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쓰기전: 피의 수요일에 감명을 받은 나머지, 진우맘님에 대한 오마주 소설을 쓰기로 했습니다.
다 쓰고 난 뒤: 잠이 쏟아져서, 결말이 엉망이네요. 이해해 주세요. 아, 그놈의 잠이 원수야...
---------------
박하사자
"오오오---" 여우가 울부짖는 소리가 났다. 잠에서 깬 진우맘은 휴대폰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 벨소리는 병원에 검사를 받기 위해 알라딘을 떠난 파란여우를 그리워하는 맘에서 그녀가 선택한 것이었다.
"여보세요. 탐정 진우맘입니다"
"빨리 와주셔야겠습니다. 상태가 좀..."
스쿠터를 타고 현장으로 가면서 진우맘은 머리를 갸웃거렸다. 형사가 해준 얘기는 다음과 같았다. 해가 저물 무렵, 중구 알라딘 본사 앞에 한 여자가 이마에 수건을 동여매고 나타났다. 한참 동안 알라딘 건물을 바라보던 그녀는 난데없이 두 손을 하늘로 향한 채 "나 도로 물릴래!"라고 외쳤다는 것이다. 그녀는 곧 현장을 지키던 사복경찰에 의해 구치소로 끌려갔는데, 범행 동기에 대해 일체 함구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진우맘님을 불러 달라고 했습니다"
"왜 하필 나를?"
"그건 저도 모르지요. 하여간 빨리 와주세요"
"여깁니다"
면회실의 문을 연 진우맘은 흠칫 놀랐다. 의자에 앉아있는 여인이 너무도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자존심이 상한 나머지 확 나가 버릴까 하다가, 진우맘은 겨우 마음을 추스렸다.
"날...보자고 했나?"
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왜 하필 나를? 난 너를 모르는데?"
여인이 씩 하고 웃었을 때, 진우맘은 숨이 넘어갈 뻔했다.
'저런 뇌쇄적인 미소는 처음이야!'
하지만 그녀는 여인의 다음 말에 더더욱 놀랐다.
"진우맘, 명탐정이자 알라딘 인기서재의 주인!"
"헉! 나, 날 알아?"
"진우맘! 나 스타리야!"
스타리 스카이, 알라딘에서 '스타리의 별다방'의 운영자로 더 널리 알려진 그녀가 지금 눈앞에 앉아 있는 것이다.
"스타리, 이렇게 이쁜 줄 몰랐어!"
진우맘은 그간 초절정섹시미녀를 자처했던 자신이 부끄럽게 여겨졌다. 흥분이 가시자 진우맘은 탐정 본연의 자세로 돌아갔다.
"자, 말해봐 스타리. 왜, 왜 그런 짓을 한거지?"
물 한모금을 마신 스타리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스타리가 책을 왕창 주문한 것은 지난 5월 말이었다. 사고픈 책을 적다보니 39권이나 됐다.
'에라 모르겠다! 40권 채우자!' 스타리는 평소 사고픈 마음이 없었던 <대통령과 살모사>를 써 넣음으로써 40권을 주문하는 첫 번째 알라딘 고객이 되었다 (이후부터 책을 왕창 사는 걸 '스타리 주문'이라고 부른단다).
"그 전에 알라딘 사람들에게 물어봤지. 사고픈 책이 많은데 어떡할까, 하고. 그랬더니 다들 이러는거야. '질러버려!' '일단 저지르고 봐요!' 그래서 샀지"
"그래서?"
"그래서...."
4일 후, 기다리던 책이 왔다. 평소 오던 택배 아저씨가 아니어서 이름을 물어봤다.
"갈대라고 해요!" 얼핏 듣기에도 기분 나쁜 목소리였다. 갈대는 냉장고 박스만한 상자를 턱 던지시며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왜 이렇게 한꺼번에 많이 시키는 거예요??!!!"
"아, 아니 그게.. 제가 원래 그러려던 건 아니고요.. 날씨도 덥고 경제도 어렵다 보니 그냥.." "(이기이기 미친나..) 째릿"
"(깨갱) 자, 잘못했어요. 담부터는 꼬옥 3만원어치씩만 시킬게요. 제가 미쳤었나 봐요오오~ ㅠㅠ"
그렇게 갈대를 보내고 난 뒤, 스타리는 뽀사질 뻔한 허리를 부여안으며 박스를 현관에서 자기 방으로 밀고갔다. 방안 가득히 쌓인 책을 보면서 그녀는 가슴이 벅차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틀 후, 동창회 자리에 나간 스타리는 자신이 이상해진 걸 느꼈다. 삼겹살에 소주를 잔뜩 먹었는데, 자기도 모르게 종업원에게 카드를 내민 것이다.
"야, 이걸 왜 니가 다 사?" 동창의 질책에 스타리는 이렇게 답했다. "뭐 어때? 내가 이틀 전에 책 40권도 한번에 지른 놈이야!!"
그건 시작이었다. 길을 가다 맘에 드는 옷이 있으면 카드로 그었고, 고급 화장품을 마구 사들였다. 한 술집에 가서는 골든벨을 울리기도 했다. 역시 카드로. 급기야 스타리는 다음달 요금을 연체했지만, 그녀는 다른 카드로 쇼핑을 계속했다. 7월 14일, 결국 그녀는 신용불량자 리스트에 올랐다.
"이 모든 게 다 40권을 한꺼번에 산 때문이라고!"
울부짖는 스타리를 진정시키느라 진우맘은 진땀을 빼야 했다.
"빚이 얼만데?"
스타리가 다시 울먹였다. "처, 천만원이 넘어.... 무, 무서워, 진우맘. 나 감옥 가는 거야?"
진우맘은 휴지를 꺼내 스타리의 코를 풀어 줬다.
"아니야 스타리. 팽---- 그런 일로 감옥에 가진 않아. 그리고, 패애앵--- 네게는 우리가 있잖아"
진우맘은 지갑에서 천원짜리 석장을 꺼냈다.
"일단 이거라도 받아 둬. 도움이 될거야"
스타리는 진우맘이 내미는 돈을 덥썩 받았다.
"니 뒤에 우리가 있다는 걸 잊지 마!"
집으로 가던 진우맘은 낯익은 사람이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는 걸 보고 스쿠터를 세웠다.
"조선인! 나야, 나!!"
하지만 진우맘을 본 조선인은 홱 고개를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 왜그러지?"
어리둥절해진 진우맘은 담벼락에 숨어있는 사람을 향해 걸어갔다.
"후다닥!"
진우맘이 가까이 오자, 그 역시 내빼기 시작했다. 달리기라면 자신있는 진우맘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우맘은 그를 따라잡았다. 사정권 안에 들어서자 진우맘은 몸을 날려 그의 허리를 붙잡았다.
"으으윽!"
구슬픈 비명 소리와 함께 그가 바닥에 뒹굴었다.
"넌 누구냐?"
진우맘은 그가 쓰고 있던 복면을 벗겼다. "아니 너는....!!!!!"
그는, 아니 그녀는 수니나라였다. "도대체 왜 도망간 거야? 나야 나, 진우맘이라고! 36-24-37의 그 진우맘!!!!"
수니나라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제, 제발 그냥 가줘. 아무것도 묻지 말고"
할수없이 진우맘은 그녀를 보내줬다. 잠시 뒤, 스쿠터로 향해가던 진우맘은 수니나라의 주머니에서 빼낸 봉투를 꺼냈다. 봉투 안에는 2만원이 들어 있었다.
다음날, 알라딘에는 진우맘 이름으로 다음과 같은 공고가 떴다.
[우리 친구 스타리를 도웁시다! 스타리가 지금 신용불량자가 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 모두 스타리님께 온정의 손길을!]
하지만 예상외로 모금 실적은 저조했다.
'세상에, 2만3천원이 뭐야? 안되겠다. 전화로 독려해야지!'
"마태우스, 재벌 2세라더니 왜 한푼도 안내요? 뭐? 바쁘다구요? 인터넷 뱅킹으로 보내면 얼마나 걸린다고 그래요? 술집에서 술마셔야 한다고? 에라 이놈아!"
"스윗매직, 돈 좀 내. 우리 친구잖아! 뭐? 돈 받으러 부산까지 오라고? 너 내가 못갈 줄 알고?"
"판다78, 스타리랑 친했잖아? 뭐? 자기가 좋아서 쓰다 그런 걸 왜 우리가 갚아주냐고? 너, 거기 꼼짝말고 있어!! 당장 달려간다!"(판다의 눈 주위가 검게 된 것은 이때부터라고 한다)
고민하고 있는 진우맘에게 책읽는나무가 서재주인보기로 글을 남겼다.
"동생, 고생이 많소. 가진 게 없어 많이는 못도와주지만 좋은 아이디어를 하나 제공하겠소. 듣자니 스타리가 미인이라는데, 그걸 이용하면 안되겠소?"
진우맘은 귀가 번쩍 뜨였다. 진우맘은 다시금 면회실로 갔고, 한결 초췌해진 스타리의 모습을 얼마 전에 구입한 디카로 찍었다. 그리고는 사진과 함께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알라디너 여러분, 저 스타리에요. 순간의 실수로 이 지경에 이른 것을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한번만 도와 주세요, 네?]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우리끼리 서로 돕고 살아야지요. 얼마 안되지만 적금 깼어요. 메시지 드림-
-님이 미인이라서 이러는 건 아니지만... 이번학기 등록금이어요. 놀고 싶었는데 휴학하죠 뭐. 자몽상자-
-구두를 판 돈 전부를 쾌척합니다. 바람구두. p.s. 아, 무슨 정치적 의도가 있는 건 아니구요, 순수한 뜻이랍니다-
-재벌2세가 이럴 때 필요한 법이 아니겠습니까? 스타리님, 힘내세요! 마태우스-
-너무 부담은 갖지 마세요. 집 담보로 대출 받았습니다. 하얀마녀-
진우맘은 망연자실했다. '아, 알라딘마저....' 진우맘은 자신이 미녀인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틀간 걷힌 돈은 천만원을 약간 상회했다.
"최선을 다해 걷었는데, 800만원밖에 안돼. 미안해"
스타리는 눈물을 글썽였다. "진우맘, 고마워. 200은 내가 어떻게 해볼게"
그날 진우맘은 일가친척을 고기집에 불러 실컷 먹였다.
"진우맘아, 니가 무슨 돈이 있다고?"
"걱정 마세요! 오늘은 제가 쏩니다. 음하하하"
다음날, 빚을 모두 갚은 스타리는 구치소를 나왔다. 스타리는 지갑에서 카드 세장을 꺼내 반으로쪼갰다.
"이제부터 카드 안쓸 거야! 카드는 빚이라는 걸 절실히 깨달았거든"
"그래, 그렇게 해. 그리고...이거 먹어!"
진우맘은 주머니에서 두부를 꺼냈다. 두부를 한 움큼 입에 문 스타리의 눈에서 다시금 눈물이 났다.
진우맘은 스타리의 서재에서 코멘트를 분석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상해!'
사고싶은 책이 많은데 어쩌면 좋겠냐는 스타리의 페이퍼에 주렁주렁 달린 답글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살 것을 부추기고 있었다.
아영엄마; 기냥 와장창 사버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암요~ 그게 좋고 말고요~
밀키웨이: 제 경험에 비추어보면 일단 저지른다! 에 한표!
새벽별을보며; 아따 뭘 망설인단가? 저질러 버려!
호랑녀: 카드는 뒀다 모합니까? 확---- 그으라고 있는 게 카드요! 어흥!
책울타리: 같이 지르자, 동생아!
멍든사과: 뭘 망설이슈? 젊다는 게 뭐유?
수니나라: 40권 가지고 뭘 그래? 난 한창 때 50권도 저질렀다구!
tarsta: 옛말에 책은 일단 사고보고, 사과는 의심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조건 사야 합니다.
68개나 되는 코멘트 중 생각해 보라는 글이 하나도 없다는 게 기이하기만 했다. 진우맘은 다른 서재로 갔다. 판다78의 글이 보였다.
[바로 어제 샀건만, 오늘도 또 사고 싶다...지금으로서는 이것들만 사도 어느 정도 갈증이 해소될 것 같은데... 눈 딱 감고 지를까요? 물만두님, 한 말씀 부탁드려요. ^--^;;;]
그 밑에 달린 코멘트를 보고 진우맘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물만두의 코멘트는 보이지 않고, 아까 그 멤버들이 그대로 똑같은 리플을 달고 있다.
"뭔가 있다!" 진우맘의 손등에 힘줄이 솟았다. 진우맘은 스쿠터를 잡아타고 수니나라의 집으로 향했다.
"어디 가는 거지?"
진우맘을 본 수니나라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커다란 가방을 메고...흠...어디 휴가라도 가나?"
수니나라의 큰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모든 것을 포기한 듯, 그녀가 고개를 떨궜다.
"그래, 다 얘기할게..."
"털썩!" 수니나라의 얘기를 듣고 난 진우맘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수니나라는 카드업계의 큰손 밑에서 알바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큰손은 알라디너들이 카드를 많이 쓰게 해 거덜을 냄으로써 알라딘을 접수할 꿈을 갖고 있어...그래서 우린 누군가 책을 살까 고민하면 우르르 몰려가 사도록 충동질을 하지. 앤티크가 서재를 떠난 것도 바로 카드빚 때문이야"
"냉열사도?"
"응. 그래도 그녀는 한달간 새우잡이를 하면서 빚을 갚았으니, 운이 좋은 경우지"
진우맘의 손등의 힘줄이 더더욱 굵어졌다. "이런 나쁜 놈들! 그렇다면 지난번 2만원은 알바비?"
수니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큰손은 누구야? 조선인이야?"
"아니"
수니나라는 콧물을 닦고 말을 이었다. "그녀는 연락책일 뿐이야. 큰손이 누군지는 나도 몰라"
진우맘은 그날부터 조선인을 미행하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큰손과도 만날 거야. 그때를 노려야 해'
"미행은 없었지?"
조선인의 말에 멍든사과는 히죽 웃었다. "내가 누굽니까? 멍든 사과 아닙니까. 어서 돈이나 주슈"
"옆에 있는 얘는 누구야?"
멍든사과가 파안대소했다. "얘는 털짱이라고, 제가 요즘 키우는 애죠. 쓸만해요"
"조심해야 돼. 요즘 진우맘이 냄새를 맡은 것 같아"
접선을 끝낸 조선인은 택시를 집어타고 어디론가 갔다. 진우맘은 스쿠터를 타고 그 뒤를 쫓았다. 호화주택이 몰린 곳에서 내린 조선인은 뒤를 계속 쳐다보더니, 3층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진우맘은 떨리는 마음으로 대문 쪽으로 다가섰다.
'이, 이럴 수가!'
문패에 씌어 있는 글자는 분명 '마냐'였다. 마냐가 바로 카드업계의 큰손이었던 것이다. 순간 과거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몇 년 전 알라딘을 해킹하던 일당의 옷에 새겨진 'M'이라는 글자, 알라딘의 설계도를 훔쳐간 일당의 이마에 씌여 있던 '마(馬)'자, 알라딘 금고를 털다 붙잡힌 자들의 구호 "남은 건 책밖에 없다"..... 알라딘 관련 범죄의 배후에는 언제나 마냐가 있었던 것이다. 진우맘은 이 사실을 알라딘 특공대에 알렸고, 폭스바겐을 비롯한 차력도장 대원들은 앙탈하는 마냐를 붙잡아 범행 일체를 자백하게 했다.
"왜 하필 알라딘이지?"
진우맘의 질문에 마냐가 씩 웃었다.
"너같으면 교봉이나 그래 스물넷을 갖고 싶겠니?"
세월이 흘렀다. 연보라빛우주가 사고픈 책이 열권 있는데 어떻게 할까를 고민했다. 그러자 이런 코멘트들이 달렸다.
검은비: 일단 세권만 사고, 다 읽으면 또 사.
이파리: 그래, 그게 좋겠다. 책이 왕창 밀려 있으면 그것도 스트레스야.
플라시보: 전 세권도 많다고 봐요. 두권만 일단 사세요.
연보라빛우주는 결국 책 두권을 주문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