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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평점 :
세계 영화시장을 지배하는게 미국인지라 전쟁영화는 주로 미국의 시각에서 만들어진다. 때문에 다른 전쟁도 마찬가지지만 2차대전에서 미국은 승리의 주요 원인자였고, 큰 피해를 입은 것 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2차대전에서 주요 승리의 원인자이자 가장 큰 피해자는 사실 소련이다. 소련은 동부전선에서 독일군을 막아내어 전력의 분산 및 연합군이 반격할 시간을 마련해주었고, 그 대가로 전 국토의 초토화와 2차대전중 가장 많은 천만에 달하는 전사자를 내었다.
전쟁중 여성은 민간인으로 주로 전쟁의 피해자이거나 남성들을 대신해 일상직업에 종사하거나, 전쟁물자를 생산하는데 참여하곤 했다. 하지만 소련은 달랐다. 아무리 넓은 국토와 인적자원을 자랑하는 나라지만 이런 인적 피해를 입었으니 자연스레 병력이 모자랐다. 이에 소련은 다른 나라와는 많이 다르게 전투병에도 여자들을 투입했다. 수는 무려 백만에 달했고, 전체병력의 10%수준이었다. 이렇게 참전을 많이 했고, 승리의 영광을 누렸는데 그들은 무려 50여년간 자신들의 자랑스런 전과에 대해 침묵했다. 왜 그랬을까?
이에 작가 스베틀라나는 저널리스트로 2차대전에 참전했던 소련 여군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정확한 시간과 분량은 나오지 않지만 십수년이 걸리고, 수백명, 아니 어쩌면 수천명의 목소리를 담았을 작업이었다. 이 결과물은 20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는데 책을 읽어보니 충분히 그럴만한 작품이었다. 스베틀라나의 이 작업은 처음에 공산당국의 검열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유는 여성을 다룬 점, 그리고 영광스러운 대조국 전쟁의 승리의 이면이 너무나도 참혹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게 실상이었다. 그리고 그 참혹한의 단상은 소련군 여성이 같이 있었다.
다른 나라의 여군들이 대부분 간호병이나 취사쪽에 집중된 반면 소련여군들은 병과도 가리지 않았다. 저격병, 파르티잔, 공병, 항공부대원, 취사병, 위생병, 간호병, 군의관등, 무척 다양했다. 책에 목소리를 담은 여군들은 분명 자신들의 선택을 나중에 후회했겠지만 놀랍게도 대부분 무리를 해서라도 자원했다. 그들은 심지어 나이를 속이기도 했고, 자원하고자 고관을 직접 찾아가 강짜를 부리기도 했다. 이처럼 당시 침략자들로부터 나라를 지키겠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매우 강했던 것 같다. 스탈린의 대숙청으로 가족이 피해를 본 여성까지 군에 지원했으니 그들의 애국심이나 외부의 적이 내부를 단속하는 힘은 상당했다.
하지만 호기와는 다르게 전쟁의 참상은 참혹했다. 간호병이나 군의관으로 참전했던 이들은 하루종일 피바다에서 살아야 했다. 잘려진 팔과 다리는 통에 담아 한꺼번에 처리했고, 피냄새가 코와 머릿속에서 가시질 않았다. 죽어가는 이들은 하나 같이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고, 자신의 죽음을 잘 믿지도 못했고, 죽음을 호기심있어 하기도 했다. 퇴각하며 때로는 수 많은 부상병들을 버리고 가야하기도 했다.
전투병들의 참상은 더욱 끔찍했다. 지원병이나 간호병이 죽음을 간접적으로 느꼈다면 이들은 직접 죽음의 공포를 맞이했다. 자신들이 수없이 부상들 당하기도 했고 친구들이 죽어나갔다. 예뻤던 친구는 고향에서 가져온 붉은 색 머플러때문에 죽었다. 그것만큼 눈에 잘 띄는게 없었기 때문이다. 한 여군 병사는 밤새 경계를 서다 머리가 하얗게 새버렸다. 적이 언제올지 모른다는 공포가 밤에 온갖 것들을 공포의 대상을 만들어 버렸을 것이다. 게릴라전을 펼친 파르티잔들은 굶주림에 지치게도 했고 때론 잡혀서 엄청난 고문을 받곤 했다. 10개의 손톱밑을 파고들던 기계, 그리고 팔다리를 마구 꺽어버리던 잔혹한 고문도구들을 그녀들을 이겨냈다. 소련의 여병사들은 그들이 여자임에도 남성의 군복을 지급받았다. 여성병이 없었으니 애초에 그런 것도 없었을 것이고 물자가 모자란 소련이었다. 생리를 하게되어 하혈하면 바지가 흠뻑 젖었다. 피로 굳은 군복은 살을 벨만큼 날카로웠다. 적의 공격이나 공습이라도 받게 되면 그들을 위험하게도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피를 씻어낼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뷰에서 한 병사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은 전쟁의 소리를 기억한다고, 사방에서 으르렁, 쾅쾅, 불을 뿜어 대던 그 소리를, 전쟁터에서는 사람의 영혼마저 늙어버리고, 전쟁이 끝나도 다시는 젊음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전쟁은 그들의 인간성도 변화시켰다. 하지만 그래도 여자였다. 전쟁중에서도 다리가 예뻤던 병사는 다리를 다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전쟁통에 사람이 갈려나가면서도 애꿎은 동물들이 전쟁의 희생양이 되는 걸 가슴아파했다. 하루종일 치열하게 사람들이 죽어나간 전장에서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죽어가는 병사들에게 엄마같은 여자친구 같은 안식처가 되어주려고 했다. 적들을 죽을 만큼 증오하게 되어 그들이 자신들에게 한 것 만큼 해주고 싶었지만 막상 독일부상병을 간호해주고 그들에게 빵을 주었다. 그리고 적진에서 독일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어쩌면 그들은 이런 면에서 전쟁의 참상을 완화해주는 하나의 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남자병사들은 처음 여군을 무시하기도 도움이 안되는 존재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혹은 불편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전장에서 자신들 못지 않은 그들을 보면서 인정과 존중을 하기 시작했고 전쟁터임에도 반드시 지켜야하는 존재로 아꼈다, 그들의 공통적 증언이다. 때론 여군 병사와 사랑에 빠져 전시중임에도 결혼하거나 사랑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후의 반응은 이율배반적이었다. 남자 병사들은 승리의 영광을 여군들과 나눠갖지 않았다. 전장에서는 그토록 금지옥엽으로 여겼음에도 말이다. 여군들도 그랬다. 그녀들은 전쟁에서 받은 메달이나 각종 증명을 애써 숨기려했다. 전쟁에 다녀온 여군을 남자들이 가득한 그곳에 다녀온 여성을 사회가 받아주지 않으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일상으로 돌아가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과 무척이나 비슷한 지점이다. 우리도 냉전과 성장에 휩쓸려 그것들이 어느정도 해소된 이후에야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간접적이나마 전쟁의 참혹함과 수많은 죽음, 그리고 그 아픔을 어느정도 느낄수 있었다. 인간이, 시민이 이런걸 꾸준히 기억해 나간다면 전쟁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면에서 아직 2차대전, 베트남전쟁, 한국전쟁을 기억하는 우리의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