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움의 순간들 더 갤러리 101 1
이진숙 지음 / 돌베개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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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를 훔친 미술'로 유명한 작가 이진숙의 책이다. 저자는 책 '인간 다움의 순간들'에서 그것을 졸고라 칭하지만 사실 내가 본 미술 책들 중 '시대를 훔친 미술'은 단연 최고 중 하나다. 그 책에서 작가 이진숙은 서구에서 예술은 시대를 다소 앞서기도 때론 뒤따라가기도 하였는데 그것을 재밌게 잘 풀어냈다. 

 이번 책은 갤러리 101 시리즈 총 3권의 첫 번째 작품이다. 갤러리 101 시리즈는 제목처럼 르네상스부터 현대까지 시대를 조망하며 작가 101명의 삶과 작품, 시대에 대해 풀어낸 시리즈이다. 어찌 보면 시대를 훔친 미술을 더 상세하게 쓴 격이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런 책을 보다 보면 여러 작품과 작가들이 등장해 방향을 잡기 어려울 수도 있는데 책은 친절하게도 큰 장을 들어설 때마다 시대의 흐름과 주요 사건, 그에 따른 미술 사조를 설명해준다. 또한 책의 쪽의 좌측엔 작가의 이름 오른쪽엔 그 작가가 따른 사조를 기입하는 친절을 보이기도 한다.


1. 르네상스

 책 '인간 다움의 순간들' 은 르네상스부터 인상주의까지를 다루는데 시기는 16세기부터 19세기 정도까지라고 할 수 있다. 책에 등장하는 이 시기의 미술 사조를 정리하면 이렇다. 우선 르네상스다. 고대 그리스 로마 이후 서구는 종교가 지배하는 중세 천년의 암흑기에 있었다. 예술은 종교의 수단으로 자리 잡았으며 당연히 소재도 종교를 벗어날 수 없었다. 르네상스는 신에서 인간이 모처럼 중심이 되었으므로 예술의 소재도 인간으로 전환된다. 당시 르네상스의 근간이 되는 철학은 신플라톤주의다. 아름다움의 궁극적 원인인 이데아를 추구하는 미적 이상주의 자연을 재현하되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내려는 이상화태도다. 때문에 르네상스 시기의 작가들은 자연과 인간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려면서도 본질적인 미를 드러내기 위해 이상화하는 이중고를 겪게 된다. 

 그래서 재현이 중요한 방법으로 자리 잡는다. 재현은 눈에 보이는 자연, 사람을 그대로 묘사하려는 것으로 이를 위해 일점소실 원근법과 공기 원근법, 명암법 등 다양한 회화기법이 등장한다. 이런 경향은 19세기 인상주의 까지 지속적 영향력을 갖게 된다. 르네상스 시기에는 회화를 그리는 방법으로 프레스코화와 템페라가 있다. 프레스코화는 벽에 회칠을 한 후 젖은 상태에서 빠르게 그리는 수채화의 일종이며 벽에 그리다 보니 공공미술의 성격을 띄었다. 템페라는 계란 노른자에 안료를 풀어서 그리는 방법이다. 하지만 양자 모두 현실 재현에 부족함을 갖는 방법이기에 마침내 유화가 등장한다. 유화는 안료를 기름에 풀어서 그리는 방법으로 이로써 예술품은 더 강한 질감과 표현력을 갖출 수 있게 되었으며 현실의 재현도 강력해졌다. 더 나아가 유화는 인간 심리의 미묘한 감정과 심리, 영혼의 미세한 떨림까지 표현 가능하게 하였다. 

 이 시기는 지금은 매우 흔한 이젤 페인팅이 등장한다. 이동이 가능한 이젤 위에서 그림을 그리는게 가능해지면서 예술품은 사적인 재산의 일부가 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초상화가 등장한다. 기존에 초상화는 신화나 종교적 인물만이 대상이었으나 이젠 평범한 세속의 인물이 주인공이 되면서 개인의 가치가 서서히 증대됨을 보여주었다. 

 르네상스를 연 작가로는 이탈리아의 마사초가 꼽힌다. 마사초가 그런 대접을 받는 것은 그가 그림자를 그려 넣었기 때문이다. 중세 천년간 예술의 대상은 신이나 성인으로 이들은 모두 빛 그 자체이므로 그림자가 존재할 수 없다. 때문에 그림자를 그렸다는 것은 예술이 종교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하는 것이 되며 그림에 그림자가 있다는 것은 그림 안에 빛의 방향이 결정되었음을 뜻한다. 

 그리고 원근법이 등장한다. 중세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을 중시했기에 거리와 상관없이 중요한 것을 크게 그려넣었다. 그리다 보니 신과 성인, 왕이나 귀족이 크게 그러졌으며 평민은 그려지지 않거나 가장 작았다. 하지만 원근법이 등장하면서 신분과 상관없이 거리에 따라 크기가 달라졌다. 그 자체가 혁명적 시도였던 것이다. 

 중세에 등장한 그림 중 현재까지도 가장 가치가 높은 작품은 단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다. 모나리자의 가치가 높은 것은 몇몇 장치 덕분인데 우선 평범한 여성이 등장하면서 심지어 그가 웃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웃음이 무슨 문제인가 싶겠지만 서양문화의 두축인 헬레니즘과 히브리즘 모두에서 웃음은 금기시된 것이었다. 양자는 무거운 엄숙한 문화인데 특히 중세엔 중교적 구원이 중요시되면서 현실의 삶은 경시되었다. 때문에 현실에서의 웃음을 작품으로 드러내는 것은 지금 여기서의 삶이 즐겁게 의미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된다. 심지어 모나리자에는 배경이 있는데 당시 초상화의 대상은 왕이나 귀족이었고 그들의 배경은 당연히 그들의 영지였다. 그런데 모나리자에는 당돌하게도 배경이 존재한다. 다빈치는 모나리자에 스푸마토 기법을 사용하였는데 이는 회화의 입체감을 표현하기 위해 윤곽선을 자연스럽게 번지듯 그려 넣는 일종의 명암법이다. 또한 당시만 해도 아직 캔버스가 존재하지 않았기에 모나리자는 목판에 그려진 작품이다. 

 르네상스 시기는 개인이 탄생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는 예술에 그대로 반영되었는데 초상화가 그 증거다.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은 무려 상인계급의 첫 초상화다. 중세인은 거실이란 공동공간에서 거주했는데 그러다 문이 생기고 공간이 분할되어 사적인 공간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런 개인이 등장해 초상화와 더불어 자화상도 생겨난다. 1500년 알브레히트 뒤러는 놀랍게도 정면 초상화를 그렸는데 중세만 해도 정면 초상화는 신을 그릴 때만 가능했다.  


2. 매너리즘과 바로크

 매너리즘은 1520년에서 1600년까지 미술, 조화, 발전, 진보에 대한 르네상스적인 낙관을 잃어버린 시대에 예술가들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하며 나타났다. 그래서 이들은 형식적인 유희에 탐닉하게 된다. 매너리즘적 인간은 르네상스적 확인과 자신감을 상실한 상태로 그들의 신체는 고전적인 비례를 잃고 길쭉하게 변형되어 그려지게 된다. 바로크는 17세기에 번성한 미술 양식으로 찌그러진 모양의 진주라는 포르투갈어에서 유래했다. 바로크 미술에서 인간은 분열하고 불안해진 세계를 살아가는 결점투성이 개인이다. 당시는 종교갈등으로 인해 구교는 권위회복과 교회의 영광을 위해 교회미술에 큰 관심과 투자를 했는데 이것이 바로크 미술의 원동력이 된다. 

 이 시기는 카라바조, 푸생, 루벤스, 벨라스케스, 램브란트, 프란스 힐, 페르메이르가 등장했으며 이들은 그림 앞에 마주서면 실제 사건을 보는 듯한 최고조의 환영주의를 이끌었다. 테네비브리즘이라는 극단적 명암대조법도 등장했는데 사건의 중요한 부분은 환하게 나타내고 나머지는 어둡게 처리하여 사건에 집중하게 하는 방법으로 카라바조가 시작해 램브란트가 이를 최고 경지로 이끌었다. 

 17세기에 네덜란드는 스페인에서 독립한다. 네덜란드는 시민의 힘으로 독립하여 강한 자긍심과 원동력을 갖고 있었고 보통 사람들에 의한 황금기를 경험한다. 이런 평민들의 시대는 풍경화와 풍속화 정물화가 하나의 장르로 등장하는 계기가 된다. 

 카라바조는 회화의 세기인 17세기를 연 화가다. 그는 테네브리즘, 자연주의, 드라미티즘을 개발했다. 그의 자연주의는 있는 그대로를 그리는 것으로 예술적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고 추함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래서 카라바조가 그린 몸은 인간의 육체적 한계, 생로병사의 고통을 그대로 드러내며 신성한 기적을 거부한다. 

 아우구스부르크 종교화의로 일국 일교의 원칙이 정해진다. 그래서 각 국이나 지역의 종교는 왕이나 제후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으며 예술도 이를 추종해 신의 영광을 찬양하던 미술에서 왕의 권력을 찬양하는 미술로 전환한다. 그래서 17세기 중반 이후 궁정 바로크 미술이 크게 발전하게 된다. 군주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왕권신수설을 주장했고, 지동설을 옹호했는데 이는 천동설을 고집하는 교회의 권위를 부정하고, 태양과 비유되던 왕권을 강화하는데 더욱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같은 차원에서 자신들의 초상화도 많이 그렸다. 때문에 왕권의 정당성이 부족했던 프랑스의 마리 드 메디시스나 영국의 찰스 1세, 러시아의 예카테리나2세, 나폴레옹등이 요란하게 초상화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왕과 성직자, 광대를 모두 그린다. 그는 이들을 미화하지 않고 그려냈는데 그림에 담은 그의 인물 해석은 17세기의 관습과 편견을 넘어섰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신분이나 부가 아니라 사람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는 교황도 그렸는데 그의 고집스러운 면과 불안한 표정을 그대로 그려내 교황자체가 매우 불안하게 여겼다고 한다. 


3. 로코코,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루이 14세의 사후 그 손자가 어린 나이에 즉위하자 섭정시대가 등장한다. 그리고 섭정양식이라 불리는 섬세하고 장식적인 귀족 중심의 문화가 펼쳐지고 이것이 로코코다. 로코코 속 인간은 전원에서 사랑을 나누는 카사노바적 인간이거나 돈과 능력은 있으나 정치권력에서 소외한 인간이다. 신 고전주의는 퇴폐적 로코코를 비판하면서 등장한 미술이다. 그리스 스타일을 모범 삼아 표현과 포즈에서 고귀한 단순함과 고요한 위대함을 추구한다. 프랑스 혁명 초기 주요세력이 원하는 이성적인 사회질서에 상응하는 미적 이상을 보여주는 인간이 주인공이 된다. 낭만주의는 신고전주의의 보편적 미 원칙을 거부한다. 이성보다는 감정, 보편보다는 특수, 합리보다는 비합리를 추구한다. 신고전주의가 그리스 로마라는 보편을 지향했다면 낭만주의는 각국의 역사라는 개별을 향한 운동이다. 그래서 각국의 민족적 특성에 관심이 있었으며 예술가들은 인물의 개성에 주목한다.

 신고전주의는 로코코의 몽롱한 유희에서 벗어나 다시 의미 있는 예술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등장한다. 때문에 신고전주의는 세대를 넘어 전해지는 교훈이 담겨야 하며 그래서 그 주인공은 영웅이다. 그래서 자크 루이스 다비의 그림에는 유독 죽음이 많으며 대상은 트로이의 핵토르나 소크라테스, 프랑스 혁명의 마라등이다.

 앵그르는 터키탕을 그렸다. 그림은 특이하게도 원형인데 이는 열쇠 구멍으로 들여다보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남성 중심의 관음증을 의미한다. 앵그르의 시대에는 비너스를 그리는게 이미 낯간지러운 시기가 된다. 그래서 비너스의 자리에는 마음놓고 쳐다봐도 되는 새로운 약자인 오달리스크라는 동양 여자가 자리한다. 이는 남성위주의 제국주의적 시각이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 그리고 프랑스는 프랑스 혁명으로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였다. 하지만 과거의 혁신적 강자 스페인은 아직도 절대왕정과 종교재판에 갇혀있는 전근대적 국가였다. 프란시스 고야의 그림은 그래서 어두운 낭만주의가 된다. 자식을 삼키는 사투르 누스나 5월 3일의 저항 등은 그런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낭만주의에서 테오도로 제리코도 어둠움을 그린다. 그가 주목한 것은 시신과 정신병자다. 그는 메두사호의 뗏목을 그려 사회의 어두운 면을 그러냈으며 정신질환자들을 초상화의 대상으로 삼았다. 흔히 비정상으로 분류되던 그들을 초상화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제리코는 그들을 인간의 영역으로 복귀시켰고 우리는 그들로부터 인간의 어찌할 수 없는 어리석음과 약함을 마주하게 된다. 이런 제리코의 낭만주의는 이성 중심의 계몽주의 철학과 신고전주의가 놓치고 있던 한 측면을 예술로 발전시켜 이후 현대 예술사에서 추가 중심으로 자리 잡는 초석을 놓은 것으로 평가된다. 

 19세기 초반에는 현재의 상황을 과거의 역사적 사건에 빗대어 그리는 관행에서 벗어나 역사적 사건을 직접 다루는 역사화가 등장한다. 이는 새로운 역사적 주체인 민중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독일 낭만주의는 독일 국민의 민족 의식 자각과 관련이 있으며 그들은 신고전주의는 프랑스 양식으로 간주하여 거부하고 게르만의 뿌리는 찾으려는 노력으로 낭만주의를 전개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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