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병원에 입원하는 환자라면, 같은 말을 여러번 반복할 준비가 있어야 한다. 어떻게 병원에 왔으며 그전에는 어땠느냐는 질문을 인턴, 레지던트, 간호사가 각각 따로따로 물어보니까. 그게 다가 아니다. 병원실습을 도는 학생도 거기 가세한다. 같은 말을 4번씩 하려니 짜증이 나는 것은 당연지사, 게다가 요즘은 학생인지 아닌지 귀신같이 알아보니, 묻고 싶은 것도 못묻고 문전박대를 당할 수도 있는 법이다.
내시경을 할 때도 그렇다. 아무리 안아파졌다 해도 길다란 호스가 목에 들어오는 것은 무척이나 괴로운 경험이다. 빨리 빼주면 좋겠지만 교수는 마냥 느긋하다. "저기 pylorus 부근에 궤양이 보이지?" 교수의 말에 레지던트나 학생은 틈새를 비집고 궤양을 관찰하려 아우성이다. 이런 것에 대해 교수님께 여쭤봤더니, 이렇게 답하신다. "대학병원 오려면 그정도는 각오해야지!" 의사는 교육을 통해서 길러지는지라 누군가는 희생을 해야 하는 법이지만, 그 누군가는 대체 누가 되는가? 이런 생각을 오랫동안 해오다, 어느 책에서 그에 관한 내용을 보게 되었다. 가완디라는 미국 외과의사가 지은 <나는 고백한다,현대의학을>이라는 책인데, 9쇄까지 찍은 걸 보니 꽤 많이 팔렸고, KBS 선정도서이기도 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오래전부터 의학계는 환자들에게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무와 신출내기 의사들에게 경험을 쌓게 해야 한다는 두가지 상반되는 명제 사이에서 고민해 왔다. 레지던트 제도는 감독과 누진적 책임부과를 통해 잠재적 위험을 완화시키고자 하는 시도다]
그는 그게 신출내기 의사 뿐 아니라 환자들에게도 이익을 가져다 준다고 한다. [연구결과를 보면 수련의 제도가 있는 병원들이 없는 병원들보다 결과가 좋았다. 레지던트들은 미숙할지 몰라도 환자를 체크하고 질문하고, 그리고 스태프 선생들로 하여금 긴장을 놓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이런 딜레마에 빠진다. [하지만 초보의사가 ...처음 몇번의 가슴 떨리는 순간들을 피해갈 방법은 아직 없다. 아무리 많은 안전장치를 해놓는다 해도, 그러한 케이스들은 노련한 의사보다 초보의 경우에 잘 안될 때가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특진비를 부담할 능력이 된다면 레지던트보다는 교수에게서 수술을 받고자 한다. 가완디의 말이다. [스태프 선생 가족이 수술을 받아야 할 경우 병원사람들은 수련의들을 얼마나 참여시킬까 고심한다....중심정맥관을 삽입해야 될 경우 초짜한테는 맡기지 않는다....레지던트가 혼자 집도한다면그 대상은 대체로 환자들 중에서 가장 힘없는 이들일 경우-무보험환자, 주정뱅이..-가 많다]
그의 말은 계속 이어진다.
[이는...참 난감한 진상이다....최상의 의료서비스에 대한 환자의 권리는 의사의 수련이라는 목적보다 분명 상위에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실습대상이 되는 것은 싫어하면서 숙련된 의사를 원한다. 하지만 만일 누군가를 훈련시키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모두의 몫이다....]
어쩌겠는가. 처음부터 숙련된 의사는 없는 것을. 숙련된 의사를 배출하기 위해 누군가는 희생할 수밖에 없고, 다른 모든 분야에서처럼 대개의 희생자는 힘없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