있는데, 문장이 매끄럽지 못하여 어색한데다 너무나 번역체스러워 다소 실망스럽더군요. 아마도 이 책에 대한 반감엔 번역의 세련되지 못함이 다소 차지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출판사 책은 어땠는지 모르겠어요. 영어로 된 원작으로 읽는다면 조금은 평이 달라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수정)

마태우스 2004-01-17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렇군요. 위대하게 읽은 분들도 계시다니. 역시 알라딘은 내공이 높은 고수 분들만 모이는 곳... 저두요, 지금은 아니지만요, <위대한 개츠비>가 가슴 뭉클해질 날이 오겠지요? 그날을 위해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글구 영이님, 원서를 읽으라니요. 그 무슨 말씀을...
 

 

 

 

오늘은 xx고시 합격자 발표날이었다. 오늘을 기다리면서 난 사실 초조했다. 내가 지도하는 4명의 재수생 중 과연 몇명이나 합격을 했을까? 4명 다 붙는다면 학장님한테 큰소리를 칠 수 있을테고, 3명이면 그래도 체면치례는 했다고 할 수 있겠지. 두명은 괜찮겠지만 나머지 둘이 문젠데.... 갖가지 상념이 머리속에서 교차해, 요 며칠 그다지 편한 잠을 자지 못했다. 고속도로에서 차가 고장나 뛰어가는 꿈을 꾸질 않나-이런 꿈을 꾸면 진짜로 다리가 아프고 피곤하다-기억이 안나는 무시무시한 악몽에 시달리지 않나...

어젯밤 12시, 잠깐 잠이 들었는데 전화가 왔다.
"선생님, 저 붙었어요! xx두요"
자다가 들은 낭보 때문이기도 했지만, 난 그가 그 소식을 듣자마자 내게 전화해준 것이 기뻤다. 일년간 성심성의껏 지도(?)를 한 보람이랄까. 내가 공부를 가르쳐 줄 수는 없다해도, 난 시험 실패로 실의에 빠져있던 그들에게 자신감을 북돋아 주기 위해 노력했고, 이따금씩 불러내 맛있는 음식과 술을 사줬다. 후자에 대해서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내 변은 이거였다. "시험 합격 이후의 아름다운 삶을 보여주고자 했다"

오늘 출근하는 도중 또 한명으로부터 합격했다는 전화가 왔고, 학장실에 가서 확인한 결과 다른 한명마저 합격해 날 기쁘게 해줬다. 4명 지도에 4명 합격, 의욕적으로 만들어진 '100% 위원회'는 제 기능을 다한 것이다. 시험 후에는 걱정을 좀 했지만, 난 그들을 믿었고, 그들은 내 신뢰에 보답해 줬다. 애들이 너무 고마워, 어떻게 애들을 즐겁게 해줄까 벌써부터 고민스럽다. 그들과 돈독한 유대관계를 맺음으로써 인생에서 믿고 의지할 친구가 생긴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

학장님은 내게 "축하한다"고 했다. 사실 그 축하는 학생들에게 돌아가야 하지만, 나도 조금은 노력했으니 그 축하가 전혀 턱없는 것은 아니리라. 몇명이나 될지 모르겠지만 올해 역시 탈락자가 있을 거구, 난 그들과 새로운 인연을 맺어야 한다. 그들과도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내년 이맘때도 지금처럼 밝게 웃을 수 있을까. 그랬으면...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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쎈연필 2004-01-16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마태우스 2004-01-16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끄럽습니다.
 

 

 

 

어제 술을 마셨다. 중국음식에 소주를 마셨고, 2차로 시원한 생맥주를 마셨다. 그리고는 <천국의 계단>을 보기 위해 9시가 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멤버 중에는 그 드라마를 안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쩌겠는가. 다수가 그 드라마를 원하고 있는데.

여유있게 집에 도착했고, 늘 그렇듯이 벤지 대소변을 뉘었다. 소변을 보려는데 전화가 왔다. 손에 든 전화를 귀에 대는데, 그만 전화가 미끄러지면서 변기에 빠져 버렸다. 소변 보기 전인 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황급히 전화를 빼냈고, 수건으로 닦고 드라이기로 말렸다. 불안한 마음에 켜보니 역시 안된다. 전화기를 변기에 빠뜨리는 얘가 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그게 내가 될지는 몰랐는데... 튼튼한 끈을 산 뒤부터 술먹고 휴대폰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어서 좋다 했더니 이런 일이 생겼다.

오늘 아침, 할수없이 옛날의 그 휴대폰을 집어들고 출근을 했다. 중이 고기맛을 보면 어찌어찌 된다고, 그전에는 잘 쓰던 내 휴대폰이 한없이 미웠다. 사진이 안찍히는 것은 둘째치고,  촌스러운 단음의 벨소리 하며, 멋대가리 없게 생긴 외형 하며.... 그전에는 내가 어떻게 이 전화기를 썼을까?

물론 전화기는 고치면 될 것이다.그 안에 있던 사진들도 다시 찍으면 되겠지. 하지만 내 전화기는 불법 전화기라, 아무 곳에서나 고칠 수가 없다는 단점이 있다. 불법폰을 제공한 사람에게 찾아가서 고쳐달라면 아마 놀라겠지. "벌써 망가뜨렸어?" 하면서. 내가 그 휴대폰을 충전기와 더불어 받은 게 작년 12월 말이니, 불과 20일 남짓한 꿈이었다. 으흐흑.  앞으로는 휴대폰을 가지고 물가에 가지 않으리라. 하다못해.... 접시물이라도. 이런 걸 두고 남들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고 하겠지. 으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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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의꿈 2004-01-16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 마악 웃었다는- 변기라니.. 충격이 컸겠어요-
힘내세요- 원래 좋은 거 쓰다가 나쁜 거 보면 타격이 크답니다.(-ㅁ-;)
고치는데 돈이 많이 들겠군요-.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게 뭐가 어때요- 외양간 고치고 나서 다시 새로운 소를 한마리 들여오죠- 그 후로는 소잃을 일이 뭐 있겠어요?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 보다 더 나쁜건 그 후로도 아무일도 안하는거라고 생각합니다^-^;

쎈연필 2004-01-16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 덕분에 시원하게 웃고 갑니다... 죄송;;

마태우스 2004-01-16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우는데 다른 분들은 웃다니, 행복과 불행을 전부 합하면 제로라는 옛말이 맞는 것 같군요. 으흐흐흑. 꺼이꺼이. 끼룩끼룩.

111 2011-05-21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왜 불법폰이죠? 혹시 몰카기능있었나요?
 

 

 

 

어제 저녁, 라면에 계란을 넣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인터넷 교보란다. 그 말을 듣자 갑자기 떨리기 시작했다. 아니 거기서 왜...? 한때 거기다 서평을 올리는 재미로 살았지만, 이미 거길 배신한지 오랜데? 응징하려고 전화를 했나 싶었지만, 그건 기우였다.

"아, 저희가 1월 26일날 홈페이지를 새로 오픈하거든요. 그래서 축하 인사말을 남길 분들을 찾고 있는데, 님께서 저희 사이트에 서평을 많이 남겨 주셨더라구요. 저기, 앞으로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코멘트와 사진 좀 보내 주세요"

그러고보니 거기다 정말 많은 서평을 올렸던 것 같다. 2년 전 언제인가는 17편의 서평을 올려 상까지 받았었지. 인터넷 교보 대문에 상패를 든 내 사진이 한달간 실려 있었었지. 알라딘과 달리 교보는 개인별로 서평을 집대성하는 시스템이 없어 내가 쓴 서평이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기간으로 미뤄볼 때 150편은 넘지 않을까 싶다. 가끔은 후회한다. 내가 왜 교보에  그토록 집착했을까? 진작부터 알라딘에서 활동했었으면 지금쯤 내가 쓴 마이리뷰가 200편은 넘을텐데 말이다. 그당시 내가 교보 이외의 사이트에 들어가보지도 않은 것은 아마도 나의  주류의식 때문이리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본다는 이유로 질이 과히 좋지 않은 조선일보를 보는  것처럼, 인터넷 상에서의 서비스나 할인율이 다른 곳보다 떨어지더라도 '교보'라는 네임밸류 때문에 거길 간 것이겠지. 알라딘의 질좋은 서비스를 보면서, 난 뒤늦게 머리를 쥐어 뜯어야 했다. '진작 그렇게 했으면 알라딘 상품권도 많이 받았을텐데...'

어쨌든, 난 교보 측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냥 솔직히 말해버렸다. "저는 그럴 자격이 안됩니다. 한때 거기다 서평을 많이 남긴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은 거길 배신하고 다른 곳에서 활동하고 있거든요"

그래도 괜찮다면서, 앞으로라도 교보에서 활동 열심히 하면 되지 않냐고 하기에 이렇게 답했다. "아뇨. 그럴 것 같지가 않네요"

알라딘의 서비스를 맛본 내가 왜 다시 교보로 가겠는가? 알라딘에서 축적한 것들이 너무 많아져서, 이젠 가고 싶어도 못간다. 설사 교보의 서비스가 알라딘의 그것을 능가한다손 치더라도 말이다.

전화를 끊고 나서 뿌듯했다. 내 양심을 건사했고, 알라딘에 대한 나의 붉은 마음을 그에게 보여 줬으니까. 그 뿌듯함을 이렇게 글로 남기는 이유는 물론 알라딘이 나의 붉은 마음을  알아줬으면 해서다. 그러니까 이 글은 '저 열심히 할테니, 이뻐해 주세요!'라는 내용인 셈. 한가지 더. 배신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사실 소비자가 더 나은 곳을 쫓아 이동하는 것은 배신까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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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talwave 2004-01-15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 붉은 마음... 너무 멋진 표현이네요. ^^

쎈연필 2004-01-15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면에 계란 넣어 먹고 싶군요...!! ^^

만월의꿈 2004-01-15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건 배신이라고 하는게 아니죠- 소비자의 입장에서 더욱 서비스가 좋은곳을 찾아가는 것은 마땅한 도리라구요!(..정당화일수도 있지만, 사실그렇잖아요- 그래야 우리 인터넷서점의 서비스가 날로 더 좋아지죠-)
헤- 멋있으세요- '그럴것 같지가 않네요'아아, 당당해서 저까지 뿌듯해지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