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 종말론적 환경주의는 어떻게 지구를 망치는가
마이클 셸런버거 지음, 노정태 옮김 / 부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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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대, 그리고 2020년대 들어 세계 각국은 기후 위기에 따른 환경변화로 극심한 고통을 확실히 체험하고 있다. 때문에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은 전 지구적 과제가 되었고, 환경운동은 세계를 지배하는 하나의 테마가 되었다. 인간은 산업화와 더불어 자신의 신체적 안녕과 욕망, 번식이라는 생물학적 요구, 그리고 문화사회적 욕구를 위해 자연을 과도하게 파괴하였다. 또한 과거에 축적된 태양에너지(화석연료)를 이용하는 능력을 획득해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 이상의 에너지를 사용한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기온을 분명히 상승시켰으며 인간이 그 대가를 다른 희생자 생물들과 같이 치루고 있다. 

 하지만 기후운동을 비롯한 환경 운동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환경운동은 마치 기독교의 교리처럼 다소 교조적이고 이분법적이라는 점이다. 환경운동은 환경보호를 절대시 하고 이에 반하는 측은 악으로 다루는 성향이 있다. 이는 과학으로 지적 권위를 얻고 있기도 하다. 분명히 옳은 일이나 이는 환경보다 더 중요한 생존의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의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하루 세 끼와 안전한 식수와 거처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인간의 수는 10억 이상이다. 이들은 선진국 사람들에 비해 거의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지 못하지만 이런 나라들의 경제개발조차 환경운동은 비용이 크고 효율이 낮은 친환경방식이나 재생에너지 사용을 강요한다. 그날 그날의 생존과 삶의 질이 매우 낮은 사람에게는 분명 환경운동이나 기후위기 보다는 내일의 생존이 더 중요한 문제이며 이는 당연하며 도덕적으로 문제 삼기 어렵다. 특히, 환경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선진국이나 개도국의 중상위층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이들은 이러한 기본적인 욕구를 이미 과도하게 해결한 상태이며 현재의 환경파괴를 자행한 사람들이다. 이들 국가들의 숲이나 자연은 과거 철저히 파괴되었었고 오히려 경제개발로 인해 최근 많이 회복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의 전지구적인 환경보호 주장은 위기를 막기 위한 당연한 방안이자만 이기적이고 도덕적 정당성을 얻을 수 없다.

 두 번째 문제는 자연적인 것이 무조건 좋다라는 착각이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만든 수많은 인공물이 자연을 파괴한 것은 사실이다. 인간이 매년 만들어내는 엄청난 규모의 플라스틱은 해양과 토양을 오염시키고, 미세플라스틱으로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의 순작용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인간이 저렴한 인공물을 생성해 물건의 원료를 만들어내기 전까지 그것들은 모두 자연에서 충당했다. 코끼리는 피아노 건반과 당구공의 원료인 상아로 인해 멸종위기에 몰렸고, 고래는 등유의 재료가 되어 같은 위기에 처했다. 거북의 껍질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들을 구한건 훨씬 저렴한 인공물 재료였다. 

 마지막 문제는 환경주의자들의 모순된 행태다. 유럽과 미국의 많은 셀럽들은 환경보호를 주장하며 대중들에게 문제를 알리고 긍정적인 홍보효과를 낸다. 하지만 일부는 환경운동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 및 포장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환경보호를 위해 탄소를 매우 많이 배출하는 광란의 파티를 벌이거나 장거리를 제트기를 타고 여행해 역시 거대한 탄소를 배출하는 행위를 일삼는다.  

 책은 이런 환경주의의 모순을 지적하면서 가난한 지역에서의 진정한 환경운동은 인프라의 구축과 고밀도 에너지 확보, 경제개발을 통해 자연의 파괴 범위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이들의 기본적 욕구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책은 가난한 국가에서의 댐 건설 행위, 공장의 건설, 원자력 발전의 허용, 화력발전, 과도한 국립공원 이용의 해제를 주장한다.

 댐 건설은 광범위한 수몰지역을 형성해 환경론자들로부터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간주된다. 하짐나 정작 이런 주장을 하는 선진국 중 수력에 의존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현재 신재생에너지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수력이다. 여기에 수력은 낮은 기술수준으로도 건축 및 유지가 가능하며 100년 정도의 긴 수명도 자랑한다. 댐을 건설하면 광범위한 지역이 수몰되어 자연이 파괴되는 것은 맞지만 그 이상의 이득이 있다는 것이다. 

 공장의 건설 및 화력발전도 마찬가지다. 석탄이나 석유, 천연가스는 매우 밀도가 높은 에너지다. 이들은 적은 양으로 다른 자연물보다 연소를 통해 막대한 에너지를 낸다. 실제로 화력발전소는 매우 적은 부지를 요구하며 이에 비해 막대한 에너지를 공급한다. 같은 수준의 에너지를 내는 풍력발전과 태양광 발전은 수십배나 넓은 에너지를 요구하며 기후에 따른 불안정성에 노출되며 전기의 특성상 딱히 기후여건이 좋은 날 생산한 에너지를 저장할 방법도 없다. 에너지를 위한 넓은 부지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화력발전보다 더 많은 자연을 파괴하게 된다. 풍력발전은 많은 생물을 죽이기도 한다. 수많은 철새들이 매년 풍력발전기에 의해 희생되며 훨씬 더 많은 수의 곤충들이 여기에 갈려나간다. 곤충이나 새의 사체 찌꺼기가 풍력발전기에 붙어 효율이 절반가량 떨어지는 일도 많다. 또한 풍력발전은 박쥐에게 곰팡이 병을 일으키기도 한다. 

 책은 원자력을 매우 옹호한다. 이유는 화력발전의 옹호와 비슷한데 우라늄이 가장 밀도가 높은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화력발전은 꾸준히 탄소를 배출하는 단점이 있지만 원자력은 전혀 그렇지 않다. 책은 원자력은 생각보다 매우 안전하며 사실상 필요한 방식의 발전이라 주장한다. 화력발전이나 원자력 발전을 하지 않는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은 나무를 통해 연료를 얻는다. 산업혁명 이전 유럽인들도 그러했는데 이런 이유로 인해 유럽대륙을 뒤덮었던 광대한 살림을 거의 사라졌었다. 산업화를 이루고 고밀도 에너지를 사용하면서부터 산림이 복원되었기에 가난한 나라에도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쳐야한다는게 책의 주장이다. 그들의 기본적인 욕구와 생존권을 해결하고 자연문제도 해결하자는 것이다.

 환경파괴로 인해 비정부기구와 환경단체 및 선진국의 정치인들은 가난한 나라의 국립공원 지정 및 운영에 간섭한다. 이들은 국립공원 내의 침팬지나 고릴라, 야생동물의 보호에 큰 관심을 두며 이를 절대시 한다. 하지만 국립공원 인근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동물들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피해를 주는 동물들일 뿐이다. 이 사람들은 가난한 상태로 농경에 의지하거나 사냥에 의존한다. 하지만 국립공원내 동물들이 밭은 침범하여 농작물을 모두 가져가도 이들이 그 동물을 사냥하거나 죽이는 것은 금지된다. 또한 인근 토지의 이용도 상당히 제약을 받는다. 환경단체들은 이런 사람들의 소득을 보존하기 위해 국립공원내 관광을 추진하기도 하지만 이는 충분치 않다. 사람은 많은 돈을 내고 치안이 불안하고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곳으로 관광을 가진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책은 생존을 위한 이들의 권리도 인정하고 개발권을 어느 정도 보장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은 놀랍게도 수십년 간 환경운동에 투신한 사람이 쓴 것이다. 때문에 환경운동의 맹점에 대해 잘 알고 날카롭게 모순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신선했다. 책의 여러 가지 부분이 생각하지 못했던 점이어서 설득력이 있었지만 주장하기 어려웠던 지점도 많다. 우선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부분이다. 저자는 재생에너지의 단점을 많이 지적했지만 기술수준은 꾸준히 증가하여 이미 발전단가가 화력발전보다 저렴해졌다. 또한 수소를 통한 저장방법이 활성화되면 에너지 수급의 불안정성도 해결된다. 다만 풍력발전의 위해성과 넓은 부지의 필요성은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다.

 다음은 원자력이다. 책은 원자력을 상당히 강조한다. 하지만 원자력은 매우 위험하다. 인간은 아직 원자력 폐기물을 처리하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져 방사능이 나오는 것을 막고 안전한 곳에 보관하는 방법이 전부이다. 발전소의 위험성도 마찬가지다. 지구상의 많은 발전소들이 지진이나 해일, 태풍, 화산등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한 곳에 자리한다. 화력발전소나 재생에너지 발전소에게 그런 일이 닥친다면 작은 참사지만 원자력은 전혀 그렇지 않다. 책은 이런 점을 외면한다.

 최근 세계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전 세계적 참여를 독려하고 이를 위해 선진국들이 가난한 나라에게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는 매우 옳은 일이며 책의 방향과 일치한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당장 신재생에너지 및 개발과 생산을 고밀도로 할 수 있는 기술의 이전이 더 중요하다. 그저 돈을 뿌린다면 그들은 역시나 환경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경제개발을 해나갈 수 밖에 없다. 또한 늘 그렇듯 정치적 구조의 미비로 그 돈의 향방 역시 안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지원 금액의 액수도 구체적이지 않다. 하지만 기술이전은 그 나라의 경쟁력을 공개하고 나누는 것이기에 쉽지 않다. 기후위기문제의 해결을 위해 더 큰 노력과 정밀한 해결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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