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 - 2010년 전면개정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이상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진화론과 관련한 생명과학 책을 간혹 보는 편인데 책마다 항상 거론하는 인물이 있다. 다윈이다. 그리고 다윈엔 크게 미치지 못하지만 제법 언급되는 사람이 리처드 도킨스다. 그리고 그 인물보다 더 자주 거론되는 단어는 리처드 도킨스의 책 '이기적 유전자'다. 이리 언급이 되니 책 '이기적 유전자'는 항상 마음의 짐이었다. 봐야지 봐야지 하는데 막상 무서워서 겁나는 책. 그리고 실제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거의 15년정도 전에 감히 보려고 도전했다 포기하고 접었던 기억이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막상 원전의 공포로 인해 그것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주변책만 엄청나게 보곤 한다. 대표적인게 '자본론'이 아닐런지. 나도 당연히 그런 부류인데, 적절한 타의로 인해 이 책을 마침내 보게 되었다. 

 1970년대에 나와 고작 40년정도의 역사를 가진 이 책을 감히 고전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난 솔직히 고전이라 생각한다. 고전이란 오랜 역사동안 살아남은 생명력과 후대에 강한 파급력을 가진 책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은 40년이란 긴 역사란 많은 논란을 제공한 시각과 밈이란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 덕에 마땅히 그 범주에 들어간다고 본다. 


1. 자기 복제자의 탄생 

 책은 우선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의 탄생부터 시작한다. 늘 말하듯 무척이나 결핍된 지구지만 생물이 없을 땐 뭐든지 나름 풍요로웠다. 자연계의 원자들은 상황에 따라 불안정하기도 안정하기도 한데, 당연히 안정한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한다. 왜인지는 나도 모르겠고, 아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도킨스는 최초의 자연선택은 안정한 원자들이 선택되고 불안정한 것은 배제된 것이었을 것으로 본다. 안정된 무리들이 차츰 결합해 제법 커졌고, 어쩌다 보니 자기 자신을 복제하는 능력을 가진 녀석들이 등장했다. 이미 만들어진걸 복제하다보니 계속 새로 시작하는 녀석들보다 훨씬 바르게 수가 증가했다. 

 그리고 자기 복제자들끼리의 경쟁이 시작되어 안정성이 더욱 높은 녀석들이 자연선택되었고, 심지어 이들 중 일부는 슬슬 결핍환경이 다가오니 경쟁복제자의 구조를 파괴하는 화학적 물질을 어쩌다 양산하여 그들의 구성요소를 자기복제에 활용하는 원시적 포식능력 까지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방어하는 입장에선 화학적 방어막이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단백질 벽을 구축하는 군비경쟁을 벌이게 되는데 도킨스는 이것이 최초의 살아있는 세포의 탄생일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2. 이기적 유전자와 생존기계

도킨스는 이런 자기복제자를 이기적 유전자라고 부른다. 도킨스는 자연선택의 단위는 앞서말한 것처럼 시작부터 이들이었으며 지금도 이들 유전자 수준이라고 말한다.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이 유전자들은 자신들의 무한한 복제를 위해 여럿이 뭉쳐 서로 협력하여 생존기계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 생존기계란 바로 지구상의 DNA를 가진 모든 생물을 말한다. 도킨스는 책 내내 동물이나 식물, 생물이란 표현보다는 압도적으로 생존기계란 용어를 고집한다. 자기 복제자들은 이 생존기계의 구축이란 방식으로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번영해왔는데 진화한 자신의 가장 최근 버전으로 이 생존기계의 몸과 마음을 구축한다. 

 여기서 약간 문제가 발생하는데 자기복제자들은 도킨스의 비유를 들자면 컴퓨터 프로그래머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프로그래머는 프로그램의 구동방식을 설계해서 짜지만 이후에는 몸안에만 갇혀 아무것도 할수 없게되므로  실제 프로그램인 생존기계들은 이후 상황에 따라 시행착오를 거치며 알아서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 따라서 자기복제자들은 하는수 없이 이 생존기계들에게 기억과 의식이라는 프로그램을 짜넣는다. 기억을 통해서 생존기계는 무엇을 하는게 생존에 이득이고 무엇을 하지 않는게 생존에 불리한지를 학습해 나가며 기계안의 유전자들을 보호하고 복제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마치 독이 있는 풀을 매번 먹어보고 결정하는 무식한 방법은 한계가 있기에 자기복제자들은 목적성을 갖는 의식을 부여한다. 이 의식을 통해 고도로 발달한 생존기계들은 기억에만 의존해 직접 문제를 시행착오를 거쳐 해결해나가는 방식보다는 시뮬레이션 방식을 통해 문제를 사전에 점검하고 해결해나간다.

 이런 시뮬레이션 시행을 위해서는 고도로 발달한 뇌가 필요하며 그 정점에 속한 인간은 적어도 다른 생존기계들과는 다르게 감히 자신들의 궁극적 주인인 유전자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여지를 갖게 될 정도로 발달한다. 도킨스가 말한 것처럼 자위를 하거나 아이를 감히 낳지 않는 생존기계의 행동과 의식을 분명 유전자의 의도 밖의 것이었을 것이다.  


3. 이타성의 발달

책 제목과는 다르게 도킨스는 책의 상당부분을 이타성을 위해 할애한다. 이타성은 기본적으로 유전적 근연도를 갖는 혈연집단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유전자가 자신의 복제만을 생각하기에 유전적 근연도가 있는 혈연집단의 다른 생존기계에 대해 이타성을 발휘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화는 당연히 초기부터 주변의 다른 경쟁복제자들과의 관계에서 시작했기에 그들과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공진화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타성을 유전적 근연도가 부족한 집단과도 상당히 일찍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도킨스는 유전적 근연도를 갖는 혈연집단에서 이타성이 발휘되는 조건으로 당연히 서로간의 유전적 근연도와 상대방의 기대수명, 근연도의 확실함을 꼽는다. 유전적 근연도는 당연한 전제조건이며 아무리 근연도가 높아도 상대방의 수명이 내일모래라면 그들을 위한 이타성은 낭비가 된다. 또한 근연도의 확실함 역시 필수적이다. 이타성엔 나의 시간과 에너지가 쓰이기 때문이다.

 이타성을 발달하여 어느덧 근연도가 낮은 다른 개체로도 향한다. 이런 호혜적 관계가 서로 즉각 주고 받는 경우라면 상관이 없지만 실제 자연세계에서 즉각적 주고 받기는 거의 이루어질수 없다. 당연히 호혜적 관계는 지연성이 되는데 이런일이 발생하면 소위 말하는 '먹튀' 배신자가 나타난다. 즉 도움만 받고 자신은 도움을 주지 않는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지연성 호혜주의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이런 배신자를 식별하고 응징하기 위해 서로를 개체로서 식별하고 기억할 필요가 있다. 때문에 지연성 호혜주의는 이런 능력을 갖춘 종에서만 발달한다.

 도킨스는 이타성의 발달이 이기적 유전자 입장에서 이득이라는 점을 보이기 위해 그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제시한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은 서로 협력하면 대충 3점 정도를 얻게 되며 양자중 하나가 배신하면 배신자만이 5점 정도의 큰 점수를 얻고 속은 자는 마이너스의 점수를 얻게 된다. 또한 둘다 배신하면 당연히 둘다 마이너스의 점수를 얻게 되는 게임이다.

 이 게임이 단 한번만 이루어진다면 어떤 경우든 당연히 배신하는 쪽이 가장 이득이 크다. 하지만 게임이 계속된다면 배신은 무의미해진다. 따라서 당연히 협력이 생존가능성을 높이므로 그러한 방향으로 전환이 되는데 도킨스는 여러전략을 사용한 시뮬레이션 결과 마음씨 좋고 관대하면서도 분개할줄 아는 전략이 가장 높은 점수를 얻게 됨을 보여준다.

 즉, 초기에 협력적으로 나가다가 상대방의 배신을 발견하면 응징하는 것이 가장 좋은 전략이라는 것이다. 물론 응징은 서로간의 영원한 복수를 부르므로 적절한 응징후 다시 협력적 관계 회복을 위해 관대가 반드시 필요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인데 이건 한두번 정도로 족하다는 것이다.  

 도킨스는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는데, 이는 개체군의 대부분 구성원이 일단 그 전략을 선택하면 다른 대체전략이 좀처럼 그 전략의 효용성을 능가할 수 없다는 전략이다. 즉, 초기에 이타성을 갖춘 전략이 환경의 불리함에도 어느 임계점을 넘어서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이 되면 이는 곧 일반적인 전략이 된다는 셈이다. 이는 자연계의 상당수 생존기계들이 이타성을 그들의 전략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잘 뒷받침하는 나름의 근거가 된다.


4. 성의 분화

생존기계들 중 수컷과 암컷을 구분하는 방법으로 도킨스는 생식세포가 그 수가 매우 많고 작은 것이 수컷이고 그 반대 성향을 가진 것을 암컷으로 제시한다. 최초에는 성구분이 없는 동형배우자끼리 상호간에 접합으로 번식이 이루어졌는데 한 동형배우자가 어느날 양분을 더 많이 갖고 덩치를 키우자 자녀 발생에 유리해졌다. 이런 변화가 일어나자 동형배우자들은 경쟁적으로 덩치를 키우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난자의 시작이다. 또한 이런 난자를 겨냥하여 이들의 영양분을 착취하고 자신의 유전자만을 결합시키고자하여 영양분을 몽땅 털어내고 운동성만을 갖는 동형배우자가 탄생했는데 이것이 정자의 탄생이다.

 이런 성향의 차이로 인해 기본적으로 암컷은 자식부양에 많은 투자를 하고 이로 인해 상대방의 선택에 상당히 신중해지는 경향을 갖게 된다. 반면 수컷은 자식부양을 거의 하지 않고 상대방의 선택에 당연히 신중하지 않고 많은 상대방을 만나고자 하는 성향을 갖게 된다.

 때문에 상당수의 암컷들은 자식부양에 대한 착취를 피하고자 가정적이고 성실한 수컷을 고르는 전략을 수립하게 되는데 생존기계들중 일부는 이를 위해 오랫동안 접촉을 거부하고 수줍어하는 행동을 보이거나, 둥지를 짓게하는등의 에너지를 쓰게하는 행위, 먹이를 요구하는 행위등을 전략으로 구사한다.

 재밌는 부분은 포유류, 파충류, 조류는 대개 헌신적 수컷이 극도로 부족한 반면 어류에 있어서는 가시고기처럼 상당히 헌신적인 수컷들이 많은 편이라는 점이다. 이는 수정방식의 차이에서 기인하는데 전자들은 암컷의 체내수정을 통해 번식하며 수컷이 정자를 뿌린후 암컷이 자식을 가진상태에서 먼저 달아나는게 가능하다. 하지만 어류는 물속에서 암컷의 난자와 수컷의 정자가 방사를 통해서 번식하는데 암컷의 난자는 영양분으로 무거워 물속에서 어느정도 시간동안 고착이 가능한 반면 수컷의 정자는 바로 물속으로 흩어진다. 때문에 입장은 정확히 반대가 된다. 수정을 위해선 수컷이 정자를 먼저 방사한 후 도망가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도망이 가능한 것은 오히려 암컷이기에 어류에 있어서는 헌신적 수컷이 나타날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재밌는 부분은 대개의 동물들이 성적인 선전을 수컷들이 하는 반면 인간은 여성들이 그것을 한다는 점이다. 도킨서는 이에 대한 정확한 설명은 하지 않지만 자연계에서 상당히 이례적인 현상으로 여기고 있다. 


5. 병목형 생활사

병목형 생활사는 다음 세대로 넘어감에 있어 몸이 일부분에서 자라서 떨어져나가거나 분리되서 자라는 것이 아닌 다시 하나의 세포로 돌아가 처음부터 새로운 개체로 다시 발생하는 방법을 말한다.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이 번식방법에 대해 도킨스는 이것들이 진화상의 장점이 있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몸의 일부가 상당히 자란 상태에서 떨어져나가 그대로 다시 자라는 것이 훨씬 에너지도 덜 들고 위험부담이 적다. 하지만 생존기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힘든 방법을 택하는데는 3가지 이유가 있다고 도킨스는 말한다. 

 우선 진화상의 돌연변이 발생시 몸에서 떨어져나가는 형태는 그 반영이 지극히 어렵다. 하지만 유전자에서 발생한 돌연변이를 다시 하나의 세포수준에서 반영할 경우 설계도를 다시 그리는 것 같은 효과로 돌연변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다. 둘째로는 처음부터 발생하는 것이 시기에 맞는 기관의 발달을 위한 최적의 생장주기를 정형화하는데 유리하다는 점이다. 마지막은 떨어져나가는 형태의 경우 유익한 돌연변이가 발생시 그 부분만 돌연변이되 떨어지기전 다른 유전자들과 협력적 관계가 잘 구축되지 않을 염려가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발생하는 경우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모든 세포가 공유하므로 당연히 불협화음이 생길수가 없다는 것이다. 


무려 40여년 전에 나온 책이란 점이 다소 놀랍다. 다 읽고나니 내가 나름 읽어온 진화와 관련한 생명과학 책들은 도킨스의 영향력을 많이 받은게 틀림 없어보인다. 사실 몇몇 저자들은 도킨스가 새로운 학설을 제시하기보다는 기존의 진화론을 잘 종합하고 이기적 유전자란 관점의 제시와 밈의 제시정도를 업적으로 보는데 그것 역시 맞는 것 같다. 이 역시 상당한 능력이다. 밈의 경우 밈학을 탄생시킨 책 치곤 다루는 분량이 의외로 상당히 적으로 도킨스 역시 당시엔 하나의 가능성으로만 열어놓고 큰 가능성만을 보았을 뿐 던져놓은 듯한 느낌이 많이든다. 밈이 이정도로 발전하고 다른 학문을 자극할지 본인은 과연 그당시 알았을지. 우수한 책이지만 오래전의 책이다보니 약간 가독성이 떨어지며 아직 젊고 패기있을 당시의 도킨스라 말도 조금 어렵게 느껴진다. 도킨스는 이타적은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시뮬레이션을 채택했는데 점수를 부여하는 방식이 긍정적인 결과를 불러오기위한 작위적이란 느낌이 좀 들고, 의식과 관련한 설명에서는 70년대의 한계가 느껴지기도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40년의 세월을 충분히 많이 뛰어넘고 충분히 오늘날에도 유효하다는 생각이다. 책 말미에 자신의 새로운 책 확장된 표현형을 무척 광고하는데 짐을 하나 덜었더니 또하나의 짐이 생긴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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