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폰스 무하, 새로운 스타일의 탄생 - 현대 일러스트 미술의 선구자 무하의 삶과 예술
장우진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알폰스 무하의 그림을 처음 본것은 책 '시대를 훔친 미술'에서였다. 20세기 초반 과학기술의 발달과 사상의 변화로 다양한 미술 실험이 일어날 때인데 시대에 맞지 않는 정말 예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의 그림을 보면서 지금 봐도 어색하지 않을 멋진 일러스트레이트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실제 알폰스 무하는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반 파리에서 주요 광고와 포스터에 일러트스레이트를 그려넣었다.

 무하는 체코 사람이다. 태어날 당시엔 체코가 없었고 아마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그는 어릴적 바로크 양식의 교회에서 음악 활동을 했는데 이 경력은 그의 활동과 예술에 영향을 꾸준히 미쳤다. 

 무하는 모라비아의 시골에서 벗어나 빈으로 향한다. 빈에서 무하는 두 가지를 얻었는데 우선 극장과의 만남이다. 공방의 일로 극장을 드나들면서 무하는 새로운 영감과 원천을 얻어 극적 표현방법에 눈뜬다. 다음은 한스 마카르트와의 만남이다. 당시 빈을 주름잡던 그에게 무하는 신화화와 역사화에 깊은 관심을 얻게 된다. 하지만 빈에서의 생활은 잠시 극장의 화재로 무하는 일감을 상실한다. 풀리지 않는 인생에 무하는 무작정 여행을 떠나고 미쿨로브라는 곳에 머물며 우연히 마을 사람들의 초상을 그리며 연명한다. 곧 지역의 대지주 쿠엔벨라 백작의 눈에 띄어 후원을 받게 되고 뮌헨 아카데미에서 수학한 후 파리로 향하게 된다. 

 파리에서 무하는 민족주의자들과 계속 교류하며 체코의 민속 미술에 대해 사회적 역할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다. 나비파 화가들과의 교류에서는 신비주의적이고 비의적인 관심을 고조하게 되며 초현실적인 존재에 대한 관심도 커지게 된다. 한편 무하는 백작의 후원에도 이렇다할 성과가 없자 백작은 무하에 대한 매달 200프랑의 지원을 끊는다. 생계가 어려워진 무하는 아카데미를 그만두고 일을 시작한다.

 일감을 조금씩 얻어 일러스트레이터로 명성을 얻어가던 무하에게 당대 최고 배우 사라 베르나라의 연극 지스몽다의 포스터 의뢰가 들어온다. 무하는 이를 성공적으로 그려내고 큰 성공과 명성을 얻는다. 1896년 사라 베르나르가 인쇄업자를 샹프누와로 옮기자 그들과 함께 장식 패널, 달력, 엽서등을 선보이며 소위 무하양식은 완성하게 된다. 

 무하는 특유의 양식과 더불어 광고주와 소비자가 원하는 이미지를 잘 파악하였는데 이것이 그의 성공요인이었다. 실제 이당시 무하의 광고 포스터나 그림들은 지금의 현대적 광고 모델들이 취하는 포즈나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무하의 작품엔 여성이 많이 등장한다. 당시는 세기말로 팜므파탈이 유행했는데 무하의 여성들은 그와 달리 고운 살결에 풍성한 머리칼, 몸체를 이루는 풍만한 곡선에 우아한 의상, 잘 꾸며진 실내와 화려한 악세사리가 어우러져 예의단정하면서도 우아한 고품격의 매력을 풍긴다. 

 무하는 독일 역사의 여러장면과 일화 작업을 통해 역사 삽화가로 명성을 얻게 된다. 무하는 슬라브민족으로 게르만의 작업을 할것인지에 대해 고민했으나 게르만의 호전성이나 공격성을 드러내는 대신 그들의 지적, 정신적 공적에 주목하고 체코인들이 그들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과 사건을 부각시키며 작업을 수락한다. 그의 역사 삽화는 마치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생생했는데 이는 의상, 소품의 사실적 묘사와 극장 경험에서 우러나온 극적 연출때문이었다. 

 삽화가로서 무하는 글과 그림의 조화를 중시했다. 1894년 루티와 함께한 연속된 끈의 꼬임처럼 상징적이고 양식화된 표제양식은 무하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252부 한정판의 일세에서는 132개에 달하는 무하의 삽화와 장식적 표지가 있었다. 무하의 이런 삽화는 중세의 필사본을 연상시키면서도 매우 현대적인 면이 있었다. 

 무하는 프랑스를 떠나 미국에서 생활하지만 고국 체코로 돌아간다. 그는 그의 대표적 슬라브 서사시를 시작한다. 무려 20년 작업으로 슬라브 민족의 역사중 20개의 장면을 선정했다. 5개는 알레고리적 테마로 5개는 전쟁 5개는 종교 5개는 슬라브 문화였다. 그리고 이들 중 10개를 체코의 역사에서 그리고 나머지 10개를 다른 국가의 슬라브 역사에서 채택했다. 무하는 작업을 위해 서보헤미아의 즈비로흐성을 빌렸고, 캔버스를 팽팽히 하기 위해 거대 금속틀을 제작했으며 유화의 어려움을 경험해 템페라로 작업한다. 작업기간은 1차 대전중으로 재료 수급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무하는 1926년 슬라브 서사시를 완성하고 후원자 크레인과 전시회후 이를 체코정부에 기증한다. 

 무하는 서사시 완성후 길고 폭이 넓은 옷을 걸치고 머리에는 흰두건을 한 여성을 많이 그려낸다. 삶의 경과에 대한 상징으로 보인다. 세월히 흘러 나치독일에 프라하가 점령되며 슬라브를 중시하는 무하는 나치 당국의 경계대상으로 체포되어 심문당한다. 심문의 여파인지 그는 1939년 79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무하의 슬라브 서사시는 체코가 공산화하며 민족성과 애국주의에 대한 경계로 오래도록 묻혀지내가 무하의 아들 딸의 노력으로 점차 빛을 발하게 된다. 1998년 무하의 상설전시관이 건립되고 작품도 항상 전시되게 된다. 무하의 파리에서의 양식은 아르누보 양식으로 미술과 삶이 결합해 주변 환경에 총제적 변혁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 만큼 그의 예술이 보기 쉽고 아름다우며 상업적인 부분과도 결합할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 나와도 성공할 일러스트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i74 2021-06-16 18: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셩격도 좋고 후배들에게도 잘하고 마음은 따뜻했고 실력은 천재였고. 자신의 노하우를 모두에게 공개하고. 예술계의 사기캐 아닙니까 ㅎㅎ *^^*

닷슈 2021-06-16 20:37   좋아요 2 | URL
책에도 나오긴 하는데 후배들 챙기고 매일 파티하느라 그렇게 성공하고도 돈을 못 모았더군요. 말년에 나치에 당한게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레이스 2021-06-16 18: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좋았던 책입니다

닷슈 2021-06-16 20:37   좋아요 2 | URL
무하 단독 책은 처음 보았는데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