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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아 - 어느 시골의사 이야기 ㅣ 존 버거 & 장 모르 도서
존 버거 지음, 장 모르 사진, 김현우 옮김 / 눈빛 / 2004년 11월
평점 :
존 버거의 <행운아>를 로드무비님으로부터 받을 때만 해도 난 별 생각이 없었다. 책은 얇았고, 사진도 많아 금방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읽어 갈수록 난 책의 무게에 압도되었으며, 쉬이 책장을 넘길 수가 없었다. 귀감이 되거나 이해가 잘 안갈 때면 빨간 펜으로 줄을 치는데, 책 후반부에는 같은 문장에 두세번씩 줄을 쳐야 했다. 꽃을 처음 본 소년이라도 그게 아름다운 걸 알듯이, 내공이 약한 나도 “이거 대단한 책이다”라는 게 느껴질 정도다.
‘의사가 되기까지 준비과정이 그렇게 길고 돈이 많이 드는 것이 아니라면 모든 부모들이 기꺼이 자신의 자녀들을 의사로 만들려고 할 것’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나라에서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은 죄다 의대를 지망해, ‘의대 밑에 서울대 있다’는 말이 나돌고 있을 정도다. 우리 때만 해도 의대를 온 이유를 물으면 “부모님이 가래서” “성적이 좋아서”가 주를 이루었는데, 평생 직장의 개념이 무너진 요즘에는 “안정적인 수입을 올릴 수 있어서”라는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의사들이 아무리 죽는 소리를 한다해도, 다른 직장보다야 훨씬 나은 것은 사실이고, 수험생들 역시 의사들의 엄살에 속지 않고 의사의 꿈을 키운다. 의사에 대한 사명감을 갖는 대신, 훗날의 수입만을 위해 의대에 가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분명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한탄해 마지않는다.
“현재 사회가 인간의 삶을 허비하게 만들고...공허하게 만들고 있다...또한 그런 사회에서 단순히 의료 행위를 판매하는 단계를 넘어선 의사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기초의학을 전공한 탓에 환자와 만날 일은 지금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나야 이미 틀렸지만, 이제 막 의대에 온 학생들이라면 이 책을 한번쯤 읽어봤으면 좋겠다. 한 세 번쯤 읽는다면, 의대 올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해도, ‘의료 행위를 판매하는 단계를 넘어선 의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 참, 난 의사가 될 사람들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으니, 이 책을 한번씩 읽어 보라고 권해야겠다. 내게 이 책을 읽을 행운을 주신 로드무비님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