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윤경 작가님이 단편집을 내십니다.  다음 주 쯤 서점에 깔린다는데, 영광스럽게도 제게 발문을 부탁하셨습니다. 책에서 제 발문을 보면 놀라실까봐, 여기다 미리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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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와 안경 사이

   서민(오빠 친구)


“오빠, 저 단편집 내는데 발문 좀 써주세요.”

심윤경 작가(이하 직위 생략)는 나한테 늘 ‘오빠’라는 과분한 호칭을 쓴다. 나이야 분명 내가 많지만, 살면서 작가 분들에게 진 엄청난 빚을 생각하면 크게 보아 높임말의 일종인 오빠라는 호칭은 온당치 못하다. 그럼에도 그가 그러는 건, 심윤경이 내 친구의 동생이기 때문이다.


나보다 5킬로그램이 더 나가던 친구집에 놀러갔을 때 난 그를 처음 봤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여고생답지 않게 중후한 목소리를 가진 그는 가볍게 고개를 숙임으로써 오빠 친구에 대한 예를 표했다. 친구로부터 지나치게 똑똑하다는 말을 하도 여러번 들은 터라 그의 행동 하나하나는 다 깊은 뜻이 있어서 그러는 것처럼 보였다. 친구 어머님이 차려주신 저녁을 먹을 때의 일이다. 내가 연거푸 세 번 조기 살을 집어먹는 걸 눈살을 찌푸리며 바라보던 심윤경은 네 번째로 젓가락을 갖다대자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 오빠만 육식이고 우린 뭐, 초식동물입니까?”


생선이 과연 육식인지는 따져봐야겠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난 그가 크게 될 인물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심윤경은 주옥같은 장편들을 세상에 내놓음으로써 내 판단이 옳았음을 증명해 줬다. 현실에 영합하는 작가들이 대세를 이루는 우리네 문학판에서 심윤경은 현실과 치열하게 싸워나가는, 김정란 시인이 말한 것처럼 구심력보다 원심력을 지향하는 소설들을 써나가고 있다. 그런 그에게 아쉬운 점은 그가 과작을 하는 작가란 사실이다. 소위 이름 있는 작가들 중 71.5%가 1년에 1권 이상의 책을 내는데 반해 2002년 <나의 아름다운 정원>으로 데뷔한 심윤경은 데뷔작을 포함해서 달랑 세권의 책만 썼을 뿐이다. 난 그에게 물었다. 왜 다른 작가들처럼 단편집을 내지 않는지, 문예지에 발표한 단편을 모으면 책 한권 분량은 충분히 되지 않느냐고. 심윤경은 내 질문에 대답은 안한 채 웃기만 했다.


염화미소, 내가 그 웃음의 의미를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후의 일이다. <랜덤 집 센터>란 출판사에서 내가 블로그에 끄적인 것들이 재미있다면서 그것들을 모아서 책을 내자고 제의를 했을 때, 내가 고심 끝에 거절한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은 그것들이 책을 만들기 위한 치열한 고뇌의 산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블로그에 쓴 잡스러운 글과 심윤경의 단편을 비교하는 게 터무니없을지라도, 그가 단편집을 왜 고사하는지 이해할 수는 있단 말이다. 하지만 그가 단편집을 낸다며 발문을 써달라는 제의를 했을 때, 난 당혹감보다 반가움이 앞섰다. 그건 내가 <이현의 연애> 이후 심윤경의 글에 너무 오랫동안 갈증이 나 있었던 까닭이다. 그래서 난 그가 갑자기 단편집을 낸 이유를 캐묻지 않았지만,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당시의 미소를 애써 설명해 줬다.

“단편집 내려고 출판사랑 이야기가 다 되어 있는데 오빠가 그런 질문을 하니까 웃기잖아요.”


<이현의 연애>에 삽입된 이야기들을 통해 심윤경이 대단한 단편 작가라는 걸 진작에 깨달았지만, 총 9편의 단편이 실린 <갈매기의 안경>은 어느 한편 버릴 것 없는 다이아몬드같은 책이었다. 먼저 표제작인 <갈매기의 안경>을 보자. 저자의 분신으로 생각되는 여자아이는 어려서 광안리에 갔다가 바위에 부딪혀 부상을 입은 갈매기를 보살펴주는데, 그 과정에서 갈매기의 눈이 나쁘다는 걸 알아채고 갈매기에게 자신이 쓰던 안경을 씌운 뒤 단단히 묶어준다. 십년 뒤 스무살이 된 주인공은 광안리를 다시 찾는데, 거기서 그는 바위들 사이를 날렵하게 비행하는 갈매기 한 마리를 발견하게 된다.

“난 틀림없이 봤다. 그 갈매기의 눈에 내가 십년 전에 씌워준 안경이 빛나고 있는 것을 (131쪽).”

갈매기가 예로부터 순수를 상징했다면, “여기저기 기스가 난” 주인공의 안경은 불합리한 것들이 지배하는 속세의 다른 말이다. 그리고 광안리는, 예나 지금이나 인간 군상들의 욕망이 부딪히는 어지러운 곳, 그래서 주인공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현실에 영합하는 갈매기에게 더 이상 애정을 가질 수 없었다.

“그 뒤 난 두 번 다시 광안리를 찾지 않았고, 그쪽으로는 발조차 뻗지 않았다(158쪽).”


역시 일인칭으로 쓰인 <호두까기 인형의 비밀> 역시 자못 흥미로운 작품이다. 어릴 적 호두를 좋아하는 두 남매-이건 저자와 그 오빠로 읽힌다-에게 자애로운 부모님은 똑같은 개수의 호두를 나눠준다. 하지만 “내 가느다란 팔뚝으로 두꺼운 호두 껍질을 까는 건 불가능했다. 난 나보다 힘이 센, 하지만 식탐도 많은 오빠에게 호두를 까달라고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15쪽).”

그건 공정한 게임이 아니었다. 오빠는 그 대가로 갖고 있는 호두의 절반을 요구했고, “깐 호두마저도 온전히 주지 않았다.” 호두에 대한 오빠의 식탐을 잘 아는 난 이게 실제로 있었던 얘기라고 생각하는데, 주인공은 결국 호두까기 인형을 사달라고 어머니한테 조른다.

“그 인형이 온 이후 난 원하는대로 호두를 까먹을 수 있었다. 하루에 80개를 먹어치운 적도 있다(19쪽).”

인형 때문에 자신의 몫이 줄어든 게 못내 불만이던 오빠는 “인형의 팔을 부러뜨리는 만행을 저지”르는데, 오빠에게 항거하던 도중 주인공의 손에 들린 호두가 우지끈 부서진다.

“그날 이후 난 손으로 호두를 까먹었다.... 오빠는 정기적으로 자기 호두의 20%를 내게 상납해야 했다”

자기 자신을 둘러싼 벽을 호두에 비유한다면, 호두의 껍질을 손으로 부수는 이 단편은 전형적인 성장소설이며, 추석 때 먹는 호두의 맛을 한층 돋워 줄 작품이라 할 만하다.


<영안실에서는 왜 육개장만 줄까?>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육개장을 둘러싼 암투를 흥미있게 그리고 있는데, <달의 제단>에서도 보여줬던 저자의 한문 실력은 이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난다. <사과를 삼킨 타조>는 늘 진중한 글만 써왔던 저자가 처음으로 선보이는 명랑소설(?)이다. 목이 길어 별명이 타조인 박대리는 긴 목 때문에 번번이 여자한테 차인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은 사슴만은 아니구나!(211쪽)”라며 절규하던 주인공은 인터넷에 뜬, 목을 줄여 준다는 광고를 보고 러시아로 가는 비행기에 오른다. 9편의 단편 중 가장 분량이 많은 <타조>는 이 비행기 안에서 일어나는 해프닝이 주를 이룬다. 그밖에 <나는 사향노루 냄새를 맡지 못한다>는 자본주의가 얼마나 인간을 병들게 하는가를, <까치와 까마귀>는 우리가 불변의 진리라고 칭하는 것도 사실은 시대의 산물일 뿐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우화적으로 보여준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장편 작가가 따로 있는 게 아니며, 장편에 능하다고 알려진 심윤경이 단편에도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첫 단편집 <갈매기와 안경>은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내게 발문을 부탁해 준, 그래서 이 주옥같은 작품들을 가장 먼저 읽는 영광을 맛보게 해준 심윤경 작가에게 깊이 감사드리며, 작가의 계속된 정진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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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7-03-29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억지로 학교 오니까 조금 나아 보이네요...........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2007-03-29 1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적오리 2007-03-29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다행이에요. 저도 죄책감에서 살짝 벗어낫다는..^^
오늘 휴가라서 모처럼 여유있게 책도 주문하고, 서재 탐방 다니고 있어요...그래도 병원은 나녀오삼!

발문...재밌어요.^^

다락방 2007-03-29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근사해요. 마태우스님도, 심윤경작가님도 너무 멋져요. [달의 제단]은 제가 작년에 읽고 눈물을 흘렸고, 어제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읽고 또 왈칵 눈물이 차올랐거든요. 고민할 필요없이 심윤경작가의 책을 집어들거예요.

마태우스님 화이팅!!!

2007-03-29 1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적오리 2007-03-29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0198263

울보 2007-03-29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마태님은 멋진분이다를 다시 한번 실감,

춤추는인생. 2007-03-29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윤경작가님의 네번째 소설이군요.^^ 제가 좋아하는 서민님이 쓰셨다는 발문때문에 더 기대되요 ㅎㅎ
님 빨리 나으셔요..!!

미래소년 2007-03-29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무진장 아팠는데 억지로 학교 가서... 더 아팠어요 ㅜ.ㅜ
얼른 조퇴하고 편안한 집에서 푹 쉬세요, 그것만이 살 길인 듯!!

sooninara 2007-03-29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줄거리가 정말 저렇단 말입니까? 삼류소설 아닌가요??ㅋㅋ

비로그인 2007-03-29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을 책들이 쌓여있는지라 당분간 쇼핑은 금지, 라고 생각했건만 다시 한번 솔깃, 합니다.

2007-03-29 1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우맘 2007-03-29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심윤경님의 신작에 마태님의 발문이라....금상첨화네요.^^
아픈 건 좀 나아요?

stella.K 2007-03-29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기대되는군요. 읽어보고 싶네요. 아, 늘 말만 이렇게 하궁...ㅜ.ㅜ

마늘빵 2007-03-29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마태님 이런 것도 쓰시고. 와. 심윤경. 저는 잘 모르지만 이제 알아야겠군요. 메뉴를 다시 확인했어요 [3류소설]이 아니더군요.

무스탕 2007-03-29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리하고 계신거 아니죠? 읽을 책이 쌓여있건만 마구 구미가 땡기네요 ^^

라주미힌 2007-03-29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애정이 담긴 재밌는 발문이네요. 너무 친분을 내세우시는거 아녜요? ㅎㅎㅎ

짱꿀라 2007-03-29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작가의 작품도 우수하지만 마태님의 발문도 역시 명문이십니다. 아프신 것 어찌 괜찮으신가요.

antitheme 2007-03-29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군요. 몸은 이제 괜찮으신가요?

마노아 2007-03-30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멋져요! 두 분 다요~ 오늘 컨디션은 어떠세요? 좋아진 건가요?

책읽는나무 2007-03-30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2007-03-30 0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와 2007-03-30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 또 한명 있어요~
마태우스님과 심윤경 작가의 팬!!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