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분 토론’을 벤치마킹한 수업이 인터넷 자료만 뽑아오는 학생들의 무성의 때문에 ‘책을 말한다’로 바뀌었다는 건 전에 말한 적이 있다. <헬로우 블랙잭>을 읽고 토론을 시킨 첫날, 수업이 끝나고 난 뒤 이렇게 말했다.
“정말 재미있네요.”
쟁점 사안을 놓고 조원들간에, 그리고 방청객으로 분한 학생들간에 험악한 분위기까지 연출하며 설전을 벌이는 장면이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첫날 이정도니까 둘째날은 더 잘하겠지 하는 기대를 안고 강의실로 갔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오늘 발표조는 정말이지 엉망이었다. 책 제목이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이었는데, 그렇게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조원들간에 제대로 토론도 이루어지지 못했고, 조원들 중 준비를 전담했다는 학생이 33분을 늦게 오는 바람에 그저 황당할 뿐이었다. “오고 있데요”라는 말, 난 참 싫어한다. 그럼 오고 있겠지 제 자리에 서 있냐? 그 동안 별의별 이야기를 다 했던 것 같다. 테니스 치는 이야기, 20대에는 애인 사귈 욕심만 버리면 행복해진다는 것, 문학계에 만연한 표절 이야기... “아직도 안왔어요?” “이제 거의 다 왔데요.”
결국 그 학생이 왔다. 과연 얼마나 대단한 걸 준비했을까? 그 학생은 일단 책 요약본을 낭독했다. 첫줄을 듣자마자 예감이 이상해진 난 그가 읽는 구절을 잽싸게 받아 적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만큼 다양한 사연들이 있다.... 14시간 동안 수술을 해서.....저자는 쉽게 옳고 그름을 단정짓지도 않는다...”
지리멸렬한 토론, 그리고 이어진 기초모임. 내 방에 들어와 한숨을 돌리고 나서 구글을 뒤졌다. 그 요약본과 동일한 내용을 찾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건, 추천을 8개나 받은 사요나라님의 탁월한 리뷰와 한글자도 틀리지 않았다.
[저자는 누군가의 아픔을 호기심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만큼 다양한 사연들이 있다. 14시간동안 의사들이 달려들어 수술을 해서 목숨을 살려주어도 목이 쉬었다고 행패를 부리는 환자도 있고, 오랜 치료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죽었을 때 오히려 의사들의 노력에 고마워하는 사람도 있다.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이 유독 감동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타인의 삶을 바라보는 저자의 경건한 태도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얄팍한 글 솜씨로 그들의 경험을 함부로 재단하지도 않고, 쉽사리 옳고 그름을 단정 짓지도 않는다. 그저 바라보면서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할 뿐이다.]
작년의 쓰라린 기억 때문에 난 학생들에게 인터넷에 올라온 내용을 표절하는 것에 대해 충분히 경고를 했었다. “전 그런 거 찾아내는 게 취미예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경고는 별반 소용이 없었나보다. 대학에 들어온지 한달도 안된, 하지만 이미 편함에 길들여져 버린 학생들, 이들을 무슨 수로 말릴 수 있을까? 왜 그들은 자기의 언어로 책을 해석하기보다, 남이 쓴 멋드러진 글을 베끼는 데 급급한 걸까. 그렇게 하면서 일말의 죄의식이라도 가졌을까? 학생들에게 잘 해주는 게 기본 모토지만,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정나미가 팍팍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