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책 제목은 관계 없구요, 지은이 이름이 '심복순'입니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조교를 그만두면서 난 학교에 있던 짐들을 차에 실었다. 그때 내 심복이 날 도왔는데, 난 심복이 안에 있는 줄 모르고 트렁크 문을 닫아 버렸다. 피가 났지만, 심복은 “괜찮아요”라고 말하면서 계속 책을 날랐다. 심복의 코에는 그때부터 흉터가 생겼고, 그 흉터는 지금도 남아있다. “나이가 드니까 흉이 더 뚜렷해지는 것 같아요”라고 가끔 날 공박하는 심복, 그당시 내가 심복을 책임져야 한다는 주위 여론에 곤혹스러웠었다.
내가 술독에 빠져 있을 때, 내 학위논문을 누구보다 걱정해주고, 실험을 도와준 사람이 바로 내 심복이다. 그녀 덕분에 난 박사가 되었고, 그 논문은 외국잡지에 실렸다. 내가 다른 대학에 발령이 난 이후, 모교와 날 이어주는 건 바로 심복이었다. 모교에 갈 때마다 그녀는 언제나 날 반갑게 맞아줬고, 이런저런 일들-예를 들면 지도교수님이 날 괘씸하게 여기고 있으니 빨리 찾아뵈라-을 내게 말해줬다.
한달 전, 거의 확정적이었던 모 대학 교수임용에서 탈락한 날, 심복은 내게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저 안됐어요. 흑흑”
난 그날 그녀와 만나 술을 마시면서 이런 다짐을 했다.
“이렇게 된 것도 하늘의 뜻이군요. 제가 우리 학교에 교수자리 하나 만들어 볼께요. 꼭이요!”
지난주 금요일, 심복은 내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주 결혼식-모교 교실후배 결혼식이 대전에서 있다-어떻게 가실 거예요? 혼자 가기 심심하시면 저희랑 같이 가시죠”
난 알아서 가겠다고 전화를 끊었다.
엊그제, 그녀가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왔다.
심복: 선생님, 저 암이예요. 유방암이래요.
나: ...........
심복: 제가 지금 농담하는 것 같죠?
나: 아니요....
가슴에 몽우리가 만져져서 병원에 갔고, 조직검사 결과 암으로 판정났단다. 겨드랑이에 뭐가 만져지냐고 물었다. 만져진단다. “암이 전이된 거라고 하던데요”
내 짧은 지식으로 겨드랑이까지 암이 갔다면 그건 4기, 다시 말해서 말기였다.
“선생님, 저 살 수 있나요?”
난 그렇다고 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거밖에 없었다.
“아주 어렵고 힘든 싸움이 될 거예요. 힘 내세요”
71년생이니 이제 겨우 34세, 유방암에 걸리기엔 너무 젊은 게 아닐까. 더구나 유방암은 아이를 안낳은 사람에서 걸리는 것, 그녀에겐 이미 이쁜 아들이 있다. 그런데 왜?
곧이어 그녀의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남편: 의학적으로 좀 판단해 주세요. 어떻습니까?
나: 가슴을 잃을 수 있어요...
남편: 그거야 괜찮지만, 살 수는 있습니까?
그때 난 네이버에서 유방암의 5년 생존률을 검색하고 있었다. ‘3기가 되면 50% 이하로 떨어진다’ 하지만 난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요즘은 다 오래 살아요. 제 친구 어머님도 십년 전에 수술받고 잘 사시는데요”
난 미안하다고 말했다. 미리미리 유방암 검사를 하게 하지 못한 게 정말 미안했다. 이제와서 하나마나한 소리지만.
그녀의 목표는 이제 생존 자체가 되었다. 남편을 위해, 그리고 아이를 위해, 그녀는 꼭 살아야 한다. 암에 걸린 사람들 중 건강하게 잘 사는 사람도 많이 있다. 하지만 그건 겉보기에만 그럴 뿐, 암과 싸우는 것은 가족 전체, 특히 당사자에게 많은 고통을 요구한다. 그 힘든 과정을 그녀가 무사히 이겨 내기를 비는 것밖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이제 그녀를 보기 위해 모교가 아니라 병원에 가야 한다. 슬프다.
* 알라디너 분들도 수시로 누워서 가슴을 만져 보시길. 몽우리가 잡히는지 꼭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