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리우의 또 다른 책이다. 이번이 세 권째인데 역시 단편 모음집이다. 장편은 없는 건가, 겉면만 보고 쉽게 알 수 없기에 좀 고민이다. 단편이든 장편이든 각각 장단이 있다. 단편은 다양함이 있고 작품이 많다보니 그래도 내 취향이 뭐하나라도 걸릴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있다. 하지만 매번 새로운 분위기와 이야기에 들어가야 하니 그게 좀 귀찮다. 장편은 한번 빠져들면 긴 몰입감으로 책을 쭉쭉 읽어나갈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가 하나라 취향을 타주긴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여튼 켄 리우의 책은 모두 재밌었지만 이번 책은 지난 주 읽은 책과 상당히 유사해서 큰 재미를 느낄 수 없었다. 그래도 두 부분 정도가 인상깊었다. 하나는 멀리 떨어진 자식이 와병중인 부모를 원격으로 로봇에 접속해 로봇을 움직이며 병문안하고 간병하는 이야기였다. 이 로봇은 죄의식을 덜어주기 위해 개발되었다는데 그는 로봇을 통해 아픈 어머니의 똥기저귀 냄새, 죽음의 냄새등을 맡지 않아도 된다. 켄 리우는 마치 가족 중 중환자가 있었던 경험이 있는 것처럼 이 장면을 그리고 간병을 해야하는 가족의 심리를 잘 묘사했는데 이를 또 과학기술과 접목하니 탁월했다.
다른 장면은 역시 인공지능 부분이다. 삼부작이 연결되었는데 내용은 이렇다. 사람들의 뇌를 스캔하여 가상 세계에서 물질을 초월해 영생하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이에 사람들은 하나 둘 현실 세계를 떠나간다. 처음엔 죽음을 앞둔 사람, 병에 걸린 사람들이었겠지만 나중엔 멀쩡한 사람들도 그 길을 따라간다. 그렇다보니 현실은 초토화된다. 발전을 하는 사람도, 도시를 관리하는 사람도, 공무원도 직장인도, 기업인도, 상인도, 농업인도 사라진다. 남은 사람들은 모든 도시 기반 시설이 망가진 상황에서 힘겹게 살아간다. 한 가족은 그런 삶은 영위하면서 진정한 삶은 물질에 기반하여 죽음을 맞는 삶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가족의 어머니가 병에 걸리고 아버진 자신과 그녀의 신념에 반하지만 그녀를 잃을 수 없기에 영생 시술을 강행한다.
그리고 가상 세계로 들어간 어머니는 변화한다. 그녀는 남은 가족들에게 이 세계로 들어올 것을 권한다. 아버지는 그녀를 따라간다. 그리고 가상세계의 사람들은 그 안에서 아이들을 탄생시키는 방법도 알아낸다. 그래서 아이들은 물질 세계를 경험한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로 구분된다. 가상세계의 아이는 살아가며 로봇에 들어가는 것을 통해 물질세계 지구를 구분한다. 가상세계에선 3-4차원의 낮은 차원을 무척 지루해하던 그들이었지만 3차원에 불과한 물질세계가 주는 느낌과 경험, 감각에 압도된다.
만약 인간 사회에 가까운 시일내에 이런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궁금하다. 인간이 사라져 문명은 초토화되었으나 인간에게 착취당하던 지구 생물권은 놀랍게 회복된다. 그리고 가상세계인들은 자신들의 문명을 긍정하며 과거 야만적으로 자신들이 살기 위해 지구를 파괴했던 과거를 경멸한다. 그런데 그들의 가상세계도 아마도 거대한 데이터 센터와 통신망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에너지 등의 물질세계가 필요하다. 그건 어떻게 된 것일까. 책엔 자세한 설명은 나오진 않는다. 하여튼 이 같은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할 때 인류 대부분이 어떠한 선택을 할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