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트 (양장)
이희영 지음 /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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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누구나 부모가 있거나 있었다. 형태는 다양하고 사연도 가지가지 겠지만 그렇다. 생물은 생물에게서만 생겨나니까. 적어도 한 두 세대에선 달걀이 닭보다 먼저 일순 없으니 우린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를 천명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선택권이 없는 것이다. 하긴 그것은 부모도 마찬가지다. 자식보다야 조금더 선택권이 있었던 것 같지만 그들은 두 가지 가능성 밖에 없는 성별도 결정할 수 없으며 더 어려운 외모나 지능지수, 성격 등 그외 모든 걸 고르지 못한다. 바라는건 많지만 그저 얼마 안되는 자신들의 좋은 점만을 물려받기를 기원할 수 밖에 없다. 아마도 부모가 자식에 대해 결정할 수 있는건 자식을 낳지 않아 부모가 안되기로 하는 것 뿐일 것이다. 

 이런 어떤 자의성과 선택권도 없이 그저 우연과 바램, 천명이라는 포장으로 부모 자식 관계가 형성된다. 이 관계 사이에선 무조건적 사랑이 전제된다. 물론 아름다워 보이는 이면 안엔 엄청나께 끔직한 일들과 다툼, 현실이 자리한다는걸 우린 잘 안다.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 힘든 관계 속에 사랑과 아름다움이 자리하기도 한다. 희생과 헌신, 이해, 좋은 관계의 맺음, 배려 등등 이런게 있다는 것도 우린 잘 알고 있다. 실제로 그러하니까.

 책 페인트는 어쩌면 매우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부모자식관계를 순서를 뒤집음으로써 그것이 무엇인지 재조명하고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다. 배경은 조금은 가까운 미래 한국이다. 저출산현상이 심화되어 사람들은 급기야 애를 거의 낳지 않기에 이른다. 남북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어 거대한 국방비를 돌릴 여지가 생긴 정부는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급기야는 태어난 아이들을 국가에서 키워주는 거대한 NC(Nation's children)센터를 전국 각지에 설립하기 이른다. 센터는 3단계로 아이들 연령대에 따라 퍼스터, 세컨드, 써드로 나뉜다. 아이들은 여기서 생활하며 학교도 다니고 운동도 하며 정서적, 인성적, 신체적으로 철저히 관리받는다. 아이들을 관리하는 가디언들이 존재하며 아이들 이름은 모두 제누301, 아키505식이다. 달 이름에서 따오는 것인데 1월생이면 젠뉴어리니 남자면 제누, 여자면 제니식이며 뒤에 식별 숫자가 붙는다. 가디언들은 아이들 관리 이외에 아이들 입양도 담당한다. 센터 바깥의 사람들은 센터안의 아이들을 입양할 수 있었는데 센터로 와서 입양하고 싶은 아이를 만나는 것은 parent's interview 즉 줄여서 책 제목 페인트라고 한다. 바깥의 부모들은 입양에 성공할 경우 정부로부터 제법 큰 보조금과 경제적 혜택을 누릴 수 있기에 은근히 입양은 인기가 있었다. 거기에 입양은 아동의 정서적 신체적 학대 방지를 위해 사춘기시기엔 13세이상, 즉, 써드센터부터 가능했다. 그러다보니 바깥의 부모들은 아이를 입양해도 힘든 유아기를 거치지 않아도 되니 입양에 더욱 적극적이었다. 센터의 아이들 역시 사회적으로 센터 출신을 차별하는 풍조가 있어, 입양을 선호했다. 이런 배경속에서 주인공 제누301에게 페인트 기회가 디시 찾아온다. 제누301은 벌써 17살로 센터에서 머무를 나날이 길지 않았다. 

 책은 이런 제누와 페인트를 하는 부모, 제누의 친구들과 가디언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러면서 천명이기에 누구나 받아들일 수 밖에 없으면서도 크게 고민하고 인생에 추억과 상처를 주는 부모자식관계에 대해 재조명한다. 책을 보면서 각자 내가 부모로서 어떤가 혹은 자식으로서 어떠했는가 그리고 다시 부모자식으로서는 어떤지를 생각해 본다. 이것 만큼 사람에게 큰 이야기는 없을 것이다. 올바른 부모란 뭘까? 자식을 사랑으로 대하면서도 올바른 쪽으로 이끌어주고 그러면서도 그 녀석을 하나의 독립된 사람으로 존중해주고 나도 그녀석과 떨어져 살 수 있는 것일까? 사랑과 그로 인한 간섭과 다툼, 내 욕망의 투사, 그리고 자식이 자람에 따라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노력과 자식을 하나의 동등한 존재로서 인정해나가는 것. 이 모든 노력 과정이 올바른 부모자식간의 관계의 정립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결국 천명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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