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12시를 넘겨 일어나던 여친이 간만에 일찍 일어났다. 남는 시간을 주체할 길이 없던 그녀는 갑자기 책을 읽는 기특함을 발휘해 날 놀라게 했는데, 그 책은 바로 <위대한 개츠비>다. 자자한 명성과는 어울리지 않게 술술 읽히는지라 여친은 반나절도 안되어 그 책을 다 읽고 말았단다. 그 책을 읽은 여친의 반응은 "재미 하나도 없다"는 것. <느낌표>란 코너에서 다들 재미있다고 칭찬을 해 진짜인 줄 알았다나. 난 2년 전에 이 책을 읽었는데, 그때 맨 마지막에 이렇게 써놓았던 기억이 난다.

[개츠비가 왜 위대한지 모르겠는 것처럼, 난 이 소설 역시 평단에서 떠드는 것처럼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열개가 넘는 출판사에서 책을 출간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고, 사람들이 써놓은 서평도 칭찬이 더 많다.

 -나는 그래서 스콧 피츠제럴드를 아주 존경하게 되었다. 어떻게 이리도 소설을 예쁘게 쓸 수가 있을까?

-소설속의 Nick 처럼 저도 Gatsby의 팬이 되었습니다
-이상을 찾아 살아가는 인간의 덧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여겨진다.

정말 그분들은 이 책에 그렇게 매료된 걸까? 내가 모른다고 남들도 몰라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지만, 이런 의혹이 든다. 그분들의 호평은 기존 평단의 권위에 복종한 결과는 아닐까? 어떤 작품이 왜 호평을 받는지 이해가 안간다면 그건 자신이 무식해서지, 평가 자체가 잘못되었을 리는 없다는 생각 말이다. 난 이 책에서 재미는 물론 의미마저 느낄 수 없었고, 그래서 읽고나서 며칠도 안되어 이 책에 관한 것을 몽땅 잃어버렸는데.

모르겠다. 이런 푸념이 이 책에서 어떤 의미를 찾으신 분들에 대한 시기심인지도. 하기사, 내가 읽었던 명작들 중 지금까지 내게 깊은 울림을 주는 책이 얼마나 되던가. 한두권이면 모르지만, 읽는 족족 다 그렇다면 문제는 내게 있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명작과 그렇지 않은 책을 구별하는 심미안이 있었으면 하고 바란 적이 수없이 많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무리 책을 읽어도 내 수준은 계속 이모양인 것을. 오늘의 의문. 도대체 '수준'은 어떻게 향상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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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의꿈 2004-01-16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정말 모르겠죠- 특히 내가 재미있게 읽은 것을 다른 사람이 별로 재미없게 읽었다고 하면(그것도 유식한 말 써가면서)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사실은 내가 아직도 이런 수준밖에 안되는 것 같아 우울하기도 합니다.

만월의꿈 2004-01-16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문의 답! 저도 잘 모르지만, 일단 제 경험상 말하는 수준은 말이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향상이 되곤 합니다. 어렸을 때 아무것도 모르고 읽던 논리 시리즈(반갑다!, 고맙다! 등)는 앞에 나오는 이야기들..(뒤에 나오는 논리를 이해시키기 위한 짤막한 이야기)만이 재미있다고 여겨 그냥 넘기다, 1~2년이 지나고 난 뒤에는 조금씩 읽어나가기 시작하면서 뭔가 알것같은 것을 느끼죠(몽글몽글한 느낌?) 그리고 또 1~2년이 지난 뒤에 읽으면 무슨 이야기인지 확실히 이해가 가고, 이제와서 지금 내가 그 책을 읽는다면, 아! 이런거구나!.. 대략 예전에는 몰랐었지만 지금은 확실히 알겠다는 느낌이 옵니다만-(설명이 어려운가?) 저는 대충 어렸을 때 읽었었던 책을 요즘 들어서 다시한번 읽으면서 새로운 느낌이 들때, 아.. 내 머리가 조금 성장했구나.. 라는 것을 느낍니다(-ㅁ-;).. 설명이 이상해서 죄송합니다.;

마태우스 2004-01-16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네요. 님의 말씀을 들으니 '뭔가 알것같은' 것을 느끼게 되네요. 님께서 중요한 말씀을 하신 게 있는데, 옛날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란 놈은 권수에만 집착을 하는지라 한번 읽은 책은 절대 안읽는 주의, 도약을 위해서는 이걸 고쳐야 하겠군요.^^ 말씀 감사드려요.

비로그인 2004-01-16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마태우스님. (괜히 친한 척... )
저는 위대한 개츠비 꽤 괜찮게 기억하고 있거든요.
몇년이나 지나 가물가물하지만, 특유의 스타일이 꽤 즐거웠던 글이라 생각해요. 요즘의 감성으로 서사 부분이 좀 밍숭맹숭하긴 하죠. ^^;;
인상적인 장면이 몇 가지 있는데요.
우연히 개츠비씨의 서가에 찾아든 화자와 거기에서 마주친 남자가 집주인에 대해 대화하던 장면. 결혼식날 몰래 병나발 불고 뻗어버린 데이지를 어머니가 직접 나서 욕조 속에 밀어넣던 장면.
그 장면들 떠올리면 지금도 머리가 싸해져요.
작가 특유의 냉소적인 문체랑 딱 맞아 떨어지는 이미지였다 해야할까요.
지금 다시 읽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잘 모르겠는데요. 책장 덮은 뒤 며칠만 지나도 캐릭터들이고 내용이고 하나도 기억 안 나는 소설들도 많잖아요. 몇년 동안 인상적인 장면들이 주기적으로 떠오른다는 것만으로 '위대한 개츠비'는 위대하다(?) 생각해요.

영이 2004-01-17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위대한 개츠비>를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고 해야 하나요. 상상력과 감수성이 풍부할 수 밖에 없었던 십대 때 읽은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여운이 가슴에 늘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지금껏 잊혀지지 않고 남아 있는 장면이 하나 있는데요. 오래 된 기억이라, 책의 문장을 똑같이 옮길 수는 없고, 질감이 떨어지는 제 언어로 되살리자면.... 개츠비가 늦은 밤, 자신의 집 근처에서, 강 저편에 살고 있는 데이지 집의 반짝거리는 '초록빛 불빛'을 늘 바라보곤 했다는 장면이죠. 아메리칸 드림을 쫒는, 미국 이민사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이구요. 몇년 전, 정*종 교수님의 번역본으로 다시 읽은 적이 있는데, 문장이 매끄럽지 못하여 어색한데다 너무나 번역체스러워 다소 실망스럽더군요. 아마도 이 책에 대한 반감엔 번역의 세련되지 못함이 다소 차지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출판사 책은 어땠는지 모르겠어요. 영어로 된 원작으로 읽는다면 조금은 평이 달라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수정)

마태우스 2004-01-17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렇군요. 위대하게 읽은 분들도 계시다니. 역시 알라딘은 내공이 높은 고수 분들만 모이는 곳... 저두요, 지금은 아니지만요, <위대한 개츠비>가 가슴 뭉클해질 날이 오겠지요? 그날을 위해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글구 영이님, 원서를 읽으라니요. 그 무슨 말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