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 사람이 쓴 책을 번역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최고의 번역가인 이윤기님의 말에 따르자면 "번역이란 텍스트의 문장과 번역문장의 무게를 천칭에다 얹고 달아보는 예술"이란다. 무게다는 게 뭐 어렵냐고 할지 몰라도, 하여간 어렵다. 황보석 씨는 폴 오스터의 작품을 주로 번역했는데, 난 그의 번역에 별 불만이 없고, 최근작인 <환상의 책> 역시 무난한 번역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런데 몇가지 대목에서는 의문점이 있다.
1.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음에는 연이어진 재빠르고 찌르는 듯한 동작으로 옆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66쪽)]
밑줄친 부분들이 대충 비슷한 단어가 나열되어 있어 눈에 거슬린다. 원문에는 'And then', 이런 식으로 되어 있을텐데 그걸 곧이곧대로 "그리고 다음에는"이라고 번역하는 게 옳은 것인가? 예컨대, I'm fine thanks and you?라는 문장을 "난 괜찮은데 그리고 너는?"이라고 하지는 않지 않는가?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것은 의역으로, 위의 문장은 '그리고'와 '다음에는'을 생략한 채 "연이어 재빠르게 찌르는 듯한..."으로 해도 별 무리가 없을 듯싶다. 문제는 번역자가 그렇게 자의성을 갖기 시작하면, 작가의 의도와 무관한 번역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일게다. 그걸 어떻게 조화를 이룬담?
2. [정확히 알렉스가 쓴 그 말은 그의 전형적인 말투였다(79쪽)]
이것도 읽기가 조금 거슬렸다. 원문에는 'Correctly' 가 앞에 있다해도, 놓이는 위치가 뒤쪽이면 더 좋지 않을까? 이렇게 말이다. "알렉스가 쓴 그 말은 정확히 그의 전형적인 말투였다" 아니, '정확히'를 빼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른다.
3. 112쪽을 보면 '유대 인'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즉, '유대'와 '인'을 띄어써넣고 있는데, 네이버의 백과사전을 아무리 봐도 난 '유대 인'으로 표기한 건 찾을 수가 없었다.
4. [...우리가 일을 하지 않을 때는 그 짓을 할 거요. 우리는 집안 어느 곳에서나 그 짓을 할 거고....(376쪽)] 이건 주인공인 짐머가 엘머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하는 말이다. 아내를 잃고 자포자기의 인생을 살다가 새로운 희망에 부풀어서 하는 말인데, 좋은 사람끼리 만나서 하는 사랑의 행위가 왜 '그짓'으로 묘사되야 하는지 이해할 길이 없다. 차라리 '사랑을 할 거요'로 하면 뜻도 다 통하고 더 숭고해 보이지 않는가?
이상 '딴지걸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