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스펙트럼과 하이퍼월드 - 가상 공간에서 날개를 펴는 신경다양성의 세계
이케가미 에이코 지음, 김경화 옮김 / 눌민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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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폐인은 다양한 특징을 갖고 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대인관계 및 사회생활의 어려움, 자기 자립의 어려움, 언어습득의 미비, 반복행동, 규칙에 대한 집착, 공감능력의 부족 등이 개개인별로 상황은 다르나 공통점으로 꼽힌다. 

 자폐는 무척 다양하기에 20세기 후반 스펙트럼으로 그 외연을 넓혀 새롭게 정의되었다. 그래서 과거 자폐로 진단되지 않던 사람들도 자폐로 분류될 수 있게 되었으며 그러다보니 자폐인의 수도 과거 그 어느때보다 늘어났다. 웬만한 선진국에서 자폐인은 인구 100명당 1명 꼴이며 최근 미국 같은 경우 68명중의 1명 꼴이다. 상당히 많은 수로 이 정도면 자폐를 과연 비정상으로 분류하는게 맞는가란 생각이 들정도다. 

 인간은 대개 오른 손잡이인데 왼손잡이의 비율도 100명 중 17명 정도나 된다. 물론 자폐 비율보다 상당히 높긴 하지만 그리 많은 차이도 아니다. 인간 중 이렇게 높은 비율을 갖는 자폐를 그래서 최근엔 질병이나 비정상보다는 차이나 개성으로 보는 관점도 많아졌다. 심지어 자폐인 자신들도 그들의 특성을 자신만의 정체성중 하나로 보는게 추세다. 오죽하면 자폐를 치료할 수 있는 약이 나왔을 때 그것이 자신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꾸는게 두려워 거부하는 내용의 소설까지 나왔을까. 

 하지만 그것은 소위 아스퍼거라는 고기능 자폐의 경우고 대개의 자폐인은 치료약이 나온다면 당연히 그걸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중증이며 일반 사회생활이 매우 어렵다. 다른 종류에 비해 극단적으로 낮은 그들의 평균수명이 그것을 증명한다.

 책 자폐스펙트럼과 하이퍼월드는 자폐의 특성에 관한 책이다. 앞부분은 그 정의, 그리고 자폐가 미국과 영국에서 개념화하고 시민단체 주도로 사회에서 인정받고 지원을 얻어내기까지의 과정, 다음으로 자폐인들의 주 특성과 그들의 시각을 다룬다. 책 제목의 하이퍼 월드는 이중적 의미다. 우선 가상세계, 그리고 자폐인들이 그들의 과민한 감각을 통한 겪게 되는 세계다.

 자폐는 글자 그대로 자기에 갇혔단 뜻으로 사회생활이 어렵고 공감을 잘 못하는 특성을 보인다. 하지만 저자가 보기엔 그렇지 않다. 저자는 지금은 한물 갖지만 초창기 메타버스인 세컨드 라이프에서 여러 자폐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저자 또는 자신들 그룹과 대화는 나무며 상당한 사회성과 일반인 못지 않은 공감능력을 보여 저자는 그들이 자폐인이란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할 정도였다. 

 자폐인들이 하이퍼월드인 세컨드 라이프에서 그런 능력을 보일 수 있었던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가상세계는 실제세계와 다르다. 실제세계에서 보이는 다양한 빛과 소리 등의 자극은 감각이 예민한 자폐인을 자극하여 그들을 견딜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세컨드라이프는 화면이 단순하고 자폐인이 원한다면 매우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공간을 제공한다. 때문에 과도한 자극이 없어 의사소통에만 집중할 수 있다. 더군다나 목소리도 상대방의 표정도 보이지 않고 단순한 타이핑으로만 대화하니 온전히 대화 기능에만 집중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자폐인들은 아무래도 같은 자폐인들끼리 더 잘 대화하였는데 이것 역시 비슷한 특성을 서로 공유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라는게 저자의 생각이다.

 이런 일련의 연구를 통해 저자는 자폐인들이 공감능력이 떨어지거나 지적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저 일반인과 신경회로가 다르기에 일상에 적응하기 어려운 것 뿐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즉, 그들이 일상생활을 겪는데 어려움을 주는 변화성과 변동성, 과도한 환경 자극만 제한해준다면 충분히 일반인 처럼 활동하는게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일반인은 오랜 진화과정에서 주변 환경이 주는 과도한 감각을 제한하고 필요한 일부 정보만 뇌에서 빠르게 처리하고 상당한 것을 직관으로 파악하여 해결한다. 하지만 자폐인은 다르다. 그들은 그 과도한 정보를 모두 수용하고, 아래서부터 하나하나 체계적으로 처리해 나간다. 그리고 그 모든 퍼즐이 맞춰져서야 문제에 대응이 가능하다. 당연히 오랜 세월이 걸리고 힘들다. 자폐인이 반복행동을 하거나 비슷한 패턴을 선호하는 것은 매 장면 하나하나를 그런 식으로 대응해야 하기에 이미 해결된 장면만을 당연히 선호할수 밖에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저자는 자폐의 요인으로 최근의 신경과학의 예를 든다. 인간은 뇌 발달과정에서 소위 가지치기란걸 한다. 인간의 뇌는 시냅스가 초기에 엄청나게 연결되어 있는데 이는 자신이 성장하는 주변 환경이 무엇을 필요로 할지 알수 없기에 거의 모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방안이다. 하지만 가지가 너무 많이 뻗어 있으면 경로가 복잡해 빠른 대응과 숙련이 어렵다. 그래서 인간은 자라면서 학습하고 익숙해진 문화, 언어 등의 가지만 남기고 나머지를 쳐내는게 이것이 가지치기다. 그래서 모국어는 쉽게 배우나 이미 가지가 쳐내진 외국어는 학습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인간은 자라서 빠르고 숙련화한다. 저자는 자폐인의 경우 이 가지치기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경우로 파악한다. 가지치기가 이뤄지지 않으니 거의 모든 정보를 수용하고 민감하며,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되는 것이다. 

 자폐인은 전체를 항상 세밀히 파악하려하고 기존 문법에 잘 반응하지 않기에 세밀한 작업이나 의외로 창조적인 작업에 재능을 보일 수 있다. 이런 이들을 잘 받아들이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고 그들의 특성을 이해하려하는 사회의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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