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주인을 잃은 치아와가 우리집에 왔다. 새끼를 낳은 적이 있던 암컷, 나이는 세살. 그 녀석을 데려오느라 그전에 키우던 강아지를 다른 곳에 보내야 했기에, 나로서는 치아와가 좋을 리가 없었다. "오기만 해봐라. 당장...!" 하지만 치아와를 본 순간 그런 마음은 모두 사라졌다. 큰 눈에 그보다 더 큰 귀를 가진 귀여운 녀석이 현관 앞에서 떨고 있었으니까. 지금은 쉬츠나 마르치스, 테리어같이 이쁜 개들이 인기지만, 당시는 머리가 좋은 치아와도 꽤 인기있는 개였다.

그 다음날, 우리 가족은 모두 온천에 놀러갔고, 중간고사를 앞두고 있던 나는 빈집에 덩그라니 남았다.  침대에 엎드려 공부를 하고 있는데, 치아와가 긴 발톱을 딱딱거리며 내게로 왔다. 내가 친하게 지내려면 멀찌감치 도망가는 수줍음을 보였지만, 기본적으로 애완견들은 외로움에 그다지 익숙치 않아, 얼마 후 치아와는 내 침대에 나란히 엎드려 있었다. 다음날 우리 가족이 왔을 때, 치아와는 이미 나에게 마음을 주기로 작정한 뒤였다.

치아와와 난 잘 어울리는 한쌍이었다. 내가 엎드려서 공부를 하면 치아와는 내 등에 또아리를 틀고 잠을 자곤 했다. 모르는 사람이 찾아오면 갈색의 등 한가운데 난 검은 털을 치켜세우며 맹렬히 짖었고, 누군가 날 때리거나 하면 벤지가 그러는 것처럼 그 사람을 향해 열심히 짖었다. 난 치아와와 정말 친하게 지냈고, 누나는 치아와를 '올캐'라고 부르며 놀리기도 했다.

그 행복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다. 우리집에 하얀 진돗개 한마리가 생겼다. 보배라는 이름의 얌전하게 생긴 숫놈이었는데,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성격이 흉포해, 우리 앞집에서 기르는 애완견을 물어죽이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온 나에게 어머님은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 주셨다. "치아와랑 보배가....했다"

그 큰놈이 저 조그만 치아와랑? 난 지하실로 보배를 끌고 가 두들겨 팼는데, 내 생애에서 개를 때린 건 그게 유일하다. 아버님도 화가 나셨는지 보배를 내쫓으셨는데, 난 그런 걸 말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지금사 돌이켜보면 그건 너무도 잔인한 행위였다. 집안에 여자가 있고, 자기는 몇년을 굶었다. 이런 경우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명약관화하지 않는가? 보배는 몇번이나 우리집 대문 앞에 있었지만, 그때마다 아버님은 막대기를 휘둘러 보배를 쫓아냈다 (그 광경을 본 건 아니지만 그게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왜 그렇게 보배에게 가혹했던 걸까? 그전에 있던 조리라는 개는 우리 할머니를 물고, 여동생 친구를 물어 부모님으로 하여금 그집에 가서 머리를 조아리게 만들었지만, 쫓겨나지는 않았는데. 누나가 그랬던 것처럼, 아버님도 치아와를 며느리로 생각했던 걸까? 아무리 그가 잘못을 했더라도, 그 사태를 수수방관한 나도 참 잔인한 놈이었다. 내가 아버님께 사정을 했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겠지만.

몇달 후, 치아와는 새끼를 두마리 낳았다. 그 조그만 녀석이 어떻게 그런 큰개 두마리를 품고 있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물론 그 녀석들은 치아와를 전혀 닮지 않은 완벽한 잡종이었어도, 어린 동물이 다 그렇듯이 무척이나 귀여웠다. 치아와는 그 녀석들과 같이 머무르며 강력한 모성애를 과시했지만, 그 둘은 결국 다른 집으로 보내져야 했다. 또 얼마가 지나서, 치아와는 아프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병원에 다녔지만 별로 나아지는 건 없었다. 그다지 신뢰하지 못할 가축병원 의사는 치아와가 '자궁암'이라고 했다. 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암이라니? 아픈 와중에도 치아와는 날 보면 몸을 일으켰고, 꼬리를 쳤다. 그로부터 며칠 후, 학교에서 왔더니 치아와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죽었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남을 줬다"고 했다가 횡설수설하셨는데, 가장 신빙성 있는 주장은 누나가 말한 건데, 어딘가에 버렸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난 치아와와 이별했다.  집안은 허전하기만 했고, 그럴 때마다 난 그녀 생각을 했다.

지금 내 곁에는 치아와 대신 벤지가 웅크리고 자고 있다. 난 치아와가 버려졌다는 누나의 주장을 믿는다. 힘이 없던 그땐 내가 치아와를 지켜주지 못했지만,  "집 나간다" 혹은 "밥 안먹는다"는 주장이 어머님께 그대로 먹히는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16세, 기력이 쇠했다는 이유로, 그보다는 내 앞길을 막는다는 이유로, 어머님은 벤지를 안락사 시키자고 하지만, 난 절대 그럴 생각이 없다. 모르겠다. 벤지가 많이 아프고, 그로 인해 괴로워한다면 생각해 보겠지만, 우렁차게 짖는 모습은 아직도 변함이 없는데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그를 버려야 하겠는가? 이별이 예정된 생명체와 인연을 맺는 것은 참으로 마음아픈 일이기에 앞으로는 개를 기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지만, 벤지는 내가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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