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역사 - 외환위기부터 인플레이션의 부활까지 경제위기의 생성과 소멸
오건영 지음, 안병현 그림 / 페이지2(page2)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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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주의가 시작되면서 세계 경제는 여러 차례의 위기를 겪었다. 2차 대전의 사실상 원인이 된 대공황과 70년대 케인즈 주의를 끝장내고 신자유주의 열풍과 스태그플래이션을 불러온 오일쇼크, 20세기 후반의 동아시아 외환위기, 2008년 미국을 부도 위기로 몰아 넣고 신자유주의에 경종을 울린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 위기 등이 그런 것들이다.

 책 위기의 역사에서는 이 중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불어넣은 외환위기와 2000년의 닷컴 버블 위기, 2008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불러온 금융위기, 2020 코로나로 인한 위기를 다뤘다. 이 책의 장점은 매우 상세하고 분석적이면서도 책을 재밌고 쉽게 썼다는 점이다. 당시의 경제 기사들도 많이 다뤘는데 기사를 보니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인간 사회의 현실이 지금도 그대로 이어져 무척 현장감이 느껴졌다. 마치 당시 상황에 있었던 느낌이랄까. 


1. 1998년 외환위기

 한국 경제는 사실상 이시기를 전후하여 극명하게 구분된다. 이전엔 고도 성장기로 연간 10%에 가까운 고도성장을 누렸고 완전고용 상태에 가까웠으며 거의 모든 직원이 신분 안정을 누렸다. 회사는 직원을 과도한 노동시간으로 착취하긴 했지만 임금은 민주화 이후 꾸준히 상승했고, 어지간한 일로 직원을 해고하지 않았다. 때문에 당시만 해도 공무원은 크게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놀랍게도 양자의 정년까지의 고용안정성은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중산층이 매우 두터웠고, 빈부격차도 적은 시기였다.

 하지만 외환위기 모든게 바뀐다. 한국은 이후 성장률이 절대 5%를 거의 넘지 못했고, 일반 기업의 직업 안정성은 크게 낮아졌으며, 취업을 해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어 보수차이가 매우 커졌다. 빈부격차가 매우 커졌고, 취업자체도 매우 어려워졌다. 부동산 가격 등 자산가격이 폭등하였다. 집과 직장을 모두 갖기가 어려우리 결혼율과 출산율이 모두 급격히 낮아졌다. 

 이렇게 한국 사회를 극명하게 바꾸어 놓은 외환위기는 왜 일어났을까. 이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잡하게 작용한 결과였다. 대외적으론 일본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본은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엔고현상을 지속했다. 반면 국내 경기는 나날이 침체되어 높은 화폐가치를 이용해 해외 투자가 크게 증가하게 되었다. 그러다 1994년 고베대지진이 일어났는데 엄청난 재앙으로 인해 일본의 보험사들은 갑작스레 거액의 보상액을 지불하게 되었고, 이를 위해 해외 자산을 대거 매각하게 된다. 즉, 외화를 엔화로 바꾸어 보상하게 되니 안그래도 강력한 엔화가 초강세를 띠게 된다. 일본은 G7에 요청해 이번엔 역 플라자 합의로 엔화 약세 전환 협정을 맺는다. 이에 한국 기업들은 10년 간의 엔고 마감으로 갑작스러운 수출경쟁력 감소로 위기를 겪게 되고 수입 적자도 심화한다.

 또한 반도체 경기도 크게 후퇴한다. 95년 윈도우 출시로 세계 컴퓨터 시장은 호황을 맞는다. 또한 앞으로는 컴퓨터의 시대가 열릴 것으로 추정되어 수요는 순간적으로 폭증하는데 이게 문제가 된다. 컴퓨터에는 당연히 반도체가 필요하기에 당시 최신 버전인 16mb 반도체의 가격도 크게 올랐다. 하지만 96년 후반부터 컴퓨터 시장은 급격히 얼어 붙게 되고 반도체 수요도 급감하여 올랐던 가격은 평소의 1/4수준으로 추락한다. 한국은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반도체가 주요 외환벌이 수단이었기에 수출에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그리고 한국은 1996년 OECD에 가입한다. 한국은 이전까지 외국 자본의 국내 투자를 크게 제한하고 있었고 환율도 고정환율로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OECD가입으로 점차적으로 자본 시장을 개방하게 되었고 이는 당시의 세계화 열풍과도 관련한다. 한국은 당시 고금리 상황이었는데 한국의 종합금융사들은 이를 이용해 해외의 달러자산을 저이자로 빌린 후 이를 국내에 융통하여 이자 장사를 하고 있었다. 다만 이득을 더 크게 하기 위해 달러는 저금리 단기로 빌리고 국내엔 장기로 이를 융통했다.

 이 세 가지 요인이 한 순간 폭발했다. 동남아사이 국가에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외국 투자자들은 아직 선진국이 아닌 개도국이었던 한국에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게 된다. 외국자본이 이탈하자 한국은 외환보유고로 방어에 나서나 당시 보유액은 300억 달러에 불과했다. 더구나 반도체 경기 악화로 외화가 들어올 길은 없어 적자가 심화하고 있었고 대출상환 압박에 급박했던 종금사들은 돈을 장기로 빌려주고 달러로 갚아야 했기에 방법이 없었다. 그렇기에 외환위기에 이른 것이다. 

 외환위기로 자금을 빌려준 IMF는 한국에 강도높은 구조조정과 해외 자본 이탈 방지를 위한 고금리를 강요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중산층이 붕괴되고 자산가격이 해외에 헐값에 넘어가는 고통을 겪는다. 


2. 2000년 초 닷컴 버블위기

 동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남미와 러시아로 위기가 이어진다. 세계적 실물 경기 둔화로 원자재와 유가가 크게 떨어졌고, 아시아 국가들은 통화가 가치가 하락했다. 그러다 보니 남미와 러시아 및 다른 신흥국들의 수출경쟁력도 하락해 이들이 위기를 겪게된다. 여기에 일본도 침체였고 아직 약했던 중국 역시 대규모 부실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에 세계 경기를 부양해야 할 필요성을 느긴 미국 연준은 금리를 인하하게 된다. 당시 미국은 경제상태고 90년대 내내 이어진 호황으로 괜찮았지만 그럼에도 금리를 인하한 것이다. 

 그 결과 미국 증시가 들썩이기 시작한다. 주가가 상승했고 미국 경제는 디지털 경제의 등장과 더불어 신경제란 용어가 생겨난다. 신경제에 대한 과도한 착각으로 주가는 급등했고, 자산이 상승했다고 착각한 사람들의 소비가 늘어나면서 물가가 상승한다. 미연준은 상승하는 물가를 막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닷컴 버블 붕괴의 시초가 된다. 

 닷컴 버블의 붕괴는 초기엔 IT기업의 주가만 폭락시켰지만 이어져서 실물경기도 둔화시킨다. 다른 기업들의 주가도 몇 년간의 시간차를 두고 크게 하락한 것이다. 미 연준은 이에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금리를 다시금 인하하지만 이런 불황은 오래도록 이어진다. 코로나 이전까지 세계 경제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저성장 저물가 기조를 오래도록 이어왔는데 이것의 시초가 된게 닷컴 버블 붕괴다. 


3. 2008 서브프라임 모기지 붕괴로 인한 금융위기

 닷컴 버블 이후 미국 주식 시장은 10년간의 하향기를 걷는다. 반면 부동산 시장은 같은 기간 견고히 안정적으로 성장한다. 그리고 여기에 오랜 불황으로 세계적으로 믿을 만한 투자처가 사라진다. 즉, AAA짜리 안전적인 회사채가 크게 부족해진 것이다. 많은 기업들이 흔들리고 도산한 결과였다. 이 두 가지는 맞물려 미국을 부도 위기로 몰아넣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촉발하게 된다.

 미국 부동산 시장은 주식시장과 별로도 2000년대 들어 안정적인 상승을 이어갔다. 이는 주식시장의 붕괴와 관련한다. 주식시장이 믿음을 주지 못하자 부동산으로 투자자금이 몰린 것이다. 더군다나 이 시장은 오랜 기간 견고했기에 부동산 시장이 상당히 안전하고 꾸준히 우상향한다는 믿음이 비교적 장기간 형성되었다. 또한 닷컴 위기 이후 달러가 약세화하고 미 금리가 낮아졌는데 이로 인해 국제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고 중국이 세계 공장으로 발돋움하며 더욱 올랐다. 신흥국들이 돈을 크게 번 상황에서 이 투자자금은 미국 부동산으로 흘러들어갔다. 

 또한 세계적으로 유동자금을 흡수할 우량 등급의 회사채가 사라졌다. 투자자금은 갈 곳을 잃은 상황이었는데 이 물꼬를 스티브 글래스법의 해체가 열어준다. 스티브 글래스 법은 대공황기에 생겨난 법으로 상업은행의 방만한 투자를 크게 제한한 법이었다. 당시 대공황의 악화에 상업은행들의 무분별한 투자와 방만한 경영이 한몫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90년대 말부터 금융경제가 강조되며 미국은 상업은행들의 발이 묶인 방면 유럽은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었기에 이와 같은 흐름이 스티브 글래스 법의 해체를 가져왔다. 

 법이 해체되자 미국 상업은행들은 이전의 방만한 경영을 시작한다. 미국 은행들은 부동산 시장이 견고하다는 믿음하에 직업, 일자리가 없는 이른바 서브 프라임 계층에게까지 주택담보대출을 시작한다. 조건도 매우 너그러워 원금 상황 없이 장기간 이자만 내는 형태였다. 그리고 일부 투자기관들은 파생상품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은행이 갖고 있는 주택담보대출 수백건들을 하나로 묶어 MBS라는 채권을 만든 것이다. 은행들은 이 MBS를 투자기관에 팔아 생겨난 여분의 금액으로 또 다시 주택담보대출을 실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대출로 투자기관은 또 다시 MBS를 만들어 팔았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투자기관들은 이 MBS조차도 모아서 CDO채권을 생성했다. 이 채권은 MBS중 연체율이 극히 낮은 우량의 담보대출은 모은 것으로 이것이 트리플 A 등급의 채권이 되어 세계적 유동자금을 흡수했다. 여기에 더 나아가 CDO채권에 보증을 서주고 낮은 수수료를 받는 CDS도 만들어냈다. 모두 얽히고 섥혔고 복잡하고 안전하게 만들었지만 근원은 주택담보대출에 있었고 이는 주택 자산가격의 꾸준한 상승과 주택담보채무자들의 이자지급능력에 매달리는 구조였다. 그리고 이것이 흔들리자 모든 것이 한방에 무너져내렸다.

 미연준은 늘 그렇듯 주택시장이 과열되자 금리를 인상하기에 이른다. 주식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자신의 자산 가격이 폭등하면 소득이 향상되었다는 착각에 이르러 소비를 증진한다. 때문에 경기가 과열되고 인플레가 발생하는 것이다. 금리를 인상하자 주택담보대출자들의 연체율이 급증했고, 신용이 낮은 계급부터 자산을 팔아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그리고 이들이 주택을 내놓자 집 가격이 폭락한다. 즉, 은행이 잡고 있던 담보물과 이자 모두가 무너진 것이다. 

 은행들은 평소 서로를 신뢰하고 믿기에 쉽게 상호 대출을 해준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발생하면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해 대출이 이뤄지지 않고 위기 은행을 도와줄 곳이 없어 자금이 막힌다. 그러면 소문이 나 뱅크런이 발생하고 은행이 도산한다. 전반에 퍼진 급격한 신용경색은 자금의 흐름을 정체시켜 결국 실물경제를 악화시켜 문제가 더욱 심해진다. 

 미국의 신용위기는 세계로 퍼졌다. 미국은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금리를 낮춰 유동성을 공급했으며 달러가 약세로 돌아섰다. 한국도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과거 외환위기읙 경험으로 충분한 외환보유고를 비축하고 있었고, 수출도 비교적 견조했다. 여기에 미국과의 통화 스와프 체결로 위험요소가 별로 없었다. 


4. 2020코로나 위기와 40년만의 인플레이션

 코로나 이전 세계 경제는 물가가 적정하고 경기가 좋은 편이었다. 이에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성장에 초점을 두어 낮은 금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경제활동에 급작스레 중단되자 생산활동이 멎고 고용이 줄고 소득이 낮아져 수요와 공급이 모두 줄어들게 되었다. 여러 경제위기의 누적으로 기업과 가계는 모두 부채가 많은 상황이었기에 무척 경제가 악화되었다.

 타개책은 대규모 양적완화였다. 2008년 미국은 7000억 달러를 양적완화했지만 이번엔 무려 5조달러 규모였다. 지난 2년간 30년어치의 돈이 풀렸다는 말이 허언이 아닌 셈이다.(아직 그돈이 묶인 미 증시와 세계 부동산 시장은 거품이 여전히 잔뜩끼어있다는 셈이다) 특히, 이번엔 고용을 전진시킬수가 없어 과거와 다르게 개인에 직접 현금을 지원했다. 그 효과는 막대하여 급격히 수요가 자극되어 경기가 폭발한다. 기업 실적은 크게 개선되었고 주식도 폭등했다.

 위기는 여기서 시작한다. 세계적 지원으로 수요가 팽창하고 달러는 유동성이 폭발해 크게 약세화한다. 원자재 가격은 폭등했고 제조업체의 생산이 증가해 원자재 가격이 더욱 상승했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으로 원자재 가격이 더욱 폭등한다. 러시아는 세계적 석유, 천연가스 및 원자재의 공급처이고 우크라이나는 밀의 공급처이기 때문이다. 공급측에서의 공급 부족과 수요측의 수요 폭발이 겹치자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하지만 이번엔 미 연준의 대처가 사태를 키운다. 코로나를 잠재우는데 빠르게 움직였던 연준은 워낙 인플레이션이 오랜만에 일어나서인지 움직임이 늦었다. 인플레이션이 급격히 발생한지 1년이 되어서야 사태가 일시적인 것이 아님을 인지하고 뒤늦게 금리를 인상한다. 미국은 뒤늦은 대체로 1년이란 기간동안 거의 5%에 가깝게 금리를 인상했다. 이런 금리인상은 80년대의 대규모 긴축 이후는 없었던 일로 오랫동안 풀린 자금으로 부채와 저금리에 익숙해있던 가계와 기업에 큰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물론 이는 거품을 빼는 과정으로 돈잔치에 익숙해진 가계와 기업이 마땅히 감수해야할 부분일 수도 있다. 경제는 결국 실물경기과 가까워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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