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멸종 - 기술이 경험을 대체하는 시대, 인간은 계속 인간일 수 있을까
크리스틴 로젠 지음, 이영래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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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뛰어난 지능과 사회적 협업으로 문명과 과학기술을 일으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수없이 아웃소싱했다. 글과 책을 만들어 모든 것을 암송하는 것에서 벗어났고, 도구를 만들어서 수많은 손기술을 대신했다. 인간이 사용하는 모든 도구는 이처럼 인간 신체와 두뇌의 확장으로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너무 강력하다보니 사람은 정작 자기가 직접 수고를 들여 해야 할 일과 그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상당 부분 상실하고 있다. 요즘 초등학교 1학년은 입학하면 예전 아이들과는 다르게 매우 단순한 학교 건물에서도 길을 잃고 헤매는 일이 허다하다. 이는 입학 전 아이들이 구조가 단순한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모든 이동을 부모의 차로 하며, 친구들과 동네에서 뛰어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취학 전 단순한 공간 만을 경험하여 특정 지역에서 길을 기억하고 찾는 능력을 배양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런 경향은 디지털 플랫폼과 SNS, 여기에 언제든 접속할 수 있는 웨어러블 기기가 등장하며 더욱 심화하고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대면하려 하지 않고, 공적 공간에도 잘 머무르려고 하지 않으며 가상에서의 매개된 경험을 실제로 착각하고 의미 부여를 하고 있다. 책은 이런 매개된 경험이 인간의 많은 것을 빼앗아 가고 있음을 경고하다. 

 개인화된 기술 덕분에 사람들은 깨어 있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가상 공간에 나만의 현실을 만들고 그 안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실제 인간 경험은 날이 갈수록 줄고 있는데 이는 공통의 현실과 목적에 대한 의식이 약해지고 인간 판단에 대한 불신으로 문화와 정치가 양극화된 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현재의 사람들은 많은 시간을 직접 경험보다는 다른 사람이 만들어낸 경험을 소비하는데 사용한다. 숏츠를 보거나 유튜브, SNS에 시간을 소요하는 것들이 그런 것이다. 

 그래서 빅테크들은 경험을 마케팅에 활용한다. 개인의 경험은 특유의 것이라 마케팅에 부적합하나 그 경험이 특정 제품에 대한 사람들의 선호로 이어지면 마케팅이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특정 음악가의 음악을 들는 실제 경험보다는 그 음악을 들었다는 것을 사람들이 선호한다면 마케팅이 된다. 


1. 대면의 상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 수백만년의 진화 끝에 감정을 드러내는 표정, 자세, 몸짓을 읽게 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개인차가 있으며 문화적 차이도 크다. 물론 이는 생득적이기도 하지만 문화적 차이도 있기에 훈련과 경험이 필요하며 이는 대면으로만 양성될 수 있다.

 그리고 대면관계는 사람들로 하여금 거짓말도 줄이게 한다. 인간은 대면하여 거짓말을 하는 경우 미세한 경련이나 수상한 눈의 움직임 등 여러가지 사인을 자신도 모르게 내보낸다. 그리고 타인 역시 이를 자신도 모르게 눈치챌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대면 관계에서는 거짓을 망설인다. 하지만 비대면이면 이런 것은 전혀 없다. 어떤 사인도 드러내지 않은 상태로 거짓말이 가능하다. 실제로 화면을 매개한 비대면의 경우 거짓말의 성공확률은 대면보다 높다.

 대면은 놀랍게도 건강과도 관련한다. 인간은 뇌와 심장을 연결하는 미주신경의 긴장도로 타인과의 연결능력을 강화한다. 그래서 타인을 감정적으로 인식하고 그들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을 때 신체적으로도 건강하다. 그리고 이 미주신경계는 사용하지 않으면 능력이 저하된다. 즉, 대면을 통한 타인과의 관계가 단절되면 미주신경계의 건강도 악화한다는 것이다.  

 스탠퍼드 대학 커뮤티케이션 교수 크리포드 나스는 미디어의 사용과 부정적 사회적 웰빙(낮은 자신감, 비정상적 느낌, 수면 부족)이 강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연구했다. 그리고 반대로 대면은 긍정적 사회적 웰빙과 강한 상관 관계가 있었다. 

 대면은 생산성과도 관련한다. 펜데믹으로 미국의 직장인은 상당 수가 재택근무를 했다. 가정과 직장을 양립할 수 있었고 편안했다. 하지만 고용주는 팬데믹의 종료와 함께 직장 복귀를 명령했다. 상당수 노동자가 이에 반발했지만 결국 복귀하게 되었다. 이는 생산성과 관련한다. 직장 내에서의 다른 부서 타인과의 만남은 생산성을 향상시킨다. 그래서 많은 직장들은 업무에 집중할 개인 공간을 보장하면서도 다른 부서 및 타인과 만날 수 있는 공간을 기획한다. 하버드 의과대학의 이경준 교수도 과학 공저자들이 물리적으로 서로 가까운 거리에 있을 수록 그들 상호간의 연구 인용이 늘어났고 논문의 질도 우수해졌음을 밝혔다. 


2. 손의 상실

 매개된 경험으로 손글씨도 사라지고 있다. 글씨는 쓰는 것은 느리고 번거로운 일이지만 이것은 단순 반복이 아니다. 손글씨는 개개인의 인간성과 반응성, 변화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미국 교육 공통핵심기준에서 이미 손글씨는 목표가 아니다. 미국의 학생들은 더 이상 필기체를 배우지 않기에 과거 사람들의 쓴 글을 독해하지 못한다. 상당수의 미국인이 자신의 이름만 겨우 쓰는 수준이며, 제과 제빵업계에서는 사람들이 케이크에 글씨를 제대로 써 넣지 못한다고 울상일 지경이다. 

 손글씨의 상실은 자신의 생각을 필기로 표현하는 즐거움과 글씨가 주는 시작적 즐거움, 고인의 글을 읽는 능력의 상실로 이어진다. 또한 손 글씨는 읽기의 기초가 되는 뇌 영역의 문자처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손글씨는 읽기를 촉진하며 단어인식과 읽기 능력을 향상시킨다. 또한 손글씨는 학습 내용을 적으면서 기억을 촉진하고 속도가 느리기에 강의 내용을 요약하게 만든다.

 사라지는 것은 글씨만아 아니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이미 사람들은 수 많은 디지털 도구로 인해 그림을 그릴 필요가 없어지고 있다. 전문 일러스트레이터는 물론 학생들도 디지털 도구를 이용해 손쉽게 그림을 생성한다. 하지만 인간 손 그림 역시 사람의 정신과 상당히 관련한다. 

 사람은 더 이상 도구도 잘 만들지 않는다. 산업 시대 공장에서 기성품이 등장하며 이미 손으로 무언 가를 만드는 것은 상당히 쇠퇴했지만 디지털 도구가 등장하면서 더욱 만들기 기능이 쇠퇴하고 있다. 


3. 기다림의 상실

 매개된 경험은 기다림도 없앤다. 조사결과 미국에서는 2005년에 비해 최근 다른 운전자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의 표현이 크게 증가했다. 무려 2배다. 이는 스마트폰의 등장과 비슷하다. 아마존은 페이지 로딩시간을 100밀리초 단축할 때마다 매출이 1% 증가한다고 주장한다. 구글은 사람들이 400밀리초의 지연도 길어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실제 사람들은 대부분의 온라인 사이트에서 속도가 느려지면 8초 이상을 참아내지 못하고 장바구니를 던져버린다. 그리고 2300만개의 동영상을 시청한 670만의 시청자들은 2초 안에 동영상이 재생되지 않으며 시청을 포기했다. 이처럼 사람들은 매체를 통한 경험으로 인해 인내심을 크게 상실한 상태다. 그리고 인내심의 상실은 기다림의 상실로 이어진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기다릴 때 지루함을 느낀다. 과거에는 이 시간 동안 지나가는 사람을 관찰하거나 책을 보거나, 돌아다니거나 생각을 하는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로지 가지고 있는 기기로 매개된 경험을 한다. 매개되지 않은 틈새시간은 거의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루함을 보내는 시간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사람들은 과거 버스나 지하철에서 이동하거나, 걷거나 무언가를 기다리는 동안 딴생각을 많이 했다. 이런 딴생각은 백일몽으로 불리는데 자기인식과 창의적 숙고, 즉흥성과 평가, 기억 강화, 미래 및 목표지향적 사고, 다른 사람의 관점 모사 등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런 시간이 실시간 매개체를 통한 경험으로 인해 사라진 것이다.

 사람들은 지루함을 쉽게 날릴 수 있고 무엇이든 매개체를 통한 빨리 경험하기에 인내심도 상실했다. 때문에 무언가에 대해 만족을 미루고 숙고하기 보다는 즉흥성에만 반응한다. 그리고 이런 개개인이 많아짐은 민주주의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 인내심의 부족은 조급함을 야기하고 이는 전문가와 기관에 대한 사회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대중담론은 숙고와 상식, 공유보다는 즉각적인 반응만을 보이기 때문이다.


4. 감정의 상실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 표현도 더 이상 대면으론 잘 하지 않는다 미국의 젊은 세대들은 곤란한 감정 상황 해결에 이미 이모티콘을 사용한다고 한다. Z 세대의 32%가 이모티콘을 사용해 인간 관계를 정리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온라인에서 보내기에 자신의 감정에 대해 숙고하지 못하며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을 기회도 거의 없다. 공감을 타고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훈련이 필요한데 상상력과 의지가 필요하며 무엇보다도 타인과의 실제 만남을 통해 그들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려고 노력하는 경험에서 비롯된다.미시간대 사회연구소에 의하면 연구결과 오늘 날의 대학생들의 공감능력은 20-30년 전 대학생들의 공감능력에 비해 40%나 떨어진다고 한다.

 다른 인간과의 대면은 타인에 대한 건강한 존중과 공감 발전에 필수적이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감정노동도 아웃소싱중이다. 아기 생일 파티를 주관할 사람을 구한다던가, 연로한 친지를 대신 돌봐줄 사람을 구하는 것들이 그런 행위다. 그리고 심지어 사람들은 타인 대신 기기에 애정을 품기 시작했다. 최신 제품에 대한 애정, 인공지능이나 챗봇에 대한 애정, 자신이 운영하는 플랫폼에 대한 애정들이다. 

 그리고 빅테크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사람들의 감정을 계량화, 정량화하고 측정하고 마케팅의 도구로까지 삼으려고 한다. 사람의 감정은 상당히 복합적이며 맥락적이다. 때문에 사람은 때때로 자신의 감정에 혼돈을 느끼고 타인의 감정을 읽는데도 어려움을 느끼곤 한다. 이는 경험을 통해 차차 채워지는 부분인데 빅테크들은 각정 센서들을 동원해 사람의 미세한 행동 패턴을 포착하고 측정함으로써 정확한 감정을 측정하여 제공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자신은 물론 타인까지다. 이처럼 감정의 성찰마저 기기에 아웃소싱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지에 대해 저자는 묻는다.


5. 쾌락의 상실

 사람의 쾌락도 매개된다. 사람들은 매개된 쾌락을 수용하고 있는데 그러다보면 데이터에 근거하지 않은 경험에 대해서는 거부감과 불신감이 든다. 타인이 추천하지 않고 평가도 없는 장소나 식당, 업체는 불편해하게 되는 것이다. 디지털은 점점 더 많은 쾌락을 매개하고 있다. 이는 사람의 감각을 제한한다. 사람이 여행을 가서 식당을 가게 되면 그곳의 온도와 분위기, 냄새, 맛, 향, 소리를 모두 종합적으로 경험한다. 하지만 매개된 경험은 그것을 시각과 청각으로만 제한한다. 

 여행의 주는 쾌락도 그러하다. 여행은 대개 계획하지 않은 것이며 예상치 못하고, 방향감각도 상실하며 다양한 일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관광은 철저하게 계획한 것이고 안전하고 통제된 것이다. 그리고 현대의 기술은 이런 관광을 더욱 강화하였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여행지에서도 장소로의 몰입보다는 더 친숙한 쾌락이나 오락으로 옮겨간다. 실제로 7일 정도의 휴가기간동안 한 가족은 대개 200개의 자료를 SNS에 업로드한다. 이처럼 여행은 몰입보다는 매개 경험되며 사람들은 기록에 초점을 두게 된다. 그리고 이런 기록이 넘쳐나기에 의미가 있으려면 기준이 상당히 높아져야 한다. 아마존에서 처음 카누를 탄 10대이거나, k2에 오른 첫 번째 80대 사서 정도가 되어야 한다. 기술기업들은 이런 자기기록을 부추긴다. 

 예술을 통한 쾌락도 마찬가지다. 예술가는 아이디어, 감성, 메시지를 특별하게 자신의 작품을 통해 전달한다. 그래서 예술품을 통해 사람들은 인간경험을 다른 방식으로 보게 된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오래도록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인내심이 없어 작품당 평균 10초 정도를 감상한다. 심지어 예술관을 가는 목표가 모든 작품을 촬영하는데 있는 경우도 많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작품에 대한 집중도가 적어 기억을 더 적게한다. 


6. 공간의 상실

 공간과 장소는 다르다. 공간은 정의와 의미를 얻을 때, 또는 경계가 생기고 인적요소가 가미되면 비로소 장소가 된다. 그래서 사이버 공간은 있지만 사이버 장소란 명칭은 딱히 없다. 그런데 이런 장소들이 공간으로 대체되고 있다. 사람들에게 특정 지역이 의미가 없어진다는 의미다. 

사람들은 도시나 지역에 살면서 자연스레 이런 저런 공적 공간에 모이게 된다. 지하철 역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모이게 되고, 공원에서 모이게 되며, 영화관 앞에서 영화를 기다리며 모이곤 했다. 그러면서 타인을 바라보고 대화를 하기도 하며 그 곳은 공적 공간으로 의미를 다졌다. 시민사회는 오랫동안 이런 특정한 장소에 의존해 왔으며 이런 장소는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의미를 가졌다.

 하지만 지금 사람들은 이런 장소에서 와이파이만 켜고 있다. 와이파이 존이 공적 공간이 되어버린 셈이다. 이런 사람들은 부재하는 현존이 된다. 이는 특정 장소에 있지만 그곳에 전혀 집중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지하철을 타면서 스마트폰만 하고 있다면 그러하며 거리를 걸으면서도 역시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숏츠에만 집중한다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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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 좌절의 시대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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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8년 정도 전에 장강명의 '당선, 합격, 계급'을 읽은 적이 있다. 그 해 내가 본 최고의 책 중 하나였는데 책은 아직 마이클 센델이나 다른 한국의 인문사회학자들보다 빠르게 능력주의를 지적했다. 물론 책에는 능력주의란 말은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진정한 역량보다는 암기 위주의 서열형 평가의 의존한 선발, 대규모 시험 공채에 의한 한국 엘리트들의 선발은 우리 사회가 개개인의 진정한 역량보다는 서열형 시험에 의한 평가에만 매몰되었음을 지적했다. 그리고 이는 능력주의의 가장 큰 폐해와 부분 중 하나이다.

 이번 책은 미세 좌절의 시대다. 4-5년에 걸쳐 쓴 단상을 모은 책인데 시기는 문재인 집권 초기부터, 코로나, 윤석렬 정권 초기로 이어진다. 그래서 다소 철 지난 감은 있지만 사회란게 급변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면도 있어 지금도 유효한 지적이 많았다. 

 여러 가지 단상이 다 재밌고 날카로우며, 따뜻했지만 진보와 보수에 대한 생각이 인상에 남는다. 장강명은 진보와 보수라는 구분보다는 진보는 감수성, 보수는 일관성으로 구분한다. 진보는 사회의 여러 사안에 대해 감수성을 갖고 민감하게 바라본다. 그래서 약자와 변화에 불의에 대한 외침이 강하다. 하지만 보수는 그보다는 전체적인 공평함과 일관성에 무게를 둔다. 그래서 진보가 여러 입장이 다른 것에 대해 불만이다. 그래도 진보와 보수는 괜찮다. 90년대만 해도 양날개의 건강을 중시했다. 하지만 지금은 진보, 아니 보수가 많이 망가져있다. 하라리가 넥서스에서 지적한 것처럼 보수는 포퓰리즘에 의해 오염되었고 크게 극우화하였다. 

 한국사회 역시 그러한다. 장강명이 보기에 한국은 더 이상 진보 보수보다는 아예 여러 부족으로 갈라진 상태다. 여기에는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등장, 그리고 이로 인해 숙고와 공통의 분모가 사라진 것이 상당한 이유다. 과거 사람들은 느린 속도로 퍼지는 미디어를 봤다. 뉴스나 종이신문이다. 보수일색이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중간이란게 있었다. 그래서 터무니 없는 소문은 잘 없었고 사람들은 그걸 보며 공통의 생각과 숙고란걸 할 수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실시간으로 자기 맞춤형 미디어가 난무한다. 그걸 보면서 공통 분모는 당연히 없고, 잘못된 소문에도 쉽게 이끌린다. 장강명이 책을 쓴 것은 2020년대 초반인데 중반인 지금은 이러한 사태가 더욱 악화되었다.   

 작가는 재밌게도 서점의 신간이나 베스트 셀러에 주목한다. 종이 매체가 하락임에도 그런 이유는 그의 직업적 이유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시대정신이 읽히기 때문이라 한다. 한국의 서적 시장은 외환위기 쯤부터 자기 계발서-힐링, 독설-웰빙, 휘게-자존감-괜찮아로 이동했다고 한다. 치열하게 신자유주의가 도입되어 자기 계발이 강조 되었고 이게 쉽지 않자 경쟁에서 스스로에게 쉼을 부여하고 독설을 통해 더욱 다그치게 되었고, 아예 어렵다는걸 알게 되자 물질적인 것에서 다소 벗어난 삶은 추구한게 웰빙이고, 이것도 쉬지 않자 무너진 자신을 긍정하는 자존감으로 이동했고, 이것도 쉽지 않자 아무것도 안되는 자신을 위로하는 괜찮아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공동체가 무너지고 개별화한 개인이 사회의 구조적 벽에 부딪히며 좌절하며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여주는 서사 같았다. 다만 여기에 사회에 대한 불만이 없다는 것은 능력주의에 빠져 자신의 실패를 오로지 자신에게 귀인하는 한국 사회의 한계도 드러난 것 같아 더욱 뼈아프다.

 책에는 재밌는 논의가 많다. 기자 출신이고, 작가이다 보니 사회를 보는 눈이 날카롭고 포근했으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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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플라스의 마녀 라플라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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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자 라플라스는 세계의 모든 물질과 에너지를 원자수준에서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다면 마치 신처럼 향후의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작은 문구에서 또 괜찮은 추리 소설을 만들어냈다. 약간의 다른 소재로, 서로 다른 동기와 성격을 가진 인물들에게 새로운 시공에서 살인 사건을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히가시노 게이고가 가장 잘 하는 일이다. 그리고 추리소설 작가에겐 이것이 상대적으로 쉬운 일인지 그들은 정말 자주 두꺼운 책을 잘 써낸다. 이 모두는 다 다르고 재밌지만 구조는 모두 사실상 같다. 다작도 그래서 가능할 것이다. 

 라플라스의 마녀는 마도카라는 여자아이가 토네이도를 겪으며 시작된다. 일본에도 토네이도가 부는지는 잘 몰랐는데 이로 인해 마도카는 어머니를 잃게 된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배경은 일본의 한적한 온천으로 이동한다. 나이차가 큰 부부가 온천을 찾는데 남편은 유명한 영화감독이다. 이들은 하루를 묶고 다음 날 산행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영화감독 남편이 황화수소 중독으로 죽는다. 그리고 놀랍게도 가까운 시일내에 또 다른 무명 영화배우 하나가 다른 온천 지역에서 역시 황화수소 중독으로 죽는다.

 전문가들은 온천지역에서 갑작스런 황화수소의 대규모 유출로 인한 인명피해는 어쩌다 일어날 수 있지만 쉬운 일이 아니라고 공언한다. 게다가 이 지역에서는 동물이나 식물이 그런 피해를 입은 흔적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밀폐되지 않는 자연 상태에서 대기의 흐름이 어떨지 모르는 상태에서 황화 수소를 인위적으로 일으켜 살해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런데 이런 우연은 없다. 같은 업계의 종사자가 같은 방법으로 비슷한 시일 내에 죽었다는 사실 말이다. 이것은 반드시 인위적인 것인데 이를 입증할만한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경찰은 혼란에 빠진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십년 정도 전이긴 했지만 역시 유명한 영화감독 아마카스 사이세이의 가족들 역시 황화수소로 중독으로 딸과 아내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그 아들은 다행히 살아남았지만 식물인간이 되고 말았다. 아마카스 사이세이는 영화밖에 모르는 인물이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영화계를 떠나고 아들을 돌본다. 그리고 그 아들은 마도카의 아버지인 우하라 젠타로가 맡아 치료하게 된다. 기적적으로 아들은 회복된다. 암세포를 손상된 뇌부분에 삽입하는 위험한 시술이었다. 

 하여튼 아들 아마카스 겐토는 기적적으로 회복하나 기억을 상실했고 아버지 아마카스 사이세이는 그런 아들을 떠나 여행을 가게 된다. 그 사이 아마카스 겐토는 병원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마도카와도 교류하게 된다.

 책은 이후의 전개가 다소 놀랍다.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사건들이 하나하나 연결되고 여기에는 아마카스 겐토의 초능력과 숨겨진 가족사가 관련한다. 매우 재밌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이었다. 늘 기대만큼은 해주는 작가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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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20분의 남자 스토리콜렉터 109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허형은 옮김 / 북로드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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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비드 발다치의 소설을 한 5년 전에 우연히 보게 되어 지금껏 보고 있다. 재밌기 때문이다. 그의 책에는 에이머스 데커라는 경관이 등장한다. 한 때 미식축구 선수였지만 경기 중 사고로 머리를 다친 후로 그는 인간적 감정을 잃었으나 대신 모든 것을 기억하고, 사건 현장에 공감각으로 반응한다. 그에게 살인은 푸른 색이다. 그런데 이번에 본 데이비드 발디치의 책에는 에이머스 데커가 없다. 대신 퇴역 군인 트레비스 디바인이 등장한다.

 디바인의 아버지는 아일랜드 계, 어머니는 그리스 계다. 형과 누나는 아버지를 닮았지만 그 혼자 엄마를 닮았다. 그리고 형과 누나는 뛰어난 기업운영자이고 의사다. 디바인은 홀로 공부를 못했는데 그런 그에게 실망한 아버지에 반발해 웨스트 포인트에 들어가 군 생활을 시작한다.

 그런데 반항으로 시작한 군 생활이 그와 너무 잘 맞았다. 그는 대위까지 올라갔고 무수한 훈장을 받았으나 갑작스레 전역해버린다. 그는 동료의 아내와 외도를 벌인 한 장교를 추궁했다. 그 대위는 디바인의 친구와 외도한 것도 모자를 그를 살해했는데 군 경찰은 정치적 이유로 이를 조용히 덮었다. 분노한 디바인이 이 사실을 추궁했고, 그와 몸싸움이 벌어져 그에게 치명상을 입힌 후 방치해 죽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정치적 이유로 군경찰은 이 마저도 조용히 덮었다.

 전역한 디바인의 선택은 놀랍게도 카울앤 컴리라는 투자회사에 취직한 것이었다. 그의 아버지만 이를 환영했다. 디바인은 동료를 살해한 자신에게 형벌을 준 것이었다. 디바인은 매일 새벽 4시에 상당한 강도의 운동을 하고 6시 20분 통근기차를 탄다. 통근기차는 재밌게도 부유층의 거주지를 지나가는데 매일 아침 고급주택에서 수영을 하는 미인의 자태를 보는 것이 기차를 탄 남자들의 유흥거리였다. 

 그러다가 회사동료 새라 유즈가 살해된다. 디바인은 새라를 좋아했고 잠자리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새라가 죽은 날 디바인에겐 새라의 살해를 알리는 메일이 도착한다. 그래서인지 경찰은 디바인을 강력한 용의자로 추측한다. 물론 경찰은 이메일 것은 모른다. 위기에 몰린 디바인에게 퇴역 장성에 접근한다. 그들은 디바인의 군전역 비밀을 알고 있었고, 이것과 지금의 상황을 지렛대로 디바인에게 군의 첩자로 일할 것을 강요한다. 선택이 없던 디바인은 이를 수락한다. 

 디바인은 러시아 출신 룸메이트에게 메일의 해킹을 부탁하고, 상당히 수상쩍은 자신의 회사 최고경영자 카울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는 의심스러운 구석이 상당히 많았다.

 책은 상당한 두께를 자랑하지만 데이비드 발다치의 소설이 그렇듯 재밌게 술술 넘어간다. 그는 사회비판은 잘 안했던 것 같은데 이 책은 통해서 월가에 대한 비판을 상당히 많이 한다. 디바인은 새롭게 만든 캐릭터인데 군전역자로 전투력이 매우 훌륭하다는 매력이 있긴 하지만 에이머스 데커만큼은 아니었다. 그리도 발다치의 소설에서는 데커의 초능력이 사건을 갑작스럽게 해결하는데 개연성있는 장치로 다가오지만 아무런 수사경력이 없는 전역 군인 디바인이 어려운 사건을 해결해내는 과정은 조금 어색했다. 

 그래도 매우 재밌는 책이었다. 올 여름 휴가 추리 소설 읽기는 이 책으로 마무리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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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의 잭 설산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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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소설에서는 아무도 죽지 않는다. 다만 협박이 있는데 스키장에 폭파물을 설치했다는 것이다. 범인은 스키장 측에 3천만엔의 금액을 요구한다. 스키장 측은 고민을 한다. 경찰에 알리자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랬다간 이제 막 시작한 시즌을 통째로 날릴 우려가 있었다. 이미지도 훼손되어 다시 정상화되기까지 얼마나 시일이 걸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범인에게 돈을 보낸다. 그리고 범인은 폭파물의 정확한 위치 대신 슬로프 중 안전한 곳 일부를 알려주기만 한다. 그리고 더 정확한 위치를 위해 또 다른 3천만엔을 요구한다. 그리고 스키장 안전 요원인 패트롤 중 일부가 돈을 범인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윽고 이들은 범인을 압박하고 추적하는 시도도 한다.

 스키장엔 한 가지 고민이 있다. 매입 시부터 사람들이 많이 가지 않는 지역에 대한 고민이었는데 당시 지역에서 전체 매입을 요구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구매한 곳이었다. 그리고 작년에 그 지역에서 사망사고가 일어난다. 한 가족의 어머니가 스키를 타다, 스노보드를 타던 사람들의 엣지에 경동맥이 잘려 과다출혈로 사망한 것이다. 여기는 호쿠게쓰 지역인데 스키장은 수익성이 낮던 이 지역을 사건을 핑계삼아 폐쇄한다.

 하지만 호쿠게쓰 지역의 마을 사람들과 가게들은 이 조치로 더욱 상황이 어려워진다. 안 그래도 장사가 안되던 판국에 더 어려워 진 것이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동계스포츠 인구는 정점을 찍고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스키인구는 지구 온난화로 영업일수가 줄어들고, 다양한 레져거리가 국내외에 생겨나고, 무엇보다 이 위험한 스포츠를 즐길 젊은 세대의 감소로 줄어드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한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 상황이기도 하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스키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이렇게 스키장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 여러 개 되기 때문이다. 물론 스키장이 배경이라고 해서 더 재밌는건 아니다. 나 같은 경우 이쪽 분야에 전혀 아는 바가 없는데 그래서 오히려 이해가 안가는 면도 많았기 때문이다. 

 하여튼 소설은 이 호쿠게쓰 지역과 스키장의 경영난, 어려워진 지역의 사정이 맞물려 사건이 형성되고 굴러간다. 초반부터 다소 예측이 되는 측면이 있었는데, 그래도 볼만 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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