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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 오스카 와일드 ㅣ 펭귄클래식 7
오스카 와일드 지음, 김진석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10월
평점 :
서양고전 문학을 보면 거울이나 그림자, 혹은 물속에 비친 모습이 자신의 또 다른 면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도리언 그레이에선 이것이 자신의 초상화인데 정신과 물질을 분리하는 서양의 이분법적 사고의 전통을 잘 드러내는 듯 하다. 하긴 그 덕에 과학기술과 물질문명을 발전시켰고, 무의식 같은 것도 생각해내지 않았을까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는 이전에 본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100년 전 서구 문명의 과학기술에 대한 자신감과 맹신, 그리고 이성을 믿으면서도 무의식의 발견으로 인간 본성과 내면의 어둠에도 주목하는 시대적 상황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이런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와 파멸적 결말을 세기말적 상황을 비추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용을 살피면 도리언 그레이는 10대 후반이고 혈색이 잘 도는 하얀 피부와 무척 어울리는 금발을 가진 아름다운 외모의 소년이다. 성격도 외모에 걸맞게 순수하다. 사실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것에 가깝긴 했다. 집안 배경도 좋다. 귀족이며 부모가 일찍 죽긴 했지만 외할아버지로부터 많은 재산을 물려받았다.
그레이는 화가 바질의 모델이 된다. 바질은 그레이의 아름다운 용모와 순수함을 담아낸 그림을 그린다. 바질은 웬지 죄책감을 느낄정도로 작업에 몰입했고, 그로 인해 작품은 순수하지 못해보였다. 바질에겐 친구 헨리가 있다. 순수한 예술가인 바질에 비해 헨리는 속세의 때가 묻을때로 묻었다. 세상을 관조하고 꿰뚫어보는 달변가 처럼 보이지만 본인의 실제 생활과 정신은 그렇지 못하다. 바질은 그런 헨리가 웬지 순수한 도리언을 물들일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예상을 들어 맞는다.
도리언을 만난 바질은 최고의 초상화를 남긴다. 그리고 헨리로부터 젊음의 허상함에 대해 듣고, 관련 책도 읽기 시작한 도리언은 헨리와 어울리며 조금씩 변해간다. 젊음의 허상함을 알게된 도리언은 자신의 초상화를 보며 자신의 젊음이 영원하고 늙음과 정신적 추함이 모두 초상화로 향하길 기원한다. 그리고 말도 안되게 이는 곧 실현된다. 도리언은 시빌이라는 아름다운 소녀의 연극을 관람하고 순식간에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시빌은 도리언을 얻게되자 연기력을 잃게 되고, 이 모습을 본 도리언은 그녀에게 실망에 이별을 통보한다. 실의에 빠진 시빌은 자살하고, 도리언은 이사실을 알게 되지만 헨리의 말에 금방 죄책감에서 벗어나 연회에 참석한다. 그리고 도리언의 아름다운 초상화엔 잔인한 미소가 남겨진다. 도리언은 두려움에 빠져 초상화를 감추기에 이른다.
이후 나이가 들어도 도리언은 십대의 미모를 유지한다. 하지만 그의 악행에 초상화의 얼굴은 노화와 내면의 잔혹함을 반영하여 망가져간다. 도리언과 어울진 사람들은 남여를 불문하고 불운해졌고, 도리언은 사람을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게 된다. 그리고 그의 초상화는 그런 거의 모습을 반영해나간다.
책은 과거 책 치곤 전체적으로 재밌는 편이다. 이 당시 소설이나 사람들은 인생사나, 여성, 남성, 예술, 시, 드라마, 철학, 종교 등등에 상당히 단정적인 정의내리기를 좋아하는데 포스트모던 시대를 지나온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좀 듣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이런게 크게 거슬리지 않다면 볼만한 책이란 생각이다. 나의 내면을 반영한 초상화가 있어 순수한 시점으로 계속 변해왔다면 그걸 관찰할 수 있다면 어떨까? 자신의 초상화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재밌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