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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는 클라스 : 국제정치 편 - 역사 분쟁 · 무역 전쟁 · 이념 갈등 ㅣ 차이나는 클라스 4
JTBC <차이나는 클라스> 제작진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0년 4월
평점 :
차이나는 클래스를 본적이 없다. 아이들 키우며 아내가 고장난 TV를 고치지 않은 탓이다. 수리비가 20만원이 나왔는데 새로사는게 차라리 낫지 않겠냐란 의견을 서로 나눈후 무려 3년을 TV없이 살고 있다. 좁쌀같은 성격에 누구도 적극성이 없어 이리 되었다. 그리고 이 말은 곧, 내가 그 대단했던 월드컵 사상 최대 이변인 러시아 월드컵 한국대 독일전 마저 주방용 조그만 TV로 시청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니 차이나는 클래스도 당연히 보지 못하지 않겠는가. 이대로라면 코로나가 다음 월드컵을 허락한들 역시 주방TV신세일 것이다.
이 책은 쉬운데 좀 알찬 지식들이 있다. 북한과 소련, 중국의 개혁 개방이다. 북한의 개혁 개방은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데 우선 김정은이 스위스에서 유학하며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잘 알고 있다는 점이고, 기득권을 물리칠만한 강력한 1인집권체제라는 점과 동시에 중국, 베트남이라는 성공적 모델도 같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소련을 개혁개방에 실패했다. 이는 소련이 절대빈곤이 아닌 중화학 공업중심으로 소비재가 부족해 돈이 있어도 소비재는 못사는 기형적 빈곤상태였으며, 개혁개뱡의 주체였던 고르바초프가 불과 4세대 지도자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르바초프는 아예 기득권층의 저항을 물리치고자 민주정치를 감행했는데 그 과정에서 억눌렸던 민족주의가 되살아나 소련연방은 여러나라로 쪽져 버렸다.
반면 중국의 개혁개방은 성공한다. 중국은 우선 절대적으로 빈곤한 상태였고, 덩샤오핑은 무려 1세대 혁명지도자로 특별한 지위없이도 사실상 최강의 권위를 누린 존재로 개혁개방 반대세력을 억누를수 있었으며 사실상 일당독재이면서도 여러 사람들의 집단지도체제로 나라를 이끌었기 때문으로 본다. 덩샤오핑은 민주체제가 매우 비효율적이고 여러 민족이 혼합되어 언제든 분열가능성이 있는 중국을 분열시킬 수 있는 위험요소로 보았다. 때문에 중국은 한국이나 대만식의 민주화가 아닌 싱가포르나 홍콩 같은 정치제도화의 길을 택했다. 정치제도화는 민주화는 아니지만 시민들이 원하는 국방, 치안, 사회복지, 경제성장등의 필수적 정치재를 제공해 안정화를 노리는 것이다.
중국은 때문에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이 정치재의 제공에 사활을 건다. 중국은 국유기업이 많은데 효율성이 떨어져 적자를 보는 경우에도 일자리의 제공이라는 사회적 역할때문에 적자를 국유은행이 보전해준다. 그러면 그 기업을 쓸데없이 살아남아 생산을 지속해 과잉생산을 일으켜 시장을 혼동시키고, 사회에 필요한 자원을 역시 쓸데없이 집어삼켜 좀비기업화한다. 중국의 체제가 유지되려면 매년 2천만개의 일자리가 요구되는데 공산당은 어떻게든 천 이삼백만개의 일자리를 생성하여 제공한다.
중국 공산당원은 무려 8900만에 달하는데 인구대비로 생각하면 소수다. 이중 겨우 2000명을 뽑아 5년마다 공산당 전당대회를 연다. 여기서 다시 200명의 정위원과 160명의 후보위원을 뽁고 이들로 중앙위원회를 구성한다. 이 중앙위원회가 1년에 1-2회 열리고 중국을 좌지우지하는 엘리트집단이다. 또 여기서 중앙정치부에 속하는 25명의 위원이 있고 또 여기서 상무위원 7명이 선출된다. 시진핑은 중국의 상무위원직책중 총서기와 중앙군사위 주석, 국가주석을 겸임한다. 국가주석은 상징적 권력에 불과하지만 총서기는 공산당 인사권자이며 중앙군사위원 주석은 무려 군지휘권자다. 사실상 모든 권력을 장악한 셈인데 시진핑 이전 부정부패한 기득권층이 공산당 지도부에 저항한 사건으로 인해 권력집중이 허용되었다. 시진핑은 이미 헌법개정으로 무한집권이 가능한 상태다.
이란은 이슬람공화국이다. 글자그대로 종교와 공화정이 결합한 초유의 실험인 셈인데 이슬람 법학자인 최고지도자가 국가원수이자 성직자이고, 그가 군통수권과 전쟁성포권, 외교 사법에 막강한 영향력을 갖는다. 하지만 공화정 체제로 대통령을 놀랍게도 직선으로 선출하고, 국회의원도 선거로 뽑는다. 이란의 국정은 최고지도자가 더 큰 영향력으 갖지만 대통령 및 공화정 인사들과 협의를 하는 체제이다. 양자의 조화랄까나.
이란이 이리된데는 영국과 미국의 탓이 크다. 이란은 본디 오랜 기간 왕정체제였다. 영국은 이란의 유전을 개발해 이란 왕조와 결탁했고, 영국이 이득을 취하는 대가로 사우디처럼 왕가는 보호받았고, 이득을 얻었다. 그러다 모함마드 모사데그란 자가 등장한다. 그는 영국이 자국의 석유로 이득을 취하고 이란 국민이 가난한 것에 분개해 영국이 장악한 석유를 국영화해버렸다. 이에 영국은 미국을 종용해 쿠데타를 일으켜 모사데그를 축출한다. 당시 한국전쟁 직후로 영국은 사회주의자인 모사데그가 소련과 결탁할 우려를 제기해 미국을 설득했다. 모사데그 이후 이란은 급진적인 백색혁명으로 서구의 여러 문화와 제도를 도입한다. 이란에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었겠지만 이 같은 급진적 변화는 많은 이란의 전통주의자들에게 경각심과 반감을 불러온다. 또한 이후 팔레비는 부를 쌓기만 하고 역시 이란 국민을 돌보지 않는다. 결과는 호메이니 혁명이었고 이란은 지금의 모습이 된다.
68혁명은 오늘날 세계를 만든 결정적 사건이다.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기치를 내걸었다. 64년 TV가 보급되면서 사람들이 미국이 일으킨 베트남 전쟁의 참상을 본게 혁명의 계기였다. 자유주의의 수호를 자처하던 미국에게서 유럽의 젊은이들은 제국주의적 면모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혁명은 파리를 시작으로 독일, 런던은 물론 철의 장막을 넘어 동유럽인 체코 프라하의 봄으로 이어진다. 대서양을 건나 미국 로스엔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 거기에 일본까지 간다. 물론 독재의 압제하에 있던 한국은 아니었다. 68혁명 이전 독일 사회는 지금의 일본처럼 과거청산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총리가 나치당원 출신이니 정말 지금의 일본과 별반 다를바가 없었다. 하지만 68혁명이후 독일은 지금의 독일로 변모한다. 모든 분야에서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된다.
이 68혁명이 한국엔 도달하지 못한다. 당시 한국은 박정희 정권으로 독재가 극에 달할때였으며 오히려 베트남 전쟁에 40만에 달하는 병력을 파병한 나라였다. 유럽의 68혁명세대에는 한국은 86세대가 대응된다. 한국민주화에 큰 공헌을 한 세대이며 한국의 민주주의는 이 세대에 빚지고 있다. 하지만 이후 오랜 세월 정치권력을 독점하고 있다. 20년전 비교적 30대의 젊은 나이에 정치권력을 차지한 이들은 5-60대가 된 지금도 자리를 차지한다. 그 덕에 한국정치세력은 세대, 그리고 직능에서 대표성이 크게 떨어진다. 직능에선 언론, 법률, 교수직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책은 한국민주주의의 실현은 광장이 아닌 일상에서의 민주주의가 실현될때 가능하다고 본다. 광장과 정치에선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실생활인 가정과 직장, 학교에서는 유교적, 군사적 문화가 혼합한 권위주의가 만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통일 후엔 북한이 통일한국정치권력의 캐스팅 보드를 잡을 것으로 본다. 우린 독일의 통일을 서독이 주도한 것처럼 생각하지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동독인들이 많은 봉기와 적극성을 보였다. 그리고 메르켈 총리를 비롯하여 통일 이후 독일의 집권자는 대개 동독 출신이었는데 이는 정치권력이 균형적이었던 서독의 세력을 동독 세력이 선택해야 집권이 가능했다는 정치지형과 관련한다. 이는 수구세력과 보수세력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한국의 상황과 매우 유사한데 소수지만 2천5백만의 북한시민이 캐스팅 보드를 쥐는 정치지형을 형성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과거 호남과 경상이 대립하여 충청이 캐스팅 보드를 잡았던 묘한 상황과 유사하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